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방위산업의 쾌거’라는 찬사를 들으며 지난해 대우조선이 방글라데시에 판매한 2300t 프리깃함. 그러나 지난 8월8일 방글라데시의 전 총리와 해군참모총장 등이 이와 관련한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되면서 이 사업에 대해 의혹의 눈길이 집중되고 있다.
- 방글라데시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대우조선이 방글라데시에 판매한 반가두함과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된 하시나 전 촐리.
국방부도 총력 지원
반가반두함의 취역은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국내 업체로는 최초로 외국에 수출한 1억달러 상당의 대형 전투함이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해군에 배를 인도하던 지난해 5월25일 대우조선 측은 “이번 수출은 회사의 전투함 건조 경험과 국방부, 해군, 현지 대사관 등 정부차원의 세일즈 외교가 이뤄낸 합작품으로 강대국이 독점해온 전투함 수출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국내 일간지들이 ‘국내 최초 전투함 수출’ 등의 제목으로 이 사실을 보도했다.
이 프리깃함 수출에는 특히 우리 국방부의 역할이 컸다. 당초 방글라데시 해군은 대우조선이 이 정도 규모의 대형함을 수출한 경험이 없다는 점을 들어 대한민국 해군의 보증을 요구해 우리 국방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해군은 방글라데시 측이 요청한 항해 요원들의 위탁훈련 등을 수락해 대우조선을 간접지원했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대사관에 해군 대령을 무관으로 파견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방글라데시 해군장교를 우리 해군의 UDT 신병훈련캠프에 참가시키는 등 양국의 군사교류를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날 이후 반가반두함 판매는 ‘유기적인 민관 협동에 의한 성공적인 방산수출 사례’로 군수업계에 회자되었다.
그러나 축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년여가 지난 올해 8월8일,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방글라데시로부터 터져나온 것. 방글라데시 총리 직속 부패방지국(Bureau of Anti-Corruption)은 지난 1995년부터 시작된 이 프리깃함의 구매과정에 비리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부패방지국은 하시나 전 총리, 이슬람 전 해참총장, 아자드 당시 해군 작전부장, 실무 담당자였던 라시드 준장 등을 경찰에 고발했다. 관련된 군인들은 강제 퇴역조치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들은 대우조선의 로비를 담당한 압둘 아왈 민투 전 상공회의소연합회 회장의 청탁을 받고 대우조선이 계약을 따낼 수 있도록 당시 정부 내 인맥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프리깃함과 관련해 방글라데시에서 잡음이 흘러나온 것은 지난 2월부터. 방글라데시 국방부는 “반가반두함의 수중음파탐지시스템에 이상이 있어 정상가동이 불가능해졌다”며 “폐기가 불가피해 대우조선에 배를 반환하겠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우리 국방부는 곧바로 “방글라데시 국방부의 성명은 국내 정치사정에 따른 해프닝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지난해 10월 선거에 의해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뤄진 후 신정부가 옛 정부의 업적인 프리깃함 구매를 음해하기 위해 펼치는 ‘언론 플레이’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대우조선 역시 “반가반두함의 이름이 구 정권 총리의 아버지 이름을 땄다는 사실에 불만을 갖고 있는 신정권이 이름을 바꾸기 위해 일시 퇴역시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일 후 “방글라데시 해군이 반환방침을 취소하고 자국에서 수리한 후 재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는 대우조선 측의 해명이 이어지자 이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 보였다. 한국 언론은 이 사건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부패 스캔들로 확대
그러나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이후에도 방글라데시에서는 물밑에서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의혹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4월1일.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현직 국방부 장관인 아흐마드 비르 비크람 등 국가 원로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대우조선에서 구입한 프리깃함 구매과정에 뇌물 등 부패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은 단순히 배의 성능에 관한 논란이 아니라 부패 스캔들로 확대되었다. 중앙선관위원장을 지낸 모아젬 알라이 사이드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무기구입을 통해 조성된 비자금은 지난해 10월 총선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5월7일 방글라데시 총리실의 정무수석이 이끄는 사정팀은 20여 개의 비리사건에 대한 백서를 발간했다. 그중에는 한국에서 프리깃함을 도입하는과정에 ‘매우 민감한’ 비리 혐의가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대우조선이 계약을 따내게 된 과정은 물론 이후 인수과정에서도 광범위한 부패 징후가 포착됐다는 것이다.
