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호

정치신인의 ‘노련한 정치력’ 대선판도 뒤흔든다

  • 공영운 < 문화일보 정치부 기자 > rabbit@munhwa.co.kr

    입력2004-11-04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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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를 향한 군중들의 자발적 열광의 비밀은?
    • …백지상태인 당내기반, 검증 안된 정치력이 약점
    • …가장 ‘수’가 많은 중진, “최종 결정은 내가 합니다”
    • …‘경선불참’ ‘탈당’카드로 이회창과 벌이는 당내투쟁의 결과는?
    ”당 개혁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이회창 총재도 개혁대상이 될 것이다.”

    “들러리나 서는 경선이라면 나갈 생각이 없다.”

    “아직 (탈당문제를)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부총재가 이 달 들어 이회창 총재와 당내 주류세력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쏟아내고 있는 발언들이다.

    박근혜 부총재는 평소 목소리의 ‘옥타브’를 높이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대중연설에서조차도 웅변조의 말투는 찾기 어렵고, 원고를 또박또박 읽듯이 말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그가 요즘 들어 부쩍 달라졌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할 때도 목소리 톤이 예전보다 높아졌다. 이총재를 겨냥해 쓰는 단어도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것들이 많아졌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 2월1일 한나라당 소속 의원 및 지구당위원장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연찬회’에서 비롯됐다. 대선후보 경선의 ‘규칙’을 만들기 위해 구성된 당내 중립기구 ‘선택2002준비위원회’(선준위, 위원장 박관용) 주최로 열렸는데, 당내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국민참여경선제에 대한 의원들의 집중비판이 제기돼 선준위가 오히려 난감해져버린 자리였다. 박부총재가 국민참여경선제를 강력히 주장해 ‘선준위’에서 ‘국민참여를 원칙으로 한다’는 합의사항을 어렵게 끌어낸 직후였기 때문이다.

    연찬회 도중 회의장을 박차고 나온 박부총재는 몹시 화난 얼굴이었다. 평상시 보수적인 남성의원들이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려도 신경도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화내는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는 그였다.



    박근혜의 분노


    그는 회의장 밖에서 이총재를 ‘개혁대상’으로 지목한 후 이날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거의 모든 언론사와 전화를 통해 인터뷰했다. “이대로 가면 대선에서 패배한다” “당 개혁도 않고 국민경선도 하지 않겠다면서 경선은 왜 하나” “차라리 이총재를 추대해라” “들러리 경선은 안하겠다” “경선을 포기할 수도 있다” “선준위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불참하겠다” “이총재가 직접 나서라” “이달 말까지 답을 내놔라” “이총재의 답을 들어보고 (거취를) 결정하겠다” “(탈당을 포함)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후 지금까지 10여 일 동안 박부총재의 강경 발언이 계속되고 있다.

    박부총재의 거듭된 강공에 이회창 총재 측은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 동안 “박부총재를 어떻게든 껴안고 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던 이총재 주변에서 강경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측근의원은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끌려다닐 것이냐. 국민참여경선의 문제점을 지적한 다수 의원들은 바보냐. 이제 선을 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은 “박부총재가 저런 식으로 이총재를 직접 공격하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밀린 채 방치한다면 다른 부총재들에 대해서도 통제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판을 깨는 식으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김만제(金滿堤) 의원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 다나카 외상 파문을 한나라당에서도 만들려고 하느냐”고 한 것은 이들의 고민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70%대를 구가하던 고이즈미 수상의 인기도가 다나카 외상 전격 경질 후 30%대로 급락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박부총재를 서투르게 다뤘다가는 ‘대세론’을 즐기고 있는 이회창 총재에게 치명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총재 측은 박관용(朴寬用) 선준위원장에게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선에서 사태의 원만한 해결 쪽으로 일단 가닥을 잡았다. 박부총재의 선준위 불참이 ‘경선불참→탈당’ 등 추가적인 ‘판 깨기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정역할을 잘 해달라는 부탁이다.

    ‘제왕적 총재’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당내 1인자 자리를 확고히 구축하고 있는 이총재가 한 명의 계파의원도 거느리지 않은 박부총재에게 이처럼 ‘당해야’ 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박부총재의 파괴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가 일탈할 경우 대선 판도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가. 그의 독자적인 득표력은 어느 수준일까.

