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도는 범죄지만, 인간은 한편으로 그 범죄를 합리화한다. 절도의 합리화는 부조리한 사회, 주로 재화의 분배에 있어 불공정한 사회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절도 행위자인 도둑을 찬미한다. 나는 고위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부정한 축재와 부잣집 담장을 넘는 밤손님의 행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만약 그 도둑이 넘었던 담장이 부정한 돈으로 쌓아올려진 것이라면, 월장(越墻)은 도리어 미화되고 찬양된다. 혹 그 도둑이 자신의 약탈물을 달동네에라도 던져주었다면, 그는 ‘의적(義賊)’으로 다시 태어난다. 급기야 그는 전설이 되고 소설이 되고, 가난한 우리는 일지매에 빠져들고 장길산에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도둑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나는 조선시대의 도적에 대해 내가 아는 몇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조선시대 도둑에 관한 연구는 정치사, 경제사, 제도사 연구가 주류를 이루는 한국사 연구의 여담에 해당한다. 물론 몇몇 진지한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연구들은 논문으로 쓰여진 것이라 너무 딱딱하고 근엄하다. 나는 그런 엄숙함이 싫다. 좀더 편하게 접근하고, 기존 논문에서 다루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조선시대의 도둑에는 여러 스타일이 있다. 혼자 활동하는 도적이 있는가 하면, 떼를 지어 다니는 군도(群盜)도 있다. 흉년에 먹을 것이 없어 일시적으로 도적이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자기들 말로 수백년 유구한 전통이 빛난다는 그런 도적 집단도 있다. 구복(口腹)을 위해 고민 끝에 도덕심을 눌러버리고 칼과 도끼를 들고 나서는 생계형 도적이 있는가 하면, 기성의 체제에 대한 불만을 품고 저항하는 각성한 도적도 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순진무구한 도적이 있는가 하면, 종적을 종잡을 수 없는 신출귀몰한 그런 도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