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호

전방위 농업투자로 富農 기반 다진다

경상북도 의성군

  • 양영훈·여행작가 travelmaker@hanmir.com, www.travelwriters.co.kr

    입력2002-10-08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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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늘, 사과, 고추의 명산지인 의성군은 고질적인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 농산물의 생산량과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 다각적인 투자를 거듭, 선진 농촌의 기반을 다져왔다.
    • 의성은 이렇듯 부농(富農)의 면모를 갖춰가면서도
    • 경로효친의 미풍과 농경사회 고유의 공동체의식,
    • 순박한 인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전방위 농업투자로 富農 기반 다진다

    경북의 4대평야 중 하나에 들 정도로 광활한 안계평야. 안계, 단밀, 단북, 구천 등 4개 면에 걸쳐 있다.

    여행작가는 전국 방방곡곡을 끊임없이 돌아다녀야 생계가 유지되는 직업이다. 그러니 웬만한 군(郡) 단위 지역은 적어도 한 해에 한두 번쯤은 둘러보게 마련이다. 물론 한 철에도 몇 번씩 무시로 찾는 고장이 있는가 하면, 몇 해 동안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곳도 없지는 않다. 아무래도 자연경관이 수려하거나 관광자원이 풍부한 고장은 자주 찾게 되지만, 이렇다할 관광지나 비경(秘境)이 드문 지역엔 발길이 뜸할 수밖에 없다. 경상북도 의성군은 후자의 경우에 든다.

    늘 길에서 서성거리는 직업을 택한 지 어느덧 10여 년을 훌쩍 넘겼지만, 지금껏 의성군을 관심 있게 둘러본 것은 기껏해야 서너 차례에 불과하다. 꼭 찾아가야 할 일이 없으면 좀체 발길이 향하질 않았다. 이름난 관광지가 별로 없을 뿐더러, 소문나진 않았더라도 한번쯤 둘러보기를 권할 만한 비경이 드물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더욱이 지난해 말 중앙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의성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복잡했다. 미리 경로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길을 나서도 고속도로와 국도를 몇 번씩 번갈아 타야 된다는 점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의성군은 예전의 의성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가는 길이 편리했다. 의성군의 한복판으로 중앙고속도로가 뚫린 덕택이다. 덕분에 서울에서 의성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뿐만 아니라 의성군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28번 국도와 남북을 관통하는 5번 국도는 고속도로처럼 시원스런 왕복 4차선 도로로 탈바꿈해 있었다.

    또 하나의 두드러진 변화는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다. 사실 의성군은 인근의 안동, 영양 등지와 함께 전통적인 관습과 보수성향이 짙은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같은 집안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집성촌이 여럿 있고, 농업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구조 또한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통적’ ‘보수적’이라는 말은 새로운 조류와 문화, 외지인들에 대한 배타심이 강하다는 뜻도 된다. 그런데 사진을 찍거나 길을 묻기 위해 마주했던 많은 의성 사람들은 한결같이 친절하고 따뜻했다. 흔히 얘기하는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

    의성군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데, 전체적인 형상이 마치 누에고치 같다. 의성읍을 중심으로 한 동부는 태백산맥에서 흘러내린 높고 낮은 산줄기로 산간지대를 이루는 반면 낙동강과 맞닿은 서부는 광활한 평야지대다. 그런 지형적 특성만큼이나 주민들의 기질과 생활권도 사뭇 다르다고 한다. 즉, 동부는 안동생활권인 데 비해 서부는 대구생활권이다. 또한 같은 농업에 종사하더라도 동부 산간지대에서는 밭농사에 주력하고, 서부 평야지대에선 벼농사에 많이 의존한다.

