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의 대선주자 경선이 국민투표인단 모집을 계기로 사실상 시작됐다. 3월9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10일 울산, 16일 광주로 이어지는 순회 경선. 중립지역인 제주시와 영호남의 관문 두 도시의 경선을 거치면 경선의 전체 윤곽도 드러날 전망이다. 새봄과 함께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질 세 도시, 벌써부터 불꽃이 튀는 이 지역들을 미리 둘러보았다.
제주도에서 처음 만난 시민인 택시기사 김형준(55)씨는 “새천년민주당 제주도지부로 가자”고 행선지를 밝히자 다소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제주도는 요즘 무척 시끄럽다.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역순회 경선의 출발지가 제주도인 까닭에 지역 당심(黨心)과 민심(民心)을 잡으려는 여권의 대선주자들이 번갈아가며 이곳을 드나들고 있다.
기자가 제주도를 찾은 2월4일 이전까지 이인제(李仁濟) 고문이 1월21일과 28일 두 차례 제주도를 찾았고, 한화갑(韓和甲) 고문이 1월13일과 27일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노무현(盧武鉉) 고문도 1월28일에 이어 2월3일부터 제주도와 울산을 도는 일정을 시작했고 정동영(鄭東泳) 고문도 1월28일 제주를 찾아 이곳에서 대선출정식을 가졌다.
김근태(金槿泰) 고문도 1월28일 제주도에서 하루종일 일정을 소화했고 29일에는 울산을, 30일에는 광주를 방문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김중권(金重權) 고문도 1월말 제주도와 광주를 차례로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2월4일 오전, 제주도는 두터운 구름에 감싸여 있었다. 제주도 어디서건 볼 수 있다는 한라산이라지만, 이날은 흐린 날씨 탓에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대신 가끔씩 보이는 검정색 화산암 돌담과 크리스마스트리의 전등처럼 빨간 꽃봉오리를 드러낸 동백나무 가로수, 만세를 부르듯 흐드러진 야자수가 이곳이 남녘 섬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창 밖의 이국적인 풍경에 한눈을 팔면서 택시기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요즘 정치인들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민심은 어떤가요?”
“제주 사람들은 약속 안 지키는 사람에게는 절대 표 안줍니다. 한번 신뢰를 잃으면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제주도에서 행세하기 힘듭니다.”
뜻밖에도 택시기사는 민감한 얘기를 거침없이 내뱉었다. 기자도 흐트러졌던 자세를 바로잡았다.
“신뢰를 잃었다는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신구범(愼久範)씨 얘기지요. 저번 제주도지사 선거 때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탈락하면 승복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어요. 그런데 경선에 패한 뒤 약속을 뒤집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습니다. 형편없이 표를 못받았지요.”
약간 김이 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이렇게 에돌려 표현하는 택시기사의 화술에서 제주도 사람의 정서를 엿볼 수 있었다.
신구범 전지사는 1995년 6월27일 광역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11만1205표를 얻어 당시 민자당 우근민(禹瑾敏), 민주당 강보성(姜普性) 후보 등 정당공천을 받은 경쟁자들을 누르고 민선 제주도지사에 당선됐다.
그 뒤 신 전지사는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에 입당했고 199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지사 후보 당내 경선에 출마했다. 당시 당내 경쟁자는 우근민씨였는데 경선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서약을 한 뒤 치러진 경선에서 신 전지사는 패했다.
그러나 서약과 달리 신 전지사는 무소속으로 본선에 출마했다. 결과는 낙선. 당선자인 우근민 후보가 13만9695표를 얻은 반면 신 전지사는 8만1491표에 그쳤다. 1995년 첫 지방선거에서 신씨가 얻은 11만여 표에도 못미치는 결과였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인제씨도 신 전지사와 비슷한 경우 아닙니까?”
“손님은 이인제씨 지지하시나 보죠?”
“저는 기자입니다. 대선 관련, 현지 민심을 취재하려고 왔습니다.”
“그러십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기사는 대뜸 “정치불신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육지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여기서는 큰 인기를 끄는 정치인이 없습니다. 이인제씨도 이회창(李會昌)씨도 여기서는 인기가 별로입니다.”
