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을 여행하던 여대생이 피살된 사건을 계기로 배낭여행 열기가 얼어붙었다. 그러나 영감과 통찰력을 얻으려면 떠나야 한다. 지난 20년간 세계 60여개국을 단신으로 돌아다닌 여행가 권삼윤이 모험은 즐기되 위험은 피할 수 있는 배낭여행의 지혜를 들려준다.
여기서 말하는 집이란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과 조상이 물려준 땅 모두를 뜻한다. 그러므로 집을 떠난다는 것은 고향, 조상의 산소, 생업인 농사일로부터의 이별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이유로 농경문화권에서는 여행이 자제되어야 했고, 이렇다 할 여행가가 태어나지 않았으며, 여행문화 또한 발달하지 못했다.
굳이 이러한 문화적 맥락을 따지지 않더라도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려움과 위험에 노출된다. 우리의 몸은 익숙한 것에 순응하고 낯선 것을 거부하는 이른바 ‘관성의 지배’를 받는데, 길 위에서는 모든 것이 내 통제 밖에 있기에 몸이 힘들어하는 것이다. 먹는 것, 자는 것, 교통편, 돈 관리, 안전문제 등 걱정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야 하고 머리를 굴려야 하니 힘겹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종종 길을 떠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도 돈과 시간의 여유만 생긴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여행이라고 했다. 그들 중에는 오로지 여행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몸은 익숙한 것을 원하는데, 우리의 마음은 그 익숙한 것들로부터 탈출을 꿈꾼다. 왜 그럴까.
우리의 육신(魄)은 죽으면 땅으로 돌아간다. 그렇지만 정신(魂)은 하늘로 올라간다. 몸에는 고정된 주소가 있으나 마음에는 그런 게 없다. 땅은 부동(不動)하나 하늘은 동(動)한다. 그저 ‘동’하는 정도가 아니라 붕붕 떠다닐 수 있는 운동의 공간이다.
그래서 마음은 늘 새로운 세계를 지향한다. ‘신토불이’란 말은 있어도 ‘심토불이’란 말은 없다.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을 입에 올렸던 동아시아 농경민들도 혼백이 갖는 이런 성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집을 못 떠나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몸이 고달파야 마음이 즐겁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마음이다. 이것은 몸이 고달파야 즐거워하는, 참으로 희한한 성질을 갖고 있다. 가령 힘들게 운동하고 땀을 비오듯 흘린 뒤나, 맡은 바 또는 스스로 결심한 바를 열심히 수행하고 난 뒤에 어떤 기분을 갖게 되는지 생각해보라.
이런 연유로 옛 사람들은 몸을 단련함으로써 정신을 단련시키려 했다. 윗사람에게 인사하기, 규칙적인 생활습관 기르기, 주변 환경 깨끗이 하기,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기와 같은 몸의 숙달 없이는 정신의 고양이 이뤄질 수 없다고 보고 수신(修身)을 강조했다.
불교 또한 공덕(功德) 쌓기를 권장했다. 수도자들이 ‘도 닦는’ 광경을 떠올려봐도 득도와 고행은 동반자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된다. 몸에 편한 것은 인간의 본성을 망가뜨리고, 그리하여 자칫 인간을 타락의 길로 이끌 수 있다. 정신의 위대함은 욕망의 자기통제를 통해서만 빛난다.
이런 경향이 동양의 전통사회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서양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중세 수도원의 하루 일과를 살펴봐도 확인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영국의 명문학교인 이튼스쿨이나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 등에서 크리켓이나 조정(漕艇) 같은 스포츠를 학생들에게 권장하는 사례만 봐도 짐작할 만하다. 그들은 스포츠 활동을 통해 젊은이들의 몸을 단련시킬 뿐 아니라 무엇이 공정하고 공평한 것인지, 사회정의는 어떻게 해야 실현될 수 있는지,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공정 공평 사회정의 용기 등은 추상적인 가치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렇다면 책을 통해 이론적으로 배워도 될 터인데, 왜 스포츠를 통해 그걸 가르치려 하는 것일까. 바로 거기에 몸과 정신의 함수관계가 존재한다(그런데 우리는 사회정의가 무엇인지를 오로지 머리로만 가르치려 한다).
