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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ㅣ 정년퇴직 외교관 3인의 회고담

카터정권 설득 도운 도고 주미일본대사와의 인연

  • 권병현 <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

카터정권 설득 도운 도고 주미일본대사와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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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은 뼈아픈 김대중 납치사건과 가슴에 사무치는 문세광 사건을 완전히 묶어 패키지로 봉합하고, 일본 국회가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 협정을 비준한 것을 계기로 한일관계를 굳건히 다지려고 했던 것 같다. 이렇게 공고히 다진 한일 선린우호관계를 통하여 불편한 대미관계마저 돌파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대통령은 한일 국민들이 서로 반감으로 들끓고 있는 와중에서 한일 안보협력을 증진할 대담한 구상을 갖고 구체적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이는 한일안보의원연맹을 구성하여 양국 안보협력을 강화하려는 구상이었다. 한일안보의원연맹을 만들어 나가는 핵심세력은 과거 일제시대에, 같은 군복을 입고 같은 군가를 부르던 한일 양측의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역시 일본군 장교였던 박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전면에 나섰다.

한국 측은 중진의원이며 국군 원로인 문형태 의원을 주축으로 정래혁, 최경록, 장지량, 장성환 의원을 앞세웠고, 일본측은 자민당 보수우익 본류인 후쿠다파의 사카다 미찌다(坂田道太·당시 방위청장관으로 후에 중의원 의장을 지냄), 에자키 마즈미(당시 자민당 3역의 하나인 정조회장을 역임), 겐다 미노루(하와이 진주만 공격 작전계획을 입안한 일본군의 신화적 존재) 등 거물급이 전면에 나섰다.

그 배후에는 후쿠다 총리와 함께 일본 정계의 괴물 야인으로 알려진 야스기 가즈오씨가 막후 역을 담당했다. 야스기 가즈오씨는 2차대전 때 중국에서 암약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한국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와 이른바 ‘호랑이’ 논쟁을 벌였던 한일 수교의 막후 인물이었다. 그는 한일관계에는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가진 일본 보수세력의 재야 보스라 할 만한 인물이다.

요시다, 기시, 사토, 후쿠다로 이어지는 일본 보수의 본류는 박대통령의 집권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일회담 과정에서 청구권 자금, 재일동포 법적 지위문제, 평화선과 어업문제 등등 복잡하게 얽힌 현안들을 일괄타결하면서 국교정상화를 이루어냈다.



당시 한일 안보족 의원들이 빈번하게 오고가며 양국간의 선린우호를 안보 협력의 차원으로 한단계 발전시킬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일본측에는 보수 본류의 배경을 업은 안보족 정치인들이 있었고, 한국에는 박대통령을 위시한 구 일본군 출신 정치인들의 군맥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때가 양국의 인맥이 절묘하게 어울려서 한일 양국 협력관계가 정점을 이룬 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했다. 일개 정무과장으로서 나는 한일 양국민 간에는 연령과 계급이 파괴된 허물 없는 접촉과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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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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