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호

총리는 정치적 거래 대상 아니다

한국식 인사청문회, 이대로 좋은가

  • 글: 이종수

    입력2002-10-04 11:0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인사청문회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우리 사회의 내로라하는 지도층 인사 두 사람이 청문회의 검증대에서 낙마하고 말았다. 청문회는 민심을 움직였고 민심을 좇아 국회는 이들의 인준을 거부했다. 뜻하지 않은 청문회의 파괴력에 정치권도 국민들도 어리둥절하고 있다. 까다로운 통과의식 청문회, 과연 문제는 없는가. 그리고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1787년 미국의 제헌의회는 고위 공무원들의 임명권을 누가 보유해야 하는가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국민의 대표기관이자 견제기관인 의회가 임명권을 가져야 한다는 쪽과 정부운영의 책임자인 대통령이 가져야 한다는 쪽 사이에 논란이 불거진 것이었다. 결국 양측의 타협은 미국헌법 제2조 제2항으로 귀결되었다. ‘대통령은 임명하고, 상원은 인준(confirmation)한다’는 원칙이다.

    역사적으로 인사청문회는 미국이 발전시킨 제도다. 그것은 대통령제라는 정치체제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내각책임제를 채택한 유럽의 대다수 국가에서는 의회가 내각의 구성 자체를 장악하기 때문에, 인사권에 대한 견제를 목표로 하는 청문회가 필요치 않다. 공직후보자의 부정이나 부패, 자격에 대한 검증은 경찰이나 정보기관, 언론에 의해 철저히 이루어지고 있다.

    총리는 정치적 거래 대상 아니다
    미국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면, 약 6000여 명의 정부관리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 가운데 14명의 장관, 400여 명의 차관보급 군장성, 100여 명의 연방검사 연방대법관, 160여 명의 대사, FBI국장, CIA국장 등이 상원의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이들의 국가관, 학력, 경력, 납세, 재산, 병역, 사생활 등에 대해 상원의 상임위원회는 광범한 서면조사와 청문조사를 벌인다. 대부분 관례가 된 인준과정을 형식적으로 거치게 되지만, 핵심요직에 해당하는 약 10%의 공직후보자들에 대해서는 인준과정이 대단히 까다롭다.

    대통령이 임명할 공직후보자에 대한 사전 검증은 백악관 법률고문실이 맡는다. 우리의 민정수석실과 같은 기능이다. 충분한 조사가 가능하도록 인선 한 달 전에 FBI와 정부 윤리처에 정밀조사를 의뢰한다. 이 과정을 통해 불법행위 등 법적 사실관계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진다. 우리처럼 위장전입이나 투기 등을 둘러싼 위법성 여부의 사실관계가 청문회에서 논란이 될 가능성은 없다. 정치적인 지지 및 인준통과를 위해서는 의회와 이익집단 지도자들의 의견을 구하고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대통령의 지명을 상원의 상임위원회가 검토한 후 상원 본회의에 회부하여 인준여부를 결정하는 데에는 평균 9주가 걸린다. 길게는 22주가 걸리는 경우도 있다. 1987년 레이건 대통령이 CIA국장으로 로버트 게이츠를 임명할 계획이었으나, 청문회의 인준문제로 철회하고 말았다. 1989년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존 타워가 국방장관으로 지명되자 상원 인준청문회가 인준안을 부결시키는 사태가 벌어졌다. 상원 국방위원장을 역임한 타워는 과거 군수조달 비리에 연루된 바 있고, 지나친 폭음 습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제1기 클린턴 정부(1992~96년)에서 백악관 안보수석으로 일하던 앤서니 레이크는 1997년 제2기 클린턴 정부의 출범과 함께 CIA국장 지명을 받았다. 그러나 무려 7개월 간에 걸친 검증과정과 시비를 견디지 못해 지명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2001년 W 부시 행정부에서 노동장관에 지명되었던 린다 샤베스는 불법이민자를 가정부로 고용한 사실이 문제돼 스스로 지명을 포기했다.

    한국에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0년 6월23일의 일이다. 당시 임명동의안이 제출되어 있던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서리에 대한 특별위원회도 이 법에 의한 인사청문회로 본다고 부칙에 명기하며 서둘러 도입된 법률이다. 이한동 서리 인준안은 찬성 139, 반대 30, 기권 및 무효 3표로 통과되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것도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 성격을 띠고 있다. 부정과 부패 혹은 국정관리능력에 대한 검증은 내용적인 구성요소일 뿐, 청문회 제도의 도입 모멘텀은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에 있다. 그후 인사청문회법은 2002년 3월7일 개정되어, 이한동 총리 후임으로 지명된 장상(張裳) 이화여대 총장과 장대환(張大煥) 매일경제신문 사장을 청문의 대상으로 맞게 되었다.

