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호

노동시장 교란이냐, 3D업종 해결사냐

중국 조선족 15만

  • 송홍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04-11-08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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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에 체류중인 중국동포가 15만명에 이른다. 중국동포에 대한 시각은 그들을 부르는 용어만큼이나 다양하다. 취업과 입국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에선 ‘중국 국적의 외국인’이란 측면에 주목하고, 인권단체들은 3D업종의 파수꾼을 자임하는 ‘핏줄을 나눈 동포’라는 점을 강조한다.
    1월28일 저녁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속칭 쪽방. 중국동포 김명철(36)씨가 능숙한 솜씨로 마작패를 돌리고 있다. 상대는 하얼빈에서 나고 자란 고향친구 3명. 부지런히 패를 맞추다가 한국 얘기가 나오자 상소리가 오가기 시작했다.

    “한국 X들은 자본밖에 모르는 쓰레기들이야. 살면 얼마나 잘산다고.”

    “서울 같은 데는 중국에 10개나 있어. 상하이 베이징 푸둥 하이난… 답답한 X들 나중에 두고 보라지.”

    “일본에서 중국사람들은 성공하는데 한국 XX들은 왜 모두 망하는 줄 알아?”

    “왜 그런데?”



    “돈 좀 있다고 뭐같이 구니까 도와주는 사람이 없지.”

    김씨는 처와 딸이 있는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한국에 오느라 빚진 7만위안(우리돈 1000만원)을 마련하기 전까진 어림없는 일이다.

    “한 2~3년 고생하면 행복하게 살 줄 알고 황해를 건넜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나라는, 돈 없는 사람은 인간 취급을 안 하더군요.”

    하루 12시간 노동에 80여 만원을 받는 박봉, 비인간적인 대우와 상습체불, 근로기준법과 산재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열악한 근로여건…. 김씨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한국을 찾았지만 동포들의 멸시와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

    “할아버지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게 잘못입니까. 겉으로는 동포네 뭐네 하면서 속으로는 무시하고 멸시합니다. 나는 이젠 한국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냥 중국공민 할랍니다.”

    1월29일 성남 모란시장. 복정역 부근의 일명 ‘노가다 시장’은 일용직 노동자들로 새벽부터 북적였다. 100여 명의 구직자들이 폐목(廢木)으로 불을 피워놓고 추위를 피하는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이들 대부분은 건설 현장에서 막품을 팔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다.

    “공구리 6명 나와!”

    “사람 쓰시게요? 몇 명이요?”

    인부들을 태우기 위해 쉴새 없이 승합차가 오갔지만 정작 차에 타는 인원은 4~5명이 고작이다. 비수기인 겨울철인 탓에 막품 팔 사람이 필요한 곳이 적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절반은 공치는 날이죠. 이러다간 조선족들 때문에 겨울 내내 밥줄이 끊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구직을 포기하고 해장국집으로 발길을 돌리던 김모(39)씨는 겨울철 일감 부족을 중국동포들 탓으로 돌렸다. 최근 건설업체에선 임금이 싸고 말이 통하는 중국동포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아졌다고 한다.

    “한국인 인부들의 일당은 6만원에서 12만원인데 조선족은 4만~5만원이면 충분합니다. 조선족들은 아파트 건설현장 같은 데와 장기계약하고 맘 편하게 일하고 우리는 매일 추위에 떨고, 이게 말이 됩니까. 불법체류자들은 싸그리 잡아서 중국으로 보내야 돼요.”

    ‘노동시장 교란이냐, 3D업종 해결사냐.’ 15만 중국동포 노동자가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한쪽에선 불법 입국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선 반대로 입국문호를 넓혀 중국동포들이 법을 어기지 않고도 한국에 쉽게 들어와 돈을 벌게 하자고 주장한다. 법의 엄정한 집행과 개정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인 셈이다.

