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호

경제학과 심리학으로 살펴본 사주의 세계

  • 안영배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ojong@donga.com

    입력2005-04-12 13: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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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사주 명리학을 서양의 학문체계로 끌어들여 해석해보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사주에 재물운이 좋은 사람이 과연 소득이 높은지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이 있는가 하면, 사주에 나타나는 성격이 서양의 성격분석이론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따져보는 심리학적 시도도 있다.
    경제학과 심리학으로 살펴본 사주의 세계
    태어난 연월일시를 가지고 사람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사주(四柱) 명리학(命理學)은 과연 미혹하는 신념체계인가, 아니면 과학적 근거를 가진 자연철학인가.

    사주에 대한 양면적 평가와는 별도로 일반인들의 호기심은 높은 편이다. 올 정초 어느 TV 방송 프로그램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52%가 점을 본 적이 있으며 사주풀이를 믿는다는 응답이 40%나 됐다.

    이런 정서와 더불어 비학문적인 것으로 인식되던 사주 명리학을 학문의 잣대로 평가해보려는 작업이 학계 일부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원광대 동양학대학원에서는 사주 명리학을 연구하는 석사 과정을 개설, 학문적 영역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일부 지방대학에서는 학부 교양과정에 사주 명리학을 신설, 학부생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전주 우석대에서 교양과목으로 명리학을 강의하는 김두규 교수는 매학기 수강신청을 받을 때마다 신청 학생이 너무 많아 인원을 제한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밝힌다.

    이미 한의학계에서는 개인의 사주와 질병의 함수 관계에 대한 임상학적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개원가에서는 한의사들이 환자의 사주로 병세를 진단, 치료하는 방법을 도입해 의술을 펼치기도 한다. 서울 종로3가 도가한의원의 신미재 원장은 “사주로 환자들의 병을 진단하면서 개인적 고민도 풀어주는 심리상담사 노릇도 하다 보니 환자들의 호응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이와 더불어 사주 명리학을 서양의 학문체계로 끌어들여 해석해 보려는 작업도 활발한 편. 사주에 재물운이 좋은 사람이 과연 소득이 높은지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이 있는가 하면, 사주에 나타나는 독특한 성격이 서양에서 개발한 성격분석이론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따져보는 심리학적 시도도 있다.

    사주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을 살펴보기로 하자.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남성일 교수(서강대 경제학과)는 올 초 한국경제학회 연합학술대회에서 ‘사주가 소득에 미치는 효과 분석’이라는 이색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財運 좋은 사람이 돈 많이 벌어

    이 논문은 사주에 재물운이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에 비해 학력 등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최소 12%에서 최대 39%까지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주에서 나타나는 재운을 상·중·하로 나눈 뒤 실제로 당사자의 소득을 연계시켜 본 결과 재운이 약한 사람들의 월평균 소득은 109만원, 보통사람은 121만원, 강한 사람은 134만원으로 나타났다.

    또 재운이 강한 집단이 약한 집단보다 교육에 따른 수익률도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운이 약한 집단에서 1년의 추가 교육은 소득을 약 8%씩 상승시키는 데 비해 재운이 강한 집단에서는 12.7%씩 상승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

    이는 우리나라 35∼65세 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사주와 소득의 상관관계를 통계기법인 회귀분석을 통해 연구한 결과물. 남교수는 이 논문을 발표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노동경제학에서 소득을 결정하는 요인을 분석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대체로 개인의 학력, 경력, 근속 연수, 자격증 등 인적 자본이 소득 변수에 70% 이상 작용하는 것으로 보지만 측정되지 못하는 소득 변수는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경제학술지로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AER(American Economic Review)’ 1994년판에는 ‘잘생긴 사람이 소득이 높은가’라는 미국인 학자의 논문이 게재된 적이 있다. 이는 사람이 잘생겼느냐 못생겼느냐는 변수를 가지고 소득함수 추정 방법론을 통해 분석한 것인데, 실제로 잘생겼다고 평가받은 사람들이 못생겼다고 평가받은 사람들에 비해 소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외모 역시 소득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주의 운도 소득변수에 얼마나 작용하는지 평가해봤는데, 이번 조사 결과 경제학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남교수는 이러한 결과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자영업이나 고용주 등 비임금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추정 결과에서는 사주 변수가 잘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교수는 이에 대해 “자영업자나 고용주 등은 우리나라 조세제도의 특성상 월급 생활자에 비해 소득이 잘 노출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남교수는 또 “사주는 연월일시 네 기둥의 60갑자를 가지고 따지는 것인데 이번 분석에서는 태어난 생시를 뺀 세 기둥으로 접근했는데도 현대과학의 통계적 방법에 따라 검증한 결과, 명리학의 예측력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말한다.

