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호

동거·섹팅·묻지마MT-캠퍼스는 지금 섹스혁명중

  • 박은경 < 자유기고가 >

    입력2004-11-08 16: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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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많은 대학생들이 동거의 장점으로 방세·교통비·생활비·유흥비 절감을 내세운다. 동거유형에는 ‘동침형’ ‘위장형’ ‘예비부부 연습형’ ‘오픈형’ 등이 있다. MT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방을 따로 잡아놓는 커플도 쉽게 눈에 띈다.
    지난해 봄 여자 기숙사 쓰레기통에서 아기 시체가 발견됐다. 낳자마자 검은 비닐봉투에 담아서 버린 걸 청소부가 발견했다. 새벽에 기숙사에선 신음소리까지 들렸다. 5××호 방 애들이 비닐봉투에 싸서 버렸다고 들었다.”

    대학생 성의식과 성문화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만난 지방대학 출신 김재호(가명·24)씨는 남녀 기숙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다 뜻밖의 충격적 사실을 털어놓았다. 대학 캠퍼스 내 여학생 기숙사에서 벌어진 ‘영아유기’ 사건. 만약 김씨 말이 사실이라면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을 범죄 행위다.

    하지만 남녀 기숙사를 둘러싸고 학교마다 갖가지 소문이 그럴 듯하게 꾸며져 나도는 경우가 많아 김씨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웠다. 얘기 끝에 그가 덧붙인 “아마 신문에는 나지 않았을 걸요”라는 말은 ‘소문’에 불과할 가능성을 더욱 짙게 했다.

    ‘설마 대학 기숙사 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반신반의하면서 사실 확인을 위해 김씨가 다녔던 강원도 모대학 관할 파출소를 찾은 것은 지난 1월24일 오후 2시20분경. 그 시각 파출소를 지키고 있던 강모 순경은 “사건이 해결된 걸로 안다. 아이는 살아 있어서 입양기관으로 보내졌고, 범인인 여대생은 입건됐다고 들었다”며 사건 실체를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제보자 김씨의 말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아이의 생사(生死) 부분에서 말이 엇갈린 것. 이 부분에 대해 재차 확인하자 “자세한 내막은 사건 담당자가 아니어서 모르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목 졸라 살해 후 쓰레기통에


    같은 날 오후 8시30분경 다시 파출소를 찾았을 때 마침 당시 사건 담당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건 발생 후 7개월이 지나 어렵게 찾아낸 ‘사건접수일지’에는 앞서 강순경이 말한 것과 차이 나는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2000년 6월14일 오전 10시 반경, ××대학 교내 쓰레기 소각장에서 여아사체 발견. 외관상 상처가 없고 탯줄 및 사체 전체에 마르지 않은 핏자국 발견. ××의료원 영안실 안치.’ 사건이 파출소에 접수된 시각은 같은 날 오전 11시 반이었고, ‘청소부가 쓰레기소각장에서 최초 발견’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담당자는 “검정색 비닐봉투 안에 아기 사체와 함께 피 묻은 화장지가 들어 있었다. 사건을 접수한 뒤 곧바로 관할 경찰서에 넘겼기 때문에 그후 수사 진척 상황은 알지 못한다. 관할 경찰서에 확인해 보라”고 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관할경찰서 형사반 소속 강모 형사로부터 좀더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초로 영아사체가 든 비닐봉투가 발견된 곳은 여학생 기숙사 5층 세면실 휴지통이었다. 기숙사를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무심코 소각장에 버렸는데 쓰레기소각장 청소부에 의해 사체가 확인됐다. 파출소에 신고가 들어왔을 때 아이는 이미 죽어있었다. 나중에 사인은 질식사로 판명됐다. 아기를 낳자마자 목 졸라 죽였던 것이다.”

    강형사는 “수사 착수 시점이 하필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라 학생들이 학교와 기숙사를 거의 빠져나간 상황이었다. 그래서 수사에 어려움이 많았고, 아직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사건은 영아사체에서 발견된 혈액을 유전자 감식한 결과만 확보해둔 채로 미궁에 빠진 상태다.

    “용의자는 내부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숙사 층마다 학생 생활을 체크하는 방장이 두 명씩이나 있고, 사감이 학생들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매일 밤 일정한 시각이면 기숙사 문을 잠그기 때문에 밤 늦게 외부인이 몰래 기숙사에 침입해 아이를 낳고 빠져나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강형사는 “여자아이가 얼굴이 희고 예뻤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남자(혹은 남학생)와의 성관계 끝에 임신한 여대생이 10개월 동안 기숙사 어느 누구에게도 임신사실을 들키지 않은 채 생활하다 아무도 몰래 기숙사 내 특정 공간에서 아기를 낳은 뒤 곧바로 목을 졸라 살해하고 비닐봉투에 담아 휴지통에 버린 ‘영아살해유기’ 사건으로 요약된다.

