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호

출신별 티오 할당과 직위 진급 남발이 문제

‘부익부 빈익빈’ 말 많은 군 진급 제도

  • 이정훈 hoon@donga.com

    입력2002-10-09 14:3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육사 출신 진급 경쟁률은 5.5 대 1, 3사 출신은 41.1 대 1 (1998년 대령 진급 기준)
    • 성골·진골은 물론이고 6두품 보직까지 독식하는 육사 출신
    • 중장 진급에서 일어난 사표 소동, 원인은 직위진급
    • 기무사령관 역임한 사람은 전역한다는 관례 깬 이남신 합참의장
    • 직위진급 두 번으로 중장이 된 차영구 국방장관 정책보좌관
    한국 육군 수뇌부는 육사 출신이 성골·진골은 물론이고 6두품 자리까지 독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장군으로 진급하는 사람 중에서 비육사 출신은 눈을 씻고 찾아야 겨우 보일까말까다. 육군의 진급 구조가 육사 출신 위주로 굳어진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문민정권이 출범한 이후다.

    최근 10여 년간 매년 대령에서 장군으로 진급한 사람은 47명 내외인데, 이중에서 육사 출신으로 별을 단 사람은 31∼36명 정도. 한해 육사 졸업자는 250명 정도이므로, 육사 졸업자의 7∼8분의 1 정도가 ‘스타’가 되는 데 성공하는 셈이다. 육사 출신으로 장군이 되는 사람은 전체 장군 진급자의 66∼77%에 이르고 있다.

    군 출신이 대통령이었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4년제 정규 육사 1기’라고 하는 육사 11기에서 처음으로 1차 진급한 장군이 나왔는데 그 숫자는 단 세 명(전두환·손영길·최성택)이었다. 박대통령 시절 육사출신 장군은 소수였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육사 출신의 장군 진급자가 대폭 늘어났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적었다. 전대통령 시절 육사 출신으로 별을 단 사람은 전체 장군 진급자의 절반을 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슬금슬금 올라가 김영삼 정권 때 60%를 돌파하고,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70%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군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군 출신 대통령은 특정 학교 출신이 육군의 주축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기 때문에, 장군 진급자 중에서 특정 학교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일정한 선 이상을 넘지 않게 했다. 그러나 문민 출신 대통령은 정치군인만 단속하고 나머지는 방기했기 때문에, 오히려 육사 출신의 장군 독식이 강화되었다”고 지적한다.



    문민정부서 육사 독점 체제 강화

    ‘세계 육군의 교과서’라고 하는 미국 육군에서는 이러한 독점 현상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육사에 해당하는 학교가 미 육군에서는 웨스트포인트다. 그런데 이 학교는 국비로 직업 군인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로 목표를 바꾼 지 오래다.

    웨스트포인트 출신은 졸업 후 3년간 의무복무를 하고, 그 후의 진로는 본인이 결정한다. 때문에 상당수의 웨스트포인트 출신은 조기 전역해 사회 일반 분야로 진출한다. 그리고 학군 출신을 비롯해 다양한 출신의 장교들이 몰려들어 미 육군의 ‘인재 풀’을 구성한다.

    미 육군은 출신별 경쟁제가 아니라 완전 경쟁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웨스트포인트 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한 진급 혜택을 받지 않는다. 진급 자격을 갖춘 장교를 전부 모아 놓고 한꺼번에 심사해 성적순으로 진급을 결정한다. 때문에 미 육군에서는 육사와 비육사 간의 갈등이나 하나회 같은 특정 집단이 나올 수 없다. 미 육군에서는 육군을 위해 일하는 장교가 우선 진급하므로, 육군이 육군다워진다.

    사관학교 출신은 4년간 내무반 생활을 하기 때문에 대체로 일반 사회와의 교류 폭이 좁다. 그런데 이들이 한국 육군의 최상위직을 독점하다 보니 육군과 사회 간에 ‘벽’이 생기고 만다.

