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호

“부시는 교만 버리고 DJ는 기죽지 말라”

‘악의 축’ 발언 예고한 크리스찬아카데미 설립자 강원용 원로목사

  • 안기석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 daum@donga.com

    입력2004-11-04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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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1테러 사건 보면서 한반도 여파 직감했다
    • 부시정권, 군사력만 믿으면 세계에서 고립된다
    •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제거 해법은 2+4 회담뿐
    • 비전과 리더십 갖춘 대선 후보 보이지 않는다
    • 내각제 필요하지만 지역당 구도에서는 안돼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원로들을 청와대 오찬에 초청한 2월15일 오후, 기독교계의 대표적 원로 중 한사람인 강원용(84) 목사는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리 ‘바람과 물 연구소’에 머물고 있었다.

    경춘가도는 밝은 햇살과 신선한 바람으로 상쾌했지만 북한강 중류는 아직도 얼음이 녹지 않았다. 가평군청을 지나 ‘바람과 물 연구소’로 가는 좁은 길목에는 훈련중인 군부대의 차량행렬이 이어졌고 저수지의 물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지만, 연구소 옆을 지나 내려오는 가느다란 계곡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비포장 도로를 따라 도착한 연구소는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어린 아이처럼 세찬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주는 산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갑작스런 ‘배탈’ 때문인지 연구소 세미나실에서 마주앉은 강목사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과 국내 정치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점차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오후 2시부터 2시간30분 동안 강목사는 80대 중반이라는 나이도 잊은 채 한번도 일어나지 않고 때로는 열변을 토하며 자신의 견해를 펼쳐 나갔다. 독재정권 시대에는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설립,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수많은 인재를 키워낸 강목사는 최근에는 통일논의를 위한 민간기구인 ‘평화포럼’ 이사장으로서 한민족의 평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인터뷰에서 강목사는 우리 정부나 국민이 반미(反美)나 대미(對美) 추종 일변도에서 벗어나 민족의 생존을 위해 슬기롭게 현재의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월19일 방한한 부시 대통령이 추구하는 ‘힘의 우위’ 전략은 강력하게 비판했지만 미국내 평화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단체들에 대해서는 강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 또한 최근 거론되고 있는 여야 대선 후보들에 대한 실망감도 감추지 않았다. 우리 민족을 올바로 이끌고 나갈 비전이나 리더십을 갖춘 인물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불길한 기류 예고


    -강목사님도 청와대 오찬에 초청받은 것으로 아는데 왜 가지 않았습니까?

    “웬만하면 가려고 했는데 몸상태가 좀 좋지 않아서 못 갔어요. 오늘 참석한 분들은 모두 훌륭한 분들이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분들도 있어서 어떻게든 가려고 했어요. 그분들이야 부시 대통령이 방한하면 한미간에 사이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대통령에게 이야기하겠지요….”

    강목사는 뭔가 더 이야기할 듯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일단 시작이니까 가벼운 화제부터 물어보았다.

    -‘바람과 물 연구소’란 이름이 특이합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연구소를 만들게 됐습니까.

    “김지하 시인과 의논해서 연구소 이름을 지었어요. 창세기 1장2절에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히브리어로 ‘영’이라는 것이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즉 바람과 물에 의해 생명이 생겨난다는 말이지요. 애당초 우리 사회 집단간 갈등이 격심했던 1970년대에는 수원에 ‘내일을 위한 집’을 지어 중간집단 교육을 했지요.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 생명과 환경문제로 바뀌면서 ‘내일을 위한 집’을 팔아 환경문제를 다룰 이 연구소를 만든 겁니다.”

    -‘바람과 물’이란 표현은 우리 고유의 ‘풍수(風水)’와도 관련이 있습니까.

    “일맥상통한 면이 있지요. 사실 이곳에서 나오는 물이 참 좋습니다. 음료수로 최적의 판정을 받았어요. 예전에 조안리씨의 남편으로 서강대 총장을 지낸 분이 제가 크리스찬아카데미 하우스 등의 자리를 잘 잡는 것을 보고 ‘목사님은 풍수가가 아니냐’고 묻기도 했어요. 풍수를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집터는 잘 잡아요.”

