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창제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댄다.
하나는 우리의 법체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매춘이 실제로 행해지는데도 묵인하고 있으니 그럴 바에야 정부가 매매춘을 합법화해 관리함으로써 ‘노예 윤락’으로 전락한 윤락녀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게 오히려 차선의 방안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남성들의 성욕을 법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이상 그들에게 성욕을 배출할 장소를 합법적으로 제공하는 대신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유사 행위를 뿌리뽑아 미성년자를 보호하고 동시에 공중 위생보건 상태도 개선하자는 것이다.
김강자 과장도 어느 인터뷰에서 “사창가에서 구출된 열네 살짜리 소녀가 성병으로 눈동자가 누렇게 변하고 성기가 문드러진 것을 본 순간 확 돌아버릴 것 같았다”고 한 적이 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라면 공공연한 현실이 돼버린 윤락행위를 놓고 위법이다 아니다를 따지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는 것이 윤락녀에게 인권을 찾아줄 수 있는 길인지를 먼저 묻는 게 순서이리라. 삶과 죽음을 오가는 게 당장의 현실인데 다른 무엇이 그에 앞설 수 있단 말인가. 과거에 우리가 ‘종3’(서울 종로3가에 있었던 사창가)을 없앴다지만 그 결과 종3류의 사창가가 서울 외곽과 수도권 곳곳으로 확산됐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러한 주장은 충분히 검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그에 앞서 고려해야 할 것들도 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사창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데도 대부분 이를 묵인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춘을 합법화한 곳은 네덜란드나 미국의 네바다주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왜 수많은 나라와 도시가 합법화를 주저하는 것일까. 합법화의 효과를 몰라서일까, 아니면 그것이 자기네 나라와 지역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일까.
물론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네덜란드가 매춘을 합법화했다고 해서 우리가 네덜란드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필자가 보기에는 많은 나라가 이렇듯 어정쩡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합법화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아무튼 네덜란드는 공창에 대해 아주 떳떳하다. 필자는 그 이유가 이 나라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네덜란드는 좀 특이한 나라다. 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아 ‘국토난’에 시달려온 탓에 이들은 17세기 이래 바다 멀리 나가 식민지 경영과 무역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왔다. 장사의 요체는 개인의 자유와 영리 추구다. 그래서 이들도 자유와 영리 추구를 무엇보다 앞세웠고 또 그것을 위해 투쟁해 왔던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개척과 진보의 의지를 부추겼다. 영국 출신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을 향해 떠났던 곳도 네덜란드였고, 국제법과 해양법의 모태가 된 ‘전쟁과 평화의 법’의 저자도 이 나라 출신의 그로티우스였으며, 19세기 말 아르누보 건축의 기치를 올린 이도 네덜란드 건축가 리트펠트 슈뢰더였다. 이들은 모든 면에서 진보적인 성향의 민족이었다.
왕궁과 시청 옆이 홍등가
주로 외지로 이동하는 생활은 그들로 하여금 거리의 여자를 찾게 만들었고 성에 대해서도 자연 개방적인 태도를 갖게 했다. 홍등가가 주로 항구도시에, 그리고 신흥 공업도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본격적인 공창이 해상식민지 경영과 무역으로 번창했던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됐다는 점도 이를 증명한다. 당시 아테네의 외항 피레우스에는 독방식(cell) 오두막집이 많았는데, 그곳이 대개 그런 장소로 이용됐다.
네덜란드인들의 이처럼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은 세계 최초로 연성(軟性) 마약의 사용과 판매를 허용하게 만들었고, 안락사 인정에서도 선구적인(?) 태도를 취하게 했다. 또한 이들은 결혼보다 동거를 더 선호한다. 형식보다는 내용을 우선하는 것이다. 자기 딸이 다른 사내와 동거한다는 사실을 스스럼없이 남들 앞에서 이야기해도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에 맡길 뿐 국가나 제도가 그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것이 이 나라의 문화다. 창녀를 찾는 것도 사생활로 보기 때문에 공창에 대해서도 그렇게 떳떳한 것이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운하의 도시다. 유명한 ‘홍등가(Red Light District)’도 운하를 끼고 있다. 한밤에 야한 불빛이 운하 주변의 수면에 어리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볼거리가 된다. 실제로 그곳은 당당한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용무가 없어도 호기심에 이 지역을 한번쯤 배회한다. 놀라운 것은 그 지역이 왕궁과 시청 근처라는 사실이다. 서울로 따지면 종로 1가쯤 되는 위치에서 버젓이 매춘이 행해지는 것이다.
어떤 업소는 ‘이곳을 지나면 시청입니다. 더 이상 이런 집은 없습니다(De Laaste Pomp voor Het Stadhuis)’라는 간판을 내걸고 한 사람의 손님이라도 더 붙들어 보려고 애쓴다. 그렇지만 그 업소를 지나면 또 그런 간판을 건 업소가 나타난다. 서로 ‘원조’ 간판을 내걸고 ‘오리지널 싸움’을 벌이는 우리네 음식점들을 떠올리게 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런 집에서는 으레 얇은 옷을 걸친 여인들이 희미한 불빛의 창문 너머로 마치 팬터마임 배우처럼 특이한 몸짓을 지으며 지나가는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동한 사내들은 문 앞에서 흥정을 한 다음 안으로 들어간다. 업소 주변에는 섹스에 도움을 주는 각종 기구와 약품, 포르노 비디오와 책자를 파는 가게도 즐비하다. 그곳에는 성에 대해 보수적인 동양인으로선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물건도 많다. 신기해서가 아니라 뭐 저런 것까지 동원해가면서 그 일을 치러야 하나 하는 생각에 민망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에선 연성 마약도 거래된다. 섹스와 포르노, 거기에다 마약까지 넘쳐나다 보니 성에 대해 꽤 자유롭다는 서유럽에서도 으뜸가는 ‘성역(聖域)’이자 ‘성역(性域)’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먼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도 많이 찾지만 고객의 주류는 이웃 프랑스나 독일에서 온 원정팀들이다. 국경이 없어져 버린 지금 이들을 통제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다른 EU(유럽연합) 국가들은 네덜란드 정부를 향해 “그래도 마약은 안 돼!”라고 항의해보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다 알면서 무슨 소리냐”며 코방귀를 뀔 뿐이다.
이곳이 홍등가로 자리잡은 것은 약 100년 전의 일이다. 암스테르담 시가 매춘과 호객 행위를 할 수 있는 일정 공간을 제공하는 대신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이다. 시 당국은 매춘행위가 불법이라며 근절 일변도로 나가기보다는 일정 지역 안에서 성욕을 해소할 수 있게 하고 또 그 일을 통해 가난한 여성들이 생계를 꾸려갈 수 있게 함으로써 윤락가가 주거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고 성병의 전염도 예방할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그들은 이처럼 합법적인 홍등가가 있어 이웃 나라에 비해 성 범죄율이 낮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또한 네덜란드 성인의 절반은 매춘부를 친구로 갖는 데 대해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며, 75%는 매춘을 직업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런 사정이라면 암스테르담의 공창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공창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이런 사례에서 힘을 얻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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