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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정국이 혼란해지면 북한은 달라질 수 있다

노태우 전대통령 2차 서면 인터뷰

정국이 혼란해지면 북한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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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세계무역기구) 체제하에서 국가 대 국가로 상대하게 되면 우리가 북한을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쌀이나 비료를 지원하면 당장 WTO 협정에 위배되는데 그런 불이익을 사전에 피할 수 있는 묘안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국제 사회에서는 양측 모두 국가로 인정받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예컨대 유엔의 표결 과정에서는 두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국내법에 의하면 북한은 국가가 아니지만, 대외관계에서는 대등한 주권 국가가 되는 것이다.

당시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북한의 주장 가운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무력 증강 금지, 상대방에 대한 정찰 금지, 상대방의 영공·영해 봉쇄 금지, 그리고 남한이 주장한 내용 가운데 서울과 평양의 안전보장 문제 등에 대해서는 합의가 도출되지 않아 추후 군사공동위원회의 협의 사항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불행하게도 합의서는 체결했지만 북한 핵 문제가 대두되면서 남북 대화는 중단되고 말았다.”

국가보안법은 손질해야

―최근 일고 있는 국가 보안법 개정 논쟁을 어떻게 보십니까.



“법이란 시대 상황을 반영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절대 선이나 절대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요즘의 대북한 관계 등을 고려해볼 때 과거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으므로 개정의 필요성은 있다고 본다. 최근 상황으로는 남북한 관계 발전에 따라 국가보안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데 국민적 합의가 모아지고 있는 것 같다.”

―주한미군 철수 논쟁과 반미 감정에 대한 견해를 밝혀주십시오.

“1989년 10월17일, 나는 백악관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주한미군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결의는 우리에게 안도감을 주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중 94%가 미군의 한국 주둔을 원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도 미군이 영구히 한국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주한미군은 북한의 남침 위협 저지와 동북아의 군사력 균형 유지를 위하여 필요하다는 인식이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가 통일된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존재가 동북아시아의 군사력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 그것이 우리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주한미군의 범죄로 철수 요구가 북한이 아닌 국내에서 제기되고 그것이 반미감정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발생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한·미간에 협의를 통해서 시급히 법규와 제도를 고쳐야 할 문제지,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경의선 철도를 복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의선 철도 복구는 이미 내 재임중에 구상했던 것이다. 아쉽게도 당시 여건이 무르익지 않아 실현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추진한다고 하니 기쁘기 그지없다.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영종도 국제공항, 서울-부산 간 고속전철 계획을 마련했을 때 그 안에는 북방정책의 기본 구상이 포함돼 있었다. 고속철도의 기본 구상은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아니라 부산에서 서울을 거쳐 평양-신의주-시베리아-유럽까지 연결하는 것이다.

이제 경의선 철도가 복구되어 연결된다면 나의 이런 북방정책이 또 하나의 결실을 거둔다고 나름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남북한은 어떤 체제의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1989년 9월11일, 나는‘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발표했다. 자주, 평화, 민주의 3원칙을 바탕으로 남북연합의 중간 과정을 거쳐 통일 민주공화국을 실현한다는 것이 기본 개념이었다. 통일 과정은 크게 3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남북 정상회담 등 다각적인 대화를 통한 신뢰 구축 단계 → 남북한 각료회의 및 국회의원들에 의한 ‘평의회’ 구성 등 협의기구가 운영되는 남북연합 단계 → 통일 민주공화국 수립 단계 등이 그것이다.

이 방안은 통일을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해 과도 체제의 단계로서 ‘남북연합’을 제시한 것인데 정상회담을 통해 ‘민족공동체 헌장’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최고기관인 남북 정상회의를 구성해 남북 각료회의와 남북 평의회를 두며, 실무기관으로서 공동사무처를 두고, 서울과 평양에 상주 연락대표부를 두도록 한다는 것이다.

