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호

기로에 선 부패방지위원회, ‘꿩 잡는 매’인가 ‘또 다른 권력기구’인가

  • 황일도 shamora@donga.com

    입력2002-10-09 12: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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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8월14일 법원은 부패방지위원회가 제출한 전직 검찰총장과 현직 검사 비리의혹사건에 대한
    •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사건을 둘러싸고 부패방지위원회와 검찰은 물러설 수 없는 한판 대결을
    • 벌였지만, 검찰의 불기소결정에 이어 재정신청마저 기각되면서 부방위는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 왜 그런 사태가 벌어진 것일까. 시련을 겪고 있는 부방위의 앞날은?
    기로에 선 부패방지위원회, ‘꿩 잡는 매’인가 ‘또 다른 권력기구’인가

    '전쟁의 시작.' 강철규 부방위 위원장이 지난 3월30일 기자회견에서 전현직 고위공직자를 검찰에 고발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시티타워빌딩 17층. ‘Corruption Zero’라는 슬로건이 붙어있는 보안 유리문을 지나 부패방지위원회(이하 부방위)에 들어서면 왼쪽 모퉁이에 법무관리관실이 자리잡고 있다. 직제에는 검사 한 사람이 정원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두 명의 검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발사건 이후로는 법무관리관실을 보는 시선이 날카로워졌죠. 아무래도 껄끄러우니까요. 특히 심사관련 내용은 절대 상의하지 않게 됐어요. 전에는 간혹 ‘이런 게 있는데요’ 하고 묻기도 했는데….”

    심사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부방위 실무자의 말이다. 정식출범 전인 준비단 시절부터 검사가 부방위에 와 있는 것에 이의제기가 적지 않았다는 것. 사건심사와 관련해서는 결제를 거치지 않는 것으로 업무 분담이 이루어졌지만 “검찰이 부방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보낸 거 아니냐”는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은 대놓고 “곧 돌아갈 검사가 ‘친정’ 눈치를 안 볼 수 있겠는가. 부방위가 검찰을 견제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라며 당장 직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참 박 터지게 싸우고 있는 곳에 검사가 와 있으니 모양새가 안 좋죠. 검찰 쪽에서도 말이 있는 모양입디다. 서운하다는 거죠. ‘거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 전직 ‘넘버1’이 고발 당하는 것도 못 막고’ 그랬다는 겁니다. 언젠가는 돌려 보내야죠. 고발사건 기각 이후로는 아마 (부방위 간부들) 대부분 생각이 비슷할 겁니다.”

    부방위 한 간부의 말이다.



    ‘비리사건’ vs ‘인권침해’

    지난 3월30일 부방위 대회의실. 연락을 받고 모여든 수십 명의 취재진과 카메라 앞에 강철규 위원장이 긴장된 목소리로 발표를 시작했다. 사정기관 전현직 고위관계자 두 사람과 헌법기관 장관급 인사의 비리혐의를 검찰에 고발한다는 내용이었다. 1월25일 부방위가 출범한 이래 두 달 만에 건져올린 ‘첫 작품’이었다. 사정기관이란 다름아닌 검찰. 고발된 이는 전직 검찰총장과 현직 검사였다. 5개월에 걸친 ‘부패방지위원회’ 대 ‘대한민국 검찰’의 기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두 검찰관계자에 대한 고발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당시 지방에서 근무하던 A검사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B씨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으며, 인사청탁을 위해 B씨를 시켜 총장이었던 C씨에게 수천 만원짜리 카펫을 전달했다는 것.

    그러나 이튿날부터 “법조계에서 이번 고발의 내용이나 절차에 의문이 있다고 지적한다”는 보도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반박에 나섰다. A검사는 “나와 C 전 총장에 대한 신고는 부동산조합 동업자 두 사람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그 중 한 사람이 B씨다. 두 동업자 모두 검찰에 구속된 적이 있는데, B씨의 반대쪽에서 자신이 구속된 것이 내 압력 때문이었다고 주장해왔다. 이번에 신고한 것도 그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의적인 음해일 뿐 C 전 총장에게 카펫을 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C 전 총장 역시 “카펫이 왔던 건 사실이지만 다음날 바로 돌려줬다”며 고발내용을 부인했다.