    ‘강력히 단속하라’ ‘불법체류자를 추방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현재 중국동포 노동자들에 의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노동시장이 교란되고 있고, 중국동포 집단 거주지가 슬럼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조선족들이 한국에 자유롭게 들어오면 노동시장은 난리가 난다. 지금도 조선족들은 내국인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 식당에서 일자리를 뺏기고 유흥업소에 취업한 주부, 저임금 노동자를 선호하는 기업주들 탓에 밀려난 한국인 노동자를 생각해야 한다. 현재의 산업연수생 제도로도 충분하다. 불법체류자는 엄격히 단속해 모두 추방해야 한다.”(중소기업연구원 유재원 동향분석실장)

    단속론에 대해 중국동포 관련 인권단체는 중국동포들이 3D업종을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노동력 착취 수단으로 전락한 산업연수생 제도와 브로커를 통해 ‘입국자금’이 오가는 폐쇄적 출입국 체제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취업권과 자유왕래를 보장하면 중국동포들의 인권문제도 해결되고 불법체류자도 사라진다는 주장이다.

    “중국동포들은 한국인들이 꺼려하는 3D업종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중국동포들의 자유왕래를 허용해야 한다. 또한 산업연수생 제도를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해 식당종업원, 공사현장 노동자, 간병인 등으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모든 문제는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현재의 기형적인 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중국노동자센터 오천근 소장)

    그렇다면 왜 중국동포 노동자를 두고 이처럼 서로 다른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한국에 들어와 있는 중국동포들부터 만나보기로 했다.

    1월26일 오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시장 골목, 매캐한 중국 양념 냄새가 코를 찌른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한국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이 중국동포들. 행인들의 입에서 중국말과 조선족 사투리가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中國食品’ ‘菊花館’‘國際電話房’ 등 한자로 적힌 상호가 이채롭다. 서울 구로공단 주변의 구로구 가리봉동, 영등포구 대림동, 금천구 가산동 일대에는 1999년부터 중국동포 노동자들이 몰려들어 ‘조선족타운’이 형성돼 있다. 조선족타운은 한국에 처음 온 중국동포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며 한국을 떠나는 중국동포들이 마지막으로 거쳐가는 곳이기도 하다.

    3만여 명의 중국동포가 살고 있는 구로공단 인근 중국동포 밀집 지역엔 현재 조선족을 상대로 물건과 음식을 파는 업소가 50여 개 있다. 상호 대부분이 한자로 적혀 있어 내국인들은 어떤 물건을 파는 곳인지 짐작하기 쉽지 않은 곳도 많다. ‘中國食品店’이라고 입간판을 세워놓은 상점에는 칭다오 맥주, 중국 양념장 등 중국 제품이 가득 쌓여 있다. 중국식품점 옆은 중국노래방이다. 중국 최신가요를 들여놨다는 광고가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국내에 체류하는 중국동포들에게 조선족타운은 제2의 고향인 셈이다. 10만원 안팎의 저렴한 월세도 마음에 들지만, 공단과 소규모 공장가가 이웃해 일감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두부를 얇게 눌러 만든 초간두부(炒干豆腐), 감자 고추 가지를 볶은 지삼선(地三鮮) 등 중국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여러 개 있고, 기분이 울적할 때는 중국에서 수입된 커우베이주(컵술)로 동료들과 함께 향수를 달랠 수도 있다.

    중국노래방 앞에서 만난 중국동포 이일만(34)씨는 한국에 온 지 만 1년째. 집은 가산동이고 일터는 구로공단이라고 했다.

    “중국에서 생활하던 그대로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집 구조가 중국하고 유사합니다. 중국보다 깨끗하고 중국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어요. 일자리 찾기도 쉽고요. 친구들과 정보도 공유하고 일자리도 서로 알아 봐주고 그래요. 저보다 3년 먼저 한국에 온 고향친구를 이곳에서 만나 그를 통해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중국식품점에서 찬거리를 구입하던 강정후(39)씨는 한국에서 생활한 지 6개월 됐다고 한다. 강씨도 대다수 중국동포들처럼 ‘목돈’을 벌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강씨의 월수입은 120만원. 한달에 70만원 정도를 저축한다.