그런 얘기가 오가는 사이 택시는 목적지인 제주시 이도2동 민주당 제주도지부에 도착했다.
택시기사의 마지막 말처럼 제주도 사람들은 과거 정당 소속 정치인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제주도민들의 정치적 성향은 전통적으로 ‘무소속’이다. 왜 그런지에 대해 사람마다 해석이 엇갈리지만 군사독재 시절에도 제주도민들은 무소속 의원에게 표를 던졌다. 14대 총선에서는 당선자 3명이 모두 무소속이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주에서 이종우 남제주군의원과의 만남 때도 예정에 없던 노사모 회원들이 동석했는데 열정적으로 노고문의 장점을 알리는 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울산에서는 ‘통합과 도약을 위한 노무현 추대위원회 울산본부 발대식’에서 울산지역 노사모 회원들을 단체로 만날 수 있었다. 예정에 없던 이들의 ‘배려’로 기자는 광주에서도 현지 노사모 관계자와 만날 수 있었다.
임병택 광주 노사모 사무국장(전남대 법학과4)은 “이인제 고문은 국민신당과 산악회원 등 5만명의 지지세력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노사모는 전국에 1만명이다. 5만 대 1만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일당백의 각오로 노고문을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지역 노사모 회원은 800명 가량이다. 그는 “적어도 광주에서만 노고문을 지지하는 국민투표인단 지원자를 10만명 확보할 생각이다”라며 기염을 토했다.
임씨는 “지난 가을 전남대 법대 주최로 모의투표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노무현 고문이 300여 표로 1위였고 정동영 고문이 100표로 2위를 차지했다. 이어 김근태 이인제 이회창 순이었는데 이것만 봐도 노고문이 광주지역 젊은 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대학가 여론도 임씨의 주장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전남대에서 만난 대학원생 김지숙(여·25)씨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노무현 고문과 정동영 고문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인제 고문의 경우 대중적 인기에 비해 대학생들 사이에는 별로 거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월14일, 제주지역 지구당 개편대회장에서 노무현 고문은 이인제 고문을 향해 “민주당 후보는 경선 불복으로 국민에게 손가락질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런 사람을 민주당이 대표로 내세워서는 안된다”며 공격을 가했다. 다음날에도 노고문측은 “신한국당에서 폐기한 사람을 민주당 대표로 내세우는 것은 정체성 위기를 가져온다. 당이 좀 어렵다고 해서 되지도 않은 물건을 팔려고 해서는 안된다”며 이고문에 맹공을 가했다. 이에 대해 이고문측은 어떻게 대응할지 고심중이다.
2월6일 울산 연설에서도 노고문은 이고문을 비난했다. 하지만 최근처럼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은 아니었다. 말이 거칠어진다는 것은 곧 그만큼 결전이 임박했다는 반증이다. 또 결전에 임하는 당사자가 초조해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3월9일 제주지역 경선이 치러질 제주도 한라체육관. 상대방을 향해 낯을 붉히는 후보들 가운데 과연 누가 먼저 웃게 될까. 이어지는 울산, 광주의 결과는 또 어떠할까. 한국의 뉴햄프셔 세 도시는 지금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그런데 1996년 4월11일에 치러진 15대 총선 이후 제주도민들의 투표성향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1997년 대통령선거부터 제주도민들은 과거와 달리 정당을 찾아 투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국선거 결과와 거의 일치하는 결과를 내놓았다. 15대 대통령 선거 결과 제주도에서 이회창 후보가 10만103표, 김대중(金大中) 후보가 11만1009표, 이인제 후보가 5만6014표를 각각 얻었다. 이회창 후보와 김대중 후보의 표 차는 1만여 표에 불과했는데, 이는 DJ가 전국적으로 30여만표라는 근소한 차로 승리한 결과의 완벽한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15대 대선 이후 국민회의(이후 민주당)는 제주도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어진 지방선거과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선전했다. 그 결과 제주도 3개 지역구 가운데 민주당은 북제주군의 장정언(張正彦) 의원과 서귀포시·남제주군의 고진부(高珍富) 의원 등 2명의 당선자를 냈다. 한나라당은 제주시의 현경대(玄敬大) 의원뿐이다. 그러니까 제주도의 다수당은 민주당인 셈이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도 민주당 소속이다. 제주시, 서귀포시, 남제주군, 북제주군 등 4개 기초단체장 가운데 김태환(金泰換) 제주시장과 강태훈(康太勳) 남제주군수가 민주당 소속이다. 한나라당 소속 기초단체장은 신철주(申喆宙) 북제주군수 한 사람이고 강상주(姜相周) 서귀포시장은 무소속이다. 또한 12명의 광역의원 가운데 민주당 의원은 6명이고 한나라당과 무소속이 각 3명씩이다.