    그런 특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농가소득은 역전됐다고 한다. 예컨대 쌀이 귀하던 시절에는 서부지역의 농업소득이 월등히 높았으나, 이제는 주로 특용작물이나 과일을 재배하는 동부 사람들의 경제사정이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의성군이 전국 1위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마늘, 사과, 고추, 작약, 홍화 등의 산지는 대부분 동부에 밀집돼 있다. 그중 약 2500㏊의 면적에서 연간 1만9000t을 생산하는 의성 마늘은 즙액이 많고 독특한 향기와 맛을 지녔으며 내병성(耐病性)과 저장성이 좋아 품질면에서도 최고 대우를 받는다. 제9회 전국으뜸농산물 품평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는가 하면, 마늘값이 한창 좋았던 시절에는 “의성 마늘 한 리어카 싣고 나가서 돈 한 리어카 싣고 돌아온다”는 말까지 회자됐을 정도다. 오늘날에도 의성군이 어느 도에 있는지는 몰라도 의성 마늘의 유명세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또한 빛깔이 곱고 당도가 높으며 수분함량이 많은 의성 사과는 연간 5만2000여t이 생산되고, 육질이 두꺼워서 고춧가루가 많이 나오는 의성 고추의 생산량도 연 6200t이나 된다. 그밖에 약재와 화장품의 원료로 쓰이는 작약은 전국 생산량의 20%가 의성군 일대에서 재배된다.

    이처럼 농업의 비중이 절대적이니만큼 지방자치제가 본격 실시된 이후 의성군의 관심과 투자가 농업 분야에 집중된 것은 당연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한해(旱害)와 수해를 방지하기 위한 시설투자.

    의성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끼어 있는 분지(盆地)다. 이런 지형적 특성 탓에 강수량이 매우 적은 편이다. 연평균 강수일은 92일, 평균 강수량은 전국 평균(1200∼1300mm)에 턱없이 모자라는 961mm에 불과하다. 특히 지난해에는 1월부터 6월까지의 강수량이 149mm밖에 안될 정도였다. 고질적인 한해를 막고 식수와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의성군은 지난해에만 5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자해 하천을 준설하고 암반 관정(管井)을 개발했다.

    의성군은 1998년부터 2001년까지 해마다 거듭된 태풍과 집중호우로 많은 재산·인명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그후 정부로부터 1000억원이 넘는 사업비를 확보, 수해현장을 복구하고 제방을 개수함으로써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덕택에 유사 이래 가장 큰 피해를 남겼다는 지난 8월 말의 태풍 ‘루사’ 때도 의성군의 피해는 아주 미미했다고 한다.

    지역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의성군의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기계화 영농을 위한 경지정리사업에 252억원, 기계화 경작로사업에 96억원, 밭 기반 정비사업에 36억원이 투입됐다. 그리고 쌀 전업농의 농기계 구입자금 지원에 20억원, 농업회사나 영농조합 등의 농기계구입 지원에 11억원, 토양 개량제(改良劑) 공급에 23억원, 객토사업에 17억원이 소요됐다.

    또한 지역 농산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환경농업마을 육성에 2억원, 고품질의 농산품 생산단지를 조성하는 데 10억원, 마늘 우량 종구(種球) 공급에 4억5000만원, 고추 유기농 재배에 5억6000만원, 시설원예 지원에 12억9000만원의 예산을 풀었다. 그런가 하면 지역농산품 제값 받기 운동의 일환으로 농·특산품 규격출하에 65억원을 지원했고, 사과밭이 많은 옥산면에는 1억7000만원을 들여 최첨단의 비파괴 당도측정기를 설치해 주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의성군은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보니 고령 인구의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농업분야에 대한 투자 못지 않게 노인복지 향상에도 힘쓰고 있다. 각 마을마다 마을회관과는 별도로 1개소의 경로당을 설치한다는 원칙으로 총 380여 개소의 경로당을 새로 짓거나 기존 시설을 새롭게 단장했다. 또한 경로당 운영과 연료비 지원에 14억7000만원을 들였고, 올 봄에는 16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노인복지회관을 준공했다.

