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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일기

투르니에, 책에서 만난 나의 스승

  • 이윤기 < 소설가·번역가 >

투르니에, 책에서 만난 나의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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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화에 등장시킬 경우 외국인 학자나 예술가의 이름에 경칭을 잘 붙이지 않는다. 내게도 그런 버릇이 있다. 미국인 교수의 한국인 제자들도 영어로 말할 경우에만 스승에게 ‘프로페서(교수)’나 ‘닥터(박사)’ 같은 경칭을 붙일 뿐, 한국어로 말할 경우에는 그냥 이름만 부르는 예가 허다하다. 나는 미국 대학에 10여 년을 머물렀지만 우리말 대화에서도 반드시 ‘교수’나 ‘박사’를 붙여서 부르는 미국인은 딱 한 사람 뿐이다.

그런데 이렇도록 경칭을 챙겨 붙이는데 게으른 나에게,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선생’을 붙여서 부르는 프랑스 작가가 있다. ‘미셀 투르니에 선생’이 바로 그분이다. 여러 권의 책을 통해서 내가 일방적으로 사랑하게 되었을 뿐, 미셀 투르니에 선생과는 일면식도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나는 투르니에라는 이름 뒤에 선생이라는 경칭을 붙이는 행복한 수고를 거르지 않으려고 한다.

지난 겨울, 외국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딸아이가 짧은 겨울방학을 맞아 귀국했다. 방학을 지내고 돌아가기 직전 딸아이는, 전공과 관계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좋으니 한국어로 쓰여지거나 번역된 책 중에서 전범(典範)으로 스승삼아 외국에서 읽을 만한 책이 있으면 추천해달라고 했다. 나는 내 서가에 꽂혀 있던 미셀 투르니에 선생의 책 ‘짧은 글 긴 침묵’(김화영 옮김, 현대문학)과 ‘예찬’(김화영 옮김, 현대문학북스)을 딸에게 건네주었다. 딸에게 책 선물하면서 기쁘지 않을 아비가 없겠지만 내 기쁨은 각별했다.

저자와 역자가 각각 투르니에 선생과 김화영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철학자이자 작가인 투르니에 선생의 책을 읽으면 철학하는 내 딸의 철학적 눈썰미나 생각이 깊어질 터이고, 시인이자 평론가인 김화영 교수의 번역문을 읽으면 글쓰기를 겨냥하는 내 딸의 문학적 감수성이나 말의 결 다루는 솜씨가 그만큼 섬세해질 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은 축복이다.

투르니에 선생이 누구인가? 1924년생이니 만 78세 노인이다. 질 들뢰즈, 미셀 푸코 같은 분들과 함께 소르본에서 철학을 공부한 철학자이자 마흔 셋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발표, 소설가로 등단하면서 그 해의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소설 대상을 받을 정도로 역량이 뛰어난 소설가다. “미셀 투르니에에게 노벨상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투르니에의 영광이 아니라 노벨상의 영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프랑스 문학에서 그가 차지하는 자리는 높고도 우뚝하다.



하지만 나는 번역 이야기부터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투르니에 선생은 철학자, 소설가인 동시에 훌륭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투르니에 선생의 책을 여러 권 번역한 김화영 선생 역시 시인이자 불문학자이자 평론가(‘ 문학평론가’라고 하지 않은 것은 ‘미술평론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인 동시에 번역가이기도 하다. 나 역시 소설가 행세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좋은 번역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투르니에 선생이나 김화영 선생의 글을 읽을 때 특별히 옷깃을 여미고 처음부터 각별한 경의를 표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것이 편견이라면 나는 행복한 편견이라고 부르겠다.

번역에 대한 투르니에 선생의 재미있는 이야기. ‘예찬’에다 붙인 김화영 선생의 역자 후기 ‘2000년 정초에 만난 미셀 투르니에’라는 글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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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 소설가·번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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