    -강목사님은 자연의 풍수만 잘 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도 잘 관측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연말 강목사님이 경동교회에서 “한반도에 불길한 바람이 불 것”이라고 예고해서 화제가 됐는데요.

    “글쎄, 누가 계시를 받았느냐고 하는데 그런 것은 아니고요. 지난해 9월11일 미국의 쌍둥이빌딩이 폭파되는 것을 보면서 그 여파가 한반도에도 미치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6·25사변이 나기 전 해인 1949년 12월에도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있어요. 내가 관여하던 신인회(新人會)라는 대학생그룹의 한 회원이 미국 유학을 떠났는데, 송별회를 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사는 한반도는 오래지 않아서 전쟁으로 폐허가 될 터인데 잊지 말고 돌아와서 조국을 재건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어요. 내가 계시를 받아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고 주한미군이 남북대치 상황에서 1949년 가을에 군사고문단만 남겨놓고 철수하는 것을 보고 오래지 않아 북한이 남침할 것이라고 판단한 거죠.”

    강목사는 이슬람과 기독교, 그리고 이스라엘과의 오랜 갈등에 대해 길게 설명을 했다. 633년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 십자군전쟁, 2차대전 이후 세계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태인들의 귀환과 이스라엘 건국, 이를 지원한 미국과 영국, 1967년 6일전쟁 때 중립지대였던 예루살렘과 가자지구, 시나이반도를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차지한 것, 그리고 이에 대한 이슬람의 보복 등을 열거하며 지난해 9·11 테러사건도 이러한 기독교와 이슬람의 오랜 갈등의 산물로 설명했다.

    -9·11테러 사건이 터진 것을 보면서 왜 한반도에 영향을 끼치리라고 생각한 겁니까.

    “1960년대에 하비브 전 주한미대사관 참사관이 주베트남대사로 떠나면서 한 말이 생각났어요. ‘미국이 반독재와 인권만을 옹호하는 나라로 생각하는데, 미국은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지금 미국의 국익은 베트남전에서 이기는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전이 백인종 대 황인종의 대결처럼 인식되고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한국군의 참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당시 저는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9·11테러 사건이 터지는 것을 보면서 기독교 대 이슬람의 대결구도를 피하기 위해서는 비이슬람국가를 끌어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겁니다. 미국이 비이슬람국가 중 불량국가로 지목한 나라는 쿠바와 북한인데 쿠바의 일부 땅은 포로수용소로 활용하기 때문에 결국 북한을 목표로 삼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래야 순수하게 반테러전쟁을 한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부시 정권의 의도야 어찌됐든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나아가 이 기회에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생산, 수출하는 북한을 제압하도록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견해도 우리 사회에 있는데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좋은 일을 많이 했지만 못마땅한 점도 있어요. 한반도 문제에 미국이 늘 개입해 왔는데 한번도 우리와 의논한 적이 없어요. 북한을 공격한다면 북한만 타격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이 타격 받으면 가만히 앉아서 당하겠습니까. 남한을 선제공격합니다. 실제로 1994년에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물을 폭격하려고 하니까 북한이 선제공격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북한을 공격하면 중국과 러시아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중국은 향후 올림픽 개최와 경제성장을 위해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죠.

    이 두 강대국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것을 가만히 구경하고만 있겠습니까.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가 전쟁상태가 됩니다. 미국은 최첨단 무기로 공격만 하겠지만 결국 피를 흘리는 것은 우리 민족입니다. 아프카니스탄에서도 미국은 폭탄만 퍼부었지 피를 흘린 것은 아프카니스탄 사람들 아닙니까. 테러에 대해 반테러라는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키면 폭력의 악순환은 끝나지 않습니다. 피해를 입은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반테러전쟁도 역시 테러로 여겨지지 않겠습니까. 부시는 세계를 테러와 반테러 진영으로 양분했는데 그런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미국만 고립되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맙니다.”