    장상 서리에 대한 인준안은 7월31일, 장대환 서리 임명안은 8월28일 각각 부결되고 말았다. 장상 서리는 허위 학력 표기와 재산증식과정에서의 의혹, 그리고 위장전입 혐의를 떨치지 못했고, 장대환 서리는 자식의 위장전입과 증여세 탈루 의혹을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했다. 또한 ‘3弘부패’로 일컬어지는 대통령 일가의 비리와 권력층의 부패에 일반 유권자들이 분노했고, 전통적인 DJ 지지자들마저 팔짱을 끼고 있는 상태였다. 그 좌절과 분노만큼 공직자의 청렴성에 대한 기대는 높아져 있었던 것이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장대환 서리까지 모두 37번에 걸친 총리인준 동의나 승인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경우는 모두 8차례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만 5차례나 있었는데 당시는 정치적으로 혼란기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총리인준이 잇따라 부결된 것은 1952년 10월 이윤영(李允榮), 같은해 11월 이갑성(李甲成)씨 이후 50년 만의 일이었다.

    최근 두 번의 청문회를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부정과 부패를 총리가 뒤집어쓰고 있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사실 총리라는 직위는 그만큼 혹독한 비판과 청문의 대상이 되기에는 억울한 자리다. 짧은 재직기간이나, 대통령제에서 얼굴마담 역할에 불과한 권한을 생각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최근까지도 총리는 기껏 ‘대독총리’ ‘방탄총리’ ‘의전총리’에 불과했다. 헌법과 정부조직법에 보장된 총리의 권한은 형식적인 요소가 적지 않고 사실상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에 국한되어 있다. 대통령제에서 내각책임제적 요소를 접목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총리이다 보니 태생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가문의 영광’을 위한 고난

    총리서리가 혹독한 부패와 부정의 의혹을 덮어쓰고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또 있다. 총리 못지않은 힘을 지닌 검찰총장, 경찰총장, 국가정보원장 같은 권력기관의 장에 대한 비판과 검증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같은 선출직 고위공직자에 대한 검증의 수준에 견주어 생각할 때도 그렇다. 어떤 시민은 청문회를 보면서, 개인의 명예 혹은 안동수 전 법무장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모를까 왜 저런 꼴을 당하느냐며 혀를 찼다.



    장상씨와 장대환씨의 인준안이 부결된 이후 말들이 많았다. 일차적으로 지적된 부결의 이유는 두 총리지명자의 도덕성 시비. 위장전입, 재산증식, 불법대출, 자녀의 외국국적 취득 등이었다. 두 지명자의 대응태도도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어떤 이들은, 장상씨가 솔직히 과오를 시인하고 대범하게 양해를 구했으면 통과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장대환 서리 다음으로 청문회에 섰더라면 충분히 인준을 받았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여성계와 이화인들의 아쉬움은 극에 달했다. 이와 반대로, 그녀의 모습에 인간미가 없고 관료적이어서 거부감이 든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장대환씨의 경우는 장상씨보다 부드럽고 겸손하며 신사적인 인상을 주었다. 앞선 장상씨의 청문회에서 얻은 교훈에서 비롯된 전략일 수도 있다. 시청자들이 ‘저렇게 (장대환씨를) 추궁하는 의원들은 뭐가 더 나을 게 있어 저런 말을 내뱉을까’하고 느낄 정도의 인신공격성 추궁에도 그는 직접적인 반격을 삼갔다. 대신 “저는 이 나라의 평균적 정의의 수준은 된다”고 항변했다. 표현은 부드러웠지만, ‘국회의원 당신들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을 건 없는 사람들 아니냐’는 힐난같이 들렸다.

    장대환씨의 경우는 장상씨의 경우보다 ‘돈의 규모’가 훨씬 컸기 때문에 장상씨가 부결된 마당에 통과시켜주기가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여성단체들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individual) 행위와 전략의 틀로 최근의 인준부결 사태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보다는 구조적(structural) 접근이 훨씬 용이하고 정확하게 사태의 본질을 설명해준다. 후보자의 도덕성과 대응태도가 개인적 행위의 차원이라면, 대선과 병풍(兵風) 그리고 정권말기는 인준부결사태를 설명하는 구조적 차원의 개념들이다. 언제나 개인적 행위의 차원과 구조적 차원이 결합되어 사회현상을 출현시키는 것이지만, 구조적 차원의 요소들이 인준안 부결사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부패와 부정의혹에 대한 민초들의 분노는 이러한 구조적 요인의 바탕이었을 뿐이다.

