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편의 섹스 비디오가 대만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몰래카메라’에 찍힌 미모의 30대 여성 정치인의 성관계 장면이 공개되면서 일파만파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 비디오가 유출된 후 당사자인 취메이펑은 자신과 관계한 15명의 남성들을 실명으로 거론한 책을 펴내 충격을 더했다.
2000년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O양 비디오 사건처럼 이 VCD는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돼 현재 대만 인구의 절반인 1000만명 이상이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것은 단지 유명 여성 정치인이 섹스 스캔들에 관련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취메이펑은 평소 백설공주처럼 청순한 이미지로 ‘위뉘(玉女)’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 그녀가 유부남과 낯뜨거운 정사를 나누는 모습이 ‘안방극장’을 통해 적나라하게 ‘녹화중계’되면서 엄청난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만 사람들, 특히 대만 남성들은 정신적 공황까지 겪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 취메이펑만큼이나 맑고 깨끗한 자태로 인기를 모았던 탤런트 H양이 지난해 ‘히로뽕 섹스’ 스캔들을 일으켜 팬들을 경악시킨 사건을 떠올리면 대만인들이 받은 충격의 정도를 헤아릴 만할 것이다.
더욱이 그들은 H양 사건과는 달리 섹스 스캔들의 ‘생생한 현장’까지 자신의 눈으로 지켜봤으니 그 심경이 오죽했겠는가.
명문학교·美유학 출신 엘리트
처음에 섹스 비디오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때는 물론, 비디오가 실제로 공개된 후에도 그 진실성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취메이펑의 이미지가 깨끗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 발생 일주일 후 취메이펑이 기자회견을 열면서 모든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대만 정계와 재계의 지도급 인사들이 취메이펑과 관계를 가진 사실이 폭로되자 이들의 사생활,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이 쏠리면서 이 사건은 ‘뜨거운 감자’로 불거졌다.
문제의 VCD는 취메이펑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여성이 계획적으로 설치한 몰래카메라에 의해 촬영됐다. 숱한 남성들과 가진 문란한 성관계 장면이 세상에 여과없이 공개되면서 취메이펑은 하루아침에 음란한 색녀이자 두 얼굴의 위선자로 낙인찍혔다.
그녀는 벌써 두 달째 대만 언론의 화제 인물로 떠오르면서 평소 남의 일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대만인들에게도 대화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다. 특히 1주일의 긴 구정 연휴를 맞아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취메이펑은 단연 으뜸가는 화제였다. 대만 검찰은 몰래카메라의 주모자를 색출하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하다.
취메이펑 스캔들과 관련해 한 번이라도 이름이 오르내린 정·재계 인사들에게는 의혹의 눈길이 집중되고 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여러 장의 VCD가 나돌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음에 따라 일부 언론은 미확인된 갖가지 설(說)을 바탕으로 추측보도에 열을 올리면서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 대만 사회의 도덕적 가치관도 혼란을 겪는 상황이다.
더욱이 비슷한 시기에 국민당 소속의 전 국회의원인 황시엔저우가 타이베이의 한 특급호텔에서 마약복용과 매춘, 그리고 집단섹스파티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자 정치인의 섹스 스캔들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됐다. 한편으로는, 지난해 불경기로 힘겨운 한해를 보낸 대만 사람들에겐 연일 터져나오는 고위층의 사생활 폭로 뉴스가 스트레스 해소용 오락거리 노릇을 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분석도 있다.
기자회견을 가진 후 한 달 넘게 잠적했던 취메이펑은 2월7일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내용의 ‘참정록(懺情錄, ‘참회록’의 의미)’을 출간했는데, 이 책에서 그녀는 자신과 관계를 가진 열다섯 명의 남성들에 대해 실명으로 서술해 또 한번 논쟁에 불을 붙였다.
취메이펑은 1966년 8월5일 가난한 군인 가정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는 한국의 옛 경기여고쯤에 해당되는 명문 여학교(北一女中)를 나왔는데, 천수이볜 총통의 부인과 부총통도 이 학교 출신이다.