    -목사님의 발언은 반미주의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미국과 대립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반미도, 그렇다고 지나친 대미 의존도 모두 반대합니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억제할 수 있는 평화적인 방법이 있는데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을 왜 받아들여야 합니까. 평화를 원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북한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생산해서 판매하지 않아도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지원을 받아 경제를 재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주변 4대 강대국과 남북 당사자가 참여하는 2+4회담을 통해 대화를 하면 충돌을 피할 수 있습니다. 지금 지식인이나 정치인들 중에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안일하게 생각하거나 이 기회에 아프카니스탄처럼 북한을 쳐부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두 경우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전쟁 가능성은 단 1%라도 있으면 막아야 합니다.”

    -이번에 방한하는 부시 대통령에게 2+4회담을 제안할 의향이 있습니까.

    “내가 제안한다고 들어주겠어요? 미국이 주장하는 것은 평화를 지키자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부시가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는 한 이 지역의 평화가 유지될 수 없으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모두 힘을 합해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북한과도 대화를 하겠다, 우리가 MD를 전력 추구하는 것도 이 지역 국가들이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니까 협력해달라’고 한다면 저부터도 발벗고 나서 지지하지요.”

    -부시 정권은, 평화는 힘의 우위에서만 유지된다는 것 아닙니까.

    “소련이 붕괴된 후 미국이 수퍼파워 국가로서 세계를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고 있는데 그 힘의 원천을 어디에서 구하느냐, 자본력과 군사력에서만 찾는다면 미국의 장래는 희망이 없다고 봅니다. 세계 역사를 보면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이 무력에만 의존하다가 결국 망하지 않습니까. 저는 미국이 망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미국이 잘 되려면 군사력과 자본력으로 세계를 좌우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미국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우방이 될 수 있으며 미국의 위대한 점이 드러난다고 봅니다. 부시 행정부가 무력과 자본력을 내세우는 정책을 계속 펼쳐나간다면 어느 나라도 지지하지 않을 거예요. 미국은 결국 고립되는 겁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미국에는 또다른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 비참한 테러에 대한 보복전쟁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미국 행정부가 계속 강경일변도로 나간다면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양심적인 지식인과 종교인들이 있는 미국 시민사회가 부시 행정부를 가만히 두지는 않을 겁니다. 벌써 일부 지식인과 민주당 총무가 부시의 강경정책에 반대하고 나왔더군요. 그래야 미국이 사는 겁니다. 이런 면에서 미국이 히틀러의 나치독일이나 스탈린의 소련과 다른 겁니다.”

    -그러면 부시 대통령 방한 때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 시민사회의 반대여론도 감안하고 회담에 임해야 합니까.

    “그렇죠. 부시 대통령을 대할 때 외교적으로는 잘 대해줘야겠지만 머릿속에는 미국내의 거대한 반부시세력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중국과 러시아도 끌어들이는 머리를 써야죠. 부시 대통령이 방한하면 상당히 강한 자세를 보일 것인데 절대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셀릭 해리슨 같은 사람도 김대통령에게 당당하게 대하라고 충고하지 않았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와 국내 보수세력 눈치 보느라 그저 좋게만 보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강목사는 자신이 반미주의자가 아니라 반부시주의자임을 강조했다. 부시의 강경정책은 한반도에 긴장만 고조시킬 뿐 평화정착에 방해가 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남북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남북문제를 푸는 방법은 4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무력통일노선으로, 이승만 대통령과 김일성이 추구했지만 6·25전쟁으로 끝이 났습니다. 둘째는 흡수통일인데 북한이 자기모순으로 무너지면 흡수한다는 것인데, 독일통일이 이런 방식이었지요. 김영삼 대통령도 한때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미국은 소프트랜딩을 언급했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반대했습니다. 서독은 당시 소련과 손잡고 동독을 흡수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중국은 남한 대통령이 평양으로 입성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현실에는 맞지 않은 거지요. 셋째가 분단고정화인데 이것은 남북이 모두 서서히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21세기에 투자해야 할 곳도 많은데 분단체제를 관리하기 위해 국방비에 엄청난 비용을 계속 쏟아붓는다는 것은 세계화시대의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평화공존밖에 없습니다. 통일은 다음 문제지요. 교류를 늘려가면서 평화가 정착되면 그때 가서 통일 논의를 해도 됩니다. 이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당분간 통일논의는 하지 말자는 주장입니까.

