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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는 사람을 곁에 두지 못하고, YS는 욕심이 너무 많고, JP는 머리 좋지만 결정적 순간에 용기가 없어”

‘마지막 재야’ 예춘호씨가 회고하는 ‘나와 3金’

  • 이계홍 < 작가·용인대 겸임교수 >

“DJ는 사람을 곁에 두지 못하고, YS는 욕심이 너무 많고, JP는 머리 좋지만 결정적 순간에 용기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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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장소를 약속한 사람도 본인이었다. 여태 비서쯤이 안내를 해주었겠거니 여기고 전화로 짜증 섞어 분풀이를 했는데, 정작 본인이 약속시간이며, 길 안내까지 직접 맡아 해주며 필자의 짜증을 고스란히 받아준 것이다. ‘미리 “내가 예춘호요” 했다면 이쪽도 겸손의 예를 갖췄을 텐데’ 하는 마음으로 조금전의 불손을 얼버무렸다. 예씨는 그런 일 자체를 의식하지 않는(못하는) 모습으로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그에 앞서 전화를 연결해준 사람은 옆에 사무실을 둔 중년남자였는데, 아마도 전화를 같이 쓰는 것으로 보였다. 후에 알았지만 그는 예씨의 낚시동지였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69-9번지 프라임빌딩 601호. 벽면에 ‘재단법인 영도육영회’란 간판이 붙어 있다. 예춘호씨의 개인 사무실이다. 찾기도 힘든 골목 깊숙한 이곳에 굳이 사무실을 낼 이유가 있나 싶어 “예선생님의 건물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곁에 있던 중년인사를 보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인터뷰가 끝나고 밖으로 나올 때 그 문제가 여전히 궁금해 사무실 옆방에 있던 중년남자에게 물었다.

“하필이면 왜 이곳에 사무실을 두셨습니까?”

“예선생님과 낚시를 많이 다녔지요. 사무실이 없으시기에 내가 그냥 쓰시라고 드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개인사무실은 낚시를 통해 친교를 맺은 건물주가 제공한 것이라는 얘기다.



예춘호씨는 윤곽이 뚜렷한 미남형이다. 콧날이 산처럼 우뚝하고 콧잔등에 거무튀튀한 흉터가 남아 있다. 얼핏 보면 젊은 시절 한가락 하던 때 패거리들과 한판 벌이면서 생긴 ‘야성의 훈장’ 쯤으로 보였다.

“콧잔등의 흉터는 어떻게 해서 생겼나요.”

“아, 이거 말이오.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지방 교도소로 이감 도중 동상에 걸린 것이오.”

그리고는 더 이상 말이 없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1980년 5월17일 밤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주모자라 하여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요원들에 의해 불법 연행되어 가혹한 고문과 조사 끝에 1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그해 겨울 원주 교도소로 이감되던 중 동상에 걸린 것이다.

30평 남짓한 사무실. 책꽂이에는 책이 빼곡히 꽂혀 있다. 주로 일본 서적과 사회과학 서적들이다. 사무실 모서리에는 도배할 때 벽지에 풀을 먹이기 좋게 하기 위해 인부들이 만들어놓은 것 같은 허리 높이 정도의 기다란 송판 탁자가 놓여있다. 벽에 수십 개의 붓이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붓글씨를 쓰기 위해 마련한 탁자로 보였다.

예씨는 6시간 가까이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몸가짐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70대 후반의 연령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편해보이지 않은 의자에 꼿꼿이 앉은 채 인터뷰에 응했다. 그만큼 건강에는 자신이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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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 < 작가·용인대 겸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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