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아버지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학교에서 내준 숙제에 한두 번쯤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가 공책을 찢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것도 교단의 권위가 지금처럼 망가지지 않았던 1970년대 초에.
한 전장관의 자녀들은 그후 어떻게 됐을까. 한 전장관에게는 딸만 셋이 있는데, 모두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첫째와 셋째는 아버지가 박사학위를 받았던 에모리대를, 둘째는 브린모대를 나왔다. 한 전장관은 망명시절을 떠올리며 “내가 한국에 계속 머물렀다면, 아이들이 명문대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남을 짓밟는 1등이 되느니, 어려운 사람을 돕는 꼴찌가 되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한 전장관은 사회학자다. 그는 교육부총리가 되기 전부터 다양한 시각에서 학벌문제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사회가 조만간 철저한 신분사회로 진입할 것’이라는 연세대 사회학과 송복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학벌=출세’의 카테고리를 깨야만 한국사회가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6·25 직후만 해도 가난하지만 똑똑한 학생들이 일류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계층이 열려 있었다는 뜻이죠. 하지만 요즘 일류대에 들어간 학생들의 부모들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한쪽으로 쏠려 있습니다. 교육과 신분이 밀접한 관계를 갖기 시작했다는 얘기죠.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외국에서는 일류대에 입학해도 졸업하기 위해 하루에 6∼7시간씩 공부하는데, 한국은 1∼2시간밖에 안해요. 외국 학생들은 졸업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하는 일도 있지만, 우리는 입학하면 졸업이 자동으로 보장됩니다. 그렇게 공부한 학생들이 세계적으로 일류가 될 수 있느냐 이겁니다. 한국의 일류대학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저 출세해서 남을 부려먹고, 암기해서 고시에 붙겠다는 학생들뿐이잖아요. 이걸 고치지 않으면 한국 교육은 달라질 수가 없는 겁니다.”
한 전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학벌문화 타파를 추진했다고 한다. 일부 언론은 그의 학벌타파 주장이 즉흥적이었다고 평가했지만, 한 전장관은 완강하게 부인했다. 실제로 2001년 4월 중순 한장관이 교육부 간부들에게 ‘학벌타파 방안연구’ 지침을 하달하자 교육부 학교정책기획팀에 전담반이 꾸려졌다. 또한 5월18일 당정회의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했으며, 8월과 10월엔 재계 교육계 인사들과 공동연구를 벌인 뒤 공개세미나를 열었다. 이 무렵 교육부는 학벌타파 표어공모전을 열기도 했는데, 당선작 세 편의 문구가 흥미롭다.
‘학벌만능 병든사회 능력우대 건강사회’ ‘학벌없는 열린세상 바로서는 미래교육’ ‘학벌문화 헌옷벗고 능력사회 새옷입자’
“학벌타파는 대통령께 보고하고 거기에 대해 의문을 표한 장관들에게도 자세히 설명한 사안입니다. 심지어 전경련 김각중 회장과도 논의했어요. 그런데 내 얘기를 직접 들었던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1년 전과 똑같은 질문을 해서 의아했습니다. 일부 신문은 ‘깜짝쇼를 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썼는데, 그건 과장된 겁니다. 국정홍보처장이 사견을 곁들여서 얘기하니까 기자들이 감을 못 잡은 것 같아요.”
―언론 보도에 불만이 크신 것 같습니다.
“교육부는 시끄럽게 떠들지 않았을 뿐이지 학벌타파 문제를 꾸준히 검토하고 역점사업으로 추진해왔습니다. 제가 학벌 얘기를 ‘불쑥 했다’는 건 사실과 다른데도, 언론은 그렇게 몰아갔어요. 한국 언론에도 ‘그레샴의 법칙(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이론)’이 적용되는 모양입니다.”
―학벌타파를 이슈화해야겠다고 결심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대중 정부의 국무위원을 출신 학교별로 따져보니까 서울대가 45%였습니다. 김영삼 정부 때는 68%나 됐고요. 세계 어느 나라도 한 대학 출신이 국무위원의 50%를 차지하는 경우는 없어요. 미국도 중앙정부의 과장급 이상 공직자를 보면 아이비리그 출신이 평균 3%를 넘지 않거든요. 사정이 이런데도 한 대학은 요직을 독점하고, 199개 대학이 박탈감을 느끼는 구조가 과연 정상이냐? 이런 학벌주의를 그대로 둘 것이냐? 저는 안된다고 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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