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호

“아마골퍼 제1의 덕목은 스코어보다 매너”

아마골프의 ‘전설’ 이종민씨

  • 하태원 scooop@donga.com

    입력2006-10-13 11:1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클럽 챔피언 23차례, 아마추어 오픈 챔피언 3차례, 국가대표 2회 출 전….아마추어 골퍼들 사이에서는 ‘전설’로 통하는 아스토리아 호텔 이종민 사장이 들려주는 나의 골프인생. 그리고 아마추어 골퍼 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
    이종민(李鍾敏·55).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을지 몰라도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본 이름이다. 웬만한 골프장 클럽하우스나 로비에 가면 이종민이란 이름 석자를 어렵지 않게 찾 아볼 수 있다. 76년도 남서울 컨트리클럽에서 처음으로 클럽 챔피언자리에 오른 후 무려 23번이나 클럽챔피언 대회에서 우승,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금자탑을 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정정한(?) 나이에 ‘전설적’이라는 칭호가 붙은 것은 반드시 클럽챔피언 자리에 여러번 올랐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78년부터 81년 사이에 전국의 아마추어 골퍼가 한자리에 모여 최강 자를가리는 아마추어 오픈대회에서도 3차례나 우승을 차지한 것. 이에 그치지 않고 이종민 사장은 76년과 82년 세계아마추어 골프 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 태극마크를 휘날리기도 했던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서울 중구 남학동에 있는 아스토리아호텔 사장실에서 이종민 사장을 만났다.햇볕에 그은 구릿빛 얼굴에 체구도 당당한 이종민 사장이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사장실에는 이 사장이 각종 아마추어 골프대 회에 나가 받은 트로피와 상패 등이 가득했고 한쪽 구석에는 골프 스윙 연습기가 놓여 있었다.

    아이스하키에서 골프로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는 ‘전설’로 통한다는데요….



    “과찬입니다.시합에 나가기 위해서 골프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데 제가 처음 골프를 시작할 당시에는 골프인구가 많지 않아 우연히 시합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시합에 나가다 보니까 가끔 입상도 하게 되고,그렇게 승수를 쌓다 보니까 클럽 챔피언에 23회나 오르게 됐던것 같습니다. 30여년에 걸쳐 쌓아 올린 승수를 보니 굉장하다고 평가를 해줄 뿐이지 전설적이라는 말은 부끄럽습니다.”

    ─우승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실력은 정말로 종이 한 장 차입니다. 결국 시합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경기 당일의 컨디션과 정신 집중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많은 시합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결국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상대방이 어떤 선수인가 하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첫 우승은 어떤 경기였습니까?

    “76년도 남서울컨트리 클럽 경기였습니다. 골프에 입문한 지 약 9년 만에 우승을 했습니다. 제가 45년 생이니까 만 30세에 첫 우승을 한것입니다. 당시에는 젊은이들은 골프를 즐기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꽤 어린 나이에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본 셈이지요.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경험도 있으시지요?

    “76년에는 포르투갈에서, 82년에는 스위스에서 열린 대회에 국가대표로 참석했지만 입상하지는 못했습니다. 40여개국에서 출전했는데 세계수준과 격차를 느끼며 중간 정도 순위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 런때에 비하면 요즈음은 참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습니다. 여자의 경우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까지 했고 남자도 10위권에 들었으니 말이죠.”

    ─골프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아버지 따라다니며 한두번 치다가 재미를 붙인 것 같아요. 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아이스하키를 했어요. 3형제 중 막내였는데 ‘볼보이’ 시키려고 했는지 아버지는 제게만 골프를 가르쳐줬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골프가 별로 재미없었어요.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있던 서울 컨트리크럽에는 수영장이 있었는데 여름에는 거기 가서 햄버거 먹는 게 더 좋았지요.”

    ─아이스하키 선수생활을 한 것이 도움이 됐습니까?

    “체력적인 면은 물론이고 승부근성같은 정신적인 면에서도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았습니다. 물론 골프채와는 다르지만 아이스하키도 스틱을 들고 퍽을 쳐서 슛을 하는 경기란 점에서 다른 운동보다는 유사점이 많아요.스틱으로 슛을 하는 동작은 골프채로 공을 치는 순간과 많이 비슷해요. 하체가 탄탄해야 좋은 스윙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도 아이스하키는 좋은 기초체력을 만들어 준 셈이죠.”

    ─본격적으로 골프를 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대학을 졸업하면서 아이스하키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군대에 다녀온 직후인 72년부터 골프에 집중했습니다. 젊은 사람들끼리 골프 모임도하고, 아마추어 시합에 젊은 사람들끼리 어울려 다니면 서 참가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골프에 흥미를 느끼게 돼 열심히 골프를 했습니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골프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제가 골프를 처음 시작 할 때는 더더욱 그랬죠.”