    민은 군을 모르고 군은 민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유리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미 육군 수뇌부에는 일반대학(학군) 출신이 많아 민간과의 교류가 원활하다. 군을 이해하는 민간인과 민간을 이해하는 군인이 많은 것은 신뢰받는 군, 강한 군을 만드는 첫째 조건이다.



    ~는 차원양 장군이 이준 국방 장관에게 보낸 내용을 검증해보기 위해 육군통계연보를 토대로 출신별 진급경쟁률을 정리한 것이다. 이 표를 보면 육사 출신은 다른 출신에 비해 월등히 낮은 경쟁률을 적용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의 1998년도 대위-소령 진급을 놓고 설명해보자. 1998년도에 소령으로 진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대위는 3450명이었는데 이중 900명만 소령으로 진급했다.

    이해 육사 출신으로 소령 진급 자격을 갖춘 대위는 273명이었는데 육군은 900명의 진급 티오(공석) 중에서 253석을 육사 출신에게 배당했다. 덕분에 육사 출신 대위는 단 20명만 탈락하는 1.1 : 1의 경쟁을 통과해 소령이 될 수 있었다.

    학군 출신 진급 대상자는 육사 출신보다 3.2배 많은 871명이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할당된 티오는 육사 출신보다 적은 234명이었으니 학군 출신의 소령 진급 경쟁률은 3.7 : 1에 이르렀다. 3사와 학사, 기타(기행이나 통역) 출신의 대위는 훨씬 더 높은 경쟁을 치러야 소령이 될 수 있었다.



    출신별로 티오(T.O)를 정해놓고 진급시키는 것에 문제점이 많다는 점은 육군 수뇌부도 인정한다. 지난 9월9일 육군은 “내년부터 대위에서 소령으로의 진급은, 출신별로 공석을 정하지 않고 완전 경쟁케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육군은 언제 전계급으로 완전경쟁제를 확대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육군의 진급체계가 안고 있는 두번째 문제점은 진급 심사위원이 대부분 육사 출신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이다. 육사 출신은 선배가 많기 때문에, 평소의 인사고과에서 유리한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진급 심사위원마저 육사 출신 위주로 편성되니 비육사 출신은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급심사위원을 육사 출신 위주로 짜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었다. 9월9일 육군은 이러한 주장을 수용해 진급 심사위원의 50%를 비육사 출신으로 채우겠다고 밝혔다.

    육군의 진급체계 문제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육군에서는 중장 진급 인사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육군은 ○○본부장에 육사 25기생인 소장을 중장으로 진급시켜 보임했는데, 그와 진급 경쟁을 벌였던 육사 26기생 소장이 사표를 내며 인사 결과에 반발했던 것. 26기 소장이 반발한 이유는 25기 선배가 두 차례나 직위 진급을 해 본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직위진급은 출신별 진급 경쟁과 더불어 군내 불화를 양산하는 양대 축이 되고 있다.

    직위진급의 정식 명칭은 ‘임기제 진급’인데, 직위진급은 일반진급보다는 격이 떨어지는 ‘조건부 진급’이다.

    군인사법 제 24조의 2는 직위진급(임기제 진급)을 ‘영관급 이상 장교는 대통령이 정하는 직위에 보(補)하기 위해 인력 운영상 필요할 경우 임기를 정하여 1계급 진급시킬 수 있다. 이렇게 진급한 자의 임기는 2년으로 하고, 그 직위에 다시 보직되거나 유사한 계통의 직위에 전직된 때는 다시 2년이 경과한 때 전역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이 조문은 난해한 문구로 돼 있어 쉬운 문장으로 수정했음을 밝힌다).

    직위진급을 한 장교는 직위진급 후 2년이 지나면 전역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육사 교수부장(준장)이다. 육사 교수는 대개 중령이나 대령이 맡는데 이들은 다른 장교와 달리 계급정년이 없고 연령정년이 일반 장교에 비해 월등히 길다(65세). 육사 교수는 대령으로 65세까지 근무하고 전역하느냐, 아니면 일찍 준장(교수부장)이 돼 조기전역하느냐를 택일할 수 있다. 육사 교수부장은 직위진급 자리기 때문에 이 자리로 승진한 군인은 2년 후 ‘반드시’전역한다.

