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교의 오경(五經) 중 하나로 중국의 고전 가운데 가장 난해하고 접근이 어려운 경전이다. 공자(孔子) 같은 성인도 말년에 역(易)을 좋아하여 책을 묶은 끈이 세 번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읽었다고 하였고, “내 나이를 몇 해만 더 연장해서 역학을 연구하게 된다면 나에게 큰 허물이 없을 것”(논어)이라 했으니 역이 얼마나 심오한가를 알 수 있다.
역은 본래 중국 상대(上代)에서 점서(占筮)로 돼 있었으나 공자가 ‘주역’ 원문의 뜻을 밝히고자 십익(十翼)을 서술함으로써 유교의 최고 경전으로 자리매김됐다. 그리하여 중국 한대(漢代) 이래 청대(淸代)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이 역을 열심히 연구하여 밝히고 활용해온 것이다.
한국의 문화 역시 고대로부터 역리(易理)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도 역리를 모르면 이해할 수 없다. 한글창제와 역리 또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로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은 역리를 모르면 해석할 수 없다. 우리나라 특유의 체질의학인, 이제마(李濟馬)의 사상의학(四象醫學)도 역리에서 연유한 것이다. 조선조는 물론 고려나 삼국시대에도 ‘주역’은 최상의 경전으로 대학의 교과서였을 뿐만 아니라 과거시험의 주요 과목이었다.
주역은 이처럼 우리의 정치·교육·윤리·도덕뿐 아니라 의약·천문·지리· 복서(卜筮)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원리로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한국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동방의 위대한 철학사상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학술계나 대중이 ‘주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서 나온 남선생의 ‘주역해의’는 방대하고 난해한 역리를 가장 온당하게, 여러 학파이론의 장·단점을 잘 간추려 편벽하지 않으면서도 분명하게, 누가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글로 서술하였다.
주역 연구의 가닥은 크게 상수학파(象數學派)와 의리학파(義理學派)로 나눌 수 있다. 남선생의 ‘주역해의’는 송대(宋代) 정주학(程朱學)의 의리사상을 중심으로 정이천(程伊川)의 ‘역전(易傳)’과 ‘주자본의(朱子本義)’를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상수(象數)이론을 참작하여 명대(明代) 내지덕(來知德)의 ‘주역집해’의 독특한 견해인 괘상(卦象)·자의(字義)·착종(錯綜)을 인용하여 설명했다. 특히 ‘주역’ 설괘전(說卦傳)의 괘도(卦圖)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의리학파나 왕필역주(王弼易註)에서 부족한 점을 적절하게 보완 설명한 것은 탁견이라 하겠다.
저자는 역의 뛰어난 명주석(名註釋)을 광범하게 섭렵하여 그 요긴한 점을 적절하게 취했을 뿐 아니라 이경치경(以經治經)의 방법으로 역리를 천명했다. 주역을 설명하면서 중용(中庸)과 논어(論語) 등 다른 경전의 의미상통하는 경문을 원용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특히 청대 이광지(李光地) 등이 편찬한 ‘어찬주역절중(御纂周易折中)’과 ‘십삼경주소(十三經註疏)’에 나오는 당나라 공영달의 주역정의를 인용하여 절충한 대목들은 독자들에게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아무튼 남선생은 중국과 일본의 전통적인 주역 연구의 성과들을 집성하여 주역의 전체상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 증진을 도모하고 있다. 이렇듯 투철한 학문적 관점으로 주역에 접근해 성과물을 낸 예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희귀하다.
그리고 술수적인 점술의 역을 경계한 것도 특기할 점이다. 본래 점이라는 것은 영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을 점을 친다면 그 점은 맞지 않는다. 저자 남동원 선생도 ‘주역’에 통달하면 점 같은 것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며 가능하면 점은 치지 말 것을 권한다. 64괘의 변화에 현 상황을 대입해보면 그 다음의 변화를 충분히 얘기할 수 있으니 점이 따로 필요치 않은 것이다. 이 책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현대인의 교양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