몸의 단련, 그리고 그것을 통한 정신의 단련은 과정을 중요시하는 태도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 과정은 생략한 채 그 열매만 얻으려 한다면 목표에 이르지 못할 뿐 아니라, 설령 그 언저리까지 간다 해도 결과가 자신을 이롭게 하기보다는 해롭게 할 개연성이 높다.
여행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여행이야말로 과정을 중시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파리를 여행의 목적지로 삼았다 해서 파리에 도착하는 것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파리에서 그저 정형화된 스케줄에 따라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에펠탑, 노틀담대성당, 베르사유궁전 같은 명소들을 찾아다닌다고 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관광’일 수는 있어도 ‘여행’은 되지 못한다.
집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편안함을 제공하고자 발전해온 관광은 여행자에게 과정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공항에 내리면 준비된 차가 나와 예약된 숙소로 데려가고, 때가 되면 레스토랑으로 몰고가서 여행자의 위장이 원하는 바와는 상관없는 식사를 내놓는다.
안전과 편안함, 쾌적함을 내세우는 관광은 여행자가 그 땅과 사람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여행자가 실수할 수 있는 기회를 도무지 내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진정 얻고자 하는, 반드시 얻어야 하는 그 과정의 가치를 체험할 수 없게 된다. 관광은 당신이 여행길에서 체험하고자 하는 낭만적인 순간을 결코 제공하지 않는다. 낭만이란 고통과 공포와 대면하고자 하는 자의 것이지, 안락함을 택하는 자가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디를 가든 머물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는다. 스케줄을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하기 때문에 언제쯤 그곳에 도착할지 몰라서이기도 하지만,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그곳을 알고자 함이 더 큰 이유다. 그러므로 숙소는 현지에 도착한 후에야 찾아 나선다. 주머니 사정에 맞는 곳을 찾아다니다 조건이 맞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숙박계를 쓴다. 대개 열 군데 정도를 노크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한두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헛수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수고스런 과정을 통해 그 도시의 인심과 문화와 물가수준을 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많이 해봤지만, 자정이 다 된 늦은 밤에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는 낯선 도시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에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할 때가 있다. 길거리에서 밤을 보내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발을 뻗을 방을 구하고 나면 나는 그 도시를 향해 “너는 이제 내 손 안에 있다”며 큰소리를 치곤 한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이면 자신감을 갖고 눈을 뜰 수 있다.
나는 우연을 즐기는 편이다. 우연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는 여행만큼 좋은 게 없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도시에 묵을 곳도 미리 정해 놓지 않고 밤늦게 불쑥 도착했다면 그 다음부터 일어나는 일은 모두 우연의 소산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도 그런 우연 때문이 아닐까. 만약 역대 전적만으로 승부가 결정되고, 기록이 좋은 선수가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스포츠 경기의 흥미는 크게 줄 것이다. 과거의 기록이나 성적과 다른 결과가 일어날 때 우리는 “멋진 경기였다”며 흥분하고 즐거워한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이런 우연의 결과이고, 여행의 짜릿함도 거기서 맛볼 수 있다.
내가 경험한 우연 중에는 이런 경우도 있다. 이집트의 장거리 버스는 밤에만 달린다. 한낮은 너무 덥기 때문이다. 카이로에서 저녁 7시에 떠난 버스는 다음날 아침 9시에 룩소르에 닿았다. 승객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몇 사람이 달려와 “싸고 좋은 방 있습니다”며 호객에 열을 올렸다. 먼 발치에서 이런 광경을 보고 있던 나에게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한 백인 신사가 다가와 “혼자인가요?” 하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러시다면 우리와 한 방을 쓰지 않겠습니까?” 하면서 옆에 있는 부인을 소개했다.
좀 황당한 느낌이어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을 못하고 있는 내게 그는 이렇게 사정을 설명했다.