    이 일로 학교가 발칵 뒤집히고, 경찰이 범인을 쫓고 있는 지금까지 진범인 여학생(혹은 여자)은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이 아버지는 자신의 아이가 살해되어 버려진 사실을 알고 있을까.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살해한 여학생은 얼마만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까. 자신이 저지른 일이 ‘살인행위’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 취재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여러가지 생각으로 복잡해진 머릿속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위와 유사한 또다른 사건이 1999년 지방 S대학 기숙사에서 발생했다. 이때 숨진 영아는 남아로 기숙사 화장실에서 분만, 쓰레기통에 버려졌으며 범인은 여대생 안모(당시 20세)씨로 밝혀졌다. 이듬해 춘천에서는 생후 3일된 아기가 버려진 채 발견됐는데 경찰 추적 결과 아기 부모는 남녀 대학생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건은 매우 드문 사례지만 최근 대학가의 무분별하고 왜곡된 성문화의 극단을 보여준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비록 일련의 사건이 아니라 해도 최근 일부 대학생이 보여주는 갖가지 성행태와 대학가에 만연한 성문화에 대해 사회 일각의 우려가 높다. 그 단면을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를 재작년 봄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서울 H대학교 정문 앞에 위치한 모 카페. 빈 강의 시간을 이용해 들른 것으로 보이는 세 명의 여대생이 한가운데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곧이어 흥분에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쁜 자식, 지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더 나쁜 건 A야. 뻔히 B가 너 애인인지 알고, 전부 같은 과(科)에서 친하게 어울리는 친구사인데…. 그날 술 먹자고 여러 명이 여관방에 우르르 몰려간 게 잘못이야. 난 걔들이 설마 그럴 줄 몰랐지.”

    “말이 되니? 우리 몰래 둘이 나가서, 그것도 바로 옆방에서 그 짓을 할 수 있는 거냐구. 난 B가 용서가 안돼. 애인인 날 바로 옆에 두고 어떻게 딴 기집애랑….”

    “넌 걔들 둘이 그렇게 가까워질 때까지 전혀 몰랐어?”

    “수업 빌 때 가끔 둘이 차 마신 건 알았지만 그냥 다 같이 친구니까 그러려니 했지. 그 일(여관에서의 일)이 있고 난 뒤에도 난 까마득히 그 사실을 모르고 B와 같이 잔 것을 생각하면 더 열 받아.”

    “그래놓고도 어쩜 둘이 그렇게 태연하게 널 볼 수 있을까. 정말 뻔뻔함의 극치다.”

    “어떻게 하지? B는 까놓고 양다리 걸치겠다는 투로 나오는데?”

    또 다른 테이블에서 이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두 명의 남녀 대학생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쟤도 원래 애인이 있던 C와 사귀었던 거 아냐? 그래놓고 왜 다른 애가 자기 애인 채갔다고 열내는 거야. 그냥 쫑치면 될 걸.”

    이런 대화내용을 기자로부터 전해들은 대학생 이진우(남·22)씨는 “특별할 것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 학교 여학생 중에 선배 남학생과 2개월 동안 동거했던 애가 있었어요. 동기 남학생과 눈이 맞았는데 그날로 동거하던 선배한테 헤어지자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날 바로 눈맞은 동기생과 동거에 들어간 걸요. 그래도 당당하게 학교 잘 다녀요.”

    학내 성폭력 실태는 어느 정도일까. 대학마다 총여학생회는 ‘대학은 성폭력 박물관’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1999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대학내 성폭력 관련정책 공청회’를 주최한 바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지난해 상담건수는 총 3593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대학생과 관련한 성폭력 피해 상담건수는 270건. 구체적 수치를 보면 피해자가 대학생인 경우 201건,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대학생인 경우 65건, 대학원생이 가해자인 경우가 4건으로 집계됐다. 한편 가해자 중에는 피해자의 ‘데이트 상대’이거나 ‘학교와 관련된 사람’이 104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학내 성희롱·성폭력 발생 유형은 ‘학생-학생’에 국한되지 않는다. ‘교수-학생’ ‘선배-후배(동기)’ ‘교수-조교’ ‘교수-교수’ ‘교직원-학생’간으로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다수 여학생을 상대로 한 MT나 대학축제, 신입생 환영회 등의 행사에서 여성을 비하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성폭력·성희롱 범주에 속한다.

    학내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적 문제로 확산시킨 사건이 1993년 서울대에서 발생한 ‘우조교 사건’이다. 당시 가해자였던 신모 교수가 법정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고 얼마 전 교단에 다시 서게 되자 서울대는 이 문제로 또 한 차례 진통을 겪었다. 최근에는 ‘해외연수중 인솔교수에 의한 여학생 성희롱 사건’ ‘교환교수의 현지 제자 성추행 사건’ 등이 캠퍼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학내에서 벌어지는 여러 성폭력 유형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학생과 학생’ 간에 빚어지는 성폭력이다. 성폭력공청회에서 발표된 다음과 같은 사례들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진다.