    ─어려서부터 골프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세계무대를 염두에 두고 골프를 하려면 어렸을 때부터 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타이거 우즈도 2, 3살부터 했듯이 조기에 골프를 치면 골프 근육이 기억을 많이 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됩니다.”

    처녀를 만나는 설렘

    이종민사장은 지난 시즌부터 시합을 그만두었다. 건강상태도 완벽하지 않고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 참가에만 의의를 두고 시합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시합에 나가면 우승을 하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이사장으로서는 스스로 전성기를 지났다고 판단한 탓이기도 하다.

    “시합이라는 것은 우승이라는 목표가 있어야 목표를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정신적인 무장이 되는데 그런 게 없이치게 되면 게임에 긴장이 떨어지고 재미도 반감된다”고 주장하 는 이사장이다.

    ─지난해 시합을 그만두고 편안한 마음으로 필드에 서니 기분이 어떠십니까?

    “시합 때 기분하고 시합이 아닐 때의 기분에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골프장에 나갔을 때 기분이라는 것은 같다고 생각해요. 초등학생들이 봄소풍갈 때 느끼는 설렘을 아직도 느낍니다. 7년 전에 캐나 다 대표를 지낸 70대 노인과 골프를 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약 50년간 골프를 쳤다는 그 캐나다인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어요. 그랬더니 말하길 ‘한마디로 처녀를 만나는 설렘’ 이라고 하더군요.”

    ─부담없이 하는 친선골프와 시합중 어느 쪽이 재미있습니까? “혼자쳐도 재미있지만 내기를 하면 더욱 재미있고, 시합을 하게 되면 내기때보다도 더 재미있는 것이 골프입니다. 시합에는 말로 다할수 없는 스릴이 있습니다. 어떤 목표를 향해서 자기와 싸움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기를 하게 되면 더 재미있고, 내기보다는 시합이 더더욱 재미있다는 것이지요. 30년 이상 골프를 치고 있는데 시합 때 친 스코어는 보통 때보다 좋아요. 시합 때 그만큼 긴 장하고 정신집중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

    ─승부사 기질이 있으시네요.

    “우승을 많이 하다보니 남들이 그렇게 얘기하는데 승부사의 기질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하다 보니까 정식 게임에서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훈련이 된 것 같아요.”

    ─다시 클럽챔피언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나요?

    “생각은 갖고 있죠. 하지만 이제는 예전 같은 컨디션이 아니니 생각으로 그치는 거죠.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변할지 모르지만 내 나름대로 골퍼로서는 남이 부러워할 만큼은 이루었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을 바라면 욕심이지요. 이제는 건강을 위해서라도 시합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텐데요?

    “잘쳐야 되겠다는 스트레스가 있고 못 치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스트레스도 있지요. 의학적으로도 비행기 조종사가 스트레스를 제일 많이 받고, 그 다음이 프로 골퍼라고 합니다. 70년대부터 90년 대까지 25년 이상을 시합하다 보니까 그런 스트레스가 계속 누적돼서 그런지 몰라도 체력이 예전 같지 않고 그러니, 집사람도 시합을 그만하라고 적극 만류했어요. 나 자신이 생각할 때도 나이에 비해서 내 골프는 좀 늙은 것 같아요.”

    골프의 중독성

    ─골프의 참맛은 어떤 것입니까?

    “한마디로 골프가 이런 맛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골프를 치고 맥주 한 잔 마셨을 때 느끼는 상쾌함이라는 건 경험한 사람들은 대개 알 거예요. 4∼5시간 동안의 긴장 속에서 경기를 마친 뒤 느끼는 감정은 시원하다고 한 마디로 얘기할 수도 없고 달콤하다고도 할 수도 없는 묘한 느낌입니다.”

    ─현대인에게 골프가 좋은 점은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운동이 젊었을 때만 잘할 수 있지만 골프는 나이 먹어서도 젊은이 못지않게 잘 할수 있어요. 또 노후에 부부가 같이 해도 손색이 없는 스포츠지요.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에게는 스트레스 해 소용으로도 더할 나위 없어요.”

    ─골프만큼 중독성이 강한 운동이 없다고 하던데요….

    “바둑을 두면 바둑판이 눈 앞에 어른 거리고 당구에 빠지면 잠을 자려고 누워도 천장에 당구대가 그려진다고 하잖아요. 골프에 매료되면 정신이 골프에만 가게 되고 골프공을 홀에 집어넣는 것, 벙커 에서 빼내는 것 등만 떠오릅니다. 이런 중독성 때문에 골프 때문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망하는 사람도 나옵니다. 프로 골퍼가 아니고 아마추어가 너무 골프에 빠지면 사회생활에 지장도 있죠.

