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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對北 상호주의

  • 송문홍·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對北 상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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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주의와 관련해서 최근 논란이 됐던 뜨거운 이슈가 앞에도 인용한 비전향 장기수 북송과 그에 따른 국군포로·납북자 송환 요구 문제다. 정부는 지난 9월3일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북한으로 돌려보냈고,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이 1953년 포로교환을 통해서 국군포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니만큼 (이들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범주에 포함시켜) 물밑 접촉으로 해결해 나가겠다”(김대통령, 9월3일 방송의 날 회견)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많은 ‘논평’이 쏟아져 나왔다. “북한은 귀환한 비전향 장기수들을 거국적으로 환영하는데 우리는 문제 제기는커녕 제발로 찾아온 국군포로마저 조사하는가(공교롭게도 비전향 장기수가 북한에 송환된 9월3일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 몇 명이 국정원에서 몇 달째 조사받고 있다는 사실이 발표됐다)”(한국일보 시론)라는 비판에서부터 “아무리 남북화해가 중요하다지만 나라의 근본을 깨는 방식의 ‘화해’란 있을 수 없다”(조선일보), “상호주의 원칙이 제기되지만 정서적인 호소력을 지닐지는 몰라도 문제의 해법은 아니다”(대한매일) 등 입장을 달리 하는 온갖 말이 터져 나왔다.

먼저, 정부의 최근 행보에 비판적인 쪽의 논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정부는 “법적으로 국군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박재규 통일부장관)는 황당한 발언에서부터 이들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범위’로 다루겠다는 모호한 표현에 이르기까지 이해할 수 없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그 결과 6·15 남북공동선언에 비전향 장기수 송환은 명문화하면서 정작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는 거론조차 못 했다.

▲ 이번에 북한에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 63명 중 14명은 빨치산, 49명은 남파간첩 출신으로 남한체제를 전복하려고 활동하다가 붙잡힌 사람들이다. 반면에 국군포로는 북한의 침략에 대항해 싸우다가 잡힌 체제 수호자다. 따라서 국군포로는 냉전의 유산이 아니라 국가관과 안보관 유지에 관한 문제이며, 이 문제가 소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범주로 처리될 수는 없다. 납북자들 역시 북에 강제로 끌려가 억류돼 있는 우리 국민이므로 정부는 당연히 송환 요청을 해야 했다.



▲ 따라서 국군포로 및 납북자는 ‘물밑접촉’이 아니라 당당하게 비전향 장기수와 맞바꾸어야 했다. 나아가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로 다룰 것이 아니라 장관급회담의 주 의제가 돼야 옳다.

다른 한편,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한 북한전문가는 정부 주장에 동조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비전향 장기수 북송을 결정하면서 상호주의 차원에서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이 많지만, 우리가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제기하면 모처럼 해빙기를 맞은 남북관계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태도를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김대통령도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앞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보면 이 두 가지는 단지 시차의 문제인 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가 국군포로 문제를 제기한다면 지금까지 ‘국군포로는 없다’는 태도를 견지해온 북한측은 오히려 반공포로 문제를 들고 나와 역공을 취할 수도 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한 것에 대해 북한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나올 수도 있고 “그들이 주변의 강압 때문에 자의에 반해서 반공포로로 둔갑했던 게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납북자 문제 역시 만약 북측에서 ‘납남자’ 문제를 제기하면 아주 복잡해진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면서 점진적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라고 본다.”

비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의 등가성?

한쪽에선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당분간 덮어두려는 정부의 태도를 놓고 “국가의 기본 책무를 망각했다”고 비난하고, 다른 한쪽에선 “지금 상호주의를 들먹이는 것은 한반도를 다시금 냉전지대로 되돌리려는 음모”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논란의 핵심은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서 비전향 장기수 북송과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연계해야 하는지 여부인데, 앞으로도 양측이 쉽사리 접점을 찾기는 어려우리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표면으로 드러난 것은 상호주의 논쟁이지만 그 논쟁의 뿌리는 우리의 대북인식, 다시 말해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닿아 있고, 이 부분에 대한 각계각층의 견해 차이는 통일이 되는 날까지 좁아지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앞으로도 이런 유의 논쟁이 사안을 달리해서 계속 등장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 비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납북자 문제가 상호주의의 거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다시 말해 상호주의 원칙의 핵심 중 한 가지인 ‘등가성(等價性)’의 측면에서 이 두 가지는 성격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 등가성으로 본다면 비전향 장기수는 남이 북에 올려보냈던 북파공작원과, 납북자는 납남자와 교환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보수성향의 대북협상 전문가인 이동복 전의원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정부를 비판했다.