    “중앙도서관은 성폭력의 사각지대라 할 만큼 성폭력이 비일비재하다. 옆자리의 여학생이 눈치채지 않도록 물건을 떨어뜨려 줍는 척하면서 엿본다든지 자는 척하면서 교묘히 여학생에게 접근해 육체적 접촉을 시도하는 사건이 도서관학생위원회에 매년 여러 건 접수된다.”

    “사범대 과 모꼬지(MT)에서 술에 취한 선배가 여자후배를 강압적으로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다. 술에 취한 선배가 여자후배를 불러내 이야기하던 도중 강제로 키스를 했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대학에서 성기 노출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학부생으로 상기 기간동안 여러 차례의 성기 노출 성폭력을 저질렀다. 이 가해자와 관련해 몇 차례에 걸쳐 피해가 접수되었다.”

    “여자 화장실에 한 남학우가 들어가 여학우를 훔쳐보거나 화장실 밑 틈으로 손을 넣어 여학우의 엉덩이를 만지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놀란 여학우는 졸도했다.”

    “여학우가 저녁을 먹고 도서관 열람실 자리에 돌아오니 ‘창녀에게’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음란 편지가 놓여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며칠 뒤 동일인에 의해 ‘우리 이런 포즈 취해볼래? 아주 환상적이지? 여자 표정 봐! 즐겁겠지? 한 번 하자, 응?’이라는 메모와 함께 남녀 성행위가 담긴 사진이 책 밑에 놓여 있었다.”

    1999년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대한 법률’ 제정을 계기로 학내 성폭력 근절 노력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와 때를 맞춰 교육인적자원부는 각 대학의 학칙에 성희롱·성폭력 예방조항을 명문화할 것을 권고했다.

    2001년 12월12일 현재 전체 대학의 87%인 309개 대학이 관련규정을 마련했다. 학칙은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 성폭력의 정의, 적용범위, 피해자 권리 확보 및 비밀유지의 의무, 담당기관(상담소) 설치, 상담소 업무, 성폭력대책위원회와 징계위원회 운영, 사건처리에 관한 규정 등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담소를 별도 설치하고 전문 상담위원을 두는 등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처벌 규정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학교측과 학생측이 팽팽한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학내지원팀을 이끌고 있는 인권부장 임민희씨에 따르면 학내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대학생은 물론이고 학교측도 대단히 미흡한 실정이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 남학생이 징계를 받았을 때 오히려 가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해 이를 옹호하는 남학생이 적지 않고, 피해 여학생을 트러블메이커로 보는 시각이 있다. 반면 학습권이 침해되고 인간관계가 깨지는 등 피해 여학생 문제에 대해선 공감하지 못한다. 학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인식은 인권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인제대 학생생활연구소가 1996년 이 학교 학생 441명을 상대로 벌인 ‘성폭력 및 성의식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녀 응답자의 47.4%가 성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성폭력을 경험한 남학생 비율이 25.7%를 차지해 대학내 성폭력이 여학생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성희롱·성폭력 경험자들이 겪은 상황은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훑어봄’ ‘외설적인 농담’ ‘술좌석에서 무리하게 옆에 앉히는 것’ ‘술을 따르라고 하는 것’ ‘강제적인 데이트 요구’가 대부분이었다. 한편 ‘대학에서의 성교육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는 88.3%가 ‘필요하다’고 응답해 많은 학생들이 성교육을 원했다.

    이제 대학생 성문화는 “상대를 좀더 깊이 이해하고 알기 위해 살아보고(동거해보고) 결혼하는 건 당연하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얼마든지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다” “처녀냐 아니냐가 더 이상 혼전순결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뒤에서 호박씨 까는 어른보다 우리가 훨씬 순수하다”고 주장하는 수준에 와 있다.

    각종 조사에서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급격한 성의식 변화를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재작년 부산대학교가 재학생을 상대로 성의식 관련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대학 진학 후 성에 대한 생각이 약간 또는 개방적으로 바뀌었다’고 대답한 사람이 76%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대학 진학을 전후해 몸가짐의 허용정도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페팅’이나 ‘섹스’까지 허용한다고 대답한 학생은 진학 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대학의 경우 성관계를 가진 상대와의 결혼에 대해 “안 해도 된다”고 대답한 사람이 10명 중 6명을 넘어섰다.

    미혼모시설 애란원 한상순 원장은 “한마디로 성에 관한 한 요즘 젊은이들은 뛰어가는데 어른들은 기어가는 수준이다. 젊은층은 행동에 걸맞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에 앞서 남자와 여자는 성생리나 성심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대의 성을 올바로 알 필요가 있다. 원치 않은 임신과 미혼모를 줄이기 위해 무엇보다 실질적인 성교육이 절실한데 젊은층의 성문화와 성의식에 대한 어른들 인식이 부족해 제대로 된 교육여건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대학가의 미혼모와 낙태 문제, 영아살해유기 사건은 자유로운 성개방 문화가 건강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가부장적이고 왜곡된 성의식은 21세기를 맞은 지금까지 캠퍼스를 떠돌며 학내 성폭력 사건을 유발하고 있다.

