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허철부 교수의 체험적 영어정복론

영어공용지역 설치가 지름길이다

  • 허철부 < 명지대 교수 >

영어공용지역 설치가 지름길이다

2/4
균형적 이중언어 구사자로서 필자의 영어학습 경험이 영어교육 방법론을 개선하는 데 참고가 될 것 같아 소개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1학년에 갓 입학했을 때 영어웅변과 발음학에 권위 있는 안호삼 외대 초대 학장이 필자를 테스트한 적이 있다. 필자는 발성법이나 발음이 영어웅변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아 1학년 2학기 영어연극부원 선발에서 탈락했다. 입학 동기생 중 10여 명은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어의 달인이 돼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었다. 필자는 본래 공대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가정 형편상 외대로 진로를 바꿨기 때문에 영어실력이 부족했다.

안호삼 교수는 문학 위주의 영어교육을 비판하고 구어 중심의 영어교육을 강조한 교육자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학계뿐만 아니라 외대 영어과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없었다. 대학은 심오한 이론을 배우는 곳이지 어학훈련을 하는 곳이 아니라는 통념 때문이었다.

대학 1∼3학년 동안 발성법, 다양한 영어식 강조법과 감정표시법, 철저한 미국 영어식 발음법 등 웅변과 영어 문장력 공부를 하면서 한국말의 번역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영어로 생각하는 방법을 어린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방법에 따라 스스로 독학한 결과로 필자는 돈 한푼 들이지 않고 균형적 이중 언어구사자가 됐다. 김대중 대통령이 옥중에서 긴 문장을 외운 것과 같은 방법으로 문장이나 단어 또는 숙어를 따로 떼내 외우지 않고 그것이 실제로 쓰이는 문장과 맥락을 함께 익혔다.

영어연극, 영어웅변, 영어토론을 하며 영어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방법을 배웠다. 문법을 따로 공부하기보다는 문장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대개 영어회화가 강한 학생은 문법과 영작, 독해가 약하고 문장력, 독해력이 강한 학생은 회화에 약한데 그와 같은 불균형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영어원서를 구입할 돈이 없었던 필자는 미국 공보원 도서관에 소장된 5000여권의 책을 전부 읽기로 하고 속독으로 대부분 독파했다. 또한 문학도 지향적인 미국인 강사의 개인지도를 받으며 영어수필 등을 부지런히 썼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로 대학 3학년 때에는 코리아헤럴드 영어웅변대회에 입선해 이승만 대통령과 악수할 기회도 가졌다. 또 서울의 10개 대학에서 30명이 선발된 영어독서·토론모임에 참가, 한국 최초의 대학생 대표로 미국에서 개최된 학생대회에 참석했다.



당시 학생대표 30명 중에는 아웅산에서 서거한 대통령 경제특보 김재익씨, 전 과기부장관 이태섭씨, 전 중앙대 경영대학장 송용섭 교수, 덕성여대 인문대학장 최은경 교수 등이 있었다. 그곳에 모인 서울 10개 대학 대표들은 모두 출중한 영어의 달인이었고 국제회의에서 한국을 대표하기에 충분한 자격과 영어구사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 추출할 수 있는 점은 문어 지향적 교육에서 구어교육을 대폭 보강한 종합적이고 유기적인 영어교육을 통해 사고와 언어행동이 분리되지 않은 균형적 이중 언어 구사자를 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어연극과 영어토론

필자의 영어교육 경험도 참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언급한다. 필자는 1964년부터 1974년까지 대학생 영어토론클럽을 관리, 지도해 10년간 약 10만 명에 이르는 대학생들의 영어토론능력을 향상하는 데 기여했다.

그곳에서 배출된 영어의 달인으로는 서울대 조동성 국제대학원장 및 경영대학장, 서지문 고려대 영문과 교수, 경희대 신방과 이경자 교수, 박종섭 현대전자 사장, 장석환 전 청와대 비서관, 김진석 워싱턴 타임스 기자 등이 있다

필자는 1970년대 영어연극경연대회를 통해 영어토론클럽 회원들의 발음을 향상시키고 감정 표현과 사고를 영어식으로 하는 법을 가르친 적이 있다. 성과는 대단했다. 필자가 차트를 들고 다니며 발성법과 한국인이 자주 틀리는 자음·모음, 특히 이중모음을 지도했고 같은 문장도 강조, 리듬, 호흡법에 따라 아주 색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실례를 가르쳤다. 당시 경희대 체육학과 학생들이 영어연극경연에 참가했는데 이들의 영어실력이 단기간에 월등히 향상돼 많은 학생들이 대학교수, 국제 스포츠 지도자, 스포츠 외교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을 목격했다.

필자가 명지대학교에서 맡고 있는 강의의 60∼70%는 영어교재를 쓴다. 본인이 92년도에 창설한 경영정보학과 학생들의 입학 당시 학력고사 성적은 180점 정도에 불과했다(당시 경영학과는 270점이었다). 그중에서도 산업체 지원생 6명의 합격선은 100점대였다.

학생들을 사흘 건너 시험을 치르며 4년 동안 상당량의 원서를 독파, 발표하게 했다. 원서 강의는 일일이 해석하지 않았다. 미국대학에서 강의하는 속도와 분량을 유지하되 한국어로 강의를 하고 요약을 영어로 했다. 형편없는 영어실력이 일류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던 제자들에게 앞으로도 경쟁에서 핸디캡이 될 수 있는 영어능력을 일거에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다. 영어원서를 여러 번 읽고 완전히 소화한다면 중·고등학교 6년간 미진했던 영어능력을 일거에 서울대생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격려했다. 영어는 평생 가장 강력한 배경이 될 것이니 이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학생들이 도전의식을 느끼고 OHP 등을 스스로 준비하며 다른 과목 학습량의 5∼6배를 투입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 결과로 경영정보학과 1회 졸업생이 경영학과 졸업생보다 더 좋은 직장을 구해 더 많은 급여를 받으며 일하게 됐다. 또한 당시 영어가 약한 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중은행에 근무하면서 산업체 지원생으로 입학했던 92학번 강경화씨는 미국의 자매학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 1년간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뒤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현재 회계법인에서 경영학과 졸업생의 3∼4배의 고액 연봉을 받으며 근무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이 원서교육의 성과라고 자부한다. 필자는 교과서를 지난 10여 년간 개정하지 않았다. 그 일부만 보조교재로 쓰고 영어원서를 주교재로 하고 또 많은 교재내용은 인터넷 등에서 수시로 취합해 학생들이 필자의 홈페이지에서 받아 쓰게 하고 있다.

2/4
허철부 < 명지대 교수 >
목록 닫기

영어공용지역 설치가 지름길이다

댓글 창 닫기

2023/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