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육군 수뇌부는 육사 출신이 성골·진골은 물론이고 6두품 자리까지 독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장군으로 진급하는 사람 중에서 비육사 출신은 눈을 씻고 찾아야 겨우 보일까말까다. 육군의 진급 구조가 육사 출신 위주로 굳어진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문민정권이 출범한 이후다.
최근 10여 년간 매년 대령에서 장군으로 진급한 사람은 47명 내외인데, 이중에서 육사 출신으로 별을 단 사람은 31∼36명 정도. 한해 육사 졸업자는 250명 정도이므로, 육사 졸업자의 7∼8분의 1 정도가 ‘스타’가 되는 데 성공하는 셈이다. 육사 출신으로 장군이 되는 사람은 전체 장군 진급자의 66∼77%에 이르고 있다.
군 출신이 대통령이었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4년제 정규 육사 1기’라고 하는 육사 11기에서 처음으로 1차 진급한 장군이 나왔는데 그 숫자는 단 세 명(전두환·손영길·최성택)이었다. 박대통령 시절 육사출신 장군은 소수였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육사 출신의 장군 진급자가 대폭 늘어났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적었다. 전대통령 시절 육사 출신으로 별을 단 사람은 전체 장군 진급자의 절반을 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슬금슬금 올라가 김영삼 정권 때 60%를 돌파하고,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70%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군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군 출신 대통령은 특정 학교 출신이 육군의 주축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기 때문에, 장군 진급자 중에서 특정 학교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일정한 선 이상을 넘지 않게 했다. 그러나 문민 출신 대통령은 정치군인만 단속하고 나머지는 방기했기 때문에, 오히려 육사 출신의 장군 독식이 강화되었다”고 지적한다.
문민정부서 육사 독점 체제 강화
‘세계 육군의 교과서’라고 하는 미국 육군에서는 이러한 독점 현상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육사에 해당하는 학교가 미 육군에서는 웨스트포인트다. 그런데 이 학교는 국비로 직업 군인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로 목표를 바꾼 지 오래다.
웨스트포인트 출신은 졸업 후 3년간 의무복무를 하고, 그 후의 진로는 본인이 결정한다. 때문에 상당수의 웨스트포인트 출신은 조기 전역해 사회 일반 분야로 진출한다. 그리고 학군 출신을 비롯해 다양한 출신의 장교들이 몰려들어 미 육군의 ‘인재 풀’을 구성한다.
미 육군은 출신별 경쟁제가 아니라 완전 경쟁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웨스트포인트 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한 진급 혜택을 받지 않는다. 진급 자격을 갖춘 장교를 전부 모아 놓고 한꺼번에 심사해 성적순으로 진급을 결정한다. 때문에 미 육군에서는 육사와 비육사 간의 갈등이나 하나회 같은 특정 집단이 나올 수 없다. 미 육군에서는 육군을 위해 일하는 장교가 우선 진급하므로, 육군이 육군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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