    “의욕이 지나친 부방위가 당사자 소명도 듣지 않고 발표부터 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검찰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부방위가 기본이 안돼 있는 것 같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부방위의 명예는 땅에 떨어질 것”이라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부방위 측은 “피신고인에 대한 조사권이 없고 고발대상자의 증거인멸을 우려해 당사자의 해명을 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6월27일 서울지검 특수1부가 이들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리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C 전 총장이 받았다는 수천 만원짜리 카펫은 실제로는 200만원짜리였으며, 인사 청탁 명목이 아닌 공직 취임 축하용이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었다. 카펫을 받은 다음날 돌려줬으며 이후 전달자였던 B씨가 집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

    검찰의 ‘반격’으로 출범 5개월을 갓 넘겼던 부방위의 위상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9명 중 6명이 법조인 출신인 위원 전원회의에서 기소를 확신하고 고발하기로 했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컸다. 7월9일 부방위는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승복할 수 없다”며 서울고법에 재정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8월14일 이를 기각해 사건을 둘러싼 소동은 일단 막이 내렸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아직 의혹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이와 관련해 신고인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수사에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우선 검찰은 카펫을 판매한 상점 종업원의 ‘1997년 9월 이전에 고가 카펫은 취급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증거로 채택했지만, 경실련은 예전부터 이 상점이 이란산 고급카펫을 수입했음을 입증하는 세관문서를 제시했다. 검찰이 증거물로 제시한 카펫이 전달됐던 카펫과 다른 것이라는 B씨 운전기사의 증언도 함께 공개했다. 조직의 전직 수장이 연루된 비리 의혹 사건을 검찰이 과연 공정하게 조사할 수 있었겠느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우리는 다르다”

    공식적으로 부방위는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인다는 입장. 그러나 부방위 곳곳에서 공식입장과는 다른 견해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부방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B검사, C 전 총장 등이 모여 대책회의를 했다고 들었다. 의식하든 하지 않든 담당검사 입장에서는 대선배인 피신고인들의 증언에 더 무게를 두지 않았을까”라고 이야기했다.

    법원의 재정신청 기각 또한 검찰의 수사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인 한계가 있었다는 것. 기각 결정 직후 위원회는 대법원에 다시 한번 재정신청을 내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결국 위원 전원회의의 표결을 거쳐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부방위의 한 위원은 “담당국장이 ‘대법원까지 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게 없었다. 오히려 법원의 권위를 부정한다는 이미지만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전한다.

    사건 고발 여부를 결정하는 위원 전원회의는 대통령이 임명한 3인, 대법원이 추천한 3인, 국회(민주당, 한나라당, 자민련 각 1인)가 추천한 3인 등 총 아홉 명으로 구성된다. 사건 보고서가 위원들에게 전달될 때는 관련자 신원이나 소속기관 등은 모두 삭제되거나 익명으로 처리한다. 위원들은 전원회의 자리에 참석했을 때 비로소 실명대조표를 받아본다.

    위원들은 피신고인이 자신과 잘 아는 사람일 경우 심의를 회피할 수 있는 권한 및 의무를 갖고 있다. 실제로 헌법기관 장관급 인사에 대한 고발을 결정하는 자리에서는 위원 몇 사람이 심의를 회피하고 자리를 뜨기도 했다.

    부방위의 한 위원은 검찰간부에 대한 고발여부를 결정하던 전원회의 자리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법조인 출신 위원들이 많아 과연 중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지 걱정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회의에 들어가니 전원 합의 과정을 거쳐서 고발결정을 내리더군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게, 위원들이 서로를 견제합니다. 문제가 있는데 괜히 아니라고 했다가는 다른 위원들의 눈총을 각오해야 합니다.”