    박부총재가 갖는 저력의 실체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에서 말하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 다르다. 서울지역의 한 재선의원은 “이번 대선도 30만∼50만표 선에서 승부가 날 것”이라며 “박부총재가 독자출마라도 하는 날이면 이총재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한다. 반면 TK(대구·경북)지역 한 의원은 “지난 선거에서 이인제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에 영남표가 박근혜에게 가지 않을 것”이라며 ‘박근혜 거품론’을 제기한다.

    이런 와중에 당내 인사들이 박부총재를 다시 쳐다보게 만든 사건 하나가 있었다. 부산 출신 A의원의 후원회에서 있었던 일이 그것이다.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A의원 후원회에는 A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관광버스 20대를 동원해 지역구민 1000여 명을 ‘모시고’ 올라왔다. 대부분이 40∼50대 여성들로 이른바 ‘아줌마’부대였다. 이날 행사에서는 이회창 총재와 박근혜 부총재가 차례로 인사말을 했는데 사회를 본 인천출신 모의원은 이총재를 소개할 때 장황한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참석자들의 박수를 유도했다. 이총재의 축사가 끝난 후 사회자는 “이어서 박근혜 부총재의 인사말이 있겠습니다”라고 간단하게 소개했다. 박부총재가 등장하자 참석자석에서 환호와 갈채, 비명이 터져나오고 뒷좌석에서는 박부총재의 얼굴을 보려고 모두 일어서기까지 했다. 이총재에 대해 보였던 반응과는 또 다른 차원의 자발적 열광이었다.

    박부총재가 축사를 마치고 밖으로 빠져나오자 바로 옆 구내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있던 ‘부산 아줌마’들이 몰려와 박부총재의 손을 이끌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식당 안은 박부총재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려는 아줌마들의 성화로 난리법석이었다. 이 사건은 한나라당에서 한동안 회자됐다. 한 당직자는 “박근혜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간단하게 볼 것이 아니데”라고 놀라워하기도 했다.

    사실 박근혜 부총재가 대중에게 갖는 묘한 호소력은 이미 몇 차례 공개적으로 검증된 바가 있다. 지난 1997년 대선에서 박부총재는 선거 8일 전인 12월 10일 이회창 후보 지지를 공개선언하고, 선대위 고문 자격으로 TV찬조연설과 지방순회 유세를 한 적이 있다. 14일 첫 방영된 그의 TV연설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한나라당 측이 이례적으로 이틀 뒤인 16일 재방송을 결정했다. 그는 12월15일 울산, 17일 대전에서 정당연설회를 했는데 청중들의 열광이 대단해 당직자들 사이에 “횡재했다”는 말이 오갔고, 일부 여성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1998년 4월 대구 달성지역구 국회의원 재보선에 출마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그는 상대후보인 민주당 엄삼탁씨와 3.6% 차이의 접전을 벌일 것이라는 여론조사 기관들의 예측을 무색하게 하며 24.4% 차이로 압승을 거뒀다. 조직과 자금에서 절대 열세였지만 박근혜 후보가 가는 곳은 어디나 군중이 들끓었다. 무슨 말을 하는가는 둘째였다. 군중을 휘어잡는 연설과는 거리가 먼 나직한 음성과 또박또박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군중은 열광했다. 그는 정계진입 불과 5개월여 만에 당당하게 금배지를 달았다.

    이어진 6월의 지자체 선거와 7월의 재보선에서도 박근혜는 후보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찬조연사였다. 7월 재보선에서는 7개 지역 모두에서 찬조연설을 했을 정도로 후보자들의 요청이 몰렸다. 그는 이 여세를 몰아 당내 부총재 경선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는데, 당내 기반이라고는 거의 없는 그가 단숨에 1위를 차지할 기세였다. 이총재 측에서는 강력히 부인하지만 당시 이총재 측이 박근혜 의원이 너무 커지는 것을 우려, 여러가지 수단을 동원해 그의 1위를 저지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아직도 당내 다수가 이를 사실로 믿고 있다.