“우리는 독일에서 왔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카이로에서 이틀 밤을 보냈는데 에어컨이 없는 방이라 무척 고생을 했죠. 예산 범위 안에서 방을 구하다보니 그렇게 됐답니다. 룩소르에서는 그런 고생을 하고 싶지 않아 에어컨이 딸린 방을 구하려고 알아보니 그런 방은 모두 침대가 4개라는군요. 저희 부부가 쓰기엔 벅차니 다른 계획이 없다면 방을 함께 쓰시죠.”
나 역시 카이로에서 그런 고생을 했다. 주머니 사정에 맞춰 방을 구하다보니 에어컨이 없는 방을 얻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바람이라도 좀 들어오라고 창문을 열어놓았다가 모기만 날아들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당연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그들의 표정이나 언행을 살펴보니 의심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룸메이트가 됐고, 다음날 아침 나는 젊은 외국 여자가 끓여주는 커피 향내를 맡으며 눈을 떴다. 룩소르 여행도 이들과 동행했는데, 덕분에 택시를 탈 때도 요금의 3분의 1만 내면 됐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도 세 사람이 여러가지 메뉴를 시켜 다양한 요리를 나눠먹었다. 그렇게 알뜰하고도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들 또한 나와 함께 지내는 것이 싫지 않은 듯 다음 여행지인 아스완에서도 같이 지내자고 했고, 그런 관계는 카이로로 돌아와서도 계속됐다. 그들이 카이로에서 독일로 귀국해야 했기에 헤어졌을 뿐이다. 그런 인연으로 두 사람은 서울에도 한 번 다녀갔다.
나는 교통수단도 가능하다면 대중교통수단, 그 가운데서도 느린 것을 이용한다. 가까운 거리는 무조건 걷고, 시내에선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며, 중동이나 동남아시아에선 우리의 마을버스 같은 미니버스를 자주 이용한다. 아주 시간이 급하거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만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느린 교통수단은 같이 탄 승객이나 운전기사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거리의 풍경이나 지나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속도가 느리기에 눈으로 보는 것과 생각하는 속도 사이에 시차가 발생하지도 않는다. 교외로 달릴 때는 그곳에 강이 흐르는지, 산은 어떻게 생겼는지, 밭에는 어떤 작물이 자라는지, 가옥의 형태와 재료, 사람들의 용모와 복장 등도 살펴본다.
그러다 궁금한 게 있으면 옆 사람에게 물어본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대답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더라도 무작정 대화를 나누다보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내가 ‘풍토의 차이가 문화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것도 이런 관찰경험에 기인한다. 그 내용의 일부를 지난해 출간한 졸저 ‘문명은 디자인이다’에 싣기도 했다.
사람들은 내가 여행가라고 하면 외국어 실력이 뛰어난 줄 알고 몇 개 국어를 하는지 묻곤 한다. 하지만 내 형편은 그렇지가 못하다. 영어는 조금 하지만 능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여행하는 나라의 현지 언어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 나라 말을 배워서 그 나라를 여행한다는 것은 어렵다 못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나이 오십에 새로운 외국어를 배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여행중에 현지인과 말을 주고받는 것은 책을 읽거나 수업을 듣는 것과는 다르다. 글자 그대로 대면(face to face) 상황인데다, 대화의 내용이 특정한 주제에 한정돼 있어 몇 개의 단어만 연결시키면 웬만큼 뜻을 통할 수 있다. 거기에다 손짓과 발짓, 눈빛까지 동원한다면 그 효과는 크게 올라간다. 외국어를 못한다고 주눅들 이유가 없다. 다만 자신의 감각기관을 총동원하는 수고는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익숙한 곳에선 우리는 눈과 입, 귀 정도만 적당히 열어두면 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렇지만 낯선 곳에선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까지 동원하되, 그것도 최고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단지 의사소통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곳에 부는 바람과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 레스토랑과 시장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냄새, 목구멍을 넘어가는 음식과 음료의 맛,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 어쩌다 부딪치게 되는 그곳 사람들에게서 전해지는 촉감, 무어라 떠들어대는 소리…. 이런 것들을 몸소 느껴보고 또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여행은 이렇게 평소 잘 쓰지 않는 감각기관까지 훈련시켜 준다.