    “여자들은 식당, 남자들은 건설현장에서 일하면 월 80만~150만원은 받습니다. 알선료 1000만원을 내고도 2~3년 일하면 2000만~3000만원을 벌어서 돌아갈 수 있어요. 중국에서 그런 돈 모으려면 평생 일해도 불가능합니다.”

    김영준(40)씨는 자녀들 대학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애들 대학 보낼 돈만 마련하면 바로 중국으로 돌아갈 거란다. 김씨와 같은 40대 초반 중국동포 노동자 중엔 아이들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에 온 사람이 많다.

    “자식들은 우리보다 잘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조선족들은 교육열이 대단합니다. 애들 좋은 학교 보내기 위해선 무슨 일이라도 할 겁니다. 농촌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학교들이 줄줄이 문닫고 있습니다. 좋은 학교 가려면 유학을 보내야 하는데, 중국에선 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요.”

    재외동포법을 개정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동포 불법체류자들은 “한국인과 동등하게 사회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 사실상의 이중국적이 허용된다”면서 기뻐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중국 정부가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재외동포법 입법조사 목적으로 중국방문을 신청한 국회 인권포럼 소속 국회의원 4명이 중국 정부로부터 지난 1월4일 비자발급 거부 조처를 받는 등 중국 정부는 재외동포법 개정에 대해 불쾌감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소수민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국 입장에선 중국동포가 ‘민족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요주의집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등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업고 ‘해외 동포의 완전한 평등’을 보장하라고 국회와 정부에 압력을 계속해서 넣고 있지만, 현재로선 정부가 미국·일본동포 수준으로 중국동포에 대한 문호를 개방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개정 논의는 요란했지만 결국엔 문제가 된 조항만 폐지하거나 다른 법률을 통해 중국동포들의 입국과 취업을 계속해서 제한할 전망이다.

    중국의 반대로 재외동포법이 중국내 조선족을 재외동포로 인정하지 못하더라도 중국동포들의 자유왕래와 취업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해명 목사는 “대한민국 헌법에는 임시정부의 혈통을 계승한다는 구절이 있다”면서 “독립운동의 뿌리 구실을 한 중국동포들을 홀대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동포’와 ‘조선족’ ‘재중교포’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들을 부르는 용어 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들의 취업과 입국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에선 ‘중국 국적의 외국인’이란 측면에 주목하고, 인권단체들은 ‘핏줄을 나눈 동포’라는 점을 강조한다. 중국의 입장에선 중국동포는 중화인민공화국을 구성하는 56개 민족 중의 하나일 뿐이다.

    주변국의 입장을 고려하면서도 중국동포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는 없을까. “두고 보라”는 중국동포의 말이 허장성세(虛張聲勢)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교안보연구원 박두복 교수의 말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중국동포에 대해 일관된 정책을 갖고 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통일 후 중국에 조선족 커뮤니티가 유지되고 있다면 이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조선족 커뮤니티는 한국의 ‘문화영토’이고 그들은 ‘한민족 네트워크’의 일원이다. 막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중국 조선족 커뮤니티에 대한 직접적 지원과 그들을 감싸 안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법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2001년 말 현재 국내에 체류중인 중국동포는 11만2000명. 밀입국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입국한 사람들을 제외한 숫자다. 중국동포 관련 단체들은 밀입국자까지 포함하면 국내 중국동포 체류자 수는 15만~20만명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중국동포들이 이처럼 한국으로 몰려드는 것은 중국의 고도성장과 맞물려 도시와 농촌간의 경제 격차가 확대되면서 중국 조선족의 기반이던 농촌이 빠르게 붕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동포 대부분이 거주하는 동북3성(요녕성·길림성·흑룡강성)은 산업기반이 부족해 중국동포 상당수가 일자리를 찾아 상하이나 베이징 등 다른 도시로 이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동포들에게 한국 노동시장은 중국의 대도시보다 매력적이다. 3~5년 정도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면 중국에서 개인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중국동포들은 한국에 올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떤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림동에서 만난 중국동포 김모(33)씨는 지난해 11월 서해안을 통해 밀입국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김씨는 밀입국 브로커에게 알선료를 지급하고 공해상에서 한국 선박으로 갈아타는 수법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입국에 성공하기 전엔 한국행을 미끼로 한 사기를 당한 적도 있다.

