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호

천용택 의원 처남 군납비리사건 연루 내막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입력2004-11-05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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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용택 국회 국방위원장의 처남이자 전 비서관인 김아무개씨가 군납비리사건에 연루돼 수배된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과 군검찰, 국회 입체추적을 통해 확인한 김씨의 행적과 군납비리사건 수사 비하인드 스토리.
    국회 국방위원장인 민주당 천용택 의원의 처남이자 전 비서관인 김아무개씨가 군납비리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확인됐다. 김씨는 현재 검찰에 의해 수배된 상태다. 김씨를 수배한 청주지검 고위관계자는 “김씨가 잡히면 일단 청주지검에서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청주지검은 지난해 5월경 군납업자 박아무개씨와 건설업자 주아무개씨의 사기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 김씨가 두 사람과 관련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청주지검에 접수된 피해자의 진정서에서 비롯됐다. 처음엔 정병하 검사(현재 서울지검 의정부지청 부부장검사)가 맡았는데, 정검사가 부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심재돈 검사가 인수해 본격수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5월 구속된 박씨와 주씨는 1심에서 각각 징역 1년,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다. 사기사건인 만큼 추징금도 따랐다. 박씨는 1억9217만5800원, 주씨는 9800만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1심 판결문에 나타난 두 사람의 범죄사실은 다음과 같다. 박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변호사법위반과 사기. 먼저 변호사법위반 내용을 보자.

    박씨는 1999년 5월경 사업자 여아무개씨에게 “국방부에서 발주하는 40억원 상당의 발전기 교체 공사가 있는데 계약담당자인 국방부 조달본부 담당자들을 잘 알고 있으니 교제비와 공사이익금의 절반을 주면 담당공무원들에게 부탁해 공사를 수주하게 해주겠다”고 제의했다. 여씨는 박씨의 제의를 받아들여 그 자리에서 공사수주 관련 교제비 명목으로 300만원을 건넸다. 이후 박씨는 20회에 걸쳐 여씨로부터 모두 9217만5800원을 받았다.





    청주지검에서 수배


    판결문에 따르면 박씨는 또 여씨에게 합계 4억710만원에 이르는 약속어음 9장을 빌렸다. 재판부는 박씨가 6억9000만원의 빚이 있어 약속어음을 결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는 검찰의 공소를 받아들여 박씨의 사기죄를 인정했다.

    박씨는 지난해 11월 1심 판결에 불복, 항소를 제기했다. 3개월간 진행된 항소심은 현재 선고공판만 남은 상태. 항소심 재판부의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박씨가 어떤 명목으로 돈을 받았는지가 유·무죄를 가리는 관건이다. 박씨는 피해자와 동업관계임을 강조하며 자신이 받은 돈은 교제비가 아니라 공사수주와 관련된 정상 경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사기죄에 대해서도, 변제능력이 있으므로 사기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주씨의 혐의는 변호사법위반이다. 박씨로부터 공무원 업무와 관련한 청탁을 받고 돈을 받은 혐의다. 공소장에 따르면 박씨가 주씨에게 청탁한 사항은 두 가지다. 첫째 청탁은 앞서 언급된 국방부 발전기 교체공사사업과 관련한 것이다. 1999년 4월 주씨를 만나 “국방부 발전기 교체공사사업을 수주할 수 있도록 국방부 담당공무원들에게 부탁해 달라”고 청탁했다.

    그해 12월 박씨는 주씨에게 또 다른 사업에 대해 청탁한다. 공소장 기록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육군 중앙경리단에서 발주하는 65억원 상당의 철제관물함공사, 새시공사 등 대부분을 보훈복지공단과 유공용사촌이라는 단체에 수의계약되도록 해 다시 그 단체들로부터 내가 참여하고 있는 (주)OO음향이 하수급 받을 수 있도록 육군 담당자들에게 부탁해 달라.”

    주씨는 박씨의 제의를 수락하고 공사 관련 공무원들에 대한 교제비 등의 명목으로 현금 6800만원, OO음향이 발행한 액면가 3000만원의 약속어음을 받았다. 박씨와 달리 주씨는 항소하지 않았다.