만약 당신의 센서를 풀 가동시키고자 한다면 신발을 벗고 여행을 떠나는 게 좋다. 맨발로 여행할 수 없는 여건이라면 적어도 마음가짐만은 ‘맨발’이어야 한다.
인도에서의 일이다. 뉴델리에는 간디의 묘소가 있다. 파란 잔디가 깔려 있는 그곳에선 누구든 신발을 벗게 돼 있다. 심지어 양말까지도.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맨발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맨발로 잔디밭을 걸어보니 느낌이 각별했다. 간지럽기도 하고 포근하기도 한 그 감각이 곧 머리로 전달되자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참동안 그 잔디밭 위를 거닐었다.
아그라의 타지마할에서도 신발을 벗어야 했다. 하얀 대리석이 맨발에 와닿는 촉감은 잔디에서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부드러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대리석 타지마할과 하나가 됐다는 느낌에 젖었다.
그때서야 왜 인도인들이 그들이, 귀한 곳이라 생각하는 곳에선 신발을 벗게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온 몸으로 성스러운 기운을 느껴보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인도인들은 좀처럼 신발을 신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도 수저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른손으로 음식을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얼핏 생각하면 가난해서, 위생관념이 희박해서 그런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손만큼 위생적인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손가락으로 음식을 만지작거리다 입안으로 집어넣을 때의 그 신비한 촉감은 금속이나 나무로 된 수저나 포크로 먹을 때의 그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의 어머니들도 포기김치를 쇠로 만든 칼로 자르면 맛이 없다며 손으로 북북 찢어 먹지 않았던가.
인도인들은 일을 할 때도 웬만해선 도구나 장비를 동원하지 않는다. 온몸으로 직접 대상이나 자연, 그리고 세상과 만난다. 그들만큼 자연존중 의식에 투철한 민족도 없는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자연과 세상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는 좋은 물증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현지인과 현지 문화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신발부터 벗을 일이다. 로마교황도 외국땅에 닿으면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그 자리에 엎드려 땅에 입맞춤하지 않던가. 그 땅에 대한 애정 없이 그 나라를 여행할 생각을 해선 안 된다. 그것은 우선 자기를 속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아일랜드 출신의 도예가다. 나이는 50대 중반인데, 나는 그를 독일의 그렌젠하우젠이란 작은 도시에서 만났다. 그에게는 약간 특이한 기질이 있었다. 해외에서 전시회를 갖게 되면 반드시 그 나라에서 제작한 작품을 내놓는 것이다. 그는 전시회 개최 날짜보다 훨씬 앞서 현지로 달려가 작품을 제작한다.
따라서 그에게는 현지에서 작품을 만들 스튜디오나 가마를 구하는 일이 제일 중요할 듯한데, 그는 그에 앞서 그 나라에 대한 공부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공부는 주로 문학작품과 역사책을 통해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작품의 주제를 찾아낸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행가인 나는 과연 무슨 준비를 했는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에 비하면 나는 참 게으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여행을 하려면 이처럼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뱉는 말 또한 ‘철저한 준비’다. 그렇지만 여행지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잘 들을 수 없다. 그런 준비를 할 처지가 못된다면 적어도 신발을 벗는 노력만큼은 해야 하리라.
프레야 스타크(Freya Stark·1893∼1992)는 내가 존경하는 여행가다. 파리에서 태어난 이 영국 여성은 어린 시절을 이탈리아에서 보냈으나 20대에 들어선 뒤부터 아랍세계에 관심을 가졌고, 28세 때는 그곳을 직접 여행하겠다는 생각에 아랍어 공부를 시작했다. 현지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다 30대에 들어서자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아시아 현지로 달려갔다. 그때가 1920년대였으니 아랍지역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상상해보라.
요리사와 시종 하나를 거느리고 나귀와 조랑말에 몸을 실은 채 여자의 몸으로, 당시로는 남자들도 여행하길 꺼리던 실로 거칠기 짝이 없는 시리아, 요르단, 아라비아반도, 이라크, 이란, 아프간 등지를 여행했던 것이다. 자국의 영사관을 지척에 두고서도 찾지 않았다. 그녀는 아랍어, 페르시아어, 쿠르드어, 터키어를 구사하면서 서아시아 일대를 여행한 최초의 서방 여성이었다. 혼자서,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세계와 만났던 것이다.