    군인사법에서 말하는 대통령령이란 ‘군인사법 시행령’이다. 이 시행령 제25조의 2는 ‘별표 1’로 직위진급하는 보직을 명시해놓고 있다. ‘별표 1’을 그대로 옮긴 것이 다. 이 표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국군기무사령관·육본지원 기무부대장·국방부지원 기무부대장 등 기무 관련 부대장 세 자리가 직위진급 자리로 표기돼 있는 점이다.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때까지 기무사령관(당시는 보안사령관)에는 대개 보병 출신의 3성 장군이 임명됐다가, 4성 장군으로 진급해 떠나갔다.

    그러다 보니 기무사의 위세가 너무 세졌고, 반대로 순수 기무 출신들은 진급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이 시기 순수 기무 출신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계급은 기무사 참모장(소장)이었다. 기무사는 힘이 세지만 정작 순수 기무 출신은 진급에서 불이익을 받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김영삼 대통령 시절, 기무사 주요 지휘관직을 직위진급 보직으로 정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상위 계급으로 진급할 수 있는 일반장교가 기무부대의 장으로 오는 것이 차단된다.

    그런데 이러한 취지가 김대중 정부 들어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남신(李南信) 현 합참의장이 8군단장을 하다 1998년 3월 기무사령관에 임명되고, 1999년 10월 대장 진급과 함께 3군사령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무사령관은 가급적 순수 기무 출신을 보임하고 그는 기무사령관을 끝으로 전역한다는 관례가 비 기무출신인 이남신 중장이 기무사령관을 역임하고 4성장군이 되어 기무사를 떠나면서 깨진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측은 “이남신 사령관은 중장(8군단장)인 상태에서 기무사령관으로 보직만 바뀌었기 때문에 직위진급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대장으로 진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사령관의 대장 진급은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기무사령관에 순수 기무 출신을 임명하고 그 자리에서 전역시키기 위해 기무사령관을 직위진급 보직으로 정하지 않았느냐. 그런 면에서 이사령관이 기무사령관에서 대장으로 진급한 것은 기무사령관직을 직위진급 직위로 지정한 법정신을 깬 것 아니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마땅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기무사령관은 전역하는 자리

    이남신 사령관 경우보다 더욱 절박한 것이 앞에서 언급한 ○○본부장 문제다. 육사 25기생인 ○○본부장(중장)은 준장에서 소장, 그리고 소장에서 중장 모두 직위진급했다. 준장에서 소장으로 일반 진급한 장교는 상위계급으로 진급하기 위한 ‘후보생’이므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사단장을 거친다. 그러나 직위진급한 장교는 2년 후 전역할 사람이기 때문에 사단장으로 나가지 않는다.

    대령까지는 보병·포병의 병과별로 진급이 이뤄지지만 장군이 되면서부터는 병과가 없다. 따라서 정보 병과에서 일반 진급해온 사람은 소장이 되면 사단장을 맡는다. 진급경쟁을 벌인 26기 소장은 사단장을 마친 일반 진급자였고, 25기 소장은 사단장을 거치지 않은 직위 진급자였다. 그런데 일반진급자를 놔두고 직위진급한 사람을 또다시 3성장군으로 직위진급시키자, 26기 소장은 공정한 인사가 아니라며 사표를 제출하는 소동을 일으켰던 것.

    국방부에서 최고의 정책통으로 꼽히는 차영구(車榮九) 국방장관 정책보좌관도 두 차례나 직위진급을 했다. ○○본부장은 와 같은 ‘별표1’에 직위진급하는 보직으로 표기돼 있지만, 국방부 정책보좌관은 이 표에 들어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차소장은 중장으로 직위진급하며 정책보좌관에 재차 보임되었다.

