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다. 그러나 정보가 넘쳐나면서 그 역작용도 만만치 않다. 음란물이 난무하고, 원치 않은 스팸메일로 이메일은 쓰레기통을 방불케 한다. 욕설과 비방으로 가득한 각종 게시판은 또 어떤가. 차라리 인터넷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그러나 오염된 정보의 바다라고 해서 ‘청정구역’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친근한 속담을 첫머리에 내건 ‘고도원의 아침편지’(godowon.com)가 그 대표적 사이트.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네티즌이 찾아오길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인 사이트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네티즌을 찾아나서서 필요한 사람에게 매일 아침 이메일 편지를 보내주는 독특한 사이트다.
‘좋은 책에서 뽑아 좋은 사람들에게 보내드리는 고도원의 아침편지’. 지난해 8월1일, 이런 제목의 메일이 첫 발송된 이후 6개월 지난 현재, 매일 아침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받는 독자는 5만여 명에 이른다. 하루에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까지 회원이 늘어난 결과다.
짧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글과, 이 글에 대한 운영자의 간략한 의견이 실린 이메일, 이 독특한 이메일 서비스를 생각해내고 실천에 옮긴 고도원씨는 현직 대통령 비서관(1급)이다. 청와대에서 그의 임무는 대통령 연설문 담당이다. 1952년생이니까 올해 50세.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하기 전까지 ‘뿌리깊은 나무’ ‘중앙일보’ 등에서 21년간 기자로 일한 언론인 출신이다.
현직 대통령 비서관이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와 이메일 서비스, 단시일에 모인 5만명의 열성적인 회원들, 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인터넷 청정구역…, 화제가 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었지만 당사자인 고도원씨는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던 지난 1월말 “5만 회원이 모인 사이버 커뮤니티를 이제는 더 이상 덮어둘 수만은 없을 것 같다”며 기자의 방문을 허락했다.
고씨가 홈페이지를 연 것은 2000년 5월3일. 평소 꾸준한 독서의 결과 각종 서적에서 골라 모은 어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하기 위해서였다. 고씨의 홈페이지에 오른 어록 데이터는 무려 700여개. 물론 네티즌이라면 아무나 들어와 어록을 퍼갈 수 있도록 사이트를 개방했다. 지적재산은 나눌수록 그 가치가 높아진다는 생각에서였다.
사이트 오픈 초기 하루 방문객은 100여 명 내외였다. 그런데 입소문이 나면서 하루 1000명 이상이 ‘고도원의 아침편지’사이트를 방문하는 등 조회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이트 오픈 1년9개월이 지난 2월 중순 현재 고도원닷컴의 누적 방문객 수는 15만여 명에 달한다.
자신의 사이트를 방문하는 네티즌들이 증가하는 것을 지켜보던 고씨는 한 걸음 나아가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네티즌들을 찾아나서 어록을 서비스하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아침 5만명 독자들에게 찾아가는 메일서비스를 생각해낸 것이다.
“독서를 통해 찾아내는 어록들을 나는 ‘마음의 비타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타민은 한꺼번에 복용하는 게 아니라 매일 꾸준히 먹어야 효과가 크듯, 어록들도 홈페이지에 쌓아놓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하나씩 그날의 정신적 양식이 되도록 독자들에게 보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씨는 2001년 초 홈페이지에 이메일서비스 실시를 공고하고 희망자들의 신청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이메일서비스를 하려니 겁이 덜컥 났다.
“일기 쓰기도 어려운데 매일 빠뜨리지 않고 이메일서비스를 할 수 있을까, 꽤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2001년 여름부터 서비스한다고 해놓고는 차일피일 시행시기를 미뤘습니다. 그랬더니 ‘왜 약속해놓고 안보내주느냐’며 항의 메일이 오는 등 난리가 났습니다.”
할 수 없이 남들 관심이 덜한 여름휴가철을 이용해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8월1일 이메일서비스 신청자와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포함, 1000여 명을 대상으로 ‘고도원의 아침편지’ 첫 서비스를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샘물 같다” “청량음료 같다” “이젠 아침이 기다려진다”는 등 독자들의 반응이 돌아왔다. 아침편지를 보낸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독자들도 많았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받은 사람이 주변 사람의 메일주소를 추천해주면 자동적으로 그 사람에게도 메일이 배달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추천을 통해 늘어나는 새 독자들이 하루에 300∼500명에 달했다. 가장 많을 때는 하루 3600명이나 신규회원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메일서비스 초기, 긍정적 반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비아냥도 없지 않았다. 언론사의 한 친구는 전화를 걸어와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 고도원이 정치하려고 그런다고 씹는 사람들이 있다”며 “당장 그만두라”고 말했다.
그러나 6개월 이상 순수한 정서를 담은 내용으로 아침편지를 꾸려나가자 부정적 반응들은 수그러들었다. 앞서의 언론사 친구도 최근 들어 “대단하다. 인터넷문화의 좋은 모델이 될 것 같다”며 격려했다고 한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