자신이 무슨 대단한 사람인 체 하거나 돈이 많은 티를 내지 않는 것이 사람을 사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었던 스타크는 현지인들과 허물없이 어울리고자 했고, 험난한 곳도 마다지 않으며 돌아다녔다. 그것은 누가 봐도 고행길이었다. ‘바그다드 스케치’ ‘유프라테스 강을 넘어서’ 등 모두 23권의 여행기를 펴낸 그녀는 서아시아를 일러 “공간이자 거리이며, 역사이고 모험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꼭 100년을 산 그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을 서아시아를 여행하며 보냈다. 그 스스로도 “여행을 통해 관용과 독립심을 길렀다”고 고백한 바 있다. 스타크에게 서아시아는 영감과 인내심의 원천이었다.
이런 그녀에게 ‘아라비아의 여자 로렌스’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로렌스와 달리 그녀는 현실 정치에 손대지 않았다. 끝까지 여행가, 기행문학가로 남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아시아를 사랑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이것이야말로 여행가가 가져야 할 진정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여행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 중의 하나는 스타크의 예에서 보는 것과 같은 영감과 통찰력이다. 익숙한 것들 속에서는 잘 가동되지 않는 우리의 감각체계도 낯선 세계에 들어가면 제 기능을 120% 발휘할 때가 있다. 긴장감이 센서를 예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고 위대한 작품을 남긴 사람은 아주 많다. 화가, 음악가, 문학가, 학자 등 예술과 학문의 전 분야에 두루 걸쳐 있다. 사업가의 경우 그들의 특성상 기록을 남겨 놓지 않아 확인하긴 힘들지만 그 수도 적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19세기의 프랑스 사상가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1805∼59)을 들 수 있다. 그는 26세 때인 1831년 미국으로 건너가 9개월 동안 머물렀다. 많은 곳을 다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의 민주주의’란 책을 펴냈다.
자유주의 사상의 힘을 믿었던 프랑스 귀족 청년 토크빌은 그 책에서 당시 미국의 정치제도와 국민의식, 문화와 사회구조뿐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시대정신이 갖는 진보성과 위험성까지 분명하게 밝혀냈는데, 그 덕분에 이 책은 1835년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만약 당신이 영감이나 통찰력을 갖고자 한다면 당신의 감각기관이 더 이상 무뎌지기 전에 여행을 떠나야 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람들은 여행이 아니라 관광을 찾게 된다. “당장은 경제적 여유가 없으니 여행은 나이 들어서나 떠나겠다”고 하는 이들에겐 설사 내핍생활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센서가 돌아가고 있을 때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 떠나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야만 남은 세월을 즐겁고 보람있게 보낼 수 있다. 이는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이집트 여행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다. 룩소르에는 3000여 년 전에 지은 카르나크 대신전이 있다. 룩소르를 찾는 이들이 반드시 찾는 명소다.
영국에서 왔다는 젊은이 한 쌍을 그곳에서 만났다. 그들은 전체 여행기간이 15일인데 그 중 11일을 룩소르에서 보낸다고 해서 놀랐다. 그들은 이렇게 이유를 들려줬다.
“룩소르는 매시간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동틀 때와 햇빛이 쏟아지는 한낮, 노을에 붉게 물들었을 때, 그리고 ‘빛과 소리의 향연(Sound and Light show)’이 벌어지는 밤 조명 아래 드러나는 광경 하나하나가 너무도 달라서 도저히 한곳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지요. 우리는 그렇듯 미묘하게 변해가는 룩소르를 한껏 즐기려 합니다. 물론 반드시 룩소르만 그처럼 다채로운 면모를 가진 것은 아니겠지만요.”
