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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있는 문화이야기

삭막한 대한민국에 르네상스는 없다

삭막한 대한민국에 르네상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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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르네상스에서 휴머니즘, 휴머니스트는 예술과 마찬가지로 말이나 글을 권력이나 부자에게 팔아먹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었다. 사실 우리가 휴머니즘이라고 부르는 것이 르네상스 당시에 매우 반동적인 현상이었고 반종교개혁의 불가결한 전제였다고 하는 점은 이미 그람시가 1930년대에 지적했다. 그렇게 보면 학문도 ‘매춘’이 된다. 심지어 휴머니스트란 말은 더욱 속된 의미에서 예컨대 매춘까지도 즐기는 ‘인간적’ ‘세속적’ 또는 ‘쾌락적’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적어도 르네상스에서 휴머니즘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법으로 역사와 문헌을 철저히 존중하는 과학적이고 실용적이며 비판적인 것이었다. 실제로 르네상스 시대 휴머니스트는 정치적 연설이나 법정 변호 또는 편지 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직업적 웅변가나 저술가들로서 중세의 학문에 대한 공격도 자신들의 직업 선전을 목적으로 한 활동에 불과했다. 그런 의미에서 르네상스 시대 정치가나 법률가는 사실 전형적인 휴머니스트였다. 예컨대 알베르티나 마키아벨리가 그랬다. 그러나 ‘신동아’ 기자가 법률가란 이유로 나를 르네상스적 인간이라 부른 것은 물론 아니었으며, 나도 그런 부름은 사양하겠다. 그러나 법률가는 물론 그 어떤 직업인도 르네상스적 인간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야 우리의 정치나 법률이 조금씩 나아질 것이 아닌가.

내가 이해하는 르네상스적 인간이란 단순히 만능의 재주를 지닌 인간이 아니다. 그런 인간이라면 우리가 새삼 살펴볼 필요도 없다. 사실 만능인이란 말보다 보편인이라는 말이 더욱 적합한 번역이다. 보통인, 일반인이라고 해도 무방하나 어감이 좀 다르다. 여하튼 그것은 보편성을 중심에 두고 끊임없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 다양성이란 단순히 잡다한 흥미나 관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지배하는 부조리하고 추악한 현실에 끝없이 저항하면서 언제나 보편성을 추구하고 마지막으로는 유토피아를 그리는 것이다.

여하튼 나는 어떤 이유에서든 르네상스적 인간이 아니나, 그러한 보편인의 즐거운 삶을 지향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이 연재는 알베르티나 레오나르도 같은 보편인의 이야기로 이어질 것이다. 그 전에 먼저 서론 격으로 르네상스에 대해 몇 가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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