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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금하다, 고로 탐구한다”

세계적인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

  • 글·김운찬 대구 효성가톨릭대학교 이탈리아어학과 교수

“나는 궁금하다, 고로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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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에코에게 해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의 기호 또는 작품은 표현과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내용을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설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에코에 따르면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도’, 그리고 ‘독자의 의도’는 종종 서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작가의 의도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코드화할 수 있으며, 따라서 실제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다른 의미로 충만해질 수도 있다. 또한 그 작품의 총체적인 의미 그물이 모든 수신자에게 동일하게 전달된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이런 현상은 단지 예술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의도를 충분하게 전달하지 못하거나 상대방의 말을 오해하기도 한다. 극단적인 경우 우리의 의사소통 과정은 오해의 연속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것은 기호의 본질적 특성인 ‘모호성’ 때문인데, 그로 인하여 고도로 복합적인 기호인 예술작품 또는 텍스트는 ‘열려’ 있을 수밖에 없다.

바로 여기에서 수신자에 의한 해석이 중요성을 갖는다. 당연히 해석이란 수신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에코에 의하면 “텍스트란 원래 게으른 장치”이며 그 자체로는 말이 없다. 그러한 텍스트는 수신자의 능동적인 ‘해석적 협력’에 의해서만 생명력을 얻으며, 비로소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고유의 의미를 드러낸다.

그렇다고 해석이 무한하게 열려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구약의 어느 한 곳에 근친상간의 이야기가 나왔다고 해서 성서 전체를 에로물로 해석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리라. 그것은 해석이 아니라 수신자가 텍스트에 가하는 일종의 폭력이다.

1990년에 나온 ‘해석의 한계’는 ‘열림’과 ‘해석’에 대한 이러한 오해의 여지를 불식시키고자 한다. 물론 명확하고도 객관적인 해석 기준을 설정하기는 불가능하지만, 텍스트 자체의 복합적인 전략과 지침에 따른 해석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어쨌든 에코의 후기 작업은 이러한 해석과정의 모델을 설정하고 그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에 집중돼 있다.



니체의 초인과 만화의 슈퍼맨

여기에서 텍스트란 단지 언어로 쓰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반 기호학 논고’에서 밝히고 있듯이 기호학은 모든 문화현상을 대상으로 한다. 문화란 본질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텍스트를 생산하고, 또 그것들을 통해 소통되고 보존되며 다음 세대에 전달된다. 더 광범위한 의미에서 텍스트는 음악·미술·영화·패션·음식·건축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생산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의미화의 산물이며 사람들 사이의 소통적 상호작용의 매개체다.

기호학 고유의 이러한 성격을 반영하듯 에코는 문화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흥미로운 관찰들을 제시한다. ‘열린 작품’에서 현대의 대중적 예술에 대하여 논쟁적인 주장들을 펼친 것을 시작으로 그는 ‘종말론자들과 통합주의자들’(1964), ‘대중의 슈퍼맨’(1976), ‘제국의 주변에서’(1977), ‘7년 동안의 욕망’(1983), ‘거울에 대하여’(1985) 등에서 현대 문화의 특징적 양상들을 독특한 관점에서 고찰하고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만능 문화평론가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60년대부터 이미 TV나 영화·만화·스포츠·광고·정치 등은 에코의 흥미를 자극하는 주요 원천이었다. 요즈음에는 어느 정도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런 대중문화는 대학 교수나 학자들의 진지한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따라서 아마도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열린 작품’에 대한 반응은 거의 즉각적이었다. 한편으로는 학문의 통속화라는 비난이 있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테마와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어쨌든 그의 독특한 문화읽기가 찬성과 반대의 차원을 넘어 다양한 논쟁의 장을 마련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에코는 전통적인 아카데미즘의 벽을 허물었다. 분명 그것은 소위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라는 그릇된 구별과 편견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아울러 학문이나 이론이 현실세계와 괴리되어 있지 않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론이 현실의 다양한 실천적 형식들에 의해 세워지고 수정 또는 보완돼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대부분 신문이나 잡지에 실렸던 그의 글들은 동시대의 생생한 문화현상을 분석함으로써 시사평론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이러한 글들이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성격의 저술들과 아예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분명 그는 기호학자의 눈으로 주변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모든 문화적 산물을 동등하게 진지한 눈으로 다룬다.

