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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의 조선사회 뒷마당① | 群盜

“백성을 도적으로 만드는 자 누구인가

  • 강명관 hkmk@pusan.ac.kr

“백성을 도적으로 만드는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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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도 재미가 있다. 하지만 도둑도 일종의 직업이니만큼 좀더 전문적이고 세련된 형태가 좋지 않겠는가? 굳이 예를 들자면 일지매(一枝梅) 같은 경우다.

조수삼(趙秀三·1762~1849)은 자신의 독특한 저작 ‘추재기이(秋齋紀異)’에서 일지매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아주 짧막한 것이기에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일지매는 도둑 중의 협객이다. 매양 탐관오리들의 부정한 뇌물을 훔쳐 양생송사(養生送死)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처마와 처마 사이를 날고 벽에 붙어 날래기가 귀신이다. 도둑을 맞은 집은 어떤 도둑이 들었는지 모를 것이지만 스스로 자기의 표지를 매화 한 가지 붉게 찍어 놓는다. 대개 혐의를 남에게 옮기지 않으려는 까닭이었다.

매화 한 가지 혈표(血標)를 찍어 놓고 / 부정의 재물 풀어 가난한 자 돕노라. / 때 못 만난 영웅은 예로부터 있었으니 / 오강(吳江) 옛적에 비단돛이 떠오놋다.

쪻오강의 비단돛이란 중국 삼국시대 감녕(甘寧)의 고사. 한때 적도(賊徒)로 횡행하여 오강에서 비단돛을 달고 다녔다 한다.”(이조한문단편선(중), 일지사, 1978, 339면)



일지매는 잡히지 않는다. 완벽하다. 게다가 매화꽃까지 남겨 남에게 피해가 가게 하지 않는다니 멋있지 않은가? 나는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에서보다 본 적도 없는 일지매의 붉은 매화에서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가 느껴진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떠신가. 또 탐관오리의 부정한 재물을 털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니, 민중의 벗인 의적이다. 이런 도둑은 당연히 찬양의 대상이 된다. 조수삼은 그를 “때를 못 만난 영웅”이라고 하지 않은가.

일지매와 같은 유형의 도적으로 ‘아래적(我來賊)’이 있다. ‘어수신화(禦睡新話)’란 책에 있는 이야기다. 어떤 도적이 무엇을 훔치고 나면 반드시 ‘아래(我來·나 왔다 간다)’라는 두 글자를 적어놓았다고 한다. 하나 아래적은 일지매보다 한 등급 밑이다. 의적이 아닌데다가 포도청에 잡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뒤에 기지를 써서 탈출하지만 말이다.

일지매와 아래적은 혼자 활동하는 도둑이다. 그 건너편에 무리 도둑인 군도(群盜)가 있다.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백성이 된다(聚則盜, 散則民)’는 말처럼 중세의 군도는 기본적으로 백성, 농민이다. 중세의 사회생산은 전적으로 농업생산이다. 농민이 농토를 떠나면 사회는 붕괴한다. 지배하는 자들은 언제나 거룩한 이념(조선으로 치면 주자 성리학)을 내세워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지만, 그 이념의 속내는 매우 간단하다. 그 이념이란 지배층은 일하지 않고 농민만 뼈 빠지게 일해야만 하는 ‘비합리’를 ‘합리’로 분식(粉飾)한 어려운 말의 덩어리다.

물론 이념은 언제나 지배층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것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지켜진 시대는 유사 이래 없었다. 지배하는 자들의 욕망은 언제나 차고 넘친다. 그리하여 지배층의 욕망이 농민을 지나치게 압박하면, 달리 말해 농민을 지나치게 쥐어짜면 농민은 토지를 떠난다. 지주의 토지 침탈, 과도한 세금 등으로 인한 농민의 토지 이탈은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항시 일어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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