    구조적 측면에서 보자면, 장상씨와 장대환씨에 대한 인준부결은 이미 예정된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수가 넘는 139석을 보유한 초유의 여소야대 상황, 12월로 예정된 대선을 향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파워게임, 이회창(李會昌) 후보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을 둘러싼 여야의 정면대결, 정권말기 김대중(金大中) 정권의 권력누수와 이완현상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장상씨와 장대환씨가 역대 총리들보다 도덕성에 하자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정치인 출신의 그 어떤 총리들보다 이들은 부정과 부패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적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회와 대선을 앞둔 대결정국이 여당과 청와대에 타격을 가하고 말았다. DJ정권의 권력누수 현상 탓에 여당 내부로부터의 이탈도 제어하지 못했다. 장대환 서리에 대한 표결 결과 투표의원수 266명에, 찬성 112표, 반대 151표, 기권 및 무효 3표였다. 장상 서리의 경우는 총투표 의원수 244명, 찬성 100표, 반대 142표, 기권 및 무효 2표였다. 장대환 서리에 대한 표결 결과, 한나라당을 빼고도 13표나 되는 반대표가 나왔고 이 가운데 7표 정도는 민주당에서 이탈한 반란표였을 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총리는 정치적 거래 대상 아니다

    장상 전 총리서리는 '만약 장대환씨 다음으로 청문회에 나섰다면 총리인준을 받았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총리서리 인준안이 연거푸 부결되자 청와대는 국가신인도의 추락을 우려하였다. 박선숙(朴仙淑) 청와대 대변인은 “총리 임명동의가 거듭 부결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김대통령은 흔들림 없이 국정을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발표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청와대의 오기인사를 성토했다. 야당을 고려하지 않는 안하무인식 정실인사가 빚은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DJ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박지원(朴智元) 비서실장에 대해 야당은 의혹을 품고 있다.

    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 청문회에서 부결된 사건이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청와대의 설명도 민초들의 판단과는 거리가 있는 주장이다. ‘국가신인도’는 외국과의 거래관계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가뜩이나 지도층의 부정과 비리문제로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국가신인도’ 하락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국내적으로는 오히려 인준안이 통과되었다면 더 큰 탄식과 좌절감이 팽배하였을 것이다. 내용적으로 보더라도 그렇다. 한국은 부패가 아직도 온존하는 사회로 평가되어 왔는데, 청렴하지 못한 총리후보가 인준거부되었다면 국가신인도는 올라갈 가능성이 더 크다.

    정치적 역학구조에서 인준안이 부결되었지만, 청문회가 남긴 사회적 여운은 적지 않다. 야당이나 청문회 위원들이 의도했든 아니든 청문회는 잔잔한 미풍을 일으켰다. 부패와 부조리가 이미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풍미한 상태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민초들이 발견한 것이다. 임명직이든 선출직이든 이제는 부패문제를 통제할 수 있다는 단초를 발견한 셈이다. 연이은 권력층의 부패스캔들로 입은 상처가 조금은 치유되는 카타르시스 효과도 있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 특히 공직을 희망하는 엘리트들은 평생에 걸쳐 자기관리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와 기대도 명백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확인되었다. 정치적 입신을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불법과 부패에 연루되지 않도록 일찍부터 자기관리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투명성이 점차 정치권으로 스며들고, 나아가 경제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 한국사회는 부패의 악순환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총리는 정치적 거래 대상 아니다
    청문회 제도는 앞으로 정부의 인사관리와 정책의 일관성, 안정성에도 바람직한 기여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장관의 수명은 오뉴월 파리 목숨과도 같다. 박정희 정권시절 23.4개월이던 장관의 평균 재임 기간은 전두환 정권 17.4개월, 노태우 정권 12.3개월, 김영삼 정부 10.9개월, 김대중 정부 10.6개월로 줄어들어왔다. 현정부에서 김태정 법무부장관이 15일, 안정남 건교부장관이 22일, 송자 교육부장관이 24일의 재임기록을 남겼다. 안동수씨는 불과 43시간 동안 법무장관이었다. 이렇게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이 짧은 이유는 대통령이 장관경질을 정국전환용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집권자가 자신의 ‘정치적 빚’을 갚는 데 장관직을 널리 배분한 것도 평균 재임기간을 단축하는 데 한몫했다.

