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호

“매일 아침 날아오는 마음의 비타민”

5만 네티즌을 감동시킨 ‘고도원의 아침편지’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4-11-08 17: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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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직 청와대 비서관이 만든 인터넷 커뮤니티가 화제다. 심금을 울리는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사연들…. ‘고도원의 아침편지’의 주인공을 만나보았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다. 그러나 정보가 넘쳐나면서 그 역작용도 만만치 않다. 음란물이 난무하고, 원치 않은 스팸메일로 이메일은 쓰레기통을 방불케 한다. 욕설과 비방으로 가득한 각종 게시판은 또 어떤가. 차라리 인터넷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그러나 오염된 정보의 바다라고 해서 ‘청정구역’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친근한 속담을 첫머리에 내건 ‘고도원의 아침편지’(godowon.com)가 그 대표적 사이트.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네티즌이 찾아오길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인 사이트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네티즌을 찾아나서서 필요한 사람에게 매일 아침 이메일 편지를 보내주는 독특한 사이트다.

    ‘좋은 책에서 뽑아 좋은 사람들에게 보내드리는 고도원의 아침편지’. 지난해 8월1일, 이런 제목의 메일이 첫 발송된 이후 6개월 지난 현재, 매일 아침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받는 독자는 5만여 명에 이른다. 하루에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까지 회원이 늘어난 결과다.

    짧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글과, 이 글에 대한 운영자의 간략한 의견이 실린 이메일, 이 독특한 이메일 서비스를 생각해내고 실천에 옮긴 고도원씨는 현직 대통령 비서관(1급)이다. 청와대에서 그의 임무는 대통령 연설문 담당이다. 1952년생이니까 올해 50세.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하기 전까지 ‘뿌리깊은 나무’ ‘중앙일보’ 등에서 21년간 기자로 일한 언론인 출신이다.

    현직 대통령 비서관이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와 이메일 서비스, 단시일에 모인 5만명의 열성적인 회원들, 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인터넷 청정구역…, 화제가 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었지만 당사자인 고도원씨는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던 지난 1월말 “5만 회원이 모인 사이버 커뮤니티를 이제는 더 이상 덮어둘 수만은 없을 것 같다”며 기자의 방문을 허락했다.



    고씨가 홈페이지를 연 것은 2000년 5월3일. 평소 꾸준한 독서의 결과 각종 서적에서 골라 모은 어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하기 위해서였다. 고씨의 홈페이지에 오른 어록 데이터는 무려 700여개. 물론 네티즌이라면 아무나 들어와 어록을 퍼갈 수 있도록 사이트를 개방했다. 지적재산은 나눌수록 그 가치가 높아진다는 생각에서였다.

    사이트 오픈 초기 하루 방문객은 100여 명 내외였다. 그런데 입소문이 나면서 하루 1000명 이상이 ‘고도원의 아침편지’사이트를 방문하는 등 조회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이트 오픈 1년9개월이 지난 2월 중순 현재 고도원닷컴의 누적 방문객 수는 15만여 명에 달한다.

    자신의 사이트를 방문하는 네티즌들이 증가하는 것을 지켜보던 고씨는 한 걸음 나아가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네티즌들을 찾아나서 어록을 서비스하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아침 5만명 독자들에게 찾아가는 메일서비스를 생각해낸 것이다.

    “독서를 통해 찾아내는 어록들을 나는 ‘마음의 비타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타민은 한꺼번에 복용하는 게 아니라 매일 꾸준히 먹어야 효과가 크듯, 어록들도 홈페이지에 쌓아놓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하나씩 그날의 정신적 양식이 되도록 독자들에게 보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씨는 2001년 초 홈페이지에 이메일서비스 실시를 공고하고 희망자들의 신청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이메일서비스를 하려니 겁이 덜컥 났다.

    “일기 쓰기도 어려운데 매일 빠뜨리지 않고 이메일서비스를 할 수 있을까, 꽤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2001년 여름부터 서비스한다고 해놓고는 차일피일 시행시기를 미뤘습니다. 그랬더니 ‘왜 약속해놓고 안보내주느냐’며 항의 메일이 오는 등 난리가 났습니다.”

    할 수 없이 남들 관심이 덜한 여름휴가철을 이용해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8월1일 이메일서비스 신청자와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포함, 1000여 명을 대상으로 ‘고도원의 아침편지’ 첫 서비스를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샘물 같다” “청량음료 같다” “이젠 아침이 기다려진다”는 등 독자들의 반응이 돌아왔다. 아침편지를 보낸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독자들도 많았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받은 사람이 주변 사람의 메일주소를 추천해주면 자동적으로 그 사람에게도 메일이 배달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추천을 통해 늘어나는 새 독자들이 하루에 300∼500명에 달했다. 가장 많을 때는 하루 3600명이나 신규회원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메일서비스 초기, 긍정적 반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비아냥도 없지 않았다. 언론사의 한 친구는 전화를 걸어와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 고도원이 정치하려고 그런다고 씹는 사람들이 있다”며 “당장 그만두라”고 말했다.