하나라도 제대로 알면 거기에서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칠 수 있다는 자세였다. 그들이 마치 나를 빗대 ‘굳이 이곳저곳 다니면서 시간낭비하며 얕은 지식이나 얻을 필요가 뭐 있겠느냐’고 하는 것 같아 뜨끔했다. ‘한 우물만 파라’는 옛말이 그날처럼 깊이 와 닿은 적은 없었다.
나도 세 번이나 그 신전을 찾았기에 그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 못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이집트에 왔다면 룩소르 말고도 볼거리가 너무나 많은데….
나를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젊은 그들이 그같은 미묘한 빛의 변화를 즐길 줄 안다는 사실이었다. 여행은 양이 아니라 질을 추구하는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질을 추구하는 여행가들은 다른 곳에서도 많이 만났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토라자 민속마을, 터키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사원 등지에서 나는 그런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았다. 명소 앞에서 찰칵 소리를 내며 셔터를 누른 다음, 정작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는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 사람들이 아니다.
대신 그들의 손에는 스케치북이 들려 있다. 자신의 눈으로 대상을 보고 버릴 것과 살릴 것을 판단한 다음, 살릴 것들만 스케치북에 옮겨 놓는다. 이렇게 하면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 그 대상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사진만 잔뜩 찍어놓고는 나중에 사진을 보고 어디서 찍었는지도 모르는 류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남이 만들어 놓은 가이드북에 따라 대상을 이해하고, 남이 해설해놓은 것을 정답이라 믿으며 거기에 자기 생각을 덧붙일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전문가의 해설을 접해도 아니다 싶으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갖는 것 자체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 한 장 찍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남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그래서 오로지 자기만의 느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걸 원한다면 카메라는 버려야 한다. 적어도 ‘찰칵’ 하고는 이내 돌아서 버리는 자세만큼은 버려야 한다.
카메라에 대상을 담고 금방 돌아서 버리는 것은, 눈 앞에 맛난 음식이 있는데도 먹지 않고 창고에 넣어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행은 현재를 보관하기 위한, 또는 소유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현재는 흘러가게 내버려둬야 한다. 여행자는 둑이 될 것이 아니라 흐름을 타는 물고기가 되어야 한다.
‘나그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소유의 욕구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마음을 비우기에 감각기관은 빛날 수 있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생각이 잘 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어슬렁거리곤 한다. 그러다보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옛날 그리스인들은 도서관 뒤뜰에 반드시 산책로를 두었다. 어슬렁거리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매뉴얼대로 처리하면 되는 일이라면 몰라도 새로운 일의 방식을 고안하거나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책상머리를 지키는 게 능사가 아니다. 그때에는 어슬렁거리는 게 상책이다.
여행은 바로 이런 어슬렁거림의 고급스런 형태다. 어슬렁거림에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슬로 템포’와 ‘마음 비움’이 그것이다. 어느 해 여름, 이스라엘의 하이파항에서 사이프러스를 거쳐 그리스로 가는 3박4일 간의 뱃길 여행을 하면서 나는 배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연인과 사랑을 속삭이는 이들을 보았다. 서구인들에게 휴가란, 그리고 여행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이런 게 아닐까.
‘마음 속에 아무런 구김을 남기지 않고,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때그때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 적절히, 그러면서도 능동적으로 대응해가며 가슴속에, 머리속에, 몸속 어딘가에 끼어 있을 찌꺼기, 앙금 같은 것들을 씻어내는 작업’.
그래서 그들은 남의 시선 같은 것은 의식하지 않고, 체면을 버리고 몸과 마음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한다. 바캉스란 원래 ‘빔(空)’을 뜻하는 말이 아니던가. 마음속을 늘 지키고 있는 자의식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바캉스라고 한다면 애써 뭔가를 할 필요는 없다. 그때그때 몸이, 마음이 바라는 바를 하면 된다. 그러다보면 자신(自信)을 얻게 될 것이고, 또 자신(自身)을 보게 될 것이기에.