전반적인 민주당 우세 현상에 대해 민주당 제주도지부 양영흠 대변인은 “제주도의 개혁성향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해석했다.
“제주도를 무소속이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평가입니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제주도는 일방적으로 여당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무소속 정치인이 많았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제주도는 소외된 지역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저항정신도 강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제주도민들은 개혁성향의 인물을 선호해왔습니다. 제주도에서 연임한 국회의원이 드문 것도 도민들이 새로운 인물, 개혁성향의 인물을 꾸준히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양대변인은 “이런 개혁성향 탓에 육지와 달리 제주도에는 독자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영호남 갈등 같은 지역정서가 없습니다. 지역정서에 의한 편가르기 대신 인물 중심의 판단이 가능한 곳이 제주입니다. 한마디로 제주의 정서를 읽으면 전국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제주에서 시작되는 당내 대선후보 경선 결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대변인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3월9일 제주에서 열리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전체 경선의 향방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정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중립지역인 까닭에 제주의 선거결과는 곧 전국결과의 축소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참여경선제가 도입된 이후 첫 경선인 만큼 언론의 관심도 지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여기서 선두권을 형성하는 후보는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을 수 있는 반면, 하위권으로 처질 경우 다음을 기약하기가 어려울 듯하다. 만약 제주도 경선 결과 예상 밖의 인물이 선두로 치고 나온다면 이후 경선국면 전체에 파란이 일 수도 있다.
후보들이 이런 이치를 모를 리 없다. 1월7일 당무회의에서 국민참여경선제가 확정된 이후 민주당의 7룡들은 뻔질나게 제주도를 드나들며 여론몰이와 표 단속을 하고 있다.
대선주자들의 잇따른 제주도 방문에 대해 “과열을 부추긴다”는 비난여론도 있지만, 민주당 경선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관심은 높아졌다. 신제주에서 음식점을 하는 고미경(여·43)씨는 “지역뉴스에 매일 정치인들이 제주도를 방문한 모습이 나와 대선후보 경선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치러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를 모르는 제주도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대변인도 “국민참여경선제를 실시한다는 발표가 있은 직후 한동안 전화기에 불이 났었다 국민참여경선제가 어떤 제도이고 어떻게 참여하는지를 묻는 전화가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양대변인은 “제주도의 경선투표인단은 당원·대의원이 380명, 일반국민 투표인단이 380명으로 모두 760명인데 이런 도민들의 열기로 보아 일반국민 투표인단에 지원하는 후보가 적어도 투표인단의 5배인 2000명 이상은 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그러나 제주지역 이인제 고문측의 한 인사는 “이고문 지지자들만 5000명 이상 국민투표인단에 참여할 계획이다. 캠프마다 이 정도를 목표로 한다면 적어도 제주도에서만 2만∼3만명이 국민투표인단에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른 후보 진영에서도 “도지부가 2000명을 예상지원자로 잡은 것은 혹시 참여가 저조할 것에 대비해 그 수를 줄인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2만명 이상의 제주도민이 국민투표인단에 지원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무튼 경선 열기에 관한 한 다른 지역보다 뜨겁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러면 이런 열기 속에서 치러질 제주도 경선결과는 어떻게 될까. 민주당 제주도지부 관계자들이 관측하는 제주지역 판세는 대략 ‘2강 2중 3약’. 이인제 고문과 한화갑 고문이 2강을 형성하고 그 뒤를 노무현 정동영 고문이 추격하는 양상이 될 거라는 얘기다.