또한 취메이펑은 대만의 많은 정치 지도자를 배출한 명문 정즈(政治)대학 중문과에서 학사학위를, 같은 대학 민족연구소(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그리고 미국 미네소타주 맨체주립대학에서 공공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대학 졸업 후에는 ‘타이완쯔리완바오(臺灣自立晩報)’ 기자, 대만 국영방송인 타이스(臺視) TV 기자와 아나운서를 거쳐 타이베이(臺北)시 시의원 겸 유선케이블 방송 화웨이(華衛) 뉴스제작국 총감독, 각종 방송 프로그램 사회자, 스신(世新)대학 및 중화(中華)대학 강사, 정치기금회(基金會) 집행장으로 활동했으며 최근 2년간 신주(新竹)시 문화국장 등을 역임했다.
취메이펑은 깜찍한 미모와 화려한 언변,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을 바탕으로 대만 언론계를 대표하는 아나운서 겸 프로그램 제작자로 성장했다. 이를 기반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그녀는 정계 진출을 결심, 28세의 나이에 대만 정계 입문의 엘리트 코스인 타이베이시의원 선거에 출마해 자신의 선거구에서 최고 득표를 기록하며 당선됐다.
이후 4년간 시의원으로 활약하면서 굵직굵직한 비리사건을 폭로하는 등 적극적인 의정활동으로 한때 시의회에서 최고 인기의원으로 뽑힌 적도 있다. 1998년 여론조사에서는 당선가능한 국회의원 후보 1위에 올랐을 만큼 장래가 촉망됐다.
참신한 이미지로 언론계와 정계에서 성공을 거듭하면서 남성들에게는 사랑스런 여인으로, 젊은 여성들에게는 성공의 표본으로 부러움과 질투를 동시에 받았던 그녀에게 1998년,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졌다. 자신과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른 민진당의 신주시 민선시장 차이런젠(蔡仁堅)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차이런젠은 취메이펑보다 15세나 연상인데다 전처 소생의 자식까지 딸린 이혼남이었지만, 그의 깊은 문학적 소양과 독특한 기품은 취메이펑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취메이펑은 그와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일을 모두 접고 그를 따라 신주로 옮겨갔다. 그녀가 출마만 하면 떼어 놓은 당상으로 여겨졌던 국회의원 자리까지 포기한 채.
나이 차이와 당적을 초월한 정치인 커플의 사랑은 단연 대만 정치계의 빅뉴스가 됐고, 두 사람이 헤어진 지금까지도 언론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취메이펑처럼 능력있고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 상대적으로 ‘하자’ 많은 중년 남성을 선택한 것은 대만 사회에서도 특별한 뉴스거리가 아닐 수 없다.
차이런젠을 옆에서 돕기 위해 자신에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방도시 신주로 떠난 취메이펑은 그와 헤어질 때까지 근 3년간 사랑스런 연인이자 든든한 정치적 후원자로서 자기 역할을 다했다. 그녀는 그와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는데, 그 과정은 문제의 섹스 비디오 사건이 터지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섹스 비디오 사건의 발단을 찾자면 먼저 취메이펑의 최측근이었던 종교단체 강사 출신의 궈위링(郭玉鈴)이라는 여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취메이펑은 차이런젠과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했지만, 차이런젠의 폭력적인 언행과 지나친 의심, 복잡한 여자관계 등은 그녀에게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안겨줬다. 그 고통이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취메이펑은 차이런젠의 동료 정치인 린정졔(林正杰)로부터 궈위링을 소개받게 된다.
