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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난형난제 列傳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한국의 난형난제 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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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전 재경부 차관은 이경재 전행장의 고교(경북고), 대학(서울대 경제학과), 직장(한국은행) 후배다. 이 전차관은 1969년 한국은행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행정고시(8회)에 합격, 재무부 이재과장, 이재국장, 재무정책국장 등을 역임하며 20년간 금융정책을 다뤄온 정통 재무관료. 예금보험제도 도입과 예금보험공사 설립작업을 주도했다.

김영삼 정부 때 공정거래위 상임위원, 예금보험공사 전무 등으로 외곽을 떠돌다 김대중 정부 출범 1년 만인 1999년 1월, 그의 능력을 아낀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의 끈질긴 설득으로 금감원 부원장을 맡았다. 이후 금감위 부위원장(차관급)을 거쳐 2000년 8월 재경부 차관에 올랐으나, 지난해 3월 개각을 앞두고 “후배들의 앞길을 막고 싶지 않다”며 물러났다. 지금은 법무법인 율촌 고문으로 위촉돼 경제분야 소송과 관련한 자문에 응하고 있다.

이 전차관 아래로는 두 동생 병재(昞載·53)씨와 상재(載·50)씨가 있다. 병재씨는 경북고,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한빛은행 검사실장으로 재직중이다. 경북고 재학시절에는 야구선수로 활동하며 전국대회 우승을 휩쓸었다. 야구선수로는 드물게 특기생이 아닌 정식 입학시험을 치러 고려대에 진학했다.

상재씨는 고교 입시에 실패하자 검정고시를 치러 고교 졸업자격을 얻었고, 대학 진학도 포기했다가 방송통신대에서 공부했다. 현재 모니터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다섯 형제 중 머리는 가장 비상했지만 학교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전행장 형제의 부친은 도쿄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이런저런 사업을 하다 실패해 가정형편은 그리 여유롭지 못했다. 부친은 자식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지만 교육열은 남달랐다고 한다. 집이 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를 자주 드나들며 교사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았고, 늘 자식들을 먼 발치에서 관찰하면서 교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었던 조부는 평생 술 한잔을 입에 대지 않은 꼬장꼬장한 선비였는데, 부친도 비슷한 성향이었다. 그런 조부와 부친의 영향으로 이 전행장 형제들도 양보와 절제의 유교적 미덕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듯하다는 게 주변의 시각이다.

이 전행장과 이총장, 이 전차관은 지난해 초 두 달 간격으로 나란히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3형제가 사퇴를 앞두고 아무런 협의나 상의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 사람 다 신문을 보고 형제들이 물러나는 것을 알았을 정도라는 것. 이 전행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어릴 때도 스스로 알아서들 공부했고, 사회에 나와서도 형이랍시고 동생에게 간섭하는 일이 없었다. 나는 죽어가던 은행을 살려놨고 임기도 다 됐으니 물러났고, 명재와 정재도 올라갈 만큼 올랐으니 그만둔 것이다. 남들이 잘한다고 박수쳐줄 때 ‘다음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나가는 게 가장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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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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