    박근혜 부총재가 군중들에게 갖고 있는 이 같은 폭발력의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아버지의 후광’이다. 김영삼 정권이 경제정책에서 실패한 이래 우리 사회에 신화처럼 재등장한 ‘박정희 신드롬’이, 그의 분신 격인 박근혜에 대한 관심과 지지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중 부동의 1위는 박정희다. IMF사태와 그후의 계속되는 경제난은 중·장년층에게는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청년층에게는 ‘박정희 신화’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박근혜라는 인물 자체가 군중의 관심을 끄는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딸, 청와대를 나온 후에도 20년 이상 일반의 관심을 끌어온 그의 가족적 배경, 공주신화, 여성, 미혼…. 그래서 그는 항상 뉴스가 된다. 박근혜 부총재처럼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매체의 지속적인 뉴스거리가 된 인물은 찾기 어렵다.

    그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출마를 선언한 뒤 언론에서 받은 조명의 정도는 분명 ‘프리미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에 총재단회의가 열린다. 원탁에 11명의 부총재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이회창 총재가 일일이 악수를 하며 한바퀴를 도는데 카메라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지는 때는 매번 박근혜 부총재와 악수하는 장면이다. 그래서 1주일에 두 번은 일간신문 정치면에 꼭 박부총재의 얼굴사진이 실린다. TV카메라들도 항상 박근혜 부총재 좌석 맞은편에서 앵글을 박부총재 방향으로 맞추고 기다린다.

    박부총재가 경선 도전을 선언한 후 한 일간지 편집국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다. 국장주재 부장단회의에서 지면계획을 토론하는데 부장들이 박근혜 부총재 특별인터뷰를 1개면 전면에 게재하자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평소 이 신문은 매주 토요일 관심인물을 선정해 1개면에 와이드인터뷰를 싣곤 하는데 정치인은 절대배제가 원칙이었다. 그런데 유독 박부총재에 대해서만은 정치부장도 아닌 다른 부장들이 앞장서 인터뷰를 주장한 것이다. 오히려 정치부에서 “경선출마 선언을 한 이상 형평성 문제 등 다른 고려요소가 있다”며 신중론을 전개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한 유력 여론조사 기관의 간부는 “군중이 박근혜에 대해서는 지극히 정서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며 “다른 정치인에 대한 태도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 간부는 “여야 대선주자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그의 정치적 경륜이나 비전, 도덕성, 세력규모, 지지도 등 극히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라며 “그런데 박근혜 부총재에 대해서는 정치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자연인 박근혜 자체에 대한 호기심과 정서적 관심이 결합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 중 가장 스토커가 많은 인물이 박근혜인 점이 이를 말해준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군중들은 박근혜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다.

    자연인 박근혜에 대한 이런 대중적 호기심은 정치적 측면에서 대단한 폭발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적 요소임이 분명하다. 반면 그 이면에는 그의 인기가 정치인으로서의 신뢰도와 일치하지 않는 측면도 내포하고 있다. 대중이 박근혜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고 해서 그들이 정치지도자로서 박근혜의 자질을 신뢰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호기심이 충족된 후에는 결국 정치인으로서의 무게와 자질이 도마에 오를 것이며 이것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관심과 인기는 거품처럼 꺼져버릴 소지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박근혜 부총재가 대선 후보 경선 출마선언을 한 후 지금까지는 이런 잠재적 폭발력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 들어 각 언론사들이 일제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부총재에 대한 지지도는 수직상승해 20%대를 기록하고 있다. 문화일보 조사에서는 국민들이 선호하는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이회창(37.2%), 박근혜(22.0%), 김덕룡(10.7%), 이부영(4.3%)순으로, 박부총재가 상당히 높게 나왔을 뿐만 아니라 당내 비주류의 주축인 김덕룡·이부영 의원을 가볍게 따돌리고 있다.