    골프를 하다보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비즈니스도 잘 할 수도 있고,건강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여자 중에는 우울증 환자가 많다고 하는데 골프를 하면 우울증 같은 것은 전혀 모르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화가 되듯 골프에도 너무 몰두하면 좋지 않습니다.”

    골프는 심판없는 경기

    ─슬럼프에 빠진 경험도 있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골프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누구나 싱글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20년이 걸려도 싱글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싱글을 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슬럼프는 누 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같지만 슬럼프를 탈출하는 방법은 싱글에 오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던 것처럼 꾸준히 연습하는 수밖에 없지요.”

    ─주어진 규칙 안에서 최선을 다해 페어플레이를 하는 것이 스포츠맨십 아닙니까. 골프의 룰과 에티켓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처음 부친에게서 골프를 배울 때 기술적인 면보다는 규칙이나 매너, 에티켓을 더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내가 지금도 부친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 그런 대목이에요. 다른 운동은 다 심판이 있습 니다. 물론 골프도 경기위원이라는 형식적이 심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운동처럼 경기의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즉시즉시 판단을 내려주진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골프는 심판없이 게임을 하는 유일한 경기입니다. 결국 자기 자신이 심판 노릇도 해야 되는 것이 골프인만큼 다른 운동보다도 룰과 에티켓, 매너를 정확히 지켜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지요. 그런데 요즘은 너무 스코어에 집착해 룰이나 매너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아 안타까워요. 진정한 골퍼는 좋은 스코어보다는 룰, 매너나 에티켓을 정확히 지키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골프장에서 실제로 그런 반칙이 많이 벌어지나요?

    “부지기수입니다.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공을 손으로 만지는 경우지요. 그린이 팬 곳에 공이 떨어지면 좋은 지점으로 옮긴다거나 러프에 빠진공을 들고 나와 플레이를 계속 한다거나 하는 경우지 요.심한 경우에는 자기 스코어를 조작하기도 해요. 80을 쳐놓고서는 78을 쳤다는 식이지요.”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이종민 사장은 골프장에서 일어나는 반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커지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사장은 반칙을 하는 사람들은 경기력을 떨어뜨리는 정도가 아니라 골 프까지 망칠수 있다며 친선 시합이라도 절대로 반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런 식으로 골프를 한다면 자신을 속이는 행위를 하는 것이고 그런 행동이 마음에 부담을 줘 플레이를 방해하는 요인 으로 작용한다는 것,

    ─골프장에서 캐디는 어떤 존재입니까?

    “캐디는 골퍼들이 최적의 조건에서 골프를 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니까 전문교육을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나라 캐디들은 오직 골프가방만 날라주고 채를 뽑아주는 일만 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 같아 불만입니다. 단적으로 US오픈에서 박세리가 우승할때 박세리는 전문 캐디를 썼고 상대방 선수는 자기 오빠가 캐디 노릇을 했지요. 그 당시 상대방 선수가 전문 캐디를 썼으면 박 세리가 우승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캐디가 선수에게 도움을주는 건 대단하다고 봐요. 우리나라 캐디들도 프로 캐디 같지는 못하더라도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 다.”

    ─아직도 골프가 완전히 대중화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요….

    “골프를 치지 않는 국민들에게 골프가 다른 일반 스포츠와 같이 순수한 스포츠로 인식된다면 앞으로 골프가 더 사랑을 받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다행스럽게 프로 골퍼들이 해외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내 고 외화도 많이 벌어오니까 요즘은 골프 못 치는 사람들도 골프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직은 골프 한 번 치려면 경제적인 부담이 크니까 퍼블릭 코스를 많이 만들어 회원권 없는 골 퍼들도 자유롭게 골프를 칠 수 있게 해주면 하는 바람입니다.”

    “머리를 들지 말라”

    후배골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교훈이 있으면 말해달라는 요청에 이종민사장은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고 골프의 룰이나 에티켓, 매너를 중요시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이종민 사장에게 골프 잘치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 자신은 지도자도 아니고 프로골퍼도 아니기 때문에 기술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해줄 말이 없다는 전제를 단 이종민 사장은 “골프에서 스윙 폼은 각자 가지고 있는 폼이 제일 좋은 것이기 때문에 본인의 스윙 폼을 바꿀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스윙 폼을 더 보완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자신의 스윙 폼으로 스윙하되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볼을 칠 때 머리를 들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볼에서 눈을 떼지 말고 끝까지 공을 보고 스윙을 하십시오.” 아마추어 골프황제가 주는 ‘원포인트 레슨’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