    미혼모와 낙태 문제, 학내 성폭력 문제는 비단 대학가와 대학생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원치 않은임신의 경우 여성이 모든 책임을 지게 한다. 기성세대도 성의식이 희박하기는 마찬가지”라는 한상순 원장의 일침을 곱씹어봐야 할 때다.

    만난 순간 분위기 좋고 ‘필’이 통하면 ‘키스’ 또는 ‘섹스’까지 ‘진도’를 나간다고 할 정도로 성행위 수위가 대담한 대학생들이다. 성적으로 개방된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는 또다른 현장이 최근 MT촌 풍경이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 남녀 커플이 다정하게 팔짱낀 채 여관 문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과커플, 캠퍼스커플이 많다보니 MT 장소에서도 따로 노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예전처럼 둘이 사귄다는 사실을 숨길 분위기도 전혀 아니다”고 대학생 이우범(남·23)씨는 귀띔했다. 그에 따르면 남녀 커플이 늦은 밤에 슬그머니 사라졌다 새벽이 돼서야 단체 숙소로 돌아오는 정도는 애교다. “MT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방을 따로 잡아놓고 밤을 기다리는 노골적인 커플도 많다.” 학생들 사이에 공인된 커플을 다른 학생들이 알아서 둘 만의 방으로 몰아넣는 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차라리 “눈꼴 시고 배 아픈 꼴을 안 보는 게 낫기 때문”이다.

    한편 과MT 날짜에 맞춰 커플끼리 따로 ‘MT를 빙자한 밀월’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학생 한윤정(여·21)씨는 “요즘 MT에 참가하는 애들은 많지 않아요. 과 인원 중 20∼30%면 많이 가는 편이죠. 6, 7명이 MT를 가는 경우도 있어요” 하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섹팅(섹스를 전제한 미팅)’을 위해 타대학 남녀 학생들과 은밀히 MT를 떠나는 경우도 있다. MT철이면 콘도 등 숙박시설에서 ‘방팅(방과 방 미팅)’이 이루어지는 광경도 쉽게 볼 수 있다. MT철이나 방학을 앞둔 시점이면 인터넷 또는 학교 게시판에 “묻지마 MT, 저는 ××대 ××과 과대표 이××라고 합니다. 여학우 여러분,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라는 형태의 안내문이 나붙기도 한다.

    대학생의 성의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각종 관련 통계수치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해 경북대 신문방송학과가 대구지역 4개 대학생 420명을 상대로 조사한 성의식 실태 결과를 보면 혼전 성관계에 대해 ‘절대로 안된다’고 응답한 학생은 11.8%에 불과했다. 10명 중 9명이 사랑 또는 결혼을 전제로 한 성관계는 무방하다고 대답한 것이다.

    한편 ‘사랑 없이도 성관계가 가능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10명 중 1명꼴이었다. 같은 시기 한국대학신문이 전국 대학생 12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명 가운데 3명이 혼전 성관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 후 배우자의 성경험을 알았을 때 이혼하겠는가’라는 질문에는 9.7%만이 ‘예’라고 답해 기성세대보다 성문제에 대해 훨씬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모 상담기관 게시판에 최근 올라온 글은 이와 같은 사실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저는 대학 4학년 여학생입니다. 제 주위를 보면 열에 아홉은 이미 성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궁금해 통계를 찾아보았는데, 혼전 성경험이 있는 여학생 비율이 16% 정도 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그 조사는 이미 3년 전인 1998년 통계였고, 제 주위 상황과 너무도 다르기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최근 통계를 알고 싶습니다.”

    대학생 성문화와 관련한 더욱 적나라한 실태는 최근 만연하고 있는 동거사이트와 대학가 주변 동거문화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응답자 420명 중 48.2%가 혼전동거에 찬성했다. 이들은 그 이유로 ‘상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기 위해’ ‘결혼보다 자유로운 생활 가능’ ‘결혼을 더욱 신중하게 선택하기 위해서’ 등을 꼽았다. 한편 지난해 논란 속에 경찰이 수사에 나섰던 이른바 ‘명문대 동거사이트 사건’은 ‘SKY’로 대표되는 명문대 학생들만을 회원가입 조건으로 내세워 “젊은이들의 비뚤어진 성의식과 학벌위주 사회 풍조가 빚어낸 합작품”이라는 사회적 질타를 받았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 서울대도 다 같은 서울대가 아니다. 수능 상위 0.02%, 키 178㎝, MBA 진학 후 월가 진출 예정. 경제학과 킹카. 녹두 신림2동 원룸 거주중.”

    “서울대에서 박사 받았습니다. 학부도 같은 데 나왔구요. 내년 3월쯤 미국에 포닥(포스트닥터: 박사후 과정) 나갈 생각이니 9개월 정도 남았군요. 그동안 만날 사람 있었으면….”

