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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가 명택 11

서울 도심의 숨은 명당 ‘안국동 8번지’

해위(海葦) 윤보선(尹潽善) 고택

  • 조용헌 <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 > cyh062@wonkwang.ac.kr

서울 도심의 숨은 명당 ‘안국동 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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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안채이지만 윤보선 대통령이 한때 여기서 집무를 하였던 것이다. 4·19혁명 이후 내각책임제 하에 장면씨가 총리에 취임했으나 거주할 사무실이 마땅히 없어서 반도호텔을 임시로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당시는 경무대)는 당시 윤보선 대통령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세총리가 처한 상황을 감지한 윤대통령은 그림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고 장면 총리에게 자신이 머무르던 청와대에 와서 살기를 권유하였다.

윤대통령의 인품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윤대통령 자신은 안국동 집의 안채에 들어와 살면서 동시에 대통령 집무도 겸하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5·16에 이은 대통령직 하야로 인하여 그 계획이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이렇게 대통령이 집무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접견할 수 있도록 안채의 구조를 일부 바꾸었기 때문에, 일반 고택의 안채와는 다른 당당한 분위기를 가진 건물로 변한 것 같다. 안채의 ‘국태민안(國泰民安)’ 현판이 한때의 그런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다. 현재는 장남인 윤상구씨 가족이 안채에 살고 있다.

안채에서 눈에 띄는 점은 마당에 깔린 모래다. 마당에는 흰 모래가 깔려 있어서 정갈한 느낌을 준다. 한옥에서 모래는 빛을 반사해주는 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라 낮이라 해도 방안의 조도(照度)가 낮아 아무래도 약간 어둡기 마련인데, 이걸 보완하기 위해 모래에서 반사되는 빛을 이용하였다. 모래는 빛을 받으면 반사하게 마련이고, 그 반사된 빛이 방안으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즉 마당의 흰 모래는 일종의 간접 조명장치였던 셈이다.

흰 모래는 이러한 실용적 용도 외에 감춰진 미학이 있다. 바로 정갈함과 고요함이다. 모래에 담겨 있는 정갈함과 고요함을 맛보려면 절 마당에 가보아야 한다. 방문객이 오기 전인 새벽녘이 좋다. 행자 스님이 대빗자루로 쓸어놓은 절 마당에는 규칙적으로 왔다갔다 한 대빗자루의 흔적이 물결처럼 남아 있다. 방문객의 등산화 발자국이 찍히기 전의 꼭두새벽에 그 대빗자루의 선명한 흔적을 바라보노라면 정갈함과 고요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선적(禪的) 희열(喜悅)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특히 일본 사찰에 아침 일찍 가보면 이와 같은 빗자루 자국이 선명한 마당의 모래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필자가 오전 10시쯤 방문했음에도 이 집 안채 마당에는 가지런한 빗자루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풍수에 관심 없는 집주인

이 집의 풍수를 보자. 집주인은 기독교도인이라 명당에 관심이 없는 듯했고, 덕을 쌓으면 복이 온다는 정도만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이 집터에 관련돼 가전(家傳)되는 정보는 하나도 얻어들을 수 없었다. 풍수를 볼 때 직접 살펴본 것과 가전 정보가 대략 일치할 때 집 터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로 규정할 수 있는데, 가전 정보가 없는 경우는 직접 보고 판단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이 경우 필자가 만에 하나 착오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약간의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헤아려주기 부탁드린다.

먼저 서울의 전체 풍수를 스케치하면서 안국동으로 좁혀 들어가보자. 전통 도읍지의 풍수 조건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사방(四方)에서 산이 받쳐주고 있어야 한다. 사방이라 하면 패철상에 나타난 건(乾)·곤(坤)·간(艮)·손(巽)이나 자오묘유(子午卯酉) 또는 인신사해(寅申巳亥) 네 방향에 산이 있는 조건이다. 사방에 산이 있다는 것은 그 안쪽에 사는 사람들이 사방에서 나오는 산의 정기를 받을 수 있어서 좋고,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산을 진지 삼아 외적의 침입을 방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두 번째는 강이 흘러야 한다. 강은 물이고 산은 불로 본다. 동양사상에서는 수(水)와 화(火)가 오행을 대표하는 선수로 보기 때문에 가장 중시한다. 화만 있고 수가 없으면 건조해서 생명이 잉태될 수 없다. 비유하자면 고층 아파트에 가습기가 없으면 몸도 뻣뻣해지고 목도 건조해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반드시 강물이 흘러야 한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강물은 운송수단이다. 육상교통과 자동차가 발달하기 전에 강물의 존재는 고속도로와 같은 운송수단이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고대사회는 강을 통해 물자를 운송했으니까 말이다.

세 번째는 자급자족할 수 있을 정도의 들판이 필요하다. 도읍지에는 인구가 밀집되기 마련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식량의 자급자족이다. 그래서 넓은 들판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세 가지 조건을 갖춘 곳은 도읍지가 되었다. 신라의 경주가 그렇고, 고려의 개성, 조선의 서울, 북한의 평양, 후백제 견훤의 전주가 이 조건에 해당한다.

이렇게 도읍지로서의 면모를 갖춘 서울은 경복궁 뒤의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여 낙산을 좌청룡, 인왕산을 우백호, 남산을 안산으로 한다. 여기서 한가지 부족한 부분이 목체(木體)의 산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의 국지사(國地師) 노릇을 했던 지창룡 선생의 이론에 따르면 제왕이 사는 수도에는 오덕구(五德丘)라고 해서 수, 화, 목, 금, 토형의 산이 전부 갖춰져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경복궁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목산(木山)이 보이지 않는 결점이 있다. 그래서 부득불 남산 이름을 목멱산(木覓山)이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멱(覓)은 찾는다, 구한다는 뜻이므로 그 이름에 목을 찾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남산은 형태로 보아서는 목산이 아니지만 이름으로 대신 비보(裨補)한 셈이다.

조선의 이씨(李氏) 왕조에서 특히 목을 중시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그 성씨 탓이다. 한문으로 이(李)자를 풀어보면 나무 목(木)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씨 왕조는 풍수도참(風水圖讖)적인 맥락에서 목을 자신들의 운명과 동일시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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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 >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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