슬로 템포가 바람직하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이를 권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업이 따로 있는 사람에게 무작정 숙박일수를 늘리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인 타협안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트래블 믹스(travel mix)’라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여행에는 우선 시간(time)이 필요하다. 돈(money)도 있어야 한다. 아무리 배낭여행이라고 해도 얼마간의 돈은 있어야 하고, 가진 돈이 부족하면 현지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
세번째로 필요한 것은 체력(energy)이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야 여행에 나설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체력이 부치면 호기심도 발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 되고 만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정보(information)다. 시간, 돈, 체력, 그리고 정보를 일러 ‘여행의 4박자’, 그리고 이들을 잘 조합하여 운영하는 것을 경영학적 용어를 빌려 트래블 믹스라 이름 붙이고자 한다.
트래블 믹스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시간도 많고 체력도 좋은데 돈이 없는 여행자라면 대중교통수단과 값싼 숙소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물론 이것도 지나치면 경제적 지출을 늘리게 되는 결과를 낳으니 나름대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체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돈은 좀 들더라도 빠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또 꼭 봐야 할 곳이 있는데 시간은 모자라고 그곳으로 가는 마땅한 대중교통수단이 없을 때는 택시나 비행기도 이용해야 된다. 여기에는 곧바로 경제적 지출이 뒤따른다. 대신 시간을 절약하고 체력 소모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시간, 돈, 체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함께 절감할 수 있는 비책이 있다. 정보가 그것이다. 여행자가 여행에 필요한 정보에 정통해 있다면, 다시 말해서 자기가 원하는 곳이 어디에 위치하며, 또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타고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곳은 언제 문을 열고 닫는지 등을 잘 알 터이니 시간과 돈, 체력의 낭비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대개 정보의 부족에서 온다. 제대로 된 정보가 없으면 껍데기만 보고 오기 십상이다. 그 구조와 장식, 그것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 등을 놓치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여행의 효과는 반감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나는 우선 정보부터 챙기고, 그것에 기초하여 여행계획을 짠 후 현장으로 달려간다. 또 여행중에도 새로이 얻는 정보를 잘 소화해서 필요하면 스케줄을 손질한다.
그러나 여행에 필요한 정보란 너무나 광범위하기 때문에 정보를 얻는다는 게 간단치가 않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여행 가이드북은 여행정보의 극히 일부분을 제공할 따름이다. 여행정보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번째는 기술적 정보다. 가이드북의 길 안내나 숙박·음식·쇼핑 등에 관한 실용적 정보가 이에 해당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여행가이드가 이때 가장 손쉬운 정보원이 된다.
두번째는 지역 정보다. 여행하고자 하는 국가나 지역의 역사, 예술, 정치, 경제 등에 관한 정보를 말한다. 그 나라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없이는 해당 명소나 도시를 제대로 관찰할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행가이드는 물론 역사서도 읽어야 하고, 백과사전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세번째는 총괄 정보다. 말 그대로 기술적인 것도, 지역적인 것도, 전문적인 것도 아닌, 이 모두를 뛰어넘는 높은 차원의 정보를 말한다. 여행 자체를 뜻깊게 하고 윤기나게 하기 위해선 다소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정보들도 포함돼야 하는데 바로 그게 총괄 정보다. 앞서 예로 든 도예가 마이클의 경우에서도 봤듯이 여행의 테마는 대개 이 총괄 정보의 취득단계에서 이뤄진다.
여행은 낯선 곳으로 찾아가는 모험이다. 모험은 짜릿한 감동을 준다. 거기에는 위험성이 내재돼 있기에 그러하다. 여행은 필연적으로 위험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위험은 여행의 본질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행자가 당할 수 있는 위험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신체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금전적인 것이다. 전자는 다시 신체적인 위협과 사고로 나눌 수 있다. 치안이 불안한 지역을 여행하거나 현금이 많은 티를 내거나 어딘가 허술하게 보일 때 그 개연성은 높아진다. 시비가 붙을 만한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위를 잘 살펴 문제의 소지를 미리 예방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금전적 위험은 도난과 소매치기, 바가지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도난을 방지하려면 짐의 수를 줄이는 게 우선이다.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에 소개된 호텔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열쇠로 채운다든가 해서 나름의 방비책을 생각해야 된다. 소매치기는 복잡한 버스정류소나 버스 속에서 자주 일어나며, 길거리에선 주위를 산만하게 만드는 꼬마녀석들에 의해 대개 저질러진다. 옷에 샴푸를 묻힌다거나 가까이 와서 뭐라고 떠들어대면 빨리 그 자리를 뜨는 게 좋다.