    당시 계약동거카페 게시판에 올랐던 글에는 학교, 과, 학과 성적 평점, 토익시험 성적 등을 상세히 공개하며 동거파트너를 구하는 대학생이 적지 않았다. “겨우 들어와 가입했어요. 이 카페 접속자가 너무 많아서 잘 안 들어가져요”라고 하소연한 여학생의 글이 이를 증명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 수사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동거사이트가 최근 한 달 사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현재 10여 개의 사이트가 성업중이며, 각종 커뮤니티사이트에서 활동중인 동거 관련 동호회만도 200여 개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동거사이트와 동호회를 합친 전체 회원수는 대략 30만명 수준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았다.

    동거사이트 가운데 회원 실명인증제를 실시중인 ‘비다노블레(www.vidanoble.co.kr)’의 경우 2002년 2월5일 현재 전체 회원수가 4만7673명이다. 이 가운데 대학생 회원은 남학생 6685명, 여학생 993명으로 총 7678명이 등록돼 있다. 이는 전체 회원의 16.1%에 달하는 수치다.

    한편 지난해말 동거 경험이 있는 회원을 상대로 ‘동거실태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설문에 응한 157명(남 122명, 여 35명) 중 33명이 대학생인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해 동강대학 행정정보학과가 광주지역 대학생 217명(남학생 107명, 여학생 110명)을 상대로 ‘대학생들의 동거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18.4%가 ‘현재 동거중에 있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수치 외에 실제로 사이트 게시판에서 동거파트너를 찾는 대학생의 글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제 막 서울로 가서 대학에 입학하려는 어린 동생인데 누가 거둬주시겠습니까? 한 달 방세는 어느 정도 낼 수 있습니다. 진짜 동생처럼 아껴드리고 잘해드릴 테니…. 나이 같은 건 안 따집니다.”

    “저랑 동거할 여자분 찾습니다. 전 21세 대학생이구요. 서로 도와가며 같이 지내고 싶은 여자를 구합니다.”

    “친구, 애인, 동거 다 됨. 전 익산의 모대학 3학년에 재학중에 있으며 좋은 사람을 찾습니다.”

    “21세 대학생이구요. 자취합니다. 연상도 환영합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니 많은 여성 참여 바랍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린 많은 대학생 중에 “신축 원룸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전 대학생인데요, 카페에 관심이 있어 경영할까 하는데 자본금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저에게 2000만원만 투자를 해주시면 방도 그냥 드리구요. 카페 경영권 반을 드리겠습니다”라며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남겨놓은 ‘원규(ID명)’씨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방을 그냥 준다는 말은 동거도 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상대가 원한다면 동거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의 말을 빌리면 대학가 주변에서 하숙 또는 자취하는 학생 중 동거커플은 30% 정도다.

    “경제적인 문제 아니면 성문제. 이 두 가지 이유로 동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러다 사소한 말다툼 끝에 헤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대학생 동거가 증가하는 이유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서구의 개인주의와 합리주의 사고를 적극 수용한 결과로 결혼에서 오는 가부장적 의무와 희생,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각자의 독립성을 인정하면서 일상을 공유하는 동거는 결혼제도의 까다로운 절차나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고 헤어지기도 쉽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이 무엇보다 동거의 실질적 요인으로 꼽는 것은 경제적 부담 감소다. 커피숍, 비디오방, 여관 등을 돌며 이루어지는 소비문화가 학생에게 지우는 금전적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많은 대학생이 동거의 장점으로 “방세·교통비·생활비·유흥비 등의 절약”을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다노블레 기획팀장 장기홍씨는 “호기심이나 성적 충동, 유행심리에 휩쓸려 섣불리 동거를 시작한 경우 깨지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동거가 일반화된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동거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부정적이고, 동거커플을 위한 복지제도가 전무하다. 때문에 동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성을 즐기기 위해 동거하거나 상대의 외모 등 조건을 중요시할 경우 동거 자체가 깨질 확률이 높다.”

    장팀장에 따르면 동거에 들어가기 전 의도하지 않은 임신에 대비해 출산 혹은 낙태여부, 아이에 대한 양육과 금전적 책임 부분을 명확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대학생의 경우 임신·출산과 양육 문제까지 감안하고 동거에 들어가는 커플은 실제로 많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서, 혹은 성적 욕구 때문에 동거를 시작하는 경우가 오히려 많은 실정이다.

    지금의 동거문화를 확산시킨 한 가지 원인으로 1998년 말 IMF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학가에 새롭게 등장한 ‘공거족(共居族)’을 꼽을 수 있다. 이성·동성을 불문하고 말 그대로 ‘한 집 또는 한 방에서 생활을 함께하는’ 공거족은 경제적 논리에서 출발했다. 월세 또는 전세 보증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 집에서 생활하되 성관계는 철저히 배제시켰다.