    그가 대선후보 경선출마를 선언하기 1년여 전에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박부총재는 당내인물 선호도 조사에서 김덕룡(金德龍) 의원에 뒤지고 이회창 총재에게는 지지도가 4배 이상 차이로 뒤떨어졌다(2000년 8월 한길리서치조사 결과 이회창 39.4% 박근혜 7.7%였다).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이회창 61%대 박근혜 25.1%였으며, 한국일보 55%대 19.6%, 경향신문 40.9%대 34.2% 등이었다. 특히 다른 언론사 조사에서는 ‘한나라당에서 대선후보감이 누구냐’라고 질문한 데 비해 경향신문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들 중 누가 가장 호감이 가느냐’는 호감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박부총재의 응답률이 더욱 높게 나왔다. 경향신문은 2001년 10월 같은 질문에서 박부총재 응답률이 11.3%라고 발표한바 있는데 불과 3개월여 만에 무려 22.9%나 상승한 셈이다.

    매일신문이 대구경북지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가 재미있다. 이 조사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대구시민 및 경북도민들은 박근혜(29.3%), 이의근 경북지사(17.3%), 문희갑 대구시장(10.4%), 강재섭 의원(8.8%), 김중권 민주당상임고문(4.2%), 순으로 답했다. 특히 영남후보 출마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61.4%가 ‘원한다’고 응답했고, 영남후보로 적합한 인물로는 박근혜(42.3%), 정몽준(15.9%) 등을 꼽았다. 또 반(反)이회창연대라는 정치적 변수가 발생할 경우 가장 적합한 영남 후보로 박부총재(38.3%)를 들었다. 박근혜 부총재가 이 지역 유권자들에게는 정치적 대안으로까지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상의 정황을 종합해보면 박근혜 부총재는 지난 1997년 12월 현실정치에 발을 디딘 후 지금까지 4년여간은 계속적인 상승기류를 탔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지금까지 그는 기존 정치계에 대해 신참자로서, 당 운영에 책임이 없는 비주류로서, 비판자로서 반사이익을 챙기면 됐다. 그 자신이 갖고 있는 개인적 호조건과 부친인 박정희 전대통령의 후광까지 합쳐져 몇 배의 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오는 5월에 치르는 당내 경선의 1차 관문에서 그는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대중에게 제시하고 이에 대해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제 정치인으로서의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는 셈이다. 그후 대선 본게임이라는 2차 관문이 남아 있는데 여기서 그는 전 유권자로부터 평가를 받는 선택을 해야 하며 그 결과는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정치인으로서 박근혜가 그 같은 험로를 뚫고 나갈 역량과 힘을 갖고 있는가. 이는 앞으로 수개월간 그에게 끊임없이 던져질 대중의 질문일 뿐 아니라, 그 동안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마음속 한구석에 품고 있는 의문이기도 하다.

    박근혜 부총재가 험하디 험한 정치의 현실세계를 헤쳐나가기에는 몇 가지 약점이 있다. 그는 당내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단적인 예가 당내 경선의 ‘룰’을 정하기 위한 ‘선택2002준비위원회’의 위원 선정과정에서 그가 겪은 어려움이다. 위원장을 맡은 박관용 의원은 당내 여러 성향의 인물들과 지역, 연령, 성별을 안배해 선준위 위원을 20여 명으로 구성키로 하고 잠재적 대선주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대변할 대리인을 위원으로 추천해줄 것을 요청했다. 비주류인 김덕룡·이부영 의원의 경우 자신의 의사를 반영해줄 현역의원을 얼마든지 추천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박근혜 부총재의 경우 의원은커녕 원외 위원장조차 마땅히 추천할 사람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위원으로 참여하겠다고 주장하다 한때 지구당의 간부 한 명을 대리인으로 내세우겠다는 의사를 박관용 위원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간부가 “다 의원들이 참석하는 자리에 내가 들어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고사하는 바람에 이도 무산됐다.

    이 같은 사례는 의원 및 지구당위원장 급에서 박근혜 부총재의 당내기반이 거의 백지상태이며, 앞으로 험한 당내투쟁의 과정에서 그만한 난관에 봉착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올 들어 실시한 일반인 대상 각종 여론조사에서 20%대의 고른 지지도를 얻은 반면 조선일보가 실시한 당내 대의원 상대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9%대에 머문 것도 이런 측면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다.