제주도지부의 한 관계자는 “이인제 고문의 경우 전국적으로 ‘대안 부재론’의 덕을 보고 있는데 제주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화갑 고문은 야당시절부터 5년째 제주도지부 후원회장을 맡아오면서 제주도와 인연을 맺었다. 민주당 제주도지부장인 고진부 의원이 한고문 계파라는 점도 적잖은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중으로 꼽히는 후보 가운데 정동영 고문의 약진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정고문의 경우 특히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층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고문의 지역순회 때 동행했다는 한 당직자는 “뉴스 앵커였던 경력 덕을 보는 것 같았다. 다른 후보들보다 상대적으로 시장에서 정고문을 알아보고 환호하는 도민들이 많았는데 특히 젊은이와 여성들의 반응이 대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고문도 인지도에서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강점을 지니고 있는데 개혁성향의 젊은 유권자들은 노고문과 정고문을 두고 고민하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이 당직자의 관측은 현장에서 사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제주대생인 변성훈(26·법학과3)씨는 “지난 1월말 제주에서 경선출마를 선언한 뒤 정동영 고문이 제주지역 6개 대학 학생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행사에 참여해 정고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는데 느낌이 좋았다”고 말했다.
“간담회에서 학생들은 정고문에게 ‘왜 대선에 출마했느냐’ ‘제주도의 대졸자 취업난 대책은 무엇이냐’ 등의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비교적 설득력있게 대답을 잘하더군요. 대학생들의 경우 개혁성과 추진력을 주요한 덕목으로 보는데 정고문은 그런 장점을 두루 갖춘 후보라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간담회 이후 정고문의 홈페이지에 제주도 대학생들의 격려성 글이 많이 올라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변씨는 “정고문 외에 제주도 대학가에서는 노무현 고문의 인기가 높은 편인데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노사모)’ 회원이 제주도 대학가에서 활동하면서 노고문 지지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개혁적 인물로는 김근태 고문도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변씨는 “솔직히 대학생들은 김근태 고문이 대선주자인 것을 뉴스를 듣고 알지만 구체적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김중권 고문이나 유종근(柳鍾根) 지사의 경우도 대학생들 사이에 인지도가 크게 떨어지는 상태”라는 것.
그러면서 변씨는 “만약 기회가 된다면 민주당 국민투표인단에 지원해볼 생각”이라며, “내놓고 의견을 말하지는 않지만 민주당 투표인단을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대학생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대 총학생회의 한 간부는 “요즘에야 민주당 경선주자들의 제주행이 화제가 되지만 대학가에선 벌써부터 경선 바람이 불고 있다”고 귀띔했다. 구체적으로 지난 가을부터 제주도내 대학가에서 학생들을 동원할 수 있고, 여론 주도 능력이 있는 학생들을 상대로 대선주자 캠프마다 은밀히 영입제의를 해왔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캠프에 합류해 활동중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총학생회 차원에서는 경선에 관여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이런 반응에 비추어 ‘정동영 바람’의 최대 피해자는 아무래도 노무현 고문일 것이다. 정고문이 출마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노고문을 지지했을 대학생 등 젊은층의 이탈은 분명 뼈아픈 대목이다.