남북 평의회에서는 통일 헌법의 초안을 마련해 민주적인 방법과 절차를 거쳐 확정, 공포하고 이 헌법에 따라 총선거를 실시해 통일 국회와 통일 정부를 구성함으로써 통일 민주공화국을 수립하자는 것이었다.

이 방안은 단일 국가로서의 완전한 통일을 상정하고 북한측 입장을 고려해 남북 평의회 숫자를 인구 비례가 아닌 남북 동수로 규정하는 등 북한측 주장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실현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과거에 비해 진전된 제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나는 지금도 이 방안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지하고 평화 정착과 대화, 협력, 교류를 통해 통일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남북관계 구도가 상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소련과 중국의 군사 부문에 있어서 대북한 지원 차단, 북한과 중국이 맺은 상호 방위 조약의 유명무실화와 같은 여건 조성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둘째, 대북 균형을 바꾸는 것이다. 단순한 군사적 균형만이 아니라 외교 역량에서의 우위, 민주화를 통한 정치적 우위, 경제·군사 면에서의 우위를 통해 한반도에서 힘의 균형을 종합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셋째, 남북문제는 철저히 당사자 해결 원칙과 상호주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주도권과 신축성이다. 그 동안의 수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남북대화를 비롯, 비핵화 등의 문제를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신축성있게 대화로 풀어야 한다.

이제는 단순하게 통일 그 자체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한민족의 외교 및 경제 영역을 넓히고 통일 과정과 통일 후에 강대국들이 우리에게 협조하는 여건 조성까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참고로 말하면 내 임기 중 통일을 지향하면서 모든 예상 가능한 상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두었다는 점이다.

나는 북한 문제는 장기적 안목과 종합적 관점에서 유연하게 대응해야 할 사안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인내심이라고 생각했다.

독일의 통일 과정을 살펴보면-내가 아는 한-서독의 정보기관이 동독에 침투해서 어떤 공작을 벌인 경우는 없었다. 독일의 전문가들 가운데 동독이 저렇게 빨리 무너지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형태는 다르지만 북한도 동독과 비슷할지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

북한군이 휴전선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돌발했을 때는 수백만의 피난민이 넘어오게 될 것이므로 북한 및 통일과 관련해 발생할 수도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라고 전 정부 부처에 지시했었다.

나는 통일이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대단히 어렵고 힘든 과정이라는 점을 인식해 통일 과정에서 야기되는 시행 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6공화국의 통일 문제는 외교안보 수석실이 담당하고 주무부처로 통일원, 외무부, 국방부, 안기부 등이 관여했다. 하지만 나는 정부의 전 부처가 동시에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예를 들어 남북한 철자법, 화폐, 교통 법규 등 각 분야에 걸쳐 준비해야 할 사항은 수없이 많았다.

이렇게 준비해 놓은 대책들을 후임 정권이 보완해 나간다면 통일 과정에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연희동은 지금 모택동 읽으며 회고록 집필중

노태우 전대통령은 요즘 회고록 집필에 여념이 없다. 연희동 자택에서 손님을 만나거나 운동하러 나가는 시간을 빼면 회고록을 쓰는 게 주요 일과다. 노전대통령은 두툼한 대학노트에 직접 사안별로 기록하고 있는데, 가끔씩 6공 인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도 한다. 현재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출간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고. 회고록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대목은 노전대통령이 최근 일본에서 출간된 ‘모택동 비록’을 탐독했다는 사실.

연희동에서는 두 달에 한 번씩 ‘육청회’라는 모임이 열린다. ‘육청회’는 ‘육공청와대회’의 준말인데 6공 시절 참모로 일했던 인사들이 부부 동반으로 참석한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운동 모임도 갖고 있다. 이런 자리에서 노전대통령은 시국과 관련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는 후문.

측근에 따르면 노전대통령은 매우 건강한 상태라고 한다. 집에서는 맨손체조, 밖에서는 테니스와 골프로 꾸준히 몸관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복통으로 고생한 일도 있었다. ‘장떡’을 먹고 탈이 나는 바람에 2주쯤 몹시 고생했다고.


신동아 200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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