    수배된 김씨는 주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사자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그의 혐의사실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청주지검 고위관계자는 “수배자의 혐의는 수사기밀사항”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꺼렸다.

    “수배자이므로 검찰이 예단을 갖고 말할 수 없다. 잡히기도 전에 혐의내용을 공개하면 수사에 장애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조사결과에 달려 있다. 단편적인 혐의만으로도 수배할 수는 있다. 조사를 해봐야 전모를 알 것이다.”

    청주지검의 또다른 관계자는 “군납비리사건에 연결된 사람”이라는 말로 김씨의 혐의를 암시했다. 검찰과 군검찰, 국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씨는 박씨와 주씨가 개입한 군 공사 수주와 관련해 사례비 명목으로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국방부 검찰단이 김씨 관련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지난해 11월. 박씨가 재판과정에 자신이 1980년대부터 군 관련 각종 공사와 납품사업에 관여하면서 군 관계자들에게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정기적으로 뇌물을 상납해왔다고 진술한 것이 발단이다.

    청주지검은 1심 결심재판이 이뤄진 직후 국방부 검찰단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이에 국방부 검찰단 소속 검찰관들이 청주지검에 내려가 수사기록을 열람하고 군 관계자 관련기록을 복사해왔다. 박씨 진술에 따르면 그의 돈을 받은 군 관계자는 모두 70여 명. 장성 2명을 비롯해 다수의 영관급 장교, 예비역 장교, 군무원 등이 포함돼 있으며 뇌물액수는 1인당 수십만∼수천만원으로 알려졌다.

    군검찰은 박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박씨가 육군 공병 대위 출신으로 1980년대 초 전역한 후 육군에 건축자재를 납품하고 각종 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 군 인사들과 교분을 쌓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청주지검 관계자는 뒤늦게 군 관련 부분을 국방부에 통보한 데 대해 “민간인 관련 수사를 마무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군검찰은 박씨 사건에 대한 수사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 김씨가 이 사건에 관련된 사실을 확인했다. 국방부 관계자의 증언.

    “김씨가 국방위원장의 비서라는 직함을 이용해 군 공사 수주과정에 브로커 노릇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수사기록 여기저기에서 그의 이름이 발견됐다. 청주지검이 그를 거물로 취급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방부 검찰단의 공식확인과는 별개로 일부 군 수사기관에서는 이미 지난해 5, 6월경 김씨가 이 사건에 연루된 사실을 확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군검찰의 한 관계자는 “당시 기무사 첩보에 의해 부산을 떨었던 기억이 있다”며 “다들 가장 놀란 것이 바로 천의원 보좌관이 관련됐다는 사실이었다”고 귀띔했다. 청주지검이 김씨를 수배한 사실은 군 수사기관 주변에서 거의 기밀처럼 취급됐다고 한다.

    초기엔 김씨가 천의원의 보좌관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군검찰의 또다른 관계자도 “천의원 보좌관이 수배된 사실은 군검찰 주변에서 어느 정도 알려진 일”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천의원이 국방장관을 지내고 국정원장을 거쳐 국회 국방위원장에 이른, 현 정부 최고의 군 실세인 만큼 그의 보좌관이 군납비리사건에 연루된 것은 혐의 여부를 떠나 군내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보좌관이라는 소문은 잘못된 것이다. 국회 관계자에 따르면 김씨는 15대 국회 초반에 천의원의 비서(6급)로 출발해 비서관(5급)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비서관이 된 지 얼마 안돼 친인척 보좌관·비서관을 문제삼은 언론보도 탓에 사직했다고 한다.

    문제는 김씨가 공식적으로 비서관직을 그만둔 후에도 대외적으로는 비서관 또는 보좌관에 준하는 활동을 계속했다는 점이다. 그가 바깥에 천의원 보좌관으로 소문난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여권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김씨는 천의원의 후원회 일을 주관하고 각종 민원업무를 처리했는데, 그 과정에 좋지 않은 소문이 불거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모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김씨가 군납비리에 관련됐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다.

