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통신과 무선통신의 양대 영역에서 선도적인 입지를 구축한 에릭슨은 1990년대 들어 이동통신과 인터넷 혁명을 계기로 세계적인 우량기업으로 도약했다. 특히 이동통신 기지국 등 장비부문에서는 루슨트, 모토롤라, 노키아 등을 제치고 세계 최대 기업으로 부상했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휴대전화 신호의 40%가 에릭슨의 이동통신 장비를 통해 이뤄진다고 할 정도다.
에릭슨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비동기식 3세대 이동통신(WCDMA)을 주도하며 21세기 세계 최고 통신기업으로의 웅비를 준비하게 된다. 1999년에는 CDMA의 원조격인 미국 퀄컴사의 이동통신 장비부문마저 인수하면서 GSM(유럽에서 시작되어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화한 이동통신 방식)과 CDMA(한국을 비롯한 환태평양 지역에서 사용되는 이동통신 방식)를 아우르는 전방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인터넷과 이동통신 붐이 시작되던 1995년, 에릭슨의 주가는 주당 2달러(주식분할과 배당금을 조정한 ADR 가격 기준)였다. 하지만 2000년 3월 초에는 주당 26달러로 올라 에릭슨은 시가총액 2100억달러의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스웨덴 GDP의 8%를 담당하는, 글자 그대로 국민경제를 지탱하는 ‘국가대표 기업’이 된 것이다.
스웨덴의 또다른 간판기업인 볼보가 미국의 포드에 인수되는 상황에서도 IT산업의 거인 에릭슨은 건재를 과시하며 스웨덴의 자존심을 지켰다. 에릭슨은 3세대 이동통신의 경쟁력을 발판으로 4세대 이동통신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블루투스(Bluetooth)와 같은 새로운 통신기술의 주도권을 확보하면서 세계 통신산업의 중심축을 형성했다.
잔치는 끝났다?
버블(Bubble)은 기대가 기대를 낳는 몰입의 과정에서 발생한다. 역사상 최초의 버블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튤립 버블(Tulip mania)로 알려져 있다. 1635년경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의 구근 가격이 하룻밤에도 2∼3배씩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격거품이 빠졌지만, 멋모르고 여기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꽤 오랜 기간 동안 경제적 후유증을 겪었다. 이후에도 철도버블, 방송버블, 전기버블 등 신산업의 태동은 항상 버블과 더불어 시작되곤 했다.
통신산업의 위기도 인터넷붐에서 촉발된 과도한 기대에서 비롯됐다. 통신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믿음이 확산되면서 인터넷 신천지를 꿈꾸는 수많은 통신서비스 업체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거품 가득한 주식시장에서 유입된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앞다퉈 광통신망 부설에 뛰어들었다. 수요나 경쟁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현금이 부족하면 주식이나 회사채를 발행하면 됐고, 그것도 어려우면 통신장비 업체에게 자금융통을 요청하면 해결됐다.
이동통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연간 40%이상 성장하던 시장환경을 근거로 미래 수요에 대한 예측은 하루가 멀다 하고 널뛰기를 거듭했다. 가령 2001년의 수요에 대해 1999년 말에는 약 2억2000만대 정도로 전망했지만, 2000년 초가 되자 6억대 수준으로 상향 조정했다. 업체들은 누구나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하고 화상통신을 하는 미지의 세계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누구도 이러한 장밋빛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기에 유럽의 거대 통신기업들은 3세대 이동통신 주파수 경매에서 무려 12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써넣었다.
이처럼 과도한 투자는 공급과잉과 기업의 부채확대로 이어지며 업계의 채산성을 옥죄기 시작했다. 공급과잉은 특히 광통신 부문에서 극심했다. 북미에서만 2000억달러 이상이 과잉투자되어 장거리 광통신망의 경우 전체 용량의 4∼7%만 사용할 정도였다. 기업들이 기술발전 속도와 시장증가 속도를 함께 고려하지 않아 생긴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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