    “저는 지금 당장에는 통일 문제를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니 하면서 지금 통일 문제를 꺼내면 용공이니 반공이니 하는 이념논쟁을 하게 돼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입니다. 57년 동안 남북이 갈려 있었는데 이제는 교류를 해야죠. 그리고 죽어가는 동포는 살려야죠. 이런 일을 하는 데는 여야가 없고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이데올로기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입니다. 경직된 보수와 낭만적 진보를 제외하면 남북문제는 초당적으로 협력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부시 대통령이 방한하면 야당총재도 환영리셉션에 초대한다는데, 부시 대통령 옆에 앉도록 배려해줄 필요가 있어요.”

    -통일 문제에 대해 여야 정치인들에게 정식으로 제안했습니까.

    “수차례 했지요. 이 문제에 관한 한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의해야 한다고요. 이론적으로는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지만 행동으로는 나서지 않아요. 지난해 11월30일 올림피아호텔에서 여야 동수의 국회의원들이 참석해서 초당적인 협력방안을 강구했어요. 남북문제에 관한 한 여당과 야당이 동수로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된 초당적인 위원회를 만들어 여기에서 국회나 정부에서 만든 남북정책이나 관련법을 논의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당시 참석자들의 동의를 얻었어요.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총재를 만나 이 방안을 설명했더니 김대통령은 한나라당이 받아들이겠느냐고 의문을 표시했고 이회창 총재는 듣기만 하고 가타부타 반응이 없어요. 아마 참모들이나 당간부들과 의논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현재 계속 추진중입니다.”

    -목사님이 이런 기구를 제안한 것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방향은 옳지만 국민적 뒷받침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까.

    “그렇죠. 햇볕정책을 민주당이나 청와대 조직에서 다 해버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 점이 불만이었어요. 통일고문회의 의장을 맡으라고 해서 맡았는데 두 달에 한번씩 밥이나 먹고 50만원 받아가는 것이 전부였어요. 의견을 구하는 일도 전혀 없었어요. 국민의 세금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받아갈 수는 없다고 지난해 6월에 그만둬버렸어요. 남북문제에 관한 한 몇사람의 손에 맡겨서는 안됩니다. 사민당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으로 동서독의 교류가 이뤄지기 시작할 때 서독은 정보요원을 동독으로 보내 동독 사람들이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서독정부는 그런 것들을 지원해줬습니다. 처음에는 야당인 기민당에서 퍼주기를 한다고 비난했지만 브란트는 동독과 관련한 모든 비밀정보를 야당에 알려주고 협조를 요청했어요. 그후 기민당이 집권한 뒤에도 동독 관련 정책은 바꾸지 않았어요.”

    -동독과 북한은 다른 점이 있는데 북한 체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북한의 체제는 문화인류학적으로 보면 유교의 가부장제와 샤머니즘, 그리고 마르크스주의가 혼재된 것이었어요. 지금은 일종의 유사기독교체제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등 기독교의 3위1체 교리처럼 김일성은 죽었지만 하늘에서 하느님처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키고, 김정일은 성자인 예수고, 주체사상은 성령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북한체제는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런 북한 사람들과 남한 사람이 같이 섞이면 적응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통일을 서둘지 말고 문화나 체육 교류 등을 하면서 서로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국내 문제로 화제를 바꾸어 보았다. 강 목사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조언을 많이 한 원로로 알려져 있다.

    -김대중 정권은 초기의 많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사편중과 측근들의 비리 파동으로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목사님은 김대중 정권이 결국 각종 ‘게이트’로 인해 실패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대중 대통령을 비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권력의 부정부패 문제는 아주 뿌리가 깊습니다. 하루이틀에 고쳐질 문제는 아니지요. 저도 오래전에 부정부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해결책을 찾지 못했어요.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김대중 대통령이 친인척 주변에 이권을 노리는 사람들이 꾀지 못하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것을 못했다는 겁니다. 다음 대통령도 친인척 문제를 정리하지 않으면 또 문제가 생길 겁니다.”