    “초청장을 만들어서 입국시켜 주겠다는 사람에게 선수금을 준 적이 있는데 사기였습니다. 사기를 당하고 한국 가는 방법을 이것저것 알아보던중에 지난해 여름 한국에 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됐습니다.”

    김씨는 사기를 한 번 당한 터라 그의 말을 의심했지만 “한국에 안전하게 도착해 일자리를 잡은 뒤 돈을 내면 된다”는 설득에 “가능한 빨리 알선해달라”고 부탁했다. 한 달도 안돼 출국 날짜가 잡혔고 대련항에서 한국행 선박에 올랐다. 배에는 50~60명의 밀입국자가 타고 있었는데, 이중에는 중국 한족도 섞여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서 한국 배로 갈아탔습니다. 손쉽게 한국 서해안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한국 배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데 운이 좋았던 셈이죠.”

    최근엔 위장결혼을 통한 입국도 늘고 있다. 중국동포 여성이 한국 남자와 결혼한 것처럼 서류를 꾸민 뒤 입국하는 방식이다. 유부녀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으로 가짜 호적을 만들어 한국에 입국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 또 동북3성에선 한국인이 중국의 친지에게 보낸 초청장이 공공연히 팔리고 있다. 장당 거래가격이 중국 10년치 임금에 이르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사채까지 빌려 초청장을 구입한다.

    그렇다면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녀의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한국에 입국한 중국동포들은 인권단체의 주장처럼 한국 3D업종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노동시장을 교란하고 범죄를 일삼는 천덕꾸러기일까.

    가산동 중국동포의 집. 구인 게시판 앞에 10여 명의 중국동포가 모여 있다. 구인을 원하는 곳은 식당, 농장, 소규모 공장이 대부분이다. 급여는 60만원부터 150만원까지 다양하다. 숙식제공을 조건으로 내건 업체도 많았다.

    ‘가족같이 일하실 분, 숙식제공 月 80만’이라고 쓴 광고를 낸 경기도의 한 농장에 전화를 걸었다. 농장 사장 김원준(53)씨는 “이대로 가다가는 일할 사람이 없어 다른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지방에서 농사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폐업 일보 직전이라는 것.

    “한국사람을 쓰고 싶어도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연변사람들이 없었다면 벌써 농장문을 닫아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조선족을 쓰는 게 불법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돈을 적게 주는 것도 아니고 남들도 다 쓰는데 문제야 있겠습니까.”

    가리봉동 남부인력사무소. 이른 아침부터 일감을 찾아 나온 사람들로 사무실은 후끈하다. 원승용(34)씨는 15년째 현장에 인력을 수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를 찾는 일용직 노동자는 하루에 500명 정도. 그중 100명 남짓이 불법체류중인 중국동포다. 원씨는 최근 건설현장의 인력난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중국동포의 취업을 제한하는 정부의 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건설현장 같은 경우는 중국동포 노동자가 최소 20%는 된다고 봐야 할 겁니다. 사람이 없는데 조선족이냐 한국인이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아닙니까. 건설인력의 20%가 빠져나가면 공사가 중단된다고 봐야죠.”

    원씨는 중국동포 불법체류자에게 직업을 알선한 혐의로 출입국사무소에서 조사를 받고 벌금을 낸 적도 있다. 그런데도 중국인 노동자에게 직업을 알선해 줄 수밖에 없는 것은 일할 사람이 원체 없기 때문이란다. 원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인력시장’ 노동자들의 넋두리는 겨울철 비수기에 한정된 얘기인 셈이다.