예를 들면 그에게 있어 니체의 슈퍼맨(超人)은 만화의 슈퍼맨이나 타잔과 동일한 맥락에서 고찰된다. 니체에 의해 철학적으로 상정된 초월적이고 이상적인 인간상은 좀더 대중적인 모습으로 형상화한 슈퍼맨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에코가 단지 학문적 이론이나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료로 대중문화를 끌어들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대중문화의 분석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고 체계화했다. 그것은 기호학이 본질적으로 문화의 학문이라는 사실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기호학자 에코 = 탐정?

특히 기호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과정에 그는 종종 추리소설 기법을 인용한다. 추리소설의 열광적인 애독자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는 셜록 홈스의 작가 코넌 도일과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기호학적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추리소설에서 탐정이 수행하는 작업은 우리가 기호를 해석하는 과정과 비교될 수 있다. 가령 우리는 어떤 기호 앞에 직면했을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추론, 즉 퍼스가 말하는 ‘추정법(abduction)’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은 탐정의 추리와 다르지 않으며, 동시에 그 소설을 읽는 독자의 머리 속에서 이뤄지는 과정이다. 탐정이 사건의 흔적들을 추적하여 범인을 찾는다면 독자는 텍스트상의 기호들을 다각도로 추론, 즉 해석함으로써 그 내용에 도달한다.

이처럼 에코는 대중문화 현상을 분석해 오히려 기호학의 쟁점이 되는 가설과 모델들을 세우곤 했다. 그러면서 때로는 대중문화 뒤에 숨어 있는 상업주의와 이데올로기를 폭로했다. 예컨대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으젠 쉬(E. Sue)의 신문 연재소설 ‘파리의 신비’를 분석하면서,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연결되어 빚어지는 드라마를 보여 주었다. 또한 이언 플레밍의 007시리즈 소설에 대한 분석에서는 서사구조 뒤에 냉전시대의 경직된 이데올로기가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음을 폭로했다.

그렇지만 롤랑 바르트의 경우처럼 에코의 이론에서는 이데올로기 문제가 핵심 모티프를 이루지는 않는다. 다만 기호학적 메커니즘의 추적과정에 나타난 문제 중 하나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분명 기호는 거짓말을 하는 데 이용될 수 있으며, 따라서 어떠한 형태로든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렇게 에코의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은 해석이론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문화란 본질적으로 소비자 대중을 전제로 하며, 그들에 의해 고유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는 공존 관계에 있다. 아니, 때로는 소비자의 욕구가 특정한 문화적 생산 방향을 결정하기도 한다. 영화 ‘카사블랑카’에 대한 분석에서 에코는 관객들의 기대가 오히려 작품의 플롯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바꾸어 말하면 대중문화에 있어 성공적인 작품일수록 수신자 또는 관객의 감추어진 욕망(또는 좌절된 욕망)에 적절하게 부응한다는 것이다. 타잔이나 람보와 같은 슈퍼맨은 바로 그러한 산물로 탄생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수신자는 대중적 작품의 은밀한 공모자로 기능하고 있다.

에코의 관심이 단지 대중문화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철학이나 미학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단테나 제임스 조이스 같은 소위 대가의 작품에 대한 분석은 그의 풍부한 지적 역량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1950년대 유럽 문화계에 유행을 불러일으켰던 선(禪) 사상을 날카롭게 관찰하기도 했다. 물론 선 사상의 영향으로 탄생한 예술 작품들에 대한 분석에 국한된 것이었지만, 가령 선의 본질과 비트겐슈타인의 사상 비교는 놀랄 만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에코의 소설들

이러한 기호학적 관심은 그의 소설에서도 드러난다. 1980년에 출판된 ‘장미의 이름’은 전세계 지식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에코의 또 다른 역량을 보여주었다. 뒤이어 나온 ‘푸코의 진자’(1988), ‘전날의 섬’(1994) 역시 그의 풍부한 상상력과 방대한 지식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아울러 이 작품들은 기호학의 소설화라는 평가와 함께 그의 기호학적 관심이 일관성 있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는 추리소설적인 이야기 전개와 함께 독자들에게 책읽기의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렇지만 우선 방대한 분량에다 박식함과 현학성, 복합적인 사건의 연루, 겹겹이 중첩된 전개방식 등으로 인하여 웬만큼 교양과 학식을 갖춘 사람들에게도 난해한 소설로 유명하다.