    뿐만 아니라 개인생활을 존중하고 상대에 대해 일체 간섭하지 않는 것을 ‘공거’의 전제조건으로 삼았다. 하지만 남녀가 한 집에서 같이 생활하다보면 성욕을 억제하기란 쉽지 않은 일. ‘공거’ 형태가 자연스레 동거 형태로 넘어가면서 동거문화를 확산시킨 측면이 있다.

    요즘 대학생들이 흔히 취하는 동거 유형은 상황에 따라 ‘동침형’ ‘위장형’ ‘예비부부 연습형’ ‘오픈형’으로 달라진다. ‘동침형’은 밤이 외로워 함께 지내는 경우로 남녀 각자 학교 근처에 자취나 하숙집을 따로 정해놓고 학교생활과 일상생활도 각자 한다. ‘위장형’은 부모가 불시에 자취집을 방문할 것에 대비해 동성 친구와 함께 사는 걸로 위장해두는 경우다. 한편 ‘예비부부 연습형’은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는 커플을 일컫는다. ‘오픈형’은 양가 부모가 동거 사실을 알면서 눈감아준 경우. 오픈형은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던 커플이 같은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다.

    대학생 유세현(여·21)씨는 “동거커플 10명 중 2명 꼴로 ‘순결파’가 있다”고 말했다.

    “결혼하고 싶은데 서로 성격을 잘 모르니까 일단 함께 살아보자고 동거에 들어가는 애들이에요. 얘들은 성관계 절대 안하고 결혼할 때까지 서로 잘 지켜주자 그러죠.”

    다양한 유형의 커플이 동거에 들어가기 전 일정한 선을 긋는 행위가 바로 ‘동거계약서’ 작성이다. 동거사이트가 회원을 상대로 서비스하는 동거계약서는 동거의 목적, 계약기간, 재산사항, 공통사항, 남녀 각각의 의무, 피임·섹스 사항, 비밀유지, 계약의 해지에 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구성해놓았다.

    인터넷에서 동거파트너를 만나 함께 살기 시작했다는 한 네티즌의 동거계약서에는 ‘기본 방 값은 50:50으로 부담한다. 생활비는 1개월 동안 생활한 후 정한다. 침대는 각자 따로 쓴다. 식사준비와 설거지, 빨래는 일주일 단위로 번갈아 책임진다. 대신 청소는 함께 한다. 서로의 일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성관계는 서로 합의시에만 갖기로 한다. 단 한 달에 최소 한 번은 의무적으로 한다’ 등의 내용이 꼼꼼히 기록돼 있고, 남녀 각각의 인적사항과 더불어 도장이 찍혀 있었다.

    이외에 ‘바람 안 피우고 동거 상대에 충실한다. 약속을 어길 경우 헤어짐과 동시에 위자료를 지급한다’는 단서를 다는 경우도 있다. 계약 위반시 위자료는 동거기간에 따라 달라지는데, 예를 들면 동거기간이 1년 이하일 경우 100만원, 3년 이하일 경우엔 300만원 하는 식이다.

    비다노블레 장기홍 기획팀장은 자사 사이트에서 만나 동거중인 대학생을 대략 300명 정도로 추산했다.

    “물론 일부 대학생을 보면 동거에 대한 깊은 인식이나 책임의식 없이 무분별하게 동거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동거 자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건 문제가 있다. 동거는 시대흐름상 이미 막을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다.”

    그 예로 그는 동거경험자 중 상대와 헤어진 후 자신의 동거경험을 부정하는 경우가 매우 드문 예를 들었다.

    “설문조사 때 10명 중 1명 꼴로 동거를 부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9명은 설사 동거가 깨졌다 해도 동거경험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 동거생활을 후회하는 사람도 전체 4%인 6명에 불과했다.”

    장팀장은 외국처럼 바람직한 동거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선진국의 경우 동거커플이 결혼커플만큼이나 많고 동거인증서 등을 통해 법적으로 그들의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 우리도 이제는 합리적 동거문화에 대해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본다. 시대흐름을 무시하고 동거 자체를 놓고 찬반 논쟁을 벌이는 건 비생산적이다.”

    1970년대부터 동거가 확산되기 시작한 프랑스의 경우 동거커플 자녀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장하는 ‘시민연대협약(PACS)’을 법률제도로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거커플에 결혼한 부부와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동거커플의 권리를 인정하는 동거부부등록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동거부부증서’를 발급하고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일부 대학생의 동거 실태를 감안하면 장씨의 바람이 우리사회에 현실로 나타나기까지는 좀더 시간이 필요한 듯싶다. 취재 도중 만난 대학생 중 또래 성문화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드러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영아살해유기사건’ 취재차 들른 강원도 한 대학가에서 만난 박상혁(가명·22)씨는 “우리 학교만 해도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70∼80%나 된다. 그 아이들이 내려오면서 순진하던 시골 애들 물 다 버려놨다”며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신학기 때마다 수도권 지역에서 몰려온 신입생들을 가리켜 “봉사하러 온 애들”이라며 비아냥댄다는 박씨.

