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호

탈당이냐 잔류냐, ‘벼랑끝 정치’의 노림수

  • 서봉대 < 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 jinyoo@imaeil.com

    입력2004-11-04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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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부총재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당내개혁이라는 명분은 쥐었으나 홀로서기를 단행하기에는 현실이 벅차다. 대권도전 선언 이후 줄곧 앞만 보고 내달려 마침내 교차로에 다다른 박부총재. 그의 선택은 무엇일까.
    한나라당의 박근혜(朴槿惠) 부총재가 이회창(李會昌) 총재를 겨냥한 ‘강공 드라이브’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연말 당내 대선후보 경선출마를 선언했던 박부총재는 이총재 측에 맞서 당내 개혁, 특히 공정경선을 기치로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급기야 자신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궁극적으론 탈당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는 초강수를 구사하고 있다.

    박부총재의 이 같은 행보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이를 알기 위해 우선 박부총재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상황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박부총재의 최대 지지기반인 대구·경북지역을 비롯한 영남권 정서가 그의 행보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이 지역 유권자들의 정서는 여전히 ‘반(反)DJ’로 대변된다. 박부총재가 당초 서울서 하기로 했던 대선후보 경선출정식을 대구로 옮겨 치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영남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 ‘이회창 대세론’이 대구·경북지역에서 계속 건재한 것은 이총재에 대한 적극적 지지보다는 이총재가 이 지역의 ‘반DJ 정서’를 대변해 정권교체를 충족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분석은 역으로 박부총재의 행보를 제한할 수 있다. 이총재에 맞서는 박부총재의 최근 행보에 대해, 지역 일각에서는 “정권교체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인지 이총재 진영과의 불화에도 불구, 박부총재는 당에 잔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가 적지 않다. 실제 박부총재가 탈당가능성까지 ‘시사’하고는 있지만 가능한 한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측근들은 아예 이런 시사조차 부인하면서 탈당설은 “정치적 음해”라고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박부총재로선 당내 위상을 강화하는 쪽으로 우선 주력할 것이며 이를 통해 당권, 궁극적으론 차차기 대권을 노릴 것이란 전망을 할 수 있다.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연결지어 볼 수 있다. 경선출마와 함께 국민경선제 및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요구한 것도 그렇다. 국민경선제 도입 요구의 경우 정치권 개혁이란 명분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당원들만의 투표로는 승산이 없다는 상황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박부총재는 집단지도체제도 요구하고 있다. 집단지도체제란 총재중심의 1인지배체제를 극복하자는 것인데 실행될 경우 박부총재 자신의 위상 강화를 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내 개혁이란 명분에서도 우위에 설 수 있다. 집단지도체제는 당권·대권분리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주류 측에서도 대선 후 가시화를 조건으로 수용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박부총재는 대선 전에 실시하라고 이총재 측을 압박하고 있다. 박부총재는 대선 전에 체제변화를 유도해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유지, 강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박부총재는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대선 뒤로 미룰 경우, 이번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와 총재직에 중복 출마할 수 없도록 하자는 제의도 했다. 결국 이총재 중심체제에 대해선 대선 전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꾀하겠다는 의도다.

    그렇다고 박부총재가 당에 잔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는 것도 현재로선 무리다. 언필칭 정치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해온 처지에서 만약 당의 경선 방안이 자신의 요구수준에 이르지 못할 경우 향후 행보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질 가능성도 높다. 박부총재가 한나라당에 잔류할 명분과 실리를 얻지 못할 경우 향후 정국 변화에 따라 ‘탈당’이란 초강수로 맞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부터 각종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 박부총재는 당내에서 이총재에 이어 부동의 2위 자리를 고수해왔다. 연초 대구·경북과 부산·경남권 유권자들을 상대로 각각 실시했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부총재는 이총재 지지도의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탈당을 결행할 경우 이른바 ‘반(反)이회창 연대’구상의 가시화와 박부총재의 대선후보 부상 여부가 관심거리다. 김윤환(金潤煥) 민국당 대표가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이 같은 연대론에는 김종필(金鍾泌) 자민련총재나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현 여권세력의 가세여부도 주목되고 있다.

    박부총재는 최근 대구·경북지역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영남후보론’의 적임자로 42.3%의 지지를 얻었는데 이는 여야를 망라한 예비 대선후보군 중에서 단연 선두다.

    그러나 그가 한나라당의 당적을 이탈했을 때에도 이 같은 지지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속단키 어렵다.

    반이회창 연대가 성사된다 해도 여권의 대선 예비주자들이 박부총재를 단일 후보로 내세우는 데에 어느 정도 동의할지도 문제다. 자칫 3김정치의 연장으로 비쳐질 수 있는 반이회창 연대가 유권자들에게 어느 정도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 때문에 탈당을 하더라도 연대, 혹은 신당 창당보다는 무소속을 고수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무소속으로 출마해 어느 정도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또한 불투명하다.

    물론 박부총재가 영남권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지지를 얻고 있다면, 지난 대선 직전 탈당, 국민신당 창당을 통해 후보로 출마한 뒤 500만표라는 지지를 얻은 이인제(李仁濟) 민주당고문의 위력을 재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박부총재의 정치적 자산인 ‘박 전대통령의 후광’이 4년 후에도 다시 발휘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더군다나 박부총재의 지지기반인 영남은 지난 대선에서의 경험 탓에 ‘제2의 이인제’ 출현에 극도의 거부감을 갖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여권을 포함, 한나라당 외의 제(諸)세력들을 망라하는 단일후보로 출마하게 된다면 이총재 대세론에 맞설 수도 있다. 이 경우 이총재가 영남권에서 소극적인 지지에 머물고, 반면 박부총재는 유력한 영남후보로 상승세를 탄다면 반DJ정서를 극복할 개연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한나라당내 영남권 의원들의 연쇄 탈당사태를 초래, 대선정국을 일거에 반전시킬 수도 있다.

    박부총재가 탈당을 통해 대선에 뛰어들 경우 이총재에게는 적지않은 부담을 주게 될 것이란 점에 대해선 정치권이 대체적으로 수긍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이총재 측에서는 그를 붙잡기 위해 갖은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실제로 이총재의 한 측근인사는 “박부총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어떻게든 끌어안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그가 요구하는 것을 모두 들어준다는 것도 무리이고… 당내 반발도 있는데…”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이런 고민은 역으로 박부총재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탈당이라는 모험을 택한다고 해도 그 전망이 밝지만은 않은 상황에서 그렇다고 그냥 주저 앉아 있다간 계파나 동조세력도 변변히 없는 상황에서 정치적 장래에 대해 확신을 갖기가 어렵다.

    물론 강공으로만 일관할 경우 자칫 당내 잔류의 명분을 잃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만큼 이총재 측과 극적인 타협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때문인 듯 정치권의 한 인사는 박부총재의 행보를 두고 ‘벼랑끝 전술’로 규정했다. 즉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영남권 후보론 등을 무기로 이총재를 한껏 몰아붙임으로써 당내 입지를 최대한 확보하려 할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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