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이 재임중 이룩했던 많은 업적 중에서 경부고속도로는 시종일관 대통령이 직접 일궈낸 업적 중의 업적, 대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이재국장으로서 재무부를 대표하여 건설비를 추정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1967년 12월 초, 서봉균(徐奉均) 장관으로부터 갑작스런 부름을 받고 장관실로 달려갔더니 부른 이유를 말하기도 전에 대뜸 “큰일났다”고 걱정만 했다. 대통령으로부터 경부고속도로의 건설비 소요액을 산출하여 보고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비화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약 열흘간 당시 이재과의 홍인기(洪寅基) 사무관(후일 증권거래소 이사장 역임)을 지명하여 그와 함께 500㎞안(A)과 440㎞안(B) 두 경우를 상정하고 소요투자비를 추정하였다. A안의 경우 용지 매입비 17억5000만원, 공사비 347억5000만원 등 365억원으로 추정하였고, B안의 경우 용지매입비 15억4000만원, 공사비 305억8000만원 등 321억2000만원, 그러니까 1㎞당 7290만원의 공사비가 소용될 것으로 추정했다. B안은 후일 건설부가 확정한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사업비 소요액 330억원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건설 사업비를 추정하는 것도 중요하나, 재무부의 소임인 재원 조달 방안을 구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에 대한 장관의 지시는 없었다. 따라서 사업비 추정과 그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 등 두 가지에 초점을 두면서 보고서를 작성해 나갔다.
지금 생각해도 1967년 12월12일은 공직생활 동안 다시 한번 기억되는 날이다.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경부간선고속화계획 : 소요 공사비 추정과 재원조달방안’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박정희 대통령께 보고하는 날이었다. 이 날의 보고에는 대통령을 비롯, 재무부장관, 비서실장, 정소영(鄭韶永) 경제수석비서관, 그리고 홍인기 사무관 등이 참석했다. 통상적으로 청와대의 보고는 국장급 관료가 보고자가 되고, 간혹 주무과장이 배석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함께 애쓰며 자료를 챙기고 분석해 준 홍인기 사무관을 대동하는 것이 상급자로서의 도리라 생각하고 의전비서실에 특별히 부탁하여 그의 배석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박대통령 앞에서 A안과 B안의 공사비 추정액을 보고하고 그에 대한 재원의 조달방안을 보다 상세하게 브리핑하였다. 대통령은 재원조달에 관하여는 지시한 바가 없었기 때문에 의외의 보고를 받은 셈이다. 더욱이 경제기획원은 투자비 소요액 판단을 중도에 포기했고, 건설부 등 기타 기관도 재원조달 방안에 대한 보고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박대통령은 재무부의 보고에 매우 흡족해 했다. 그 덕분에 보고가 끝난 그 날 저녁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베풀어준 만찬에 참석하는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 복요리를 곁들인 성찬이었다.
나는 대통령으로부터 술잔을 받고 나서 입술만 축일 정도로 술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런데 홍인기 사무관은 대통령이 주시는 술잔을 거침없이 받아 마시는 것 아닌가. 대통령도 “젊은 사람이 술을 잘하는구먼, 나중에 출세하겠어”라는 농담을 하면서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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