    현재 남교수는 일본사람들의 데이터를 가지고 사주 재운과 소득의 함수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일본인들에게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올 경우, 더 세계적인 학문적 영역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남교수의 예측이다.

    과연 태어난 연월일시로 그 사람의 타고난 재운, 나아가 운명을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원광대 동양학대학원의 이상선 교수(철학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지구 태양계는 자전과 공전을 거치면서 한 해, 한 달 등 시간의 마디를 부여한다. 고대 동양인들은 그 시간의 마디를 60갑자를 이용해 표현하였다. 즉 매년 매달 매일 매시의 흐름을 기(氣)의 흐름으로 인식하여 이를 60갑자라는 부호(기 해석코드)로 상징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생명의 주기성(週期性)을 해석해내는 것이 바로 사주 명리학이다.”

    풀어 말하면 사람은 모태에서 출생하는 순간, 바로 그때 작동하는 해와 월과 날과 시의 기 흐름(우주적 에너지)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때 받은 사주는 일정한 주기성을 가지면서 당사자의 운명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운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도 흥미롭게 나타난다. 수원과학대 김태균 교수(사회복지학)가 세 차례에 걸쳐 직장인과 전국 대학생 1979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운(運)에 관한 태도’를 설문 조사한 결과(93~94년)에 따르면 73%가 운을 ‘타고난 팔자’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운은 자신의 의지와는 별도로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주 명리학에서는 개인의 성격도 타고난 개성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사주에서 나타나는 성격을 서양의 성격분석이론과 대비해 그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검증해본 연구논문도 있다.

    김태균 교수는 서울과 대구에 사는 20세 이상의 남녀 47명을 대상으로 개인의 사주에서 나타나는 성격을 계량화할 수 있는 8개 척도(주도성·사교성·자신감·책임감·사회화·자기통제·관용성·지적 효율성)로 분류해 점수를 부여한 뒤, 이를 KPDI 성격진단검사(1997년 한국행동과학연구소에서 만든 표준성격검사) 결과와 비교한 논문(‘사주와 성격검사의 공인타당도 연구’)을 발표한 바 있다.

    김교수와 10명의 교육심리학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작업한 결과 8개 항목의 사주 성격 해석과 KPDI 성격진단 간의 일치도는 대략 6점(9점 기준) 이상으로 나타나 두 검사가 높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또 김교수는 이 연구에서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결과도 나타났다고 밝힌다.

    “연령대별로 사주의 성격과 KPDI 성격 비교에서 그 상관관계 비율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발견했다. 비교검사 대상자 중 30대가 사주와 성격검사에서 가장 높은 관련성을 보였고, 그 다음으로 50대와 20대 순으로 나타났다. 원래 사주는 그 사람의 타고난 성격을 판단하는 것이고, KPDI는 선천과 후천의 성격 특성을 포함하는 검사법이어서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30대에서 두 검사법이 가장 높은 연관성을 보인다는 것은, 30대에 들어서면 교육이나 환경에 의해 생성된 후천적 성격이 아닌 원래의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이는 인간의 성격 형성과 관련한 유전론과 환경론 논쟁에서 새로운 불씨를 지필 수도 있어 주목된다. 즉 지금까지는 성격 형성에서 어릴수록 유전적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김교수의 연구 결과에서는 오히려 사회활동에 익숙해진 30대부터는 유전적 요소인 선천적 특성이 외현화(外現化)하는 것으로 나타나므로 새롭게 연구해볼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김교수는 또 사주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선천적인 성격이나 품성은 정신과 치료영역에서 채택해 응용해볼 점이 많은 것 같다고 말한다.