    군중들을 상대로 할 때는 잠재력의 원인이 되는 ‘여성’이라는 점도 당내투쟁에서는 약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나라당과 같은 보수적 정당에서는 여성이 갖는 한계가 더 크다. 대구·경북지역 의원들이 유권자들의 지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박근혜 부총재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적대감을 표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들의 입에서는 수시로 “여자가 무슨…”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보수적 중진의원들이 그의 정치적 지분을 아예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세도 그에게 부담이다.

    그러나 박부총재가 이 와중에서 난관을 헤쳐온 과정은 그의 정치력이 만만찮음을 보여준다. 그는 “대리인 하나 내세울 능력도 없다”는 주변의 조롱에도 아랑곳않고 자신이 직접 선준위에 참석하겠다고 밀어붙여 선준위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국민참여, 권역별 순회, 선거인단수 대폭확대 등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들을 기정사실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어 선준위가 한계에 봉착하자 그는 “이제 선준위는 필요없다”고 규정하고 이회창 총재와 직접 1대1로 상대하겠다고 이총재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4년여간 그가 보여준 당내정치의 수완도 보통은 넘는 것이었다. 부산출신 한 의원은 “박근혜는 이회창과 각을 세우면서도 지나치게 튄다는 느낌이나 가볍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이회창과 일정한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틀을 깨지 않는 견제와 균형의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그런 점에서 15년, 20년씩 정치한 사람보다 더 정치력이 낫다”고 평했다. 이회창 총재의 측근들조차 “박근혜가 김덕룡·이부영 등 비주류 3인 중 수가 가장 높은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TK지역 한 의원은 “박부총재가 보여주는 예상외의 정치력은 육영수 여사 사망 후 5년여간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배운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청와대에서 국가운영 시스템과 정치 전체를 내려다본 경험이 그에게 보통 정치인이 갖기 어려운 판단력을 키우는 효과를 낳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내 한 부총재는 “박근혜가 저런 식으로 노련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그의 배후에 모종의 그룹이 움직이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박근혜 뒤를 연합군이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연합군’이란 김종필(金鍾泌), 김윤환(金潤煥) 세력과 민주당 일부까지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부총재는 지난달 17일 한나라당 일부 출입기자들을 자신의 자택으로 초청한 자리에서 “저는 제가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두루 구합니다. 고정적인 보좌진은 몇 안됩니다. 그럴 돈도 없고요. 전문가들로부터 얘기를 듣고 묻고 하다보면 판단이 생깁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모든 최종결정은 반드시 제가 직접 합니다”고 말했다. 배후에 모종의 그룹이 있을 것이라는 세간의 억측을 부인한 것이다.

    한 비주류 중진의원도 “박근혜 뒤에 무슨 별도 세력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전임 고위당직자도 “박근혜의 판단은 그 자신의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부총재를 취재하는 기자들도 대체로 그의 정치력에 대해서는 “예상외로 수가 높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자신들도 박부총재에 대해 “예전에는 ‘호기심은 있으나 정치인으로서야…’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직접 만나 대화해본 뒤에는 ‘예상했던 것 이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하곤 한다.

    박근혜 부총재는 현재 국민을 직접 상대하는 정치 이전단계에서 당내투쟁이라는 1차전을 치르고 있다. 그 상대는 이회창 총재이고 그가 가진 무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경선불참 위협이고 또 하나는 탈당카드다. 이총재가 추대형식보다는 경선이라는 모양을 갖추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고, 비주류의 탈당으로 그?‘포용력 콤플렉스’가 또다시 되살아나지 않기를 갈망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박부총재에게 좋은 카드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수순과 수위조절이다. 1인자에 도전한 결과 그가 ‘박찬종 코스’로 갈지 ‘이인제 코스’를 밟을지, 아니면 자신만의 ‘박근혜 코스’를 만들어낼지는 거기에 달려 있다. 그가 이들 카드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사용하는 것이 그의 앞에 남겨진 숙제들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가 청와대에서 나온 뒤 23년 만에 자택을 개방, 최초의 손님이었던 기자들에게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을 선물하며 한 말이 어쩌면 자신에 대한 예언인지도 모른다.

    “차고 넘침을 경계한다는 뜻의 이 잔은 조상들의 높은 지혜를 느끼게 해주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귀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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