    사건심사를 담당했던 신고심사국의 김상식 심사관은 이렇게 말한다.

    “감사원도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비위사실을 검찰에 고발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지난 50년 동안 단 한건도 안했습니다. 그걸 출범 두 달도 안된 우리가 해낸 거죠. 부방위가 기존의 사정기관과는 다르다는 걸 입증해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이 내려지고 나서 신고인을 만났습니다. 분통을 터뜨리더군요. ‘부방위가 검찰에 사건을 넘기는 줄 알았으면 내가 검찰로 바로 갔지 왜 부방위로 왔겠느냐. 검찰에 가서 피신고인을 만났다. 신원 비밀 보장해준다더니 이게 뭐냐’고 말입니다. 결국 이번 사건은 부방위의 구조적인 강점과 제도적 약점을 동시에 보여준 셈입니다.”

    검사들의 분노

    부방위의 고발에 대해 법무부는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부패방지법(이하 부방법)에는 현직 공무원만 적용대상으로 규정돼 있는데 이 건에는 전직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러한 반박이 자칫 ‘제 식구 감싸기’로 비쳐지는 것을 경계한 법무부는 일단 사건을 접수해 철저히 수사하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검사 개개인의 불만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당시의 분위기에 대해 “부방위가 근거도 부족한 사건을 함부로 발표해 당사자들의 신원을 유추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검찰의 위상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기 위한 노림수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8월 중순에는 한 지방 지청장이 “부방위가 공직자들의 인권과 국가기관의 명예를 훼손해선 안된다. 검사의 인권이 너무나 쉽게 무시되는 현실이 서글펐다”는 글을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려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기자가 만난 한 부장급 검사는 다음과 같이 상황을 정리했다.

    “부방위가 고의적으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버’한 부분은 있었죠. 첫 사건인 데다 그 다음달 대통령 보고를 앞두고 있었다고 하니까요. 불기소가 결정된 후 시민단체들이 의혹을 제기한 것 역시 부방위와의 사전교감에 따른 거라고 봅니다. 위원장이 경실련 출신 아닙니까.”

    ‘문서싸움’의 전말

    부방위의 한 간부는 한창 논란중이었던 7월 초 ‘문서싸움’에 대해 아직 감정을 풀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검찰이 기분 나쁜 건 알겠다 이겁니다. 그렇다고 법에 있는 의무까지 무시하면 됩니까.”

    문서철을 꺼내 들어 보여준 것은 7월4일 부방위가 서울지검에 보낸 공문. 내부적으로 재정신청 방침을 확정한 후였다. 내용은 “검찰보존사무규칙과 부방법 21조 1항에 따라 해당사건 수사기록의 열람·등사를 신청한다”는 것. 검찰은 7월8일 “부방법 21조 2항 두번째 항목에 따라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는 회신을 보냈다.

    “이 회신을 보고 부방위에 있는 법조인들 여럿이 쓴 웃음을 지었습니다. ‘수사재판 및 형집행의 당부에 관한 사항은 자료제출이나 관련자 출석증언을 요청할 수 없다’는 게 21조 2항 두번째 항목입니다. 이건 ‘검사가 뇌물 받고 엉터리로 수사했다. 이를 밝혀달라’, 이런 신고를 조사할 때는 사건 기록을 보여달라고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수사검사를 조사하겠다는 게 아니잖아요. 재정신청 준비과정에서 우리 조사결과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사실관계는 뭐가 틀렸는지 확인하겠다는 겁니다. 불기소 결정을 내렸으면 이유를 알려줘야 할 것 아닙니까.”

    당시 부방위의 이러한 비난에 대해 검찰은 “부방위는 초법기관이냐”고 맞섰다. 서울지검은 7월10일 “법에 안된다고 돼 있는 걸 어떻게 달라고 하느냐. 법 규정상 수사에 이의가 있으면 재정신청을 하도록 돼 있는데 굳이 자료를 내놓으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한 역공을 취했다.