궈위링은 아판다(阿梵達)라는 종교단체의 강사로, 차이런젠과의 애정문제로 심신이 피로했던 취메이펑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주는 카운슬러 역할을 해주면서 가까운 사이가 됐다. 궈위링은 황폐해진 취메이펑의 삶에 푸근한 의지처가 되어줬다. 취메이펑도 궈위링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그녀의 적극적 후원자가 되어 교습생을 소개해주는가 하면, 자신의 집과 자동차까지 빌려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두 사람이 알게 된 지 1년이 조금 지난 지난해 8월에 궈위링이 취메이펑의 통장에서 몰래 돈을 인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10월25일에는 ‘이저우칸(壹周刊)’이라는 파파라치 전문잡지에 도난당한 취메이펑의 일기장이 공개됐고, 급기야 12월17일 ‘두자바오다오(獨家報導)’의 VCD 배포사건 이후 궈위링은 취메이펑에게 일생일대의 불구대천 원수가 되고 말았다. 두 사람은 현재 법정에서 피고와 원고가 되어 소송을 진행중이다.
취메이펑과 차이런젠의 관계가 완전히 정리된 지난해 5월 이후에는 취메이펑의 삶에서 차지하는 궈위링의 비중도 서서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궈위링은 취메이펑의 타이베이 자택에서 강의도 하고, 자신의 두 자녀와 2층 방에서 반년 동안 기거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녀는 취메이펑의 일거수 일투족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고 한다.
궈위링은 취메이펑이 지난해 7월 보름간 미국으로 출장을 떠나 집을 비운 사이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
궈위링이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이유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평소 취메이펑의 남자관계를 잘 알고 있던 궈위링이 유명 정치인인 그녀의 섹스 비디오를 팔아 돈을 벌려고 했다는 설이다. 둘째는 차이런젠이 취메이펑과 결별한 후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궈위링을 시켜 그녀의 사생활을 감시하기 위해 그랬다는 설, 셋째는 취메이펑이 차이런젠과 헤어지고 나서 국회의원 선거출마를 발표한 후 그녀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제3의 세력이 방해공작 차원에서 궈위링을 사주했다는 설이다.
아직은 재판이 진행중이라 어느 설이 사실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지금까지 밝혀진 정황에 따르면 궈위링과 차이런젠의 ‘합작’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측되며, 두 사람 외에 제3의 공범이 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건의 전개과정을 일람하면 다음과 같다.
*2001년 4월: 취메이펑, VCD의 남자 주인공 쩡중밍과 처음으로 만남.
*2001년 5월: 취메이펑, 차이런젠과 결별 선언.
*2001년 7월: 취메이펑, 보름간 미국 출장. 궈위링이 취메이펑의 집에 몰래카메라 설치.
*2001년 8월: 취메이펑과 저우즈웨이의 첫 성관계 장면, 이틀후 쩡중밍과의 첫 성관계 장면이 몰래카메라에 찍힘.
*2001년 10월: 파파라치 잡지 ‘이저우칸(壹周刊)’에 취메이펑의 도둑맞은 일기가 게재됨.
*2001년 12월 17일: ‘두자바오다오(獨家報導)’가 취메이펑의 섹스 VCD 배포, 25일 취메이펑이 기자회견 중 성관계 사실 인정.
*2002년 1월: 취메이펑, ‘두자바오다오’와 몰래카메라의 주모자에 대한 소송 진행. 자신의 책 준비 소식 발표.
*2002년 2월 7일: 취메이펑 참정록 발표.
섹스 비디오가 세상에 공개되고 1주일이 지난 후 취메이펑은 동료와 친구들이 배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어 대만 국민에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이와 함께 이 사건의 진상 파악을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신적 충격으로 그날부터 한 달 동안 종적을 감췄던 그녀는 최근 이 사건을 주도한 혐의가 짙은 궈위링과 전 남자친구 차이런젠, 그리고 VCD를 배포한 ‘두자바오다오’ 발행인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지난 1월 말부터는 자신의 근황과 입장을 언론을 통해 변호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병실에 입원해 있는 초췌하고 가련한 모습을 촬영하도록 해 동정과 연민을 불러 일으키면서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고 있다.