    “왜 술집 가면 봉사료 받고 서비스하는 여자들 있잖아요. 남자애는 순진한 지방 여학생들 꼬시고 돈 쓰러 온다, 여학생은 몸 바치러 온다 그런 의미예요.”

    그에 따르면 보통 2·3·4월이면 신입생들 ‘짝짓기’가 끝난다고 한다. 과 단합대회와 동아리 환영회 등의 모임이 몰려있기 때문이라고.

    “심한 애들은 벌써 OT(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눈맞아요. 좀 늦은 애들이나 MT에서 짝을 만나죠. 5월 정도면 동거할 애들은 벌써 다 살림 차려요. 속전속결로 끝나는 거죠.”

    여름철 바캉스시즌과 겨울철 스키시즌으로 관광객이 붐비는 강원도의 경우 학교 밖만 벗어나면 콘도나 휴양시설이 즐비해 놀고 즐길 곳이 많으며, 관광객들 분위기를 보면서 생활하기 때문에 쉽게 성 개방 풍조에 물드는 것 같다고 박씨는 지적했다.

    한편 앞서 만난 파출소 강모 순경은 자신이 부모라면 절대 딸을 지방대학에 혼자 보내지 않겠다며 혀를 찼다.

    “대학 하나를 상대로 근처에 원룸이 30여 개가 들어서 있다. 방수로 따지면 대략 500여 개에 이른다. 최근에는 이 지역에 오피스텔이 많이 생겨 학생들이 그곳까지 입주해 있다. 부모와 따로 떨어져 자기 혼자 생활하는 학생들이니 별별일이 왜 없겠는가. 주로 학교에서 좀 떨어진 오피스텔에서 동거하는 학생들이 많다.”

    대학가 원룸촌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는 50대 약사는 “남학생 여학생이 약국 앞에 와서 서로 실랑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잠시 후 여학생이 불쑥 들어와서 ‘아저씨, 콘돔 주세요, 피임약 주세요’ 하는 지경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순진한 축에 속한다. 정말 세상 말세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비다노블레의 설문조사에서 동거경험자들 대다수가 동거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은 것이 상대에 대한 존중과 믿음, 신뢰였다. 이런 바람이 종종 깨지면서 동거커플이 겪는 갈등 또한 적지 않아 보였다.

    “갈수록 전쟁이다. 서로 아껴주고 좋아할 수 있는, 내가 그리던 그런 생활이 아니다. 누군가를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큰 이해심과 배려가 필요한 것 같다. 사소한 일로 심각하게 다툰다.”

    “하나가 외로워 둘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그러나 둘이면서도 눈물난다. 어떻게 해야 할지… 그가 내 삶의 전부라고 느끼진 않지만 날 너무 외롭게 한다. 헤어지는 게 최선책인지 그냥 이대로 내 삶에 충실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확신이 안 선다.”

    “좋은 여자다. 재미있고 나름대로 섹시함도 있고. 하지만 남자 문제는 늘 나를 가슴 시리게 한다. 그녀에게 걸려오는 남자 전화가 귀찮아서 신경 안 쓴다. 그녀를 믿지만 내가 너무 힘들다. 동거기간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신경정신과 전문의 신승철 박사는 “요즘 젊은층은 희생을 달가워하지 않고 속박된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순결을 따지던 과거와 달리 애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변화다. 그러나 동거든 룸메이트든 어떤 남녀관계 형태를 취하기에 앞서 정신적으로 성숙한 인격을 갖추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물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의식도 함께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신박사가 지적한 ‘책임의식 결여’가 대학생 성문화와 결합해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낙태와 미혼모 문제다.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부설 한국성문화연구소가 1996년 말 서울 및 지방 5개 대도시 8개 대학교 남녀 대학생 176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학생 성 행태 조사연구’ 결과를 보면, ‘혼전 임신 경험여부’를 묻는 질문에 성 경험이 있는 남자 대학생 492명 중 154명(31.3%)이 ‘있다’고 대답했다. 여학생의 경우 158명 중 26명(16.5%)이 혼전 임신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성 경험자 중 남학생 231명, 여학생 82명을 추출해 ‘인공유산 경험유무’를 조사한 결과 남학생 21명, 여학생 15명이 ‘있다’고 응답했다. 한 번 이상 인공유산을 경험한 남녀 학생이 36명에 달했고, 인공유산 경험의 횟수가 4회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성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서정애씨는 “원치 않은 임신으로 미혼모가 됐거나 낙태를 경험한 여성은 사랑의 낭만성이 깨지면서 상대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감을 갖게 된다. 이들은 성적인 관계를 다시 맺지 않겠다는 반감이 매우 강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경험을 통해 자기 몸에 대한 주체성과 책임성을 뒤늦게 자각하는 경우도 있다. 원치 않은 임신을 경험하기 전 이런 인식을 가져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 미혼모 보호시설은 전국적으로 8개에 달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1999년 4100명, 2000년 5000명의 미혼모가 관련 시설을 거쳐갔다. 보건복지부 여성보건복지과 담당 사무관은 “미혼모 시설 입소자들이 신상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걸 꺼려해 학력별로 자세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다. 대학생 미혼모가 시설에 입소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애란원의 경우 2000년 한 해 동안 180명, 지난해는 174명의 미혼모가 이곳을 거쳤다. 한상순 원장에 따르면 이 가운데 대략 10% 정도가 대학생 미혼모다. 한원장은 “이성교제를 하다 임신해서 입소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대는 또래 남학생이 많은데, 시설에 입소한 여학생이 출산할 때까지 보살피는 남학생이 없다”고 했다. 그는 “나이 들수록 미혼부의 미혼모에 대한 책임의식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원장에 따르면 여대생이라고 해서 성지식이 풍부하거나 성의식이 특별히 뚜렷한 경우는 거의 없다. 10대 미혼모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