특히 ‘장미의 이름’은 영화화되어 우리 나라에도 널리 소개된 그의 대표적 소설이다. 추리소설을 한번 써보지 않겠느냐는 출판사 친구의 권유를 받고 쓴 이 작품은 중세의 어느 수도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제목부터 중세라는 시대적 배경과 관련하여 논쟁들이 제기됐고, 결국 에코 자신이 그에 대한 ‘주해’를 쓰기도 했다.

두 번째 소설 ‘푸코의 진자’는 분량이나 내용 면에서 훨씬 더 방대하고 복합적인 구성을 보인다. 특히 서구 역사의 이면에서 형성된 연금술·카발라·성당 기사단·프리메이슨 등 일종의 신비주의적이고 비교(秘敎)적인 사상과 사건들이 소위 공식적 역사와 중첩되어 나타나고, 또한 거기에서 인용된 복잡한 용어들 때문에 일반 독자들은 접근하기 어렵다. 급기야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사전’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엄청난 판매 부수를 자랑하면서 전세계 지성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에코의 소설들은 기호학 이론과 연결시켜 볼 때 흥미로운 점들을 시사한다. ‘장미의 이름’이 기호에 대한 적절한 해석(바꾸어 말해 정확한 추론)과 미흡한 해석 사이에서 빚어진 사건을 소설화했다면, ‘푸코의 진자’는 단순하고 평범한 기호를 지나치게 과잉 해석함으로써 벌어진 사건을 보여준다. 또한 ‘전날의 섬’은 남태평양에서 난파한 배에 혼자 살아남은 조난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주인공은 ‘타자’의 결핍, 즉 소통적 상호작용의 부재 상태에서도 글쓰기를 통하여 생존의 의미를 찾는다. 여기에서 언어 기호는 소통과 해석의 차원을 넘어서며 인간의 존재 그 자체와 직결된다.

물론 에코의 소설을 꼭 기호학의 관점에서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것 역시 하나의 텍스트로서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소설적으로 형상화한 여러 가지 내용이 그의 기호학 이론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에코 자신의 말에 의하면 기호학에서 학문적으로 이론화할 수 없는 것들을 소설화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에코의 동료 교수이자 역시 뛰어난 기호학자인 팝브리(P. Fabbri)의 지적은 자못 예리하다. 즉 에코의 기호학은 이론적인 글보다는 오히려 소설에서 더 탁월하고도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찰은 에코가 기호학을 지나치게 철학적 사변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비난과도 연결돼 있다. 실제로 그의 이론적 저술들은 아리스토텔레스·칸트·토마스 아퀴나스 등 여러 탁월한 철학자의 관찰들을 논의 배경으로 삼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러한 지적은 있을지라도 그의 기호학이 남긴 업적은 크다. 특히 퍼스의 이론을 이어받은 ‘무한한 기호작용’과 ‘해석소’ 개념을 비롯하여 ‘백과사전’ ‘시나리오’ ‘모델 독자’ ‘가능 세계’ 등의 개념은 기호학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들을 열어주면서 지금도 끊임없는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아마도 에코의 부단한 노력과 탐구 정신에서 나온 것이리라. 일흔 가까운 나이에 그는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볼로냐대학의 기호학 강의 외에도 각종 학회와 세미나·강연을 위해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신문이나 잡지 등에 끊임없이 그의 글이 실리고 있다. 얼마 전에 그를 만났을 때 혹시 한국을 한 번 방문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앞으로 2년 동안의 스케줄이 짜여 있다고 장난스레 대답할 정도였다.

세계적인 학자라는 칭송을 듣고 있지만 그에게서 권위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텁수룩한 수염에 약간 살이 찐 모습은 소탈한 아저씨 같은 느낌을 주며, 강의 중간 쉬는 시간에는 밖으로 나와 학생들과 담배를 피우며 유쾌하게 떠드는 것이 천진난만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에코에게서 아직 진행중인 이론과 지식체계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지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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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운찬 대구 효성가톨릭대학교 이탈리아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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