바가지 쓰는 일은 물건을 살 때보다는 술집에서 주로 일어난다. 한국 여행자들의 대부분은 로마나 파리의 술집에 들렀다가 바가지를 쓰곤 한다. 부끄러운 일이라 남들에게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누군가가 먼저 그 얘기를 꺼내면 “나도 당했는데…” 하면서 실토한다.
길거리나 차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나이가 친절을 베풀고 심지어는 속에 있는 이야기까지 들려주면서 당신이 ‘이 친구는 정말 믿을 만하구나’ 하고 마음을 놓는 순간, 그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어디 가서 술이나 한 잔 하지. 내가 쏠 테니까.”
그 동안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아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말도 통하고 마음씨도 쓸 만하니 이런 친구라면 ‘까짓거, 내가 쏠 수도 있지’ 하는 생각으로 쉽게 따라나서게 된다.
그 친구는 술집에 들어가서도 당신을 치켜세우고 늘씬한 몸매의 아가씨까지 붙여준다. ‘객지에서 이런 대접까지 받다니, 나는 정말 행운아야’ 하고 생각할 무렵, 언뜻 정신을 차려보니 그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가 사라졌는데도 아가씨들은 아무 걱정 없이 잘 논다. 걱정은 오히려 당신의 몫이 된다. 속았다는 생각에 술집에서 얼른 빠져나가려고 계산서를 가져달라고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웬 동그라미가 그리도 많이 붙어 있는지. 달러로 환산해보니 500달러가 넘는 거금이다.
이렇게 새나간 외화가 과연 얼마나 될까. 내가 본격적으로 외국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20년 전에 써먹던 수법이 아직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으니 우리는 세계의 ‘봉’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여행중에는 이유 없이 친절한 사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속내까지 드러내는 사람은 우선 경계해야 한다. 적어도 1주일은 지켜본 다음 마음을 여는 게 좋다. 의도가 있는 사람들의 친절은 대개 사나흘을 넘기지 못하니까.
터키를 여행하다 그곳 대사관에 근무하는 영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리비아의 병원에서 근무하던 한국 간호사 세 사람이 일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터키에 들렀다.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났는데, 혼자라면 몰라도 일행이 셋이나 되니 터키 남자가 접근해도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냐며 그다지 경계를 하지 않았다. 그는 잘 생긴데다 싹싹하기까지 해서 허물없이 사흘 동안 함께 어울렸다.
일은 사흘째 되던 날 밤에 일어났다. 여자들이 다음날 떠난다고 하자 남자는 헤어지기 섭섭하다며 그녀들의 숙소에서 조촐한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했다. 얼마간 술이 오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즈음 그는 “정말 좋은 커피가 있다”며 몸소 끓여서 한 잔씩 권했다.
그걸 마신 여자들은 다음날 늦게 호텔 종업원들이 흔들어 깨워서야 겨우 눈을 떴다. 방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돈도 돈이지만 여권과 비행기표마저 사라졌으니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 일은 여자 여행객들뿐만 아니라 한국 남자들을 상대로도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육신의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여행의 정도(正道)이기에 권해야 될 일이지만, 감언이설에 현혹돼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인생은 흔히 나그네길에 비유되곤 한다. 좋은 여행을 하는 것은 인생을 잘 사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딱 ‘이거다’라고 할 수 있는 황금코스가 없듯이 여행에도 황금코스라는 것은 없다.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는 여행 에세이 ‘행복의 충격’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참으로 ‘떠난다’는 일은 쉽지 않다. 떠나는 방법은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다. 수없이 떠나본 사람에게도 모든 ‘떠남’은 항상 최초의 경험이다. 떠나는 방법은 자기 스스로에게도 교육할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여행을 좀 했다는 이도 길에 나서면 늘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경이감을 느끼기에, 또는 그런 기대감이 있기에 또 길을 떠난다. 여행의 유혹은 고통처럼 강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