이에 대해 노고문 진영에서는 “과거얘기다. 지난 1월 이후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노고문 지지 입장을 공개한 이종우 남제주군의원은 “20대가 정동영 지지로 기울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러나 30, 40대로 가면서 노고문 지지자가 많다”고 말했다. 이의원은 “도덕성을 갖추고 영남표를 가져올 인물은 노고문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퍼져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인제 고문 지지 입장을 공개한 홍석빈 제주시의원은 “2강 2중이라고 말하지만 2강과 2중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홍의원은 “전체 760명 투표인단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는 당원과 대의원 선거인단, 즉 민주당적을 가진 투표인단 사이에 이미 이인제 고문 대세론이 파다하다. 나머지 국민투표인단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오랫동안 제주도에 공을 들여온 한화갑 고문과 이인제 고문, 이 두 사람이 나머지 후보들을 따돌리고 선두를 다투는 양상으로 경선이 진행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날 아침 밤새 내린 비로 제주도는 축축히 젖어 있었다. 제주도를 감싼 비구름은 여전히 걷히지 않았다. 이날 오후 항공기를 타고 부산으로 가 그곳에서 울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와 버스여행을 포함 3시간 남짓한 거리, 날씨도, 사람들의 말투도 크게 달랐다. ‘지도로는 좁은 나라, 다녀보면 큰 나라’라는 광고카피가 실감났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지공장이 있는 도시. 그래서 외국에는 ‘현대시’로도 알려져 있는 울산광역시. 지난해 현대자동차와 중공업이 모두 대규모 흑자를 기록한 뒤여서인지 울산의 야경은 한층 찬란해 보였다. 늦은 시간이지만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이튿날 아침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택시에 올랐다. 울산은 3월9일 제주에 이어 10일 두번째 지역경선을 치를 곳, 영남지역의 첫 격전지, 그래서 영남 출신 후보의 득표력을 검증해볼 수 있는 대결장이다. 인구 110만명의 울산시는 가장 작은 광역시이지만 그 비중이 제주도에 못지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치현안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속내를 털어놓던 제주도민에 비해 울산 시민들은 정치 얘기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관심 없어예. 정치 얘기라면 하지도 마이소. 요즘은 정치 얘기하는 손님 별로 없어예.”
택시기사 이형우(39)씨에게 “울산에서 두번째로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역순회 경선이 열리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또 “관심 없어예”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알고 있느냐’는 물음에 ‘관심이 없다’니,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선출이 자신의 생활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애당초 알고 싶지가 않다는 뜻인지… 두터운 벽이 느껴졌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민주당 경선후보로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한결같이 “잘 모른다” “글쎄요”라고 대답했다. 한 시민은 “울산에서 민주당은 인기가 없는데 왜 그런 걸 물어보느냐”며 뜨악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울산시의 대선후보 투표인단은 모두 1600명이다. 당원·대의원이 800명, 일반국민이 800명이다. 신흥 중심가 삼산동에 있는 민주당 울산남구지구당 사무실을 찾았다. 남구 위원장인 이규정(李圭正) 전 의원이 울산시지부장을 겸하고 있어 이 사무실은 울산시지부 사무실과도 이웃하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3∼4명의 당직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이의권 남구지구당 사무국장은 “이곳은 4파전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국장은 영남지역의 첫 격전지인 까닭에 영남출신 후보들이 선전할 것이고 말했다.
“영남권을 대표하는 후보인 김중권 노무현 고문과 호남권을 대표하는 한화갑 고문 그리고 호남의 지지가 높은 이인제 고문 등 네 분이 치열한 표 대결을 벌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밖에 김근태 정동영 고문과 유종근 지사 등이 5∼7위를 형성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가 김중권 고문의 강세 예상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자 김국장은 “김고문은 울산에서 충분히 4강권에 들 조직력과 지지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대구·경북지역에서 김고문은 다른 후보에 비해 높은 지지를 얻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바로 그 대구·경북지역의 영향권에 있는 울산에서도 김고문은 노무현 고문과 대등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봅니다. 그와 같은 이치로 영남 후보인 노무현 고문이 대구·경북에 가면 김고문에 이어 높은 득표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니까 영남지역으로 온 이상 영남 후보들이 약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울산에는 5개의 지구당이 있다. 중구, 남구, 동구, 북구, 울주군 등인데 울산지역 민주당 관계자들은 5개 지역을 이인제 고문과 노무현, 김중권 고문이 3분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남구와 울주군에서는 김중권 고문이, 중구에서는 이인제 고문이 각각 당원·대의원들 사이에 지지도가 높은 편이며 노무현 고문은 북구와 동구에서 상대적으로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김근태 고문은 울산시민회라는 지역 재야단체로부터 성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중구지구당의 강범석 사무국장도 3파전 양상으로 대결이 벌어질 것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이인제 고문이 선두권으로 나서고 그 뒤를 노무현, 김중권 고문이 추격하는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구당 위원장들의 지지성향이 대의원·당원들의 선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 강국장은 “지구당 위원장이 공개적인 지지표명을 한다는 것도 어렵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지구당별로 당원·대의원 선거인단과 일반국민 선거인단을 합쳐 300명이나 되는 투표인단을 지구당 위원장의 뜻대로 움직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강국장은 비교적 간단하고도 명쾌한 잣대로 울산에서의 대선 주자들의 지지도를 평가했다.