    또한 지난 6월부터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운 노인들의 위생상태를 개선하고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사랑 실은 이동 목욕차’를 운영하고 있다.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 등 5명으로 구성된 이동 목욕차 운영팀이 매일 의성군 관내의 마을을 순회하는데, 오랜 병마와 싸우느라 심신이 지친 노인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된다고 한다.

    자연과 전통이 숨쉬는 관광지

    의성군은 여느 유명 관광도시에 비해 천혜의 절경이나 명소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기존의 관광명소에다 전통문화와 농촌공동체를 고스란히 간직한 지역특성을 접목시켜 ‘자연과 전통이 살아 숨쉬는 관광지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각각 88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점곡면 사촌마을과 금성면 산운마을 정비사업이 지역특성을 살린 관광개발사업의 대표적인 사례다.

    더욱이 빙계계곡, 고운사, 제오리 공룡 발자국 화석 등은 다른 고장의 어떤 관광지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가치 있는 의성군의 관광자원이다.

    춘산면 빙계리의 빙계계곡은 ‘얼음골’로도 불린다. 경북팔경 중 제일경으로 꼽힌다는 빙계계곡은 의성군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빙계리에는 ‘빙산(氷山)’이라 불리는 산이 있는데, 이 산자락에는 얼음구멍(氷穴)과 바람구멍(風穴)이 뚫려 있다. 이 구멍에서는 삼복염천마다 시원한 바람이 뿜어져 나오거나 얼음이 맺히다가도 엄동설한이 되면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빙혈과 풍혈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길가의 바위틈에서도, 산비탈의 돌무더기에서도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서늘한 바람이 나온다. 그래서 계곡의 초입에 들어서면 냉기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물과 바위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빙계계곡은 풍광도 빼어나다. 이 계곡의 숱한 절경 중에서도 빙혈·풍혈·인암(어진바위)·의각·수저(물레방아)·석탑·불항(부처막)·용추(용소) 등은 ‘빙계팔경’으로 손꼽힌다. 그중 제3경인 인암(仁岩)은 너비 1.2m, 높이 2.4m의 바위인데, 한낮의 햇살 아래에서 보면 마치 어질 인(仁)자 모양의 그늘이 드리워진다고 한다. 또한 제6경인 석탑은 빙산사터에 서있는 오층석탑(보물 제327호)을 가리킨다.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화강석을 벽돌 크기로 다듬어서 쌓은 모전석탑인데, 인근의 탑리오층석탑(국보 제77호)을 모방했다고 한다.

    탑리오층석탑은 빙계계곡으로 가는 길목인 금성면 소재지(탑리)의 금성중·고교 안에 있다. 낮은 기단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이 올려진 통일신라 때의 석탑이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전탑(塼塔) 양식과 목조건축의 수법을 함께 갖춘 특이한 석탑이므로 빙계계곡을 오가는 길에 찾아볼 만하다.

    공룡에 관심이 많은 자녀들과 함께 의성군을 찾았다면 금성면 제오리의 공룡 발자국 화석(천연기념물 제373호)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중생대 백악기(1억4000만∼6500만년 전) 무렵에 거대한 호숫가였는데, 당시 호숫가를 거닐던 공룡들의 발자국이 화석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수천만년 동안 암석층에 묻혀 있던 화석은 도로공사를 하느라 산허리의 암석층을 깎아내는 와중에 우연히 발견됐다. 모두 4종류의 공룡발자국 316개가 확인됐는데, 그 가운데에는 발굽울트라룡, 발톱고성룡, 발목코끼리룡 등 3종류의 초식공룡 발자국과 육식공룡인 한국큼룡 발자국도 있다.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의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681)에 의상조사가 창건했다는 고찰이다. 현재는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로서 60여 개의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사명대사가 이끄는 승군의 전방기지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경로효친(敬老孝親)의 미풍을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농경사회의 공동체의식과 순박한 인정이 살아 숨쉬는 의성군은 고향을 잃은 도시인들에게 고향 같은 편안함과 휴식을 안겨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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