“비전향 장기수는 그 성격상 정규 인민군으로서 전쟁행위에 종사하다가 붙잡힌 전쟁포로가 아니다. 이들은 국내법적으로 범법자들이고, 국내법에 의거해 처벌을 받은 사람들이며, 형을 살고 나온 뒤 그들이 남과 북 어디에 귀속돼야 하는가는 별개 문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들을 무조건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이들을 북송하자는 주장은 북한을 모르는 얘기다. 그들을 보낼 때에도 북한이 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일괄적으로 보내야 한다.

반면에 국군포로 문제는 인도주의적인 사안이 아니라 전쟁포로에 관한 국제협약의 보호를 받는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국군포로는 없다’고 주장해온 것은 명백한 국제적 범죄행위이며, 이 문제는 국제법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납북자 문제 역시 북한에서는 그들을 간첩이라고 주장하지만, 국제적십자사나 유엔 등 중립적인 제3자가 사실확인을 거쳐 처리되는 게 올바른 수순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렇게 제각각 다른 성격의 문제들을 남북 당국이 모두 두루뭉실하게 다루고 있다.”

이 전의원은 “상호주의란 등가성을 전제로 한 개념이고, 단순한 주고받기와는 다르다”며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는 상호주의의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자신을 보수나 진보로 분류하지 말아달라는 한 북한전문가는 좀더 원론적인 차원에서 상호주의 문제를 이렇게 얘기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진보인사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한 가지 있다. 북한이 사회주의체제라는 고정관념이 그것인데, 지금의 북한은 일본의 와다 하루키 교수가 말했듯이 일종의 ‘유격대 국가’적인 성격이 훨씬 강하다. 사회주의라는 껍질만 쓰고 있을 뿐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세습권력이 법보다 우위에 있는, 그리고 지도부의 생존을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 나라라는 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전제 위에서 모든 사안을 바라보려고만 한다. 우리보다는 북한을 더 배려하는 심리가 바로 거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북한은 철저하게 상층부의 이해관계에 입각해서 정책을 결정하고 있고, 상호주의도 그런 맥락에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상호주의의 뿌리

그러면 상호주의의 연원은 어디인가. 사실상 국가간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상호주의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상호주의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원칙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비근한 예로 동서독의 경우 상호주의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상호주의적인 성격을 띤 교류·협력을 바탕으로 내독(內獨)관계를 확대·발전시켜갔다. 양측은 경제협력 대 인도주의 문제, 경제지원 대 정치범 석방 등의 교차협상 방식으로 상호이익을 추구했고, 이런 경험이 축적되는 가운데 교류·협력이 활성화되었다는 것. 70년대 이래 소련을 배경으로 한 동독은 체제유지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서독과의 상호주의를 기반으로 한 교류·협력을 통해 경제적 이득과 국제적 인정의 획득 등 다양한 이익을 추구했다.

남북대화 역사에서 봐도 상호주의라는 용어는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80년대의 남북대화 기록을 살펴보면 우리측 발언에서 “상호주의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1990년 2월22일 당시 솔로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미하원 외교청문회에서 한 발언에도 “상호주의 원칙을 전제로 북한과 접촉 확대를 희망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표현대로라면 상호주의는 남북대화뿐만 아니라 북미관계에서도 준거틀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당시의 상호주의는 지금 우리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상호주의와는 내용 면에서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주고받기(give · take) 혹은 응보(應報) 논리(Tit-for-Tat)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냉전체제하에서 적대적 갈등관계로 일관했던 당시 상황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작년 6월 말 전두환 전대통령이 서부전선 최전방 부대를 방문했을 때 현 정부의 포용정책에 대해서 한 말이 이런 식의 상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전 전대통령은 “포용정책은 반드시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면서 “상호주의란 적이 때리면 우리도 때린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2년에 열렸던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에서도 상호주의는 이런 주고받기식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남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4개 공동위원회별로 협상을 했는데, 그중 하나인 핵통제공동위원회에서 남북한 군시설 공개 문제를 놓고 이른바 ‘대칭적 상호주의’에 대해서 끝내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남측은 당시 국제문제가 되고 있던 북한의 핵의혹 시설에 대한 공개의 대가로 남측 군시설의 개방을 제의했는데, 북측은 “사실상 핵위협은 오히려 남쪽에 있다”면서 남측이 먼저 공개하라고 해서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무산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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