    장관의 숨가쁜 교체는 장관 차원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휘하의 고위 공직자들 역시 따라서 춤을 춘다. 대한민국 경찰청장의 평균 재직기간은 13개월이다. 각 부처 실국장의 평균 재직기간 역시 11개월 21일밖에 안되고, 과장의 평균재직 기간은 13개월 23일이다. 적어도 한 조직의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예산의 한 사이클을 돌아보아야 한다. 최소한 1년은 되어야 자신의 비전과 전략을 구사하고,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실태파악도 하기 전에 자리이동을 거듭해야 하는 현실에서, 국정의 안정성이나 연속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속에서 어떤 업무의 전문성 심화를 도모하기는 더욱 어렵다. 실무선에서 아무리 연속성과 전문성을 제고하려 해도, 윗선에서 쉴 새 없이 교체가 이루어지니 중간과 아래에서 안정을 찾기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막 도입되어 두 명의 총리서리를 낙마시킨 청문회 제도는 국정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엄격한 청문회를 통과한 총리나 장관을 대통령이 파리 목숨처럼 희생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도덕적, 정치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고 업무수행 능력까지 검증받은 각료들은 더욱 더 확고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소신을 펼칠 수 있게 된다.

    통과의례로 전락할 수도

    그런데 최근 열린 두 번의 청문회는 그 운영과 제도에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가능성을 안고 있는 만큼 개선해야 할 문제점도 많이 내포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의 청문회 제도가 발전하기 위해 요청되는 개선과제를 몇 가지 정리해보기로 하자.

    첫째, 국회 청문회의 구성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인사청문회는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 특별위원회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위원은 당연히 국회의원으로 구성된다. 의석비율에 따라 각 정파로부터 추천을 받아 국회의장이 선임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청문회가 정파간 암묵적인 거래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가 부족해 증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할 가능성도 높다. 현재와 같은 여소야대가 아니라면, 한국의 정치풍토에서 청문회는 통과의례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단 한 명일지라도 시민단체나 학계 대표가 청문회 위원으로 참여하면 국민들의 뜻이 좀더 잘 반영될 뿐 아니라 청문회 위원들의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법과 인사청문회법을 보완해야 한다.

    둘째, 기간의 문제다. 현재의 ‘인사청문회법’ 제9조(위원회의 활동기간 등) 제1항은 ‘위원회는 임명동의안 등이 회부된 날부터 15일 이내에 인사청문회를 마치되, 인사청문회의 기간은 3일 이내로 한다(개정 2002. 3.7)’고 규정하고 있다. 청문회 기간의 연장이 능사는 아니지만, 일단 이 기간은 연장할 필요가 있다. 위원회가 5일 이내에 청문회에 착수할 것을 담보해야 하고, 그 시한은 6개월 정도로 열어줄 필요가 있다. 그러면 대부분의 청문회는 며칠 이내에 종결되고, 문제가 심각한 경우 시일에 쫓겨 청문활동을 제대로 벌이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간의 연장은 사안의 중요성에 따라 청문활동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지, 기간의 연장이 내용적 깊이와 효율성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조사권한의 확대다. 장대환 서리에 대한 청문회가 시작되자마자 야당은 국세청에 대한 증인채택과 자료요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호소했다. 개인의 조세자료가 유출될지도 모른다는 게 자료제출 거부의 표면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청문회에 나오는 공직후보자의 중요한 전력 가운데 하나인 조세문제를 청문회에서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면, 청문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는 더욱 어렵다. 안보와 프라이버시에 관한 내용은 비공개로 하되, 청문회가 자료를 입수할 수 있도록 제도적 권한을 최대한 부여하고 그러한 관례를 축적해가야 한다. 경찰이나 검찰, 정보기관의 사실관계에 관한 기록 역시 청문회에 열려 있어야 한다. 후보자의 경력과 전력에 관한 사실관계, 법적인 해석에 대해서는 국가의 수사, 정보기관 기록을 통해 대부분 확인할 수 있어야 비로소 국회 인사청문회는 대상자의 정책능력을 검증할 수 있게 된다. 인사청문회 단계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공방이 벌어지고, 여야간 정쟁으로 이어지는 한 온전한 청문회 활동은 정착되기 어렵다.