    그러나 6개월 이상 순수한 정서를 담은 내용으로 아침편지를 꾸려나가자 부정적 반응들은 수그러들었다. 앞서의 언론사 친구도 최근 들어 “대단하다. 인터넷문화의 좋은 모델이 될 것 같다”며 격려했다고 한다.

    “처음엔 단순히 내가 가진 지적재산을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아침편지를 통해 평생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대통령 비서관으로 있는 이상 최선을 다해 대통령을 모셔야죠.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날 배낭 하나와 노트북컴퓨터를 챙겨들고 세계여행을 떠날 생각입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느낀 것을 아침편지에 담을 작정입니다. 세계여행에서 돌아오면 아침편지 사업에 전념할 계획입니다.”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고씨는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비례해 만만치 않은 비용도 지불했다. 고씨는 “상식 수준의 돈이 들었다”고 말했지만 초기 사이트 개설과 유지에 수백만원의 자금이 소요됐다고 한다. 최근에는 서버의 용량이 작은데다 주소가 잘못된 메일이 시스템을 엉키게 하는 등의 장애로 메일 전달속도가 떨어져 독자들의 불만이 높아져 1∼2시간 안에 200만 명에게 메일을 보내는 ‘솔루션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여기에도 1000여 만원 이상이 들었다고 한다. 최근 ‘아침편지’시스템의 사업모델 특허도 냈는데 여기에도 수백만원의 비용이 들어갔다. 앞으로 세계특허도 낼 계획인데 그럴 경우 추가 비용은 1000만원이 넘을 전망이다.

    고씨는 “솔직히 처음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만 기꺼이 낼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럴 여력도 있다. 나의 메일로 삶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는 독자들의 소식을 듣는 순간 비용에 대한 생각은 싹 사라진다”고 말했다. 다음은 고씨의 아침편지로 삶의 변화를 겪은 독자들의 사연들.

    전남대에 재학중인 한 학생은 아침편지를 받기 전 학교도 학과도 마음에 들지 않아 휴학계를 내고 빈둥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인터넷 오락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이마저 지겨워 ‘고도리’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았는데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뜨더라는 것. 그래서 호기심에 들어가 봤고 아침편지도 신청을 했다. 매일아침 날아오는 아침편지를 읽으면서 어느덧 현실을 긍정적으로 보게 됐다고 한다. 지금은 복학해 열심히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침편지 독자인 한 일간지 기자는 “아침편지를 받는 것이 너무 괴롭다”는 내용의 메일을 고씨에게 보내왔다. 이 기자는 아침편지로 대화하며 사랑을 나누던 여인이 있었는데 얼마 전 헤어졌다는 것. 애인과는 헤어졌는데 함께 읽던 아침편지는 꼬박꼬박 날아와, 아침편지를 볼 때마다 너무 괴롭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털어놓았다.

    “처음부터 독자들의 반응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침편지가 쌓여가면서 서서히 자기 얘기를 하는 독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편지의 주제들이 대체로 사랑, 용기, 희망, 절제 등인데 어느덧 독자들이 이런 주제가 실린 글을 읽으며 ‘내 얘기를 하는구나’하며 공감하기 시작한 거죠. 저는 아침편지에 좋은 글을 소개하고 제 나름의 해석을 덧붙이는데 ‘해석이 더 기다려진다’는 독자들의 반응도 있습니다.”

    아침편지가 알려지면서 자발적 후원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가을 어느날부터 신규독자 가운데 유명 기업 CEO들의 이름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내로라는 기업인들이, 그것도 한꺼번에 수십 명씩 회원가입을 하였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 이들 CEO들을 추천해준 독자를 추적해보았다고 한다. 주인공은 헤드헌팅업체 고위 임원인 전아무개씨.

    전씨 역시 처음에는 주변 사람의 추천으로 아침편지를 받게 됐다. 전씨는 내용이 좋아 대학 4학년인 아들에게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받아볼 수 있도록 추천했다. 그랬더니 그 아들이 “아버지를 존경한다”며 아침편지에 크게 만족하더라는 것. 기분이 좋아진 전씨는 업무상 알고 지내는 대기업 CEO들을 아침편지 수신인으로 추천했다. 물론 대부분의 CEO들도 만족스러워 했다.

    어느 날 고씨는 전씨에게서 메일을 받았다. 메일에서 그는 “희망자에게 매일 아침 메일서비스를 해주는 아침편지 방식의 사업은 세계적 발명품”이라며 “당장 국내특허는 물론 세계특허를 신청하라”고 권유했다. 당시까지도 단순한 취미활동이었던 아침편지 보내기를 자신의 평생직업으로 심각하게 고려해본 것도 이 무렵이었다.

    “세계 비즈니스모델특허를 받은 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아침편지를 보낼 계획입니다. 먼저 영어판부터 시작할 생각인데 메일서비스의 명칭도 ‘A morning letter from the Far East’로 정했다. 영어판 콘텐츠는 동양의 정신세계를 담은 글로 채울 생각이라고 한다. 영어판의 성공여부를 본 뒤 중국어, 일본어 서비스도 할 생각이다.