백서에 따르면 1995~96 회계연도에 이뤄진 프리깃함 도입을 위한 첫번째 입찰에서는 중국 업체가 가장 적은 액수를 제시했으나 ‘특별한 이유 없이’ 취소되었다. 1996~97 회계연도에 있었던 두번째 입찰에서 대우조선은 9개 회사 중 네번째로 낮은 금액을 제시했음에도, 역시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중국 업체를 물리치고 입찰을 따냈다. 백서는 “당시 입찰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우조선을 제외한 다른 업체들의 제안서는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으며, 조선(造船) 과정도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백서는 시험운영 등의 과정을 거치는 인수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제작상의 오류를 확인할 만큼 역량을 가진 해군 관계자들을 보내지 않았을 뿐더러 그나마 이들은 검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
2001년 6월17일 한국에서 가져온 배를 시험항해도 없이 바로 취역시킨 것 역시 의혹의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최소한 3~4개월 동안 방글라데시 해역 적응을 통해 문제점을 확인한 뒤 취역시켜야 함에도 배가 도착한 지 사흘 만에 서둘러 취역식을 가진 것은 배가 갖고 있는 결점을 감추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백서는 프리깃함에서 총 38개의 결함이 발견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리스 초드리 총리 보좌관은 기자회견에서 “대우조선은 대형함을 수출한 경험이 없고 입찰 제안서의 28개 항목을 충족시키지 못했음에도 곧바로 당시 총리의 승인을 거쳐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하시나 전 총리를 비롯한 고위 관계자들은 러시아로부터 미그-29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의 비리혐의로 이미 기소당한 상태였다.
‘킥백’ 방식으로 뇌물 수수?
3개월이 지난 8월8일, 조사를 마친 부패방지국이 전 총리와 해군참모총장 등을 고발함에 따라 사건은 부패스캔들로 확대됐다. 부패방지국의 조사에 따르면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은 방글라데시의 유명 기업인인 압둘 아왈 민투. 지난해 10월 선거 이후 현 여당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대우조선의 프리깃함 수주를 위해 전 총리와 해군참모총장에게 청탁을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부패방지국은 이들이 ‘킥백(kick-back)’ 방식으로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킥백이란 사업자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보다 더 많은 예산을 타내 지급한 뒤, 그 차액을 사업자에게서 다시 돌려받는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100만달러짜리 물건을 110만달러에 계약한 뒤 나중에 10만달러를 은밀히 되돌려 받는 형태로, 정부발주 계약의 비리사건에서 자주 쓰이는 방식이다. 부패방지국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구체적으로 얼마가 전달됐는지, 누가 어느 만큼의 뇌물을 챙겼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조사가 진행중”이라며 “향후 혐의자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마무리되면 명확한 사실관계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실각한 이후 야당인 아와미연맹의 당수로 활동하고 있는 하시나 전 총리는 현재까지 관계당국 출두를 거부하고 있다. 하시나 전 총리는 지난 8월 하순 이임인사를 위해 방문한 정영조 전 방글라데시 대사와 면담한 자리에서 “이번 사건은 칼레다 지아 총리가 이끄는 새 집권당 방글라민족당이 내 재임기간의 실정을 부각시키기 위해 벌이는 정치공작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히려 당시 대우조선은 IMF 경제위기로 인해 사정이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낮은 가격으로 프리깃함을 공급해준 데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치싸움에 유탄 맞았다”
대우조선 측의 입장 역시 마찬가지. 기자가 방글라데시 정부의 발표와 현지 보도에 대해 사실 확인을 요청하자 대우조선 측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프리깃함의 성능 결함은 물론 로비나 뇌물제공 등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 이 사업을 진행했던 대우조선 방산영업팀 담당자는 “방글라데시 국내의 정치싸움에 대우조선이 유탄을 맞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입찰 당시 방글라데시에서 진행업무를 맡은 것은 같은 계열사였던 ㈜대우(현 대우인터내셔널) 방글라데시 지사였는데, 대우조선에서 ㈜대우에 지급한 진행비용 자체가 소액이었기 때문에 뇌물로 사용할 수 없었으리라는 주장이다.
반가두함이 건조된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반가반두함, 퇴역상태
대우 관계자들은 “경쟁입찰이라고 해서 무조건 최저가가 낙찰되는 것은 아니다. 제품의 성능과 가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므로, 우리보다 적은 금액을 제안한 중국 업체가 떨어졌다고 해서 문제라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말했다. “IMF 경제위기로 환율이 유리하게 변했기 때문에 가능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밑지는 장사였다. 로비자금까지 줘가며 계약을 따낼 이유가 없었다”고 대우인터내셔널 관계자는 말한다.
