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제주도가 생긴 이래 이렇게 많은 정치인들이 찾아온 적은 없을 겁니다. 공항이 늘 북적거려요. 1월부터는 거의 매일 방송뉴스에서 제주도를 방문한 정치인들 소식을 들은 것 같아요.”
제주도에서 처음 만난 시민인 택시기사 김형준(55)씨는 “새천년민주당 제주도지부로 가자”고 행선지를 밝히자 다소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제주도는 요즘 무척 시끄럽다.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역순회 경선의 출발지가 제주도인 까닭에 지역 당심(黨心)과 민심(民心)을 잡으려는 여권의 대선주자들이 번갈아가며 이곳을 드나들고 있다.
기자가 제주도를 찾은 2월4일 이전까지 이인제(李仁濟) 고문이 1월21일과 28일 두 차례 제주도를 찾았고, 한화갑(韓和甲) 고문이 1월13일과 27일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노무현(盧武鉉) 고문도 1월28일에 이어 2월3일부터 제주도와 울산을 도는 일정을 시작했고 정동영(鄭東泳) 고문도 1월28일 제주를 찾아 이곳에서 대선출정식을 가졌다.
김근태(金槿泰) 고문도 1월28일 제주도에서 하루종일 일정을 소화했고 29일에는 울산을, 30일에는 광주를 방문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김중권(金重權) 고문도 1월말 제주도와 광주를 차례로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2월4일 오전, 제주도는 두터운 구름에 감싸여 있었다. 제주도 어디서건 볼 수 있다는 한라산이라지만, 이날은 흐린 날씨 탓에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대신 가끔씩 보이는 검정색 화산암 돌담과 크리스마스트리의 전등처럼 빨간 꽃봉오리를 드러낸 동백나무 가로수, 만세를 부르듯 흐드러진 야자수가 이곳이 남녘 섬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창 밖의 이국적인 풍경에 한눈을 팔면서 택시기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요즘 정치인들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민심은 어떤가요?”
“제주 사람들은 약속 안 지키는 사람에게는 절대 표 안줍니다. 한번 신뢰를 잃으면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제주도에서 행세하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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