    군 안팎에서는 이 사건이 국방부 검찰단에서 육군 검찰부로 이첩된 일을 두고 뒷말이 많았다. 장성이 관련된 사건은 국방부가 직접 수사하는 것이 원칙이고 그간의 관례였기 때문이다. 군검찰의 한 관계자는 “장성 관련 사건을 육군에 넘긴 것은 수사를 안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국방부 검찰단은 장관 직속이기 때문에 각군 참모총장으로부터 독립돼 있다. 따라서 각군 소속 검찰부와는 달리 비교적 독자적인 수사를 할 수 있다. 검찰단이 이미 수사에 착수한 사건을 육군참모총장의 통제를 받는 육군 검찰부로 넘긴 것은 수사확대를 꺼리는 상부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박씨가 애초 뇌물을 줬다고 진술한 군 관계자는 현역만 해도 4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도 여러 명이었다. 그러나 육군 검찰부가 구속한 장교는 장성 2명에 중령 1명뿐이었다. 그나마 장성 2명은 옷만 벗기고 기소유예 조치로 풀어줬다. 장성들이 구속된 기간은 20일. 육군본부 헌병대 영창에 구금됐는데, 소파에 침대까지 있는 호텔방 못지않은 시설이었다. 수감돼 있는 동안 일반 군인과는 달리 계급장도 떼이지 않았다.

    군 수사기관 관계자의 증언.

    “두 달 동안 극도의 보안 속에 수사를 벌였다. 수사에 참여한 검찰관들은 무척 의욕적이었다. 원래는 장성 2명도 기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막판에 결론이 바뀌었다. 구명로비가 치열했던 것으로 안다. 검찰관들은 신세를 한탄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봐주기 수사’ 의혹이 짙다”며 “뇌물 액수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군납비리는 구조적 비리다. 상납이 관행이기 때문에 그 뿌리가 깊고 범위가 넓다. 군내에서는 이 사건을 끝까지 파헤치면 관련 병과 전체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돌았다. 그것이 수사축소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군검찰 주변에서는 박씨의 입을 단속하기 위해 육군 법무병과의 고위관계자가 몇 차례 면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군납비리사건의 이면을 알기 위해 기자는 청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박씨를 면회했다. 그러나 박씨의 관심사는 항소심 형량뿐이었다. “무죄판결을 받는 데 꼭 필요한 증인이 오늘 오후 면회오기로 돼 있는데 당신 때문에 망쳤다”고 못마땅해했다. 뇌물사건에 대해 묻자 “이제와 진실을 밝힌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시큰둥해 했다. 그는 자신의 진술로 군검찰이 군납비리사건을 수사한 것을 신문을 보고 알았다고 했다. “천의원 비서관 출신 김OO씨를 잘 아느냐”고 묻자 “모른다”고 말했다.

    김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와 주씨를 조사하는 과정에 자신은 죄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검찰이 공명심에서 ‘엮으려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수사 초기 그를 체포하기 위해 그의 집을 덮쳤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김씨는 돈 받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주씨가 관여한 군 공사 수주가 담합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자신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는 항변이다. 그는 또 주씨가 주변에 자신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다니는 바람에 불똥이 자신에게 튄 것이라며 담당 검사를 원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에 출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출두하는 것 자체가 영감(천의원)에게 피해를 끼치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검찰과 국회 주변에서는 그가 정말 자신의 주장대로 죄가 없다면 검찰에 출두해 사실대로 밝히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느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에 출두하는 것보다 수배된 것이 더 불명예스럽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국회 천의원실은 기자의 질의서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천의원은 오는 6월 지자체 선거 때 전남도지사로 출마할 계획이다. 천의원 주변에 따르면 천의원의 출마 준비가 안정궤도에 오르는 시점에 김씨가 검찰에 출두할 가능성도 있다.

    2월15일 오후 1시. 기자는 김씨 주변인사의 주선으로 국회의사당 길 건너편 모 다방에서 김씨를 기다렸다. 김씨와의 인터뷰 약속은 전날 저녁에 잡혔다. 그런데 “만나서 모든 걸 얘기하겠다”던 그는 약속시간이 다 돼 갑자기 만나지 않겠다고 통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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