    사주와 주식투자

    한편 김교수는 사주의 과학성과 관련해 또 하나의 연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진(하루의 기운)과 종합주가지수 변동’이 바로 그것. 말하자면 매일 변하는 종합주가지수와 바로 그날의 일진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밝혀보자는 것.

    김교수는 “아직 완전한 체계가 잡혀 있지 않지만 조만간 일진과 주가지수의 함수관계가 밝혀질 것 같다”고 귀띔한다. 그러나 김교수는 요즘 시중에서 유행하는 개인의 사주와 주가지수 예측은 위험성이 크다며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개인적으로 사주학을 공부하면서 나에게 좋은 날, 그러니까 재운이 있는 날을 기준으로 주식 투자를 해봤지만 많은 손해를 보고서야 깨달은 점이 있다. 주식은 수많은 사람들이 관여하므로 한 개인의 사주로 주식의 주가 변동을 연결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주식의 등락을 알고 싶으면 차라리 그 회사 오너의 사주를 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김교수는 한 기업에서 오너의 사주가 기업의 운명에 끼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는 게 오랜 임상 경험에서 얻은 결과라고 한다. 김교수는 인터넷에 ‘김태균의 사주교실’이란 이름으로 이같은 사주이론에 관한 글을 올려놓고 있다(www. tsaju.com).

    세월이 변한 탓일까. 기업 현장에서 사주이론을 경영에 도입하는 긍정적인 시도도 진행중이다. 이를테면 한국능률협회(KMA)는 7월 말 하계 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경영자와 기업의 사주를 통해 알아보는 성공경영의 비결’을 주제로 사주 전문가의 특강을 준비하고 있다. 사주라는 고색창연한 콘텐츠가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상징적 사건이라고나 할까.

    결론적으로 김교수는 사주는 동양에서 오랜 세월 거쳐오는 동안 축적된 경험 학문이자 실용 동양철학으로서의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학문연구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직업 술객(術客)들의 능력과 행태가 적잖은 장애로 작용하는 것도 현실이라고 말한다.

    “직업적으로 사주를 보는 사람들의 사주해석 능력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어느 TV 방송에서 한 사람의 사주를 여러 술객들에게 갖다주면서 맞춰보라는 식으로 이끌어가는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는데, 능력이 뛰어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사주풀이는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점을 무시한 채 한 사람에 대한 사주풀이가 저마다 다르니까 사주는 객관성이 없는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또 직업 술객들의 사주를 풀이하는 태도도 문제라고 한다.

    태어난 연월일시를 가지고 사주 팔자를 세우는 것은 자연철학에 의한 불변의 법칙이다. 그러나 사주풀이는 오랜 세월 사회적 경험으로 다져진 통계학적 해석을 기초로 한다는 점에서 미래 사회에서도 현재의 사주풀이가 그대로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 그런데 술객들이 왕왕 이를 무시, 옛 풀이방식을 답습해 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과거 ‘대가 센 여자’는 험난한 운명을 살아갈 여성으로 풀이되었지만, 현대에서는 오히려 파워우먼으로 사회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주를 신비화하는 술객이 문제

    사주를 신비화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직업적으로 사주를 보는 사람들은 사주에서 그 사람의 직업을 꼭 집어내 자신의 영험함이나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 옛날처럼 직업이 단순한 시절에는 정확성이 높을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직업이 수만개나 되는 세상에서 그것을 일일이 맞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찾아온 상담자에게 그 직업을 물어보고 그 사람에게 적절한 카운슬링을 하는 것이 술객이 취할 진정한 자세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계에서 사주 명리학을 가르치는 전문가들은 일반인이 사주에 접근하는 데 취할 바람직한 태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사주학은 지금까지 인류사회가 창출해낸 운명풀이 체계에서는 가장 객관적이고 뛰어난 적중률을 보이는 학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사주 자체가 당사자의 운명을 100% 풀이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비록 인간 운명의 기본 틀은 정해져 있다 해도 구체적 양태는 환경과 인간의 의지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서로 다른 조건과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점이 바로 그런 예다.

    사주에서 일반인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타고난 성격을 이해해 대인관계에서 적절히 처신하거나,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나 사업을 찾는 데 도움을 받거나,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불의의 재난(질병, 사고, 이혼 등)을 미리 대비하는 정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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