구정 연휴를 맞기 1주일 전인 2월7일, 취메이펑은 대만의 유력한 뉴스채널인 TVBS를 통해 지난 5년간 자신과 직·간접적으로 관계한 남성 15명과의 만남과 이별과정, 그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 일반인들이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 그리고 이번 사건에 대한 심정을 토로한 ‘참정록’을 발표했다. 한마디로 젊은 시절의 개인적 연애수기이자 자신의 변론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여성이 자기 입으로 밝히기 힘든 성관계, 낙태, 동거 등과 관련한 민감한 내용이 사실적으로 진솔하게 서술되어 있다. 또한 상대 남성들을 실명으로 거론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사회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인물이 포함돼 있어 비디오 못지않은 충격을 던졌다. 또한 그녀 주변에서 업무적으로 교류했던 인물들과 단지 그녀와 안면이 있다는 이유로 사실과 상관없이 의혹의 대상이 된 사람들과의 관계도 해명했다.
‘참정록’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아 그렇게 된 거구나” 하고 그녀를 이해하면서 안타깝게 바라보는 동정파도 있고, “잘못했으면 조신하게 입 다물고 있을 일이지, 뭘 잘했다고 뻔뻔스럽게 책까지 냈느냐”는 비난파도 있다. 아직까지는 후자쪽이 우세한 편이지만, 그녀의 책이 좀더 많은 이에게 읽혀지면 분위기가 반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왜냐하면 이 책이 현재 편의점과 서점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베스트셀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참정록은 5부 23장 232쪽으로 구성돼 있다. 1부와 2부에서는 실제로 연애감정을 가지고 교제했던 6명의 남성들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진 과정, 그리고 그들에 대한 추억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1부에서는 몰래카메라 촬영을 막후에서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차이런젠, 2부에서는 첫사랑 남성을 비롯해 취메이펑이 호감을 가졌던 기업인 등이 다뤄지고 있다.
3부에서는 취메이펑 스캔들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9명의 남성들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간략하게 썼다.
대만에서 정치적 혹은 경제적으로 상당한 배경이 있는 남성들과 업무상 교분을 가진 보통 친구, 그리고 맹목적으로 자신을 쫓아다녔던 명문가 집안의 2세 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4부에서는 그녀의 이상적 남성상과 지금까지 36년을 살아오면서 형성된 자신의 가치관과 사랑, 성욕, 우정, 사생활, 권력, 금전 등에 대한 견해를 표명했다.
5부에서는 섹스 비디오가 나온 원인과 과정을 설명하면서 주모자 궈위링과의 개인적 관계, 지난 두 달간의 풍파 속에서 자신이 받은 고통, 언론에 대한 원망, 그리고 자신이 가장 많은 것을 바쳤던 남성 차이런젠에 대한 생각, 그리고 책을 쓴 동기와 앞으로의 삶에 대한 각오 등을 얘기하고 있다.
취메이펑은 이 책에서 성장과정을 통해 형성된 자신의 남성상에 관해 설명했다. 잦은 외근으로 가끔 집에 들어오는 군인 아버지,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늦게까지 공장에서 일하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군대식 교육의 영향으로 위계관계가 확실했던 두 오빠와 살았던 그녀는 어린 시절, 방과 후면 오랫동안 홀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늘 누군가가 자기 곁에서 보호해주기를 바라는 욕구가 강했다고 한다. 문학에 커다란 흥미를 갖게 된 것도 그런 사정 때문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형성된 그녀의 이상적 남성상은 무엇보다 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고,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빠졌을 때 의지할 수 있도록 안정감을 주는, 키가 크고 마른 외모에 기개가 넘치면서 생각이 깊고, 자신의 영역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성격좋고 부드러운 남자라고 한다. 이런 조건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남성이 이 책의 앞부분에 쓴 6명의 남성들이었다.
쩡중밍(曾仲銘)은 1970년생으로, 인터넷관련 회사를 운영하는 젊은 사업가다. 이 책에서 소개된 남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취메이펑보다 나이가 어리고 가장 미남형의 남성이다. 취메이펑이 신주시 문화국장을 맡고 있던 시절 우연한 계기로 안면을 익혔는데, 사회적으로 이렇다 할 지명도가 없는 비교적 평범한 인물이다.