    건설현장 하루 품삯은 잡부일 경우 6만~8만원에 이른다. 기술직일 경우엔 10만~14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적잖은 돈인데도 노동일을 하겠다는 한국인들이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그 자리를 중국동포 노동자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건설현장의 경우 기사급의 기술자들은 많은 반면 잡일을 할 사람은 크게 부족하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상가 건설현장. 기초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철골작업을 하는 팀은 전체가 중국동포로 구성돼 있다. 대규모 아파트 건설현장뿐만 아니라 소규모 건설현장까지 중국동포들이 대거 진출해 있는 것이다.

    현장 작업반장은 “조선족 노동자를 쓰는 게 불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 “인력난이 심각하고 인건비가 높은 건설업종엔 조선족들이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벽돌을 나르던 중국동포 김해명(33)씨는 한국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1년 남짓 됐다. 한국에 거주하는 친척의 보증으로 입국, 현재 불법체류중이다. 월 수입은 150만원 정도. 한국에 건너온 중국동포들 중엔 고소득층에 속하는 셈이다.

    “어떤 공사장에 가면 현장 사람들의 3분의 1 정도가 조선족이에요. 우리가 일을 잘해서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일감은 끊기지 않고 계속 있습니다. 중국에 돌아가선 한국 관련 무역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서울 영등포의 A공업사. 발디딜 틈 없이 자리잡은 자재와 작업대는 영등포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소규모 사업장의 모습. 건설현장에 납품할 자재를 만드느라 분주한 50평 규모의 작업장에서 8명의 노동자가 땀을 흘리고 있다. 이 8명 중 한국인은 2명 나머지는 모두 중국동포다.

    “한국사람들은 이런 일 안하려고 합니다. 3D 업종에서 한국인 노동자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예요.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불법체류자를 쓸 수밖에 없어요. 외국인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서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조선족은 우리에겐 구세주나 다름없습니다.”

    공업사 대표 조계완(44)씨는 청년들이 취업난 운운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씨는 “중국동포들을 빼면 이런 소규모 작업장에서 20~30대 근로자는 찾아볼 수 없다”며 “조선족들이 없었더라면 인근 공장들이 모두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영등포 일대 소규모 공장들의 사정은 모두 A공업사와 비슷했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중국동포들이 한국 젊은이들이 버리고 떠난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었다. 문래동에서 목공소를 운영하는 박정모(38)씨는 “일자리를 자주 옮기는 한국사람들과 달리 오랫동안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조선족들을 쓰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중국동포를 불법으로 고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단속을 당하는 경우도 실제로는 거의 없다고 한다.

    중국동포들은 이처럼 내국인이 꺼리는 3D업종을 떠받치고 있다. 현재 중국동포를 포함해 국내에 체류중인 외국인력은 전체 노동력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한 종업원 300인 미만 중소제조업체의 인력부족률은 4.7%. 특히 노동조건이 극히 열악한 소기업 생산직의 경우 10% 가까이 사람이 모자란다.

    그러나 중국동포들이 한국 노동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업종에서 중국동포들이 내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것도 사실.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이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던 식당, 봉제공장, 비닐하우스촌 등이다. 취업 길이 막힌 여성들 중 일부가 유흥업소로 흘러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기업주들은 인건비가 비싼 한국노동자보다 중국 동포를 선호한다. 일부 중소기업의 경우엔 멀쩡한 한국인 노동자를 해고하고 중국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로 인력을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으로 부당하게 직장을 잃은 사람들의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출입국관리 담당부서에는 일자리를 잠식당한 내국인의 민원 제보전화가 날마다 수백 통씩 걸려와 불법취업 외국인에 대한 철저한 단속을 요구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조선족 인력에 대한 내국인 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세다”며 “조선족 노동자에게 쓰여지는 국가적·사회적 비용을 따져보면 조선족에게 혜택을 주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불순분자의 입국 등 안보상의 문제점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서울출입국관리소 박영순 조사1과장은 “불법취업한 중국동포를 법에 따라 강제출국시킬 때는 동포로서 아픔도 느끼지만 중국동포들로 인해 다양한 사회문제가 야기되고 있고 국민들도 철저한 단속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리돼야 할 한계사업이, 중국동포들을 고용해 비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버텨나가는 것은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중기업 규모의 공장들 가운데는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곳이 많은데, 경비를 절감해 연명하는 것보다는 아예 공장을 중국 등지로 옮기거나 업종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