    “담당검사에게 출석 통지서를 보내자, 행정심판을 내자, 별 생각을 다 했어요. 같은 논리로 거부할 게 뻔하고, 자칫 전면전이 될 것 같아 참았습니다.”

    이 부방위 간부가 서류철을 닫으며 남긴 말이다.

    기로에 선 부패방지위원회, ‘꿩 잡는 매’인가 ‘또 다른 권력기구’인가

    지난 3월30일 조희완 신고심사국장(오른쪽) 등 부방위 관계자들이 고위공직자 세 명에 대한 고발장을 대검찰청에 접수시키고 있다.

    재정신청 기각이 결정되고 나서 한동안 난처한 입장이었던 부방위는 이후 “이 사건을 통해 현행 제도의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조사권 확보를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로 했다. 부방법에 피신고인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에 당사자 소명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은 물론 사건의 전모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 따라서 조사권 확보가 선행돼야 제대로 된 부패방지 업무수행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파킨슨의 법칙?

    부패방지법은 부방위가 신고접수, 제도개선, 점검평가, 교육홍보 등 크게 네 가지 기능을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기능들이 사이클을 이루며 순환하는 것이 부방위의 업무추진 형태. 우선 신고받은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공직사회 어떤 부분에 제도적 문제가 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 제도를 어떻게 개선하라는 권고안을 만들어 보낸 뒤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기능이 점검평가이고, 개선된 사항을 널리 알려 신고가 활성화되도록 하는 것이 교육홍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기능은 단연 제도개선.

    법조인 출신인 김성남 전 위원장 내정자가 제도개선에 중점을 두었던 것에 비해 강철규 위원장은 신고접수와 이에 따른 조사업무에 강조를 두고 있다는 것이 부방위 안팎의 평가다. 강위원장은 인터뷰에서 “그렇게 보이는 것은 단지 ‘시차’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나(242쪽 인터뷰 참조) 일부에서는 시민단체 출신인 강위원장이 ‘홍콩의 ICAC(Inde-pendent Commission Against Corru-ption) 같은 강력한 부패방지기구’를 지향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와 관련해 부방위 조직구성 과정에 관여했던 한 행정연구기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파킨슨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모든 조직은 확대를 지향한다는 거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조직정원 확대지만 원래는 기능 확대가 먼저 일어납니다. 부방위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능들이 각각 확대되는 겁니다. 신고접수는 조사권 강화로, 제도개선은 구조개혁으로, 점검평가는 각 기관 부패지수 측정으로, 교육홍보는 국민 대상 반부패 교육으로 뻗어나가는 거죠. 맡은 일에 보다 중요한 의미를 담고 싶어하는 의욕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부방위가 지향하는 모습은 애초에 법이 의도한 디자인과는 상당히 다른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방위의 의견은 다르다. 하다 보니 안되기 때문에 법개정과 조사권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다. 부방위 황웅광 부정부패신고센터장의 말이다.

    “기본적으로 일처리가 안되기 때문입니다. 신고인만 조사해서는 아무것도 안되는 겁니다. 그냥 앉아서 법만 들여다보는 학자들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다른 걸 어쩌란 말입니까.”

    한편 익명을 요구한 한 부방위 간부는 “다른 곳은 지금의 제도로도 커버할 수 있지만 검찰의 부패사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권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곳은 부방위밖에 없다는, 이른바 ‘꿩 잡는 매’론이다.

