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호

돼지 장기 달고 골프 즐긴다

  • 황우석 서울대 교수·수의학 hwangws@snu.ac.kr

    입력2002-10-09 1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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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질전환 복제돼지 하루 만에 죽다!

    지난 8월 초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유전자가 전환된 복제돼지가 태어났다. 올해 3월부터 계속된 사산(死産)의 아픔을 겪은 후 은백색 털을 입은 예쁜 모습으로 말이다. 기자들의 자율적 엠바고(보도유예) 상태에서 대표로 취재에 참여했던 여기자의 입에서는 연신 “너무 귀엽고 신비하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정성스럽게 전신을 닦아주고 근심 어리게 지켜보는 연구팀에게 녀석은 수줍은 양 살며시 눈을 떠 보였다. 조금 지나 네 발로 일어서고 초유를 맛있게 마셔대기까지 했다. 기운을 차리고 나자 “꾸액 꾸액” 하며 제법 우렁찬 신고식까지 해냈다.

    돼지 장기 달고 골프 즐긴다
    그러나 그 녀석은 세상에 나온 지 열여섯 시간 만에 자기를 초대한 우리들의 기대를 뒤로한 채 저세상으로 갔다. 4년이라는 기다림의 시간과 수십만번에 이르는 배아복제 과정, 800여 두의 대리모에게 시도한 착상 실험, 아직도 부족하다는 의미인가?

    1999년 국내 첫 복제소인 ‘영롱이’가 태어나면서 어렵사리 구축된 우리의 복제기술은 바이오 의료혁명을 향해 닻을 올렸다. 앞으로 5년 이내 인간에게 장기를 제공할 수 있는 녹아웃 복제돼지 생산, 7년 이내 원숭이에 시험적 장기이식, 10년 이내 말기환자에 대한 임상적용, 15년 만에 완전실용화 달성. 우리 연구팀의 야심에 찬 청사진에 대해 적지 않은 ‘석학’들이 과대망상이라거나 무지개꿈이라고 하였다. 과연 그것이 이루기 어려운 꿈일까?

    의학자들은 21세기를 세포치료와 장기이식기술에 따른 의료혁명의 시대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교통사고, 유전적 요인, 그리고 인간의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장기의 기능이 저하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장기를 기증받거나 동물의 장기를 이용하여 이런 환자에게 부착시키는 것을 장기이식술이라고 한다.



    신장이나 심장 등과 같은 주요 장기의 이식은 10여 년 전부터 국내 의료진에 의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는 장기이식기술이 본 궤도에 올라 굳이 외국에 가지 않고도 생명연장이 가능해진 것이다. 문제는 이식용 장기의 공급원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선뜻 떼어주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심장과 같이 하나밖에 없는 치명성 장기일 경우에는 떼어줄래야 줄 수도 없다. 뇌사자의 장기를 제공받는 것만이 유일한 방안이다. 요즘은 불법 장기매매행위가 이루어지거나 인신 납치와 강제 장기탈취가 행해진다는 소문마저 나돈다. 몇 명 단위로 외국에 나가 사형수로부터 적출한 장기를 이식받고 오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종교계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주도하는 사후장기기증운동도 유교사상에 젖은 우리 사회에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지난해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자료에 따르면 이식대기 환자수 대비 15∼30%만이 장기이식을 받고 있다. 폐의 경우에는 이식대기 환자는 늘어나는데 제공자가 없어 이식 예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미국에서도 매년 이식대기 환자 중 10∼15%가 사망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장기공급원을 인공장기, 줄기세포유래장기, 동물장기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이중 인공장기나 줄기세포유래장기는 오랜 기간의 추가연구가 필요한 기술이다.

    과학자들은 동물의 장기를 이용하는 기술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동물 중에서 돼지는 잡식성이며 장기의 크기와 형태가 인간과 비슷하여 1차 연구대상으로 꼽힌다. 그리고 1년에 2∼4회 정도 번식하며 한 배 새끼 수도 12∼13두에 이르는 다산성(多産性)이기 때문에 만약 성공만 한다면 실용화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이식 후 면역체계 차이에서 비롯되는 급성면역거부반응과 돼지가 지니고 있는 병원성미생물에 의한 감염은 반드시 극복해야만 한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생명공학기술은 이 두 가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 결과 올해 7월 미국 버지니아주에서는 초급성 면역거부유전자가 제거된 네 마리의 복제돼지가 태어났다. 바이러스 등 미생물의 제거는 무균돼지 사육기술에 의해 가능성이 입증되고 있다.

    나는 과학자들에게 봉착한 문제를 이처럼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면 목표한 바를 조기에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수명연장과 건강한 삶의 구현이라는 숭고한 목표가 있기에 필자의 연구팀을 비롯한 수많은 연구진이 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이런 돼지가 태어나 실의에 빠져 있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 있을까? 5년? 7년? 아닐 거다. 1∼2년이 고비라고 생각한다. 나는 생명복제기술은 동양적 특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생명 경외심, 자연에 대한 탐구의욕, 섬세한 기술, 그리고 365일 24시간 쉼 없이 지속돼야 하는 성실성이 요구되며, 거기에다 애국심까지 가미된다면 금상첨화다. 이런 요소들이 어우러진 생명복제기술은 우리나라나 중국처럼 한 우물을 파는 과학 마니아가 많은 국가에 적합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이화여대 졸업 후 또 다른 학부과정을 추가로 이수하고 우리 연구진에 합류해 돼지와 함께 청춘을 불태우는 혜수가 있다. 복제돼지 탄생을 위해 결혼마저 미룬 상환이도 있다. “선생님, 지금도 제 환자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병원의 특수시설은 사육할 무균돼지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고 말하는 대학병원의 안규리 교수가 보내는 해맑고도 진지한 눈빛이 있다.

    원숭이 실험을 거쳐 환자 몸안에 우리의 돼지장기가 부착되는 날을 그려본다. 돼지장기를 달고 힘차게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고 등산을 하고 골프장에서 여유를 즐기는 내 이웃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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