    사회문제가 된 중국동포의 불법입국과 불법체류 문제에는 싼값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가들의 요구가 있는 게 사실이다. 낮은 임금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중국노동력으로 가장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기업주들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불법체류자 신분인 중국동포들의 범죄가 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범행 후에도 신원이 밝혀지지 않기 때문에 체포될 염려도 적고 붙잡힌다고 해도 초범으로 분류돼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강제출국 되면 그만이라 ‘큰 것 한탕하고 돌아가겠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서울 남부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엔 중국동포들의 범죄가 조직화·폭력화 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흉기를 소지한 채 중국내 같은 지역 출신끼리 패거리로 다니며 다른 지역 출신 조선족들을 괴롭히거나 돈 잘번다고 소문난 동료들을 상대로 떼강도를 벌이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가리봉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박모(49)씨는 “밤에는 조선족들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기가 두렵다”며 “조선족들이 이 지역에 몰려들면서 예전보다도 더 살기가 꺼려지는 곳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동포 노동자가 3D업종에서 버팀목 노릇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노동시장을 교란하고 안보에 문제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에 진출한 중국동포 노동자들의 인권문제는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중국동포 노동자에 관련한 또 다른 중요한 이슈가 바로 노동3권 보장, 자유왕래 보장 등 인권과 관련된 문제. 한쪽에선 노동시장 교란을 막는 게 중요하다면서 열악한 노동환경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주장한다. 반면 인권론자들은 3D업종 분야에서 버팀목이 되고 있는 중국동포들을 더 이상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해선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중국동포들이 한국인들이 떠난 노동현장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또 혹사당하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국동포들을 추방하라는 주장은 못할 겁니다. 동포로 인정해주지 않는 정부와 불법체류자로 신고한다고 협박하며 구타, 임금체불을 일삼는 사업주들부터 각성해야 합니다.”

    중국동포교회 김해명 목사의 말이다.

    중국동포 박모(38)씨는 2000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경기도 안산의 한 공장에 취직했는데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현재 산재 보상도 받지 못한데다 장애가 있는 탓에 제대로 된 일자리도 구할 수 없어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 한 달에 50만원의 임금을 받고 날품팔이를 하고 있지만 집세를 내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한국사람들 정말 나쁩디다. 전쟁이 나면 북한군에 입대하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화가 치밀었습니다. 사장이 왕처럼 군림하면서 조선족들을 노예처럼 부립니다. 어떻게 피를 나눈 형제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박씨는 불법체류자 신분인 탓에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행여 누가 신고라도 하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이 중국동포들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산업연수생을 제외하면 한국에 체류중인 중국동포의 대부분이 범법자인 셈이다.

    중국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주민호(37)씨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위조여권을 구입, 2000년 한국에 들어왔다. 지난해엔 부인과 딸(8세)을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한 2~3년 정도만 열심히 일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생활은 기대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주씨는 지난 1월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발가락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치료비로 반 달치 월급을 썼다. 회사측에 치료비를 요청했지만 불법체류자 운운하며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는 핀잔만 들었다.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건강보험도 적용도 받지 못하지 않습니까. 일을 하다 다쳤는데 기본적인 성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불법체류자가 아니었더라도 이런 대접을 받았을지 궁금합니다.”