    “공식적으로 부방위는 ‘검찰을 잡기 위해’라는 말은 잘 안합니다. 반발할 게 뻔하니까요. 그러나 부방위에 접수되는 사건을 살펴보면 경찰이나 검찰 관련 고발건수가 30%가 넘습니다. 검찰만 따로 떼놓아도 열에 한 건 이상입니다. 다른 기관 부패는 해당기관에 이첩하면 정리되지만 검찰 건은 다릅니다. 우리가 조사해봐야 저쪽에서 기각하면 끝입니다. 이걸 깨려면 피신고인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조사권은 계좌추적권이나 영장청구권 등을 모두 포괄하는 말이지만, 현재까지 부방위는 ‘피신고자를 불러다 물어볼 권리’ 정도로만 한정해서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안될 겁니다. 조사해 보니 비리사실이 뻔한데도 다시 풀어줘야 하면 어떻게 조사를 합니까. 증거인멸하라고 안내하는 거나 다름없죠. 부방위에 영장청구권이 필요한 이유가 그겁니다. 비리가 확인되면 구속할 수 있어야죠.

    그래서 특별검사가 필요합니다. 부방위가 조사한 사건, 안되면 검찰관련 사건만이라도 직접 기소할 수 있는 특별검사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법무부에서는 난리가 납니다. 권력기관이 되려는 거냐, 왜 검찰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 하나 주면 더 큰 거 달라고 한다…. 검찰이 잘했으면 왜 이런 얘기가 나오겠습니까. 검찰이 스스로 자기 머리를 깎을 능력이 없다는 게 확인됐으니 우리 주장에 설득력이 생긴 겁니다.”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검사들은 부방위나 시민단체들의 ‘꿩 잡는 매’론에 대해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다. 검찰의 긍지와 자부심을 철저히 짓밟는다는 것. 논리적으로 판단해도 이는 실효가 없다는 게 한 부장검사의 반박이다.

    “부방위는 답이 아니다”

    “검찰이 불신을 받고 있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게 검사들이 개인적으로 저지른 비리 탓일까요? 현재의 위기는 권력이 검찰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인사권 앞에 검사들이 줄을 서 공익을 저버렸기 때문이죠.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말은 부지기수로 들었지만 ‘부패의 온상’이라는 말은 별로 들어본 적 없습니다.

    지금 부방위가 하는 일은 검사 개인의 비리를 캐는 겁니다. 대통령이나 정치권으로부터 검찰이 독립하는 데 부방위가 무슨 기능을 할 수 있습니까. ‘부방위가 검찰을 견제한다’는 아이디어는 문제에 맞는 답이 아닙니다. 틀린 답을 내놓고 맞는 답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진짜 문제가 뭔지를 가리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건 포퓰리즘(populism)입니다. 국민들은 ‘잘되는 건가 보다’ 하겠죠. 그렇지만 달라지는 것은 많지 않을 겁니다.”

    이 부장검사는 그러면서 “부방위는 오히려 검찰보다 취약할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부방위는 권력의 압력에 강할까요?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부방위 직원들은 행정직 공무원들입니다. 이들이 과연 검사들보다 압력에 더 잘 버텨낼 수 있을까요? 최악의 경우 권력이 부방위를 통해 검찰을 제어하려 들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 여론 때문에 차마 목을 칠 수는 없는 ‘스타 검사’를 제거하는 데 부방위의 비리고발 스캔들은 결정타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게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일까요?”

    한편 한 지방 지청 검사는 부방위를 둘러싸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떠돌고 있다는 ‘음모론’을 들려주었다.

    “검찰의 강력함은 검사 한 사람이 수사부터 기소까지 책임지는 효율성에서 나옵니다. 검사들은 우리나라의 검거율이나 기소율, 사건처리시간이 세계최고 수준인 것이 이 효율적인 검찰시스템 때문이라고 자부합니다. 이 효율성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정치가들이 검찰을 흔들기 위해 부방위를 만들고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게 음모론의 골자입니다. 물론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검사들이 부방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지표는 되겠죠.