배의 성능에 대한 방글라데시 해군의 클레임에 대해서도 대우조선 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공식적으로 반가반두함는 현재 퇴역한 상태. 수중음파시스템을 보호하는 합성수지 덮개가 파손되는 등 결함이 심해 임무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 방글라데시 정부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대우조선 측은 “덮개는 방글라데시 치타공항의 빠른 유속 때문에 파손된 것이지, 자체 결함 때문이 아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측은 “시스템 제작사인 독일업체 ATLAS와 공동으로 설치했고, 방글라데시 해군 실사단 역시 이상이 없다고 승인한 바 있다”고 반박했다. 더욱이 인도 후 1년간의 수리보증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수리요청을 받은 적도 없고, 퇴역해 한국으로 돌려보냈다는 일부 외신 보도도 사실과 달라서 현재 배는 방글라데시에 있다는 것.
방글라데시 해군 실사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백서의 지적에 대해 대우조선 측은 “공식 인수단이 한국에 오기 2개월 전인 지난 지난해 4월초, 실무진으로 구성된 방글라데시 해군 인수팀이 방한해 배를 철저히 실사했다”고 반박했다. 백서에 기술돼 있는 내용 중 상당수가 사실이 아니며 신뢰할 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대우의 침묵
그런가 하면 1996년 입찰 당시 업계에서는 대우조선이 뇌물을 제공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는 것이 방글라데시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들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주방글라데시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자주 벌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에, 대우가 뇌물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우조선이 “철저히 실사했다”고 말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해군 인수팀은 실사가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아 5명이 무단 이탈해 경남 거제와 부산 등지에서 잠적하는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자사가 거대한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어 뇌물을 제공했다는 정부 발표와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대우 측은 이에 대해 현재까지 방글라데시 정부에 공식적인 항의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 이에 대해 대우인터내셔널 측은 “방글라데시 지사를 운영하며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방글라데시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이의제기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 측도 우리 외교부를 통해 공식항의할 의사가 없기는 마찬가지. 대우조선 측 관계자는 “방글라데시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이 국제 군수시장에서 이미 충분히 검증된 대우조선의 이미지나 조함 능력에 대한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대응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영국에서 발행돼 전세계 군사전문가들의 교과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제인스연감 전투함 편(Jane’s Fighting Ships)’ 2002~2003년 판은 대우조선이 판매한 반가반두함에 대해 ‘지난해 인도받았으나 함정 운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있어 지난 2월 수리를 보냈다’고 기술하고 있다. 호주에서 발간되는 해군전문지 ‘군함(Warship - International Naval News)’은 올해 발간된 14호에서 ‘반가반두에 장착된 10개월 된 부품에 기계적 결함이 있어 제작사인 대우조선이 회수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실었다. 배의 성능에 관한 이러한 보도에 대해 대우조선 측은 “제인스연감 편집담당자에게 수정을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AFP 등 외신들은 이 사건과 관련해 “한국(South Korea)의 대우조선이 ‘corruption(부패)’ 혹은 ‘bribery(뇌물 공여)’에 연루됐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대우 측은 배 성능에 대한 보도와는 달리 뇌물스캔들에 관한 외신보도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국익 논쟁의 진실
방글라데시 정부의 발표에 대해 우리 정부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 프리깃함 판매사업에 깊숙이 참여했던 국방부 국제협력관실의 담당자는 대우조선 측과 마찬가지로 “정쟁에 휘말렸을 뿐”이라며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 정부가 나서서 국가 명예훼손에 대해 항의해야 옳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것은 외교통상부가 맡아야 할 몫”이라고 답변했다.
외교통상부 역시 입장이 난처하기는 마찬가지. 사실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응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외교부 서남아대양주과의 담당 외무관은 “현지 공관을 통해 관련정보를 꾸준히 수집하고 있으며 진행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우조선 측이 뇌물을 주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업체 말만 믿고 섣불리 외교적 항의절차를 밟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느냐”며 난색을 표했다.
이번 취재에서 기자는 ‘국익’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대우나 국방부의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해외에서 벌어진 일을 기사화하는 것이 국익이나 한국 방위산업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말하곤 했다. “사건을 방글라데시 국민의 입장에서 볼 것인지, 한국 국민의 입장에서 볼 것인지 먼저 판단하라”고 ‘충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우조선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한 얘기는 아니라고 전제하고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제3세계 군수시장에서 리베이트가 관행이 돼 있는 것은 맞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주를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알다시피 세계 군수시장의 경쟁은 치열하고 한국 방산업체는 일감 부족으로 고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리베이트를 주고서라도 계약을 따낸 한국업체가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방위산업 발전을 위해 공헌했다고 칭찬받아야 하는가.”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실추된 것은 대우조선이라는 회사의 명예만이 아니다. 외신보도를 통해 ‘South Korea’의 명예도 함께 실추되었다. 그런 사실을 간과한 채 일방적으로 국익을 거론하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