취메이펑이 차이런젠과 이별을 결심하고 있던 지난해 4월, 그녀는 네 살 연하의 호리호리한 몸매에 잘생긴 얼굴의 쩡중밍이라는 청년 사업가를 업무관계로 알게 된다. 한 달 후 그녀가 차이런젠과 완전결별을 선언한 후 공허감으로 힘겨워하고 있을 때 쩡중밍은 거친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는 배를 기다리는 항구처럼 묵묵히 그녀의 곁에 머물며 다정한 말벗과 편안한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줬다. 그로부터 석 달 후 그간 억제했던 이성의 벽이 한순간 무너지던 그날의 만남이 바로 문제의 VCD에 담긴 장면이다.
그러나 열락의 기쁨은 잠시였다. 그 후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이 유부남임을 고백했고,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파경에 이르게 된다. 그녀는 그를 ‘자상함, 부드러움, 인내심을 가지고 여자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태양 같은 남자’로 표현했다. 글 마지막 부분에서 그녀는 그의 아내에게 “미안합니다. 당신이 만일 제게 왜 그랬는지 물으신다면 ‘저는 그저 어리석은 여자입니다’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하는 사과의 글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또 한사람의 남자 주인공 저우즈웨이(周志偉)는 취메이펑과 어린 시절부터 군인촌에서 함께 자란 죽마고우다. 그는 대만에서 일류 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은 수재.
학창시절에 그는 공부는 잘했지만 작은 키에 평범한 외모라 그녀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성인이 되어 재회했을 때 그는 그녀가 바라는 이상형처럼 키가 크고 마른 체구에 온화한 성품의 매력적인 남성으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취메이펑이 1997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와 재회했고, 당시 서로에게 호감을 간직한 채 헤어졌다고 한다. 그녀가 차이런젠과 결별하기로 한 후 진지하게 결혼을 고려했던 상대가 바로 저우즈웨이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그녀를 짝사랑해 왔던 저우즈웨이는 지난해 마지막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했다가 출국하기 전날 취메이펑을 찾아왔고,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으로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갖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의 애정행위 또한 몰래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게 된다.
또한 공교롭게도 바로 이틀 뒤에 그녀는 같은 장소에서 쩡중밍과 첫 성관계를 갖게 된다. 그녀는 이에 대해 “이틀 후 쩡중밍과 가진 성관계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졌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만일 이번 사건만 없었다면 저우즈웨이와 결혼했을지도 모른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취메이펑의 책에 소개된 남성들 중 그녀가 가장 많은 노력을 바친 이는 차이런젠이다. 그는 4년 전, 현 대만 집권당인 민진당이 야당일 때 민진당의 국대(國代, 헌법 제·개정의 권한을 가졌던 민의기관으로 미국의 상원과 유사하며 현재는 폐지됐다) 소집인 등의 중요 직책을 맡았고, 지난해까지 3년간 신주시 민선시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강력한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한때 언론에서 가장 유능한 지방자치 단체장으로 선정한 바 있다.
1997년 겨울, 취메이펑은 우연한 식사모임에서 그와 처음으로 대면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방송기자 신분으로 신주시장에 당선된 차이런젠을 인터뷰하면서 그와 재회했고, 이는 곧 두 사람의 사랑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그녀는 열다섯 살의 나이차 때문에 처음엔 그를 ‘슈슈(叔叔, 아저씨)’라고 불렀다. 이혼남이라는 핸디캡이 있었지만, 결국 쉽게 헤어날 수 없는 사랑의 늪으로 빠져들고 만다.
그와 사랑에 빠진 후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의 곁에서 그의 기준에 맞춰 살아갔지만, 그의 남성우월주의와 무뚝뚝하고 폭력적인 언행, 베일에 가려진 여성편력에 크게 실망하게 된다. 더구나 차이런젠은 두 사람의 아이를 기르며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했던 그녀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녀로 하여금 두 번씩이나 낙태하게 하는 비정함을 드러냈다. 이런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방황할 때 그녀의 손을 잡아준 여인이 몰래카메라 사건의 장본인 궈위링이었다.