    최근 주씨의 가장 큰 고민은 딸의 교육문제.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교육을 시킬 곳이 전혀 없다. 불법체류중인 중국동포들이 고민하는 또 다른 문제가 바로 자녀 교육이다. 정규교육을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주씨는 최근 재외동포법 개정논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중국동포 여성들은 각종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식당 사장이나 종업원이 몸을 주지 않으면 신고한다고 협박하고 성추행을 저지르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중국동포교회에서 일을 돕고 있는 김광철(34)씨는 “추방당한 조선족 여성 중엔 성적요구를 거절한다는 이유로 상대 남자가 신고해 적발된 사례가 많다”면서 “주변에서 이런 방식으로 피해를 당한 여성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찾아와서 3D업종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너무한 것 아닌가요. 그런데도 정부는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동포의 집 이강봉 실장은 참혹하게 살해된 중국동포의 사진을 꺼내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임금체불은 예삿일이고 신고한다고 협박하면서 15시간 합숙노동을 시키는 곳도 있다”면서 “특히 경기도 인근의 소규모 공장들이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국동포의 노동력을 적절히 활용하고 불법체류자 문제를 해결하면서 국내 노동시장의 교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개정 논의가 진행중인 현행 재외동포법은 재외동포가 내국인과 같은 법적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998년 공포됐다. 재외동포들은 ‘거소신고서증’만 발급받으면 2년간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 재외동포법은 중국동포들을 배제하고 있다. 재외동포의 범위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에서 거주하는 동포와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와 그 직계 비속’으로 제한해 중국 조선족은 재외동포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중국동포가 취업할 수 있는 길은 산업연수생 제도가 유일하다. 산업연수생의 월수입은 80만원 정도. 반면 불법체류하는 50대 중국동포 여성의 초임은 업종에 따라 90만~100만원에 이르기도 한다. 남성들은 건설현장이나 공장에서 일하면 100만~150만원은 벌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는 것보다 다른 직업을 찾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요컨대 중국동포들과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 산업연수생 제도가 거꾸로 불법체류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재한조선족연합회 석창만 사무국장은 “3D업종 등에서 일정 부분 중국동포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있는데도 정상적인 입국기회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면서 “이런 어정쩡한 정책 때문에 송출비리가 생기고 중국동포들의 밀입국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동포 인력을 요구하는 업종이 분명히 있는데도, 유입을 산업연수생으로 제한함으로써 송출비리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지불하는 커미션의 ‘공정가격’은 1000만원 남짓. 위조여권, 위장결혼, 위장유학, 위장공무입국, 위장친척방문, 밀항, 신분증 위조, 초청장 매매 등 입국방법도 다양해졌다. 중국에서 1000만원은 적지 않은 돈이라 대개는 사채를 쓰게 된다. 사채 이자가 30~50%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산업재해라도 당하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중국에 돌아가봐야 빚더미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산업연수생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올해부터 외국인 연수생의 연수취업 기간을 연수2년+취업1년에서 연수1년+취업2년으로 개선하고 연수생 선발 규모도 8만3800명에서 8만5500명으로 확대했다. 또 연수생 이탈을 막기 위해 연수생에 대한 퇴직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매월 일정액을 불입해 출국시 인출하게 하는 방안도 도입하고, 이탈인원의 일정 배수만큼 다음해 해당 국가 송출기관의 쿼터를 제한하기로 했다.

    개선안에 대해 조선족교회 서경석 목사는 “1000만원에 달하는 송출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산업연수생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는데, 개선안 역시 송출기관을 통해 인원을 배정하는 종래의 제도를 고수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근원적인 대책 마련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석창만 사무국장도 “산업연수생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면서 “저임금을 고착화하려는 중소기업 관련기관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근본적인 제도개선은 어렵다”고 말했다.