    시민단체들은 홍콩의 ICAC를 모델로 들더군요. 별도의 부패방지기구가 있는 나라는 대개 홍콩, 싱가포르, 호주 같은 영미법 국가들입니다. 이런 나라들은 경찰이 강한 대신 검찰은 아예 없거나 있다 해도 기소만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전권을 갖고 있는 경찰을 견제하기 위해 부패방지기구를 두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경찰의 전횡을 막을 검찰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를 견제하기 위해 다시 위원회를 둔다? 그래서 ‘옥상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법 자체가 잘못됐다

    ‘법에 있는 대로만 하라’는 법무부와 검찰, 감사원 등의 지적에 대해 강철규 위원장은 “애초에 부패방지법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고 잘라 말한다.

    “원래 시민단체에서는 조사권까지 포함하는 강력한 반부패기구 설치법안을 주장했어요. 입법과정에서 일부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을 뿐입니다. 당연히 법개정이 이루어져야지요.”

    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의 비판은 한층 더 강도 높다.

    “부방법은 타협의 산물입니다. ‘접수창구’ 역할만 하도록 타협한 겁니다. 이걸 원래의 목적대로 돌려놓는 것이 뭐가 문젭니까. 특히 법무부나 검찰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제출된 법안을 강력하게 반대해 지금의 껍데기 법을 만든 게 바로 법무부입니다. 박상천 법무장관이 법사위 위원들을 각개격파하며 로비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얘깁니다.

    권력이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부방위를 만들었다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검찰의 인사권을 갖고 있는 권력이 뭐가 아쉽다고 부방위를 따로 만들겠습니까. 오히려 거꾸로 보는 게 정답입니다. 권력이 검찰을 마음대로 부리기 위해 법 개정에 의지를 안 보이는 거죠.”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인 박원순 변호사는 검찰이 ‘견제와 균형(Checks & Balances)’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검사들이 마음 놓고 비리를 저지르지 못하게 될 것이 두려워 법 개정을 반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기소독점주의에 집착하다 보니 강력한 비리감시기구가 기소권을 갖는 게 염려스러운 겁니다. 권력은 나눌수록 깨끗해집니다. 어느 기관, 어느 조직도 혼자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기소권을 갖는다고 해서 부패방지기구가 검찰의 상부기구가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을 만들 뿐입니다.

    검사들은 검사 1인이 수사에서 기소까지 처리하는 시스템의 ‘효율’을 말하지만, 지나치게 효율에 집착하는 것은 ‘공정’의 적입니다. 사법제도에서는 공정이 효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칩니다. 검사 한 명이 전권을 갖는 현재의 시스템을 어느 경우에든 고수하겠다는 건 효율을 위해 공정을 희생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일단 한번 해봅시다”

    부방위는 현재 부방법 개정을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시민단체와 학계 등 전문가와 언론계 간담회 등을 통해 법 개정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입법청원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11월중에는 홍콩과 호주의 ICAC,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 관계자들을 초청해 국제세미나를 열 예정이기도 하다.

    법 개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정치권의 움직임. 부방위 내부적으로는 오는 대선기간이 법 개정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있다. 일단은 올해 정기국회에서의 입법추진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각 정당 대선후보의 공약에 반영되도록 추진해 내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법 개정을 확보한다는 복안이다. 강철규 위원장은 “부방위의 투명성포럼을 활용해 10월 중에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를 개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부방위의 이러한 노력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시민단체들이 1996년 제출한 부패방지법 입법청원은 결국 15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 바 있고, 지난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는 모두 부패방지법 제정을 공약사항으로 제시했지만 결국 부방위는 국민의 정부 임기 말에야 가까스로 탄생할 수 있었다.

    지금 부방위는 미로에 갇혀 있다. 법 개정에 실패하면 지금 같은 형태로 남을 수밖에 없지만 법이 언제 개정될 것인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부방위는 과연 법무부, 검찰의 반대를 뚫고 강력한 부패방지기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우려를 넘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조희완 신고심사국장은 이렇게 답한다.

    “한번 해 보고 나서 말합시다. 걱정대로 문제가 있다면 그때 다시 원래대로 바꾸면 되잖아요. 왜 다들 해 보기도 전에 안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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