취메이펑이 대학을 졸업한 후 수습기자 생활을 하던 23세 때 알게 된 첫사랑의 남자 사오리중(昭立中)은 현 총통부 비서실장인 천스멍(陳師盟)이 타이베이 부시장으로 있을 때 수행비서를 맡았던 인물이다. 사오리중은 취메이펑이 열거한 이상적인 남성상에 거의 100% 부합하는 인물이었기에 그녀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 것은 물론 약혼까지 한 사이다.
그러나 그가 그녀에게 약혼의 족쇄만 채워 놓은 채 유학을 떠나면서 두 사람의 인연도 끝나고 만다. 10여 년 후 그녀가 타이베이 시의원이 되어 시의회 질의에 참여했을 때 그는 부시장의 비서신분으로 그녀와 재회했지만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 됐다. 그녀는 그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추억 속의 연인’이라고 표현했다.
왕정핑(王正平)은 병원과 납골당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취메이펑이 타이베이 시의원으로 활동할 때 그녀의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알게된 남자다. 그녀와 2년여 동안 연인관계를 유지했지만, 성격이 거친데다, 교제기간 동안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보다는 그녀를 사업적으로 이용하려는 느낌을 주어 갈라서게 됐다. 그녀는 그를 ‘안정감을 느낄 수 없는 장사꾼’으로 기억했다.
차이사오룬(蔡昭倫)은 취메이펑의 남자들 가운데 재력이 가장 풍부한 사업가로 푸싱쯔이(福星製衣)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차이런젠과 비슷한 나이의 중년남성으로 역시 이혼경력이 있다. 그의 낭만적인 성향과 유머, 재치, 자상함이 한때 취메이펑의 마음을 약간 사로잡았지만 차이런젠의 출현으로 결별하게 된다. 차이런젠의 문학적 소양이 차이사오룬의 풍모보다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취메이펑은 그를 ‘진정한 군자’라고 했다.
취메이펑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한 6명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의 남자들은 섹스 비디오 사건의 여파로 확산된 악소문과 관련된 인물들로, 그 중에는 자신의 열렬한 지지자 부부의 아들, 그녀와 비교 대상이 됐던 젊은 국회의원, 아버지 또래의 기업가, 한때 살던 집의 주인, 명문가 2세로 그녀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던 남자, 친한 친구 2명, 언론계 동료 2명 등이다.
취메이펑이 상대한 남자들의 공통점은 인물 좋고, 능력 있고, 자상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기품과 함께 문학적 소양을 갖췄다는 것. 특이한 점은 나이 차이에 개의치 않았고, 도덕적인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욕구에 약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틀 사이에 두 남자와 성관계를 가진 것은 도덕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잘 봐준다 해도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대만 사회를 뒤흔든 것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하고 장래가 촉망되던 30대 중반의 여성 정치인 취메이펑이 깨끗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청소년 교육, 각종 공익활동, 문화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보여주던 모습과는 딴판으로 여러 명의 남성 파트너를 버젓이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성관계를 가졌고, 그 가운데는 유부남까지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급속한 성개방 풍조로 갈수록 도덕성이 훼손되고 있는 대만 사회로선 또다른 충격파가 아닐 수 없다.
사건 발생 후 그녀가 잠적하자 그녀가 모든 사실을 인정하는 것처럼 비쳐졌고, 이에 따라 악성루머들은 더욱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그 결과 평소 정치에 무관심한 일반인들까지 정치인들에게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정치인들 사이에는 몰래카메라 주의령이 내려졌고, 최측근도 믿지 못하는 풍토가 조성돼 쓴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일각에서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왜곡된 관심을 표출하고 이를 이중적인 잣대로 바라보는 시각을 문제삼고 있다. 취메이펑이 ‘참정록’을 발표하자 인터넷에서는 열띤 논쟁이 거듭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남자 국회의원의 섹스파티사건에 대한 관심은 식어가고 있고, 그와 관련한 논쟁도 시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