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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학벌이냐, 실력이냐

名門은 있되, 패거리는 없다

외국의 학벌문화

  • 홍훈 < 연세대 교수(경제학·학벌없는사회 대표) > hoonhong@base.yonsei.ac.kr

名門은 있되, 패거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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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 서열이 군(群)으로 이루어진 미국, 모든 대학이 평준화된 독일, 명문대학 졸업생들에게 엄격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프랑스, 대학입시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일본…. 선진국의 대학정책은, 수십년째 대학을 한줄로 세우고 있는 한국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모델일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육의 수준과 질은 사회 구성원에게 권력과 경제력을 차등적으로 부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타나는 철저한 대학 서열과 이에 근거한 학벌의 형성, 그리고 학벌에 의한 신분결정 등은 선진국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점에서 우리의 현실은 특수하다.

첫째, 한국의 학벌은 각 구성원에게 너무나도 큰 상벌의 차이를 낳는다. 학벌은 권력 돈 명예, 그리고 혼인 등에서 선택의 범위를 결정함으로써 신분의 차이를 낳는다. 이에 비해 외국의 대학교육은 권력과 돈에 서 약간의 차등을 가져올 뿐이며, 한국사회처럼 개인의 신분을 결정하거나 개인의 자긍심을 박탈하는 수준으로까지 그 영향력이 커지지 않는다. 더구나 한국에서는 졸업장 자체가 중요한데 비해 외국에서는 전공과 관련된 지식과 기술이 의미를 갖는다.

둘째, 한국에서는 20대 초에 결정된 차이를 나중에 뒤집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입시를 거쳐 특정 대학의 구성원이 되고, 이를 통해 일생 동안 향유할 수 있는 특권이 결정되면, 이것이 사회에서 개인의 능력이나 실적을 압도해 버린다. 반면 선진국 대학생들은 대학 재학중이나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자기가 노력한 결과에 따라 대학입학 당시의 평가를 역전시킬 수 있다. 외국에서의 대학 입학은 우리와 같이 치열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은 일생을 두고 거쳐야 할 여러 차례의 경쟁 중 하나에 불과하다.

셋째, 한국의 학벌은 집단의 차원에서 작동한다. 지연이나 혈연과 마찬가지로 학연이나 학벌은 패거리를 이루어 공적인 영역에서 서로 밀어주고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외국의 경우 학력이 개인 차원에서 권력이나 돈의 분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학벌로 이어져서 공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학벌에 관한 한국과 선진국의 차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미국 대학에는 우리처럼 촘촘한 서열이 없다. 다만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 등 몇 개의 덩어리로 나뉘어 이들 사이에 느슨한 서열이 존재할 뿐이다. 가령 하버드나 예일과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상위권이다. 각 대학은 대학군 내에서 혹은 대학군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며 이 과정에 대학의 전공별 순위가 수시로 뒤바뀐다. 미국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되는 순위는 바로 이런 경쟁을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 대학들은 모금을 통해 교수의 수준과 시설을 향상시켜, 더욱 우수한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경쟁한다. 그리고 좋은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직장에서 뛰어난 실적을 거둠으로써 최종적으로 그 대학에 대한 평가가 올라간다. 좁게 보면 훌륭한 교수를 얼마나 유치하느냐가 특정 학교에 대한 평가를 결정하며, 넓게 보면 교육이 사회의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하느냐에 따라 대학의 순위가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 졸업생들은 졸업장이 아니라 대학에서 익힌 지식을 가지고 사회현장에서 훌륭한 실적을 올림으로써 더 많은 권력과 부를 획득한다. 미국 고등학생들에게 좋은 대학에 간다는 것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좋은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졸업장이 빛나는 것이다. 한국의 명문대 졸업장이 상대적으로 높은 입시성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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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훈 < 연세대 교수(경제학·학벌없는사회 대표) > hoonhong@bas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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