“이인제 노무현 고문 같은 분들이 울산에서 지지도가 높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주 울산사람들과 접했기 때문입니다. 대중적 지지는 결국 평소에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아닙니까? 자주 울산을 찾아오고 울산시민들에게 얼굴을 보여줬던 후보가 이번 경선에서도 높은 지지를 받을 겁니다. 이인제 고문은 한차례 대선에 출마한 적이 있으니 자연스레 얼굴이 알려져 있고, 노고문도 자주 울산을 찾아오는 정치인입니다. 그런 면에서 김근태 고문과 정동영 고문은 울산과 그다지 인연이 깊지 않은 후보들이라 할 수 있죠. 2000년 8·30전당대회 이후 김민석(金民錫) 의원이 울산에 자주 찾아왔는데 김근태 정동영 고문은 김민석 의원보다 당원들 사이에 인지도가 높지 않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울산지역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한화갑 고문도 당원 내에서는 꽤 지지를 받겠지만 지역정서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김중권 고문도 당직자나 대의원들에게는 표를 얻겠지만 일반국민 투표인단에서는 그리 높은 지지를 얻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울산의 선거결과는 특히 영남 후보들의 이후 행보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직자의 분석.
“만약 노무현 고문이 울산에서 선전한다면 부산이나 경남에서도 높은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중권 고문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그 반대의 경우, 즉 노무현·김중권 고문 등 영남 후보 가운데 울산에서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표를 얻지 못할 경우, 도중에 사퇴하는 후보가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울산지역 경선에서 또 하나의 변수는 민주노동당의 존재. 전국적으로 미미하지만 울산에서 민노당은 적지 않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당장 지난 1998년 지방선거에서 민노동은 동구청장과 북구청장 등 2명의 기초단체장을 배출한 바 있다.
전통적으로 노동자들과 노동자단체는 한나라당보다는 민주당과 정책적으로 연대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민노당이 울산지역 노동자의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한 이후 민주당은 민노당 산하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지지를 잃었다. 지지를 잃은 정도가 아니라 민노당은 구조조정을 내세우는 민주당과 김대중 대통령과는 사실상 대립하는 관계에 놓여있다.
노동자 계층의 민주당 이탈은 결국 민주당 후보 가운데 친노동자 성향의 후보에게 적지 않은 타격일 수 있다. 당장 노무현 고문이 그 피해자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노고문측 한 인사는 “옆에서 보기만큼 심각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강범석 국장도 “이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은 솔직히 한나라당이다. 민노당은 지역정서를 대표하는 정당이 아니므로 우리에게 현실적인 피해를 주는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2월6일 오후 2시 울산시 상공회의소 대강당. 기자와 제주에서부터 일정이 겹치던 노무현 고문이 마침 이곳에서 강연을 하기로 돼 있었다. ‘통합과 도약을 위한 노무현 추대위원회 울산본부 발대식’ 행사였다. 현지에서 노고문의 행사를 보는 것도 분위기 파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행사장을 찾았다.
행사장인 상공회의소 입구, 노고문측 진행요원보다 ‘공정보도’ 완장을 두르고 비디오 카메라를 손에 든 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460여 석의 대강당에 간혹 빈자리가 보이긴 했지만 평일 낮 2시의 행사로는 적지 않은 사람이 모였다. 참석자에게 다가가 노고문 지지자인가를 물어보았다. 이에 대해 대다수는 “그렇다”고 답했고 일부는 “아직 지지후보를 정하지 않았다. 노고문의 얘기를 들어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우리 민주당 사람들은 서울에서 누구라도 내려오면 지지여부를 떠나 행사에 참석해 박수 쳐주고 격려도 해준다”고 귀띔했다.