    “대통령을 따라 유럽순방을 갔을 때입니다. 그곳 교민들과 식사를 하는데 한 교민이 ‘아침편지 잘 받아보고 있다’고 제게 인사를 하는 겁니다. 인터넷 세상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는데 지구 반대편에서 아침편지 얘기를 듣는 순간 이를 세계화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편지를 운영하면서 무엇보다 힘든 것은 매일 쉬지 않고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 고씨는 “일상적인 독서가 콘텐츠 생산 과정”이라고 말했다. 술을 마시지 않을 뿐 아니라 바둑 등 취미생활도 달리 없어 기자시절에도 독서를 즐겼는데, 독서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록을 모으게 됐다고 한다. 아침편지를 시작한 뒤로는 독서의 강도를 더 높이긴 했지만 그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독서를 한다고 해서 어느 책에서나 어록거리가 발굴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은 많은 시간을 투여해 재미있게 읽었지만 단 한 줄도 어록거리를 찾지 못할 때도 있는 반면, 별로 기대하지 않고 들었는데 뜻밖에 삶의 청량제가 될만한 글을 무더기로 발견하는 책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고씨는 한 책에서 3개 이상의 어록을 인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특정 서적에서 어록을 많이 인용하면 ‘책 선전하느냐’는 독자들의 비난이 바로 터져나온다”는 것이다.

    6개월 이상의 ‘히스토리’가 쌓이면서 고씨 나름의 아침편지 만들기의 노하우도 있다. 우선 편지는 1∼2분 내에 읽을 수 있게 간략하게 해야 한다는 것. 이보다 길어지면 외면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 특정 도서나 이익집단을 홍보하는 느낌을 줘서도 안된다고 한다. 특히 정치색을 담지 않을 것을 제1의 원칙으로 하고 있다.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시(詩) 같은 감성적인 글을 올리고, 활동이 활발해지는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이성적 글을 올리는 것도 독자들에 대한 고씨 나름의 배려.

    지난 1월21일 고씨는 평이하게 텍스트만 전달하던 아침편지의 관행에서 벗어나 파격을 단행했다. 자신의 얼굴이 실린 사진 3장을 메일에 첨부해 보낸 것. 한 장은 고씨가 지난해 마라톤대회 때 10㎞를 완주하고 골인하는 장면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씨의 아내가 운영하는 음식점 앞에서 청와대 마라톤동아리 식구들과 찍은 단체사진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5년 전 중앙일보 기자시절 한 여성지에 실린 인물 사진이었다.

    고씨는 “평소 ‘얼굴을 보고 싶다’ ‘사진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았는데 ‘못생겼다’고 해도 성화가 그치지 않아 사진을 올려보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난리’가 나고 말았다. 홈페이지에는 독자들의 반응이 실린 ‘리플’이 속속 올라왔다. “관록과 여유로움이 배어있는 모습입니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자상하고 친숙한 모습입니다.” “제 상상 속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뿌듯합니다”. 그의 사진 밑에는 무려 430여 개의 리플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어떤 독자들은 저의 아침편지에 대해 ‘청와대 비서관은 그렇게 할 일이 없냐’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아침편지로 인해 청와대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십니다. 대통령을 따라 해외순방을 갈 경우 미리 독자들에게 며칠간 비운다고 양해를 구하면 ‘열심히 대통령을 잘 보좌하고 돌아오라’는 격려메일도 오고 합니다.”

    아침편지를 평생의 직업으로 삼겠다는 고씨의 포부지만, 직업이라면 노력에 걸맞은 수익이 발생해야 한다. 이에 대해 고씨는 “당장은 수익에 연연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해외네티즌들을 상대로 서비스하는 아침편지에서는 일정기간의 무료서비스 기간을 거쳐 유료화를 검토중이라고 한다. 또 강제하지는 않지만 회원들의 자발적인 성금을 받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한다. 이 경우 성금의 액수 역시 회원들의 판단에 맡길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모두가 미래의 일. 당장은 고씨의 주머니에서 아침편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이 계속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아깝지 않느냐”는 얘기에 고씨는 “오히려 행복과 감사를 느낀다”고 대답했다.

    “제가 청년시절 5년 넘게 기자로 일했던 ‘뿌리깊은 나무’의 고(故) 한창기 사장은 잡지 창간 초기 엄청난 적자를 걱정하는 주위 분들에게 ‘자기가 꿈꿔온, 의미있는 일에라면,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 골수에 깊이깊이 박힌 이 말씀은 이후 저의 인생 행로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인생지침이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요즈음 두 가지 사실에 더없이 깊은 감사와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는, 어찌어찌하다가 ‘고도원의 아침편지’라는 꿈 같고 의미있는 일을 찾아내 하고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여 그 의미있는 일에 태울 수 있는 낙엽이 얼마쯤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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