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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ㅣ 정년퇴직 외교관 3인의 회고담

권력 눈치 보는 외교관에 외교정책은 공염불

  • 이동진 < 시인, 전 주나이지리아 대사 >

권력 눈치 보는 외교관에 외교정책은 공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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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 근무를 처음 시작한 곳은 의전실 여권과였다. 난생 처음으로 월급봉투를 받은 것은 9월 말. 액수는 8900원. 쌀 세 가마에 해당했다. 꽤 많은 것 같아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일반회사에 다니던 친구들의 월급이 3만원 선이었으니 말이다. 첫월급을 받아 난생 처음 현재의 을지로 입구인 구리개에 몰려 있던 양복점에 가서 겨울 양복 한 벌을 맞추었더니 값이 1만2000원이라고 했다.

속으로 놀랐다. 한숨도 나왔다. 공무원 월급이란 여물값이라고 누군가 한 말이 떠올랐다. 말이나 소를 먹이는 여물을 마련할 정도밖에 안된다는 말이다. 월급이 여물값이라면 공무원은 닭이나 돼지란 말인가. 그런 공무원들을 거느리는 지도자는 그러면 동물농장 주인인가. 동료들 간에 그런 우스갯소리도 나왔던 시절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끔찍한 소설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월급이 얼마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대부분이 가난하던 시절이라서 가난은 큰 수치가 아니었다. 가난은 불편할 뿐이라는 격언도 믿었다. 오히려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경제건설의 일부분을 담당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거의 날마다 점심과 저녁을 자장면으로 때워도 불평하지 않았고 야근도 이틀이 멀다 하고 했다. 외국서적이나 잡지가 귀한 때라서 영어로 된 문서나 책을 만나면 닥치는 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때는 외국어 공부를 위한 테이프조차 귀했다. 그러나 부지런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조였다. 그런 것이 몸에 배어 나의 31년 외교관 생활을 지배했다.

외교관에게는 영어와 제2외국어가 필수무기다. 가능하면 제3외국어도 잘하면 금상첨화다. 대부분은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겠지만, 문제는 직원별로 외국어 실력을 공정하게 평가해서 적소에 쓰는가에 달렸다.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나라에 그 나라 언어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을 대사 이하 대사관 직원으로 파견하는 것은 예산과 인력의 낭비라고 본다.



주재국을 잘 이해하고 성공적으로 교섭하려면 그 나라 언어에 불편이 없어야 효과적이라는 것은 기본상식이다. 봄과 가을에 해외 보직을 정할 때마다 이 점에 관해서 한층 발전적으로 인사를 한다는 말이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프랑스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해서 합격했지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한 번도 파견된 적이 없다.

대사로 처음 임명될 때 사실 나는 로마교황청 주재를 희망했다. 가톨릭신학교에서 라틴어를 4년간 공부했고, 로마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할 때 이탈리아어를 불편 없이 사용한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나의 대사 부임지는 나이지리아로 낙착됐다.

반면에, 영어 실력만 가지고 외교관의 자질을 평가하려는 지금까지의 고질적인 악습은 고쳐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영어가 국제공용어 성격을 지니고 그만큼 중요하다고 해도, 영어를 잘하는 것과 외교관으로서 훌륭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다. 양쪽을 겸비하는 인물도 없지는 않지만 드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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