    넷째, 청문회의 운영에 관한 문제다. 최근 열린 두 번의 국회 인사청문회는 전체적으로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 청문회가 체계적이고 종합적이며 내실 있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위원간 역할분담이 필요할 것이다. 새로운 사실도 아니고 이미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을 서로 재탕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위원간 역할분담이 균형적으로 이루어지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운영을 체계화하기 위해서는 청문활동을 위한 연구도 필요하다. 예컨대 청문활동을 위한 주요지표를 개발하고 정리하는 일이 그것이다.

    참여연대는 인사청문회의 시작에 앞서 인사평가서를 발표한 바 있다. 참여연대가 주목한 지표는 ▲ 국정수행 및 통합조정능력 ▲ 민주주의에 대한 소신과 개혁성 ▲ 도덕성과 신뢰성 등이다. 주요부문을 체계화하고, 그에 따라 하위개념 및 지표를 개발한다면 청문회에 임하는 위원들의 준비에도 도움이 되고 상호간 역할분담도 효율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다섯째, 여야간 총리를 ‘서리’로 임명하는 방식을 두고 정치권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여당은 서리를 우선 지명하여 국정을 수행토록 하는 방식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은 서리제도에 반대한다. 과거 총리를 정국전환용으로 임명해온 데서 생긴 잘못된 관행일 뿐이므로 대행체제를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정부조직법 제22조는 ‘국무총리가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재정경제부장관이 겸임하고 있는 부총리, 통일부장관이 겸임하는 부총리의 순으로 그 직무를 대행하고…’라 규정하고 있다. 법은 총리대행의 지명요건을 ‘사고’로 규정하는 셈이다. 이 경우, ‘궐위’가 사고의 개념에 포함되느냐가 논쟁의 핵심이다. 사고는 넓은 의미의 부재를 총칭한다는 쪽과 헌법 71조에서는 사고와 궐위가 구별되어 있기 때문에 포함될 수 없다는 입장으로 갈려있다. 각자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민주당은 후자를, 한나라당은 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조직법 제22조의 ‘사고’ 개념에 대한 해석에 앞서 법리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인준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대행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타당하다. 앞으로 심층적인 청문활동을 엄격하게 진행하기 위해 청문회 기간을 연장할 경우 대행체제를 관례화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아예 모호한 정부조직법 제22조를 보완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부끄럽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대단히 부패한 나라에서 살아왔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청렴성에 대한 평가에서 한국은 매번 최하위 그룹으로 평가돼 왔다. 그만큼 우리는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신뢰할 만한 깨끗함과 청렴성을 가꿔오지 못했다. 최근의 대통령 주변 권력층의 뇌물사건에서 보았듯이, 부정과 부패야말로 국민정신을 황폐화시킨다.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좀먹는 주범이 된다.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의 부패를 이미 일종의 무역장벽으로 간주하고 제재와 불이익을 주려 하고 있다.

    지난 봄학기 핀란드에서 친구 교수 두 명이 필자를 방문한 적이 있다. 대학원 학생들에게 특강을 부탁하며 필자는 그들에게 강의주제로 정부의 투명성을 권하였다. 그러자 막막한 표정을 짓던 그들을 필자는 잊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그러한 주제를 생각해보지도 않았으며, 핀란드에서는 별로 이야기하지도 않는 주제일 뿐더러 대학교수들인 자신들도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아하, 핀란드는 진실로 TI평가 투명성 1위 나라임에 틀림이 없구나 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대선이 가까워오면서 각종 풍(風)이 난무하고 있다. 북풍, 총풍, 세풍, 병풍 등 종류도 다양하고 그 위력도 엄청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그것이 결정적으로 대선 결과에 작용할 가능성은 없다. 한국은 진실을 규명할 메커니즘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중심을 잡아야 할 검찰과 경찰은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고, 정치권은 근거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설(說)로써 맞불을 놓아 정쟁으로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규명할 메커니즘이 없기 때문에, 이 나라에는 억울한 사람들이 그리도 많이 살고 있고, 어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피해자가 되고마는 것이 현실이다.

    최소한 청문회는 우리 사회 지도층의 전력과 과거를 복기하고, 잘잘못을 규명하는 장치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과거에 대한 바른 규명은 미래에 벌어질 사건에 대한 예방과 개선의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부정과 부패의 유혹으로부터 자제력을 발휘해야 할 필요성을 크게 일깨운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청문회를 발전시켜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앞으로 선거만으로 모든 것을 검증한 것으로 간주하던 국회의원 선출에도 청문회의 요소를 도입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청중동원과 형식적인 진행으로 얼룩지기 십상인 합동유세 대신 청문회의 검증요소를 도입함으로써 도덕성과 정책능력을 확인하는 방안을 고려해봄직 하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