    군인사법 시행령 제25조의 2는 2호에서 ‘국방부장관은 전문인력이 필요하거나 기타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행정자치부장관·기획예산처장관과 협의해 별표1 외의 직위에 대해서도 직위진급을 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이 조항도 문구가 매우 난삽해 알기 쉽도록 수정해서 정리했다).

    직위진급은 바로 이 조항 때문에 별표1에서 정한 직위 외로 마구 확대되고 있다. 차보좌관의 진급은 이 규정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법률을 만든 기본 취지를 확대해버리면 별표1로 직위진급을 하는 보직을 정해놓을 필요가 없다. 군 인사 문제에 해박한 사람들은 “이 조항(25조의 2의 2호)이야말로 대표적인 문제 조항”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군인사법 시행령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직위진급을 하도록 규정한 상위법 ‘군인사법’의 정신을 어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국방부측은 이렇게 해명했다. “국방부에는 다른 부처에서 말하는 1급(관리관)이 보임되는 자리로 차관보와 기획관리실장·정보화실장·정책보좌관 네 자리가 있다. 이중 앞의 세 자리는 민간인을 보임하나 끝에 있는 정책보좌관은 현역이 맡도록 규정돼 있다. 잘 아시겠지만 차실장(국방부에서는 차중장의 보직을 정책실장으로 부른다)은 손꼽히는 정책통으로 이미 정책국장을 지냈다. 그런데 정책보좌관에 공석이 생겼고 정책통으로는 그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 다른 대안이 없어 직위진급을 하게 되었다.”

    이 설명은 그럴듯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다. 차장군은 이미 정책보좌관으로 있다가 그 자리에서 중장으로 직위진급했다. 중장으로 진급하지 않았으면 그는 예편할 뻔 했다. 상당수의 장교는 “그렇게 뛰어난 능력이 있으면 준장에서 소장으로 진급시킬 때 이미 직위진급을 시키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국방부 “직위진급 남발은 문제”

    일반진급에는 국방장관이 깊이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직위진급은 대개 각군의 참모총장이 결정한다. 때문에 군에서는 직위진급을 통해 자기 사람을 만들려는 참모총장과 그러한 참모총장을 억제하려는 국방장관 간에 기싸움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지금도 국방부에서는 10여 년 전 이모 국방장관과 이모 육군총장이 벌였던 살벌한 기싸움과, 얼마 전까지 있었던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서로를 무시하며 펼친 신경전을 이야기하는 장교가 적지 않다.

    직위진급이 남발되는 문제점에 대해 정작 가장 고민하고 있는 것은 국방부다. 현재 국방부는 직위진급을 한 장교는 무조건 2년만 보임한 후 전역하게 하는 방향으로 군인사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출신별 진급제와 직위진급제는 잘못 운용되면, 군내에 인맥과 파벌을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준 국방부장관은 잘못된 이 관행을 없앴을 수 있을까.

    김대중 정부는 집권 초기 육군의 1·3군을 통합해 지상작전사령부를 만들고, 2군은 후방작전사령부로 개편한다는 것 등을 주제로 한 ‘군 개혁’을 요란하게 떠들었다 흐지부지 넘기고 말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대중 정부는 능력도 의지도 없으니 다음 정부가 국방개혁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육군보다 더 진급 문제가 꽉 막힌 것이 해·공군이다. 육군은 그래도 ‘대군(大軍)’이라 학군·3사·학사 출신 등으로 장교들이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그런데 해·공군은 영관장교에서부터 사관학교 출신 일색이라 장성계급에 이르면 사관학교 출신이 전체 장성의 95%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육군에서는 그래도 다양성이 있기 때문에 차원양 장군처럼 자체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장교가 나오곤 한다. 그러나 해·공군은 사관학교 선후배 중심의 단일한 문화로 짜여져 있어 문제를 제기하는 장교조차도 없는 형편이다.

    이준 장관은 차원양 장군의 간곡한 소망대로 군 인사 문제를 개혁할 수 있을 것인가?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