    -올해는 대선의 해인데 어떤 유형의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참 어려운 질문인데요. 나는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잘 발전하면 11년 후에는 좋은 대통령이나 지도자가 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안되고 앞으로 5년후에도 안되고 그 사이에 새 사람이 자라나서 차차차기에나 좋은 지도자가 나오리라고 봅니다.”

    -현재 거론되는 대선후보 중에 마음에 드는 인물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없습니다. 거론되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능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제 왕개미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왕개미가 앞장서고 일개미들이 뒤따르는 것은 산업화·공업화시대에는 가능했지만 정보산업시대에는 맞지 않습니다. 21세기는 거미처럼 네트워킹을 하는 시대입니다. 이제 집권자가 혼자서 다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지도자가 되려면 몇가지 리더십을 갖춰야 합니다.

    첫째, 민주주의의 힘은 아래로부터 민의를 끌어모으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들의 뜻을 받드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 때 제주도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대통령은 국민의 종인데 국민이 주인 노릇을 제대로 못하니까 종이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한다’고 말입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라고 하는데 적어도 국민의 뜻을 모아 받들어야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둘째, 힘이라는 것은 나눠가져야 강해지는 겁니다. 독점하면 오히려 문제가 생깁니다. 권력을 나눌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통치자가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잘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역할을 맡겨야죠.

    셋째, 코디네이팅을 잘하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대선후보나 지도자로 출마하려는 사람은 남북문제는 누구와, 경제문제는 누구와 함께 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일종의 팀리더십이죠. 그래야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민들의 의중을 헤아리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민의의 힘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이 힘을 여러 전문가들에게 나눠 맡기고 자신은 코디네이팅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각 부처를 순시하면서 지시하는 리더십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민의를 모으고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고 자신은 코디네이팅할 수 있는 유형의 지도자가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까.

    “보이지 않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나갈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데, 우수한 인재들을 구해 팀워크를 통해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오히려 건국의 아버지, 근대화의 아버지, 정치적 아버지 등 과거지향적인 리더십만 언급해요. 고작 말하는 것이 현상유지이지 현상을 타파해보겠다는 인물들이 눈에 띄지 않아요.”

    -그런 리더십이 가능하려면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제가 낫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러나 김종필 자민련총재가 내각제를 말하는 것은 두가지 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아요. 첫째 내각제란 유럽처럼 이념적으로 분화된 정당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유권자들이 보수정당에 기대했다가 안되면 진보정당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한 거죠. 즉 정당정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노선이 분명한 정당이 있습니까. 경상도당, 전라도당, 충청도당만 있는데 어떻게 내각제를 합니까. 경상도 사람에게 맡겼다가 안되면 전라도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내각제를 할 수 있는 기본이 안돼 있습니다. 정당을 완전히 뜯어고쳐서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전국정당이 나와야죠. 그리고 두번째는 내각제를 한번 해봤는데 그때는 안되겠다고 한 사람이 지금 내각제를 하자니까 이해가 안되는 겁니다. 반성이라도 하면 이해가 될텐데….”

    -그러면 당분간 현행대로 가는 것이 좋을까요.

    “정·부통령제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가 정·부통령제도 해봤잖아요. 자리 하나 더 늘리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어요. 다만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한 것은 잘못입니다.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의 임기와 선거 연도를 다르게 해서 해마다 선거를 하는 것도 문제예요. 국민들이 투표하는 데 부담이 되지 않도록 각종 선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유권자의 50% 이상이 참여하지 않는 선거는 대표성이 없으므로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위해 강목사와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 강목사는 연구소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산능선에 병풍처럼 서 있는 곧은 나무들을 바라보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강목사는 외세의 바람이 잦은 한반도에서 우리 국민들이 올곧게 서야만 그 바람을 막아낼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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