한시간 가량 내빈소개와 인사말이 있은 뒤 영화배우 문성근씨의 소개로 노무현 고문이 연단에 섰다. 노무현 고문의 연설은 40분 가량 이어졌는데 연설의 상당부분이 이인제 고문의 과거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졌다. 연설 말미에 노고문은 간절한 어조로 당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는데, 절박한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여러분 손에 달렸습니다. 저 한번 도와주십시오. 지나온 세월이 억울합니다. 14대, 16대 선거 떨어지고 부산시장 선거 또 떨어지고… 이제까지 물만 먹은 노무현, 대통령 돼 ‘광’ 한번 내봅시다.”
이어서 노고문은 “울산에서 이긴 사람이 전국에서 이긴다. 울산에서 끝장을 내 달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후 5시 광주행 우등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정치불신을 넘어 무관심으로 온기마저 잃은 도시, 냉담한 표정의 시민들, 그 사이에 뭔가를 호소하는 사람들, 마이크가 터져라 고함을 지르는 낯익은 연사…. 이런 장면들이 섞인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버스는 광주시내에 들어서고 있었다. 밤 8시50분이었다.
‘빛고을 광주’. 그러나 버스에서 내다본 광주는 어두웠다. 울산이 약동하는 도시라면 광주는 저녁을 준비하는 도시 같았다. 인구는 울산보다 많은 130만명. 그러나 거리는 어둡고 네온사인은 시들시들했다. 밤 9시가 조금 넘었지만 광주 신세계백화점과 이어진 고속버스터미널 주변에는 행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 춥지 않은 초봄 같은 날씨였는데도 말이다.
2월7일 아침 민주당 광주시지부를 방문했다. 김병수 광주시지부 정책실장이 기자를 맞아주었다. 하루밤 사이 만나는 사람들의 말투가 달라진 것이 잠깐 어색하게 느껴졌다.
“제주·울산·광주 그리고 대전까지 가면 초반 판세를 읽을 수 있을 겁니다. 대전지역 경선이 3월17일인데 이날 이후 경선을 포기하는 후보도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어쨌든 광주 경선까지 치르면 전체적인 경선 윤곽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간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광주를 비롯한 호남에서 이인제 고문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호남출신인 한화갑·정동영 고문과 유종근 전북지사보다도 이고문의 지지는 높게 나온다. 그 이유를 정가에서는 두 가지로 본다. ‘대안부재론’ ‘이인제 효자론’이 그것이다.
‘이인제 효자론’이란 지난 대선에서 이인제 고문의 출마와 선전 덕에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호남인들 사이의 ‘부채’의식을 말하는 것인데 전남북의 농촌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형성된 기류라고 한다. 이런 사전 지식을 근거로 김실장에게 광주지역의 현재 판세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팽팽한 3파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인제·노무현·한화갑 고문 세 사람의 3파전이 될 겁니다. 여기에 정동영 고문이 바람을 일으키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세 사람과 대등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고문과 노고문 사이의 지지도 격차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관측됩니다. 한화갑 고문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선두권 세분 사이에는 당장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는 이인제 고문이 이 지역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것으로 나오지 않느냐”는 물음에 김실장은 “그건 사실이지만 경선 막판까지 그 추세가 이어질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인제 고문의 경우 국민신당이라는 정당을 이끌었던 분입니다. 광주지역에 과거 국민신당 조직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민주당에 편입된 분들도 있고 외곽에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바로 그 국민신당 조직이 현재 이고문 지지세력으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는 이고문이 분명 다른 후보들보다는 앞서고 있습니다. 이고문은 또 한 차례 대선에 출마해 득표력도 검증받은 후보입니다. 이 점 역시 다른 후보들이 갖지 못한 이고문의 장점이죠. 그러나 경선 막판까지 이고문이 앞서나가는 상황이 유지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한화갑·노무현 고문의 조직도 최근 들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런 의견은 다른 민주당 관계자들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광주 북구지구당의 이혜명 사무국장은 “이인제 고문이 선발주자이고 지지자들도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그러나 “노무현·한화갑 고문 지지자들도 상당한 세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인제 고문은 사실상 지난 대선에서 떨어진 뒤부터 꾸준히 차기를 준비해온 분입니다. 이고문은 한순간도 대선후보 그룹에서 제외된 적이 없었습니다. 이에 비해 나머지 분들은 최근에야 대선 주자로 알려졌고 조직도 만들고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도 이인제 고문에 비해서는 적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인제 고문과 나머지 주자 사이의 격차도 좁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김병수 시지부 정책실장은 정동영 고문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했다.