    산업연수생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송출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방법으로 노동 시민단체들은 고용허가제의 도입을 주장한다. 고용허가제란 정부가 노동시장 상황을 감안해 사업주에게 일정기간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게 허가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하지만 임금상승을 우려한 중소기업계는 고용허가제의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오천근 중국노동자센터 소장은 “외국인력을 연수생 명목으로 받아들여 변칙적으로 일을 시키는 산업연수제는 불법체류자만 양산한 실패한 제도”라며 “외국인에게 내국인과 동등한 근로 조건을 보장하는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당하는 인권 침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의 재외동포 정책은 어떨까. 일본은 원칙적으로 단순 외국인 인력의 유입은 봉쇄하고 있지만 예외적으로 남미의 동포들을 산업연수생으로 데려와 일자리를 주고 있다. 내국인과 같은 수준의 생활지원금도 지급한다. 중국은 혈통이 인정되면 취직을 배려해주는 등 여러가지 특혜를 주고 있다. 중국동포들은 한국의 재외동포 정책이 중국 화교정책의 절반만 따라갔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의 재외동포 정책도 중국동포에 대한 우리의 정책과는 크게 다르다.

    김해명 목사는 “한국경제가 일정부분 중국동포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이라면 취업권과 노동3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면서 “일본이나 중국 등과 비교해 보아서도 우리의 중국동포 정책은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손낙구 교육선전실장도 “현실적으로 중국동포들이 이미 노동시장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고 일자리를 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중국동포에게 취업의 우선권을 주는 방안의 하나로 최근 한국어자격시험을 도입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토플처럼 한국어 자격시험을 도입해 성적순으로 산업연수생을 선발하면 송출비리도 근절되고 중국동포에게 더 많은 취업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어 시험제도가 자리잡으면 중국뿐만 아니라 동남아 국가들에서도 한국어 붐을 일으켜 한국의 국제적 위상도 제고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중국동포들에 대해서도 재미·재일동포와 마찬가지로 출입국을 자유롭게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중국동포의 입국이 합법 여부를 떠나 현실적으로 통제하기 힘든 지경에 이른 만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통로를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국규제를 푸는 대신 철저하게 취업규제를 하자는 주장이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겐 ‘인정어린 추방정책이 필요하다. 시간을 넉넉하게 줘 빚도 갚고 돈도 충분히 벌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제 갓 입국한 사람은 5년 정도의 취업기간을 주고, 5년 정도 불법체류자로 일해왔던 사람들은 1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주면 된다.”(서경석 목사)

    “자유로운 출입국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재외동포법이 개정돼야 한다. 법무 당국은 출입국 규제를 풀면 중국동포들이 밀물처럼 몰려와 노동시장을 교란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중국동포를 불법으로 사용하는 기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고용허가제로 취업을 일부 규제하면서 국경을 열고 불법체류자를 막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김해명 목사)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 볼 때 현재로선 산업연수제도를 폐지 또는 보완하는 한편 중국동포의 경제활동을 미국·일본 동포 수준으로 허용하고, 중국동포들이 취업할 수 있는 범위를 크게 늘리는 방법이 가장 바람직해 보인다. 취업을 엄격히 규제하고 불법체류자 단속을 철저히 실시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중국동포들의 한국 내 사회경제활동을 미국·일본 동포들과 같은 수준으로 보장하는 데는 큰 걸림돌이 있다. 중국정부의 반대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연말 국내에 체류중인 중국동포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헌법재판소가 재외동포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1월 재외동포법에 대해 재외동포의 범위를 대한민국 국적의 취득여부로 정한 법률조항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전에 해외로 이주한 동포와 그 자손들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늦어도 2003년 12월31일까지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의 불합치 판정이 나오자 민주당 송석찬 의원 등 여야의원 23명은 지난해 12월 재외동포의 정의를 종래의 국적주의에서 혈통주의로 전환하는 ‘재외동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재외동포의 범위규정을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 중 대통령이 정하는 자”에서 ‘국적을 불문하고 한민족의 혈통을 지닌 자로서 외국에서 거주 생활하는 자 중 대통령이 정하는 자’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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