    “미혼모의 경우 각자 성장 과정과 성장 경험이 중요하고 이것이 성생활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가령 집안에서 인정받고 사랑받았는가, 성폭행의 경험 유무, 자존감 유무 등이 있다. 자존감을 상실하거나 인정받거나 사랑받지 못한 채 성장한 경우 본인이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상대가 요구할 때 분명하게 ‘싫다’고 거절하지 못하는 경향이 많다. 이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능동적이지 못하다는 의미다.”

    한편 성장과정에서 외롭게 자라거나 소외감을 받으면서 자란 경우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쉽게 남자에게 기대는 성향을 보인다고 한원장은 덧붙였다.

    ‘서울 여성의 전화’에도 혼전순결 문제나 임신으로 고민을 상담해오는 미혼 여성들이 적지 않다. 이곳 상담 간사는 “한창 사랑에 빠졌을 때는 헤어짐을 생각하지 못한다. 때문에 성관계를 가지면서 이별 뒤 후유증에까지 미처 생각이 닿지 못하는 것이다. 정작 이별이 닥쳐야만 비로소 현실에 눈 뜬다”고 지적했다.

    요즘 대학생의 ‘혼전순결’ 기준은 성관계 유무와 관계 없이 ‘낙태를 했냐 안 했냐’에 의해 결정된다. 대학생들 스스로 “많은 애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지적은 충격적이다. 이들의 사랑은 흔히 ‘이성교제(또는 동거)→임신→헤어짐→낙태’의 수순을 밟고 있다.

    한국성문화연구소 서정애씨는 “차마 낙태가 두려워 자발적 미혼모가 되는 여대생의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인 생각임을 강조하며 덧붙였다.

    “현재 낙태가 불법이지만 한 해 백수십만 건의 낙태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불법이라는 틀 때문에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많은 여성이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낙태법이 조정돼서 안전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에 앞서 대학생들에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피임교육을 해야 한다.”

    한편 일부 대학생의 ‘인격 결여’가 성과 결부되어 마찰을 빚는 대표적 예가 바로 대학내 성폭력 문제다. 지난해 말 매스컴은 여학생 8명을 상대로 상습적 성희롱을 일삼아 ‘제명 처분’의 중징계를 받은 서울대 휴학생 이모(남·24)씨 사건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후 대학가와 여성계 일각에서 재입학이 불가능한 징계 수위를 놓고 ‘지나치다’ ‘당연한 결과다’로 시각이 엇갈리며 학내 성폭력 문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사건 당사자인 이씨는 조사과정의 절차상 문제를 들어 학교측 징계수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폭력의 강제성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 이씨 사건과 관련해 지난 2월6일, 서울대 성희롱·성폭력상담소 소장 김계현(교육학) 교수를 만났다.

    김교수는 “징계처분 이후 이씨의 특별한 반발 움직임에 대해 들은 바 없다”고 했다. 다만 그는 “성희롱·성폭력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며 이씨 사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꺼렸다.

    “일반적으로 학생 사이에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은 남녀간 성과 관련한 커뮤니케이션의 차이에서 유발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이 성에 대해 개방적이 된 건 오래지만 성의식이 바뀌는 속도는 여학생에 비해 남학생이 엄청나게 느리다. 여학생에 비해 남학생의 성의식은 과거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사랑하면 섹스할 수 있다고 말하는 남녀 대학생이 많아졌지만 이것이 책임을 담보하진 않는다. 비단 대학생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성관계 후 책임의식이 희박한 편이다.”

    김교수는 “과거 성적 책임의식이라면 여성은 무조건 순결을 지켜야 하고, 사랑하는 여자의 순결은 남자가 지켜주어야 한다는 단순한 것이었다. 지금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할 정도로 책임의식이 발전했다. 남녀 대학생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대의 성적 결정권을 존중하고 공유해야 하는데 이런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성희롱이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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