“2000년 8·30전당대회 광주 연설회 때 정동영 고문은 대단히 연설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카리스마가 있지 않습니까. 대중을 끌어들이는 흡인력 같은 것 말입니다. 정고문의 연설을 듣고 대중흡인력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경선에서도 현장 연설에서 정고문이 상당히 이득을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중권 고문도 그가 광주에 내려오면 함께 움직이는 지역조직이 있다고 한다. 이 지역 민주당 당직자들은 2000년 최고위원 경선에서 김고문은 한화갑·이인제 고문에 이어 3위를 했는데 호남 지역의 ‘동정여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당시의 지지자들이 김고문의 지지세력으로 이번 경선에서도 김고문을 도울 경우 김고문도 적지 않은 표를 모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혜명 북구지구당 사무국장도 “얼마 전 김중권 고문이 여기 내려와 지구당을 순회하며 연설했는데 참석자들의 반응이 ‘만나보니 인물이다’였다”며 “김고문뿐 아니라 인지도가 약한 후보들도 대의원 당원들과 자주 접촉하면 얼마든지 지금의 상황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광주의 투표인단은 2000명이다. 이 가운데 일반 국민투표인단은 절반인 1000명. 기자가 시지부를 방문한 2월7일, 시지부 건물 외벽에는 국민투표인단 모집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붙어 있었다. 모집기간은 2월7일부터 26일까지.
광주시지부는 국민투표인단을 철저히 자발적 지원자들로 구성할 계획이다. 다른 지역의 경우 사실상 대선후보 진영에서 ‘동원’하는 지원자들로 채워질 전망인데 광주에서만은 그런 식의 ‘편법’을 쓰지 않을 생각이라는 것이다. 김병수 실장은 “만약 대선주자들이 자기사람을 동원해 국민투표인단을 구성한다면 국민참여경선제라는 제도 본래의 뜻이 훼손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참여경선이 일반 시민의 여론과 당원의 여론을 일치시키려는 제도인데 만약 대규모로 사람들을 동원한다면 제도 자체의 정신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자발적인 참여자들이 있느냐”고 묻자 김실장은 “오늘이 첫날이라 지원서를 쓴 사람은 없지만 문의전화가 20여 통 걸려왔다”며 “국민참여경선제에 대해 광주시민들은 호의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시지부의 바람과 달리 거리에서 만난 광주시민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민주당은 물론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만을 서슴없이 표출했다.
자영업을 하는 한명수(34)씨는 “가게에서 TV를 틀어놓고 손님을 맞는 경우가 있는데, 요즘 뉴스 첫머리에 게이트사건 소식이 나오면 ‘TV를 끄라’고 주문하는 손님이 있었다”고 말했다. 택시기사인 윤진욱(37)씨는 “정치 얘기에는 관심이 없다. 손님들하고도 정치 얘기 안한 지 꽤 오래됐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울산을 거쳐 광주에 이르는 취재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세 곳 어디를 가도 약속이나 한 듯 만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고문의 팬클럽 ‘노사모’ 회원이 바로 그들. 울산 연설에서 노무현 고문은 노사모를 “나의 오른팔이자 왼팔”이라고 소개했는데 현장에서 만나본 노사모 회원들의 모습에서 노고문의 묘사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