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시아에서 8년 동안 인력관리, 구조조정, 인력개발 컨설팅과 교육업무를 담당해왔다. 한국에서는 3년간 일하면서 특유의 전통과 역동성, 그리고 사업모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사회에서 학벌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분명한 시각과 인식을 갖게 되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강한 학연을 갖고 있으며, 학연은 그들의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이것은 특별히 내세울 만한 학연이 없는 사람의 경우 엄청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혀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이건 한국사회의 경쟁력을 반감시키는 치명적인 요인이다.
한국에서는 특히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중요한 것 같다. 부모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자녀들이 좋은 동창생을 만날 수 있도록 애를 쓴다. 이렇게 맺어진 교우관계가 자녀들의 삶과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은 우수한 인적자원과 거대한 잠재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한국의 보편적인 직업적 관행, 사회적 신념, 교육제도나 전통을 보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나는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와 고위 관료, 그리고 기업을 경영하는 리더들이 인사를 결정할 때, 개인의 학벌과 학연보다 재능을 중시하길 절실히 바란다. 그렇게 해야만 한국이 자랑하는 인적자원이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한국사람들은 저마다 집단의 일원이라고 밝히는 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한국 전통사회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개인적 또는 직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어떤 회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하는데, 마침 인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자기와 같은 학교를 나왔다면,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순수한 교우관계가 합격이나 승진을 확정짓는 보증수표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가과정에서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건 확실하다.
만약 어떤 회사에서 한 자리를 놓고 세 사람이 경쟁하고 있는데 두 사람은 적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고, 나머지 한 사람은 부적격자라면 누가 선택될까. 한국에서 이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그 회사의 인사 결정권자와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이 뽑힐 확률이 99%라고 보면 된다. 기업에서 사원을 모집할 때도 경영진이나 인사 결정권자들은 보통 자신과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들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그들의 모임이 강해지고, 관계도 친밀해진다.
한국인들이 개인으로 머무르기보다 집단에 소속되는 것을 즐긴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관행을 이해 못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인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평가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건 조직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지금 한국 기업에 필요한 사람은 특정학교 출신이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일류대 졸업자가 유리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해가 될 수 있다. 한국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무엇보다도 최고의 전문인력을 뽑아야 한다. 만일 학연이 계속해서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한다면, 한국은 직업선택 과정에서부터 투명성 부족과 객관성 결여라는 문제를 안게 되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유능한 인재를 잃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곧 한국을 선진국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인력을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는 뜻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 비교해봐도 한국이 학연에 집착하는 정도는 심각하다. 미국에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학연이라는 장벽에 부딪히는 일이 없다. 물론 미국인들도 고위 간부나 경영자, 그리고 기업의 인사 결정권자들이 학연을 통해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지만, 직업을 선택하고, 실력을 인정받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개인의 자질이다.
나는 미국사회에서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인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생생하게 보고 느꼈다. 나는 그런 점이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길 원한다면, 하루 빨리 학연에 따른 인사에서 벗어나 능력에 의한 공정한 평가제도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