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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병대는 현장 사진 보여주지 않았다”

타살로 밝혀진 허원근 일병 사건 당시 부검의 증언

  • 황일도 shamora@donga.com

“헌병대는 현장 사진 보여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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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번 뒤틀린 진실이 제자리를 찾는 것은 이렇게 힘든 일인가.
  •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9월10일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에 대한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 논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 진상 규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당시 부검의 박모씨를 만나 허일병이 타살됐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들어보았다.
1984년 4월2일, 육군 7사단에서 복무중이던 허원근 일병은 4월2일 아침 9시50분경 소속 중대본부에서 30m 가량 떨어진 폐유류고 울타리 옆에서 자신의 M16 소총과 함께 발견됐다. 시신에 나 있는 총상은 모두 세 군데. 좌우 가슴과 머리에 한 발씩이었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헌병대는 “허일병이 자살하기 위해 스스로 우측 가슴과 좌측 가슴을 쐈지만 치명상을 입지 않자 마지막으로 머리를 쐈다”고 결론 내렸다.

“헌병대는 현장 사진 보여주지 않았다”

허원근 일병의 사체사진. 왼쪽과 오른쪽 가슴의 총상 색깔이 다르다.

유족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 총상은 세 군데지만 총성은 두 발이 울렸다는 주변인들의 증언과 사체 주변에서 발견된 탄피 역시 두 개뿐이었다는 점은 의혹의 실마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기나긴 싸움 끝에 국방부 재조사가 몇 차례 이루어졌지만 공식결론은 변함이 없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월. 1년 7개월여의 조사 끝에 위원회는 지난 8월20일 허일병이 중대본부 안에서 상급자 노모 중사의 총에 맞았다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술자리 말다툼 끝에 난동을 부리던 간부가 허일병을 쏘는 것을 봤다는 중대원 두 사람의 증언이 있었다는 것. 이후 헌병대 수사과정에서 부대 간부들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사망 현장과 시간, 중대원들의 알리바이 등을 조직적으로 조작했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전해졌다.

“압력이나 위협은 없었다”

그러나 논란은 오히려 시작이었다. 8월28일 조선일보는 “총을 쏜 당사자로 지목된 노중사와 다른 부대원 9명이 ‘총기사고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의문사위가 이튿날 이를 다시 반박하고 나서며 “9월10일 최종발표 때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창 논란이 진행중이던 8월30일, 기자는 당시 허일병의 사체를 검시했던 부검의 박모씨를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어렵사리 신원과 전화번호를 확인했지만 박씨는 “국가기관이 아닌 이상 대답할 수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직접 만나 설득하기 위해 오후 늦게 박씨가 살고 있는 지방도시로 출발했다.

밤 9시. 숨바꼭질에 가까운 우여곡절 끝에 “먼 길 왔으니 차나 한잔 하고 가라”는 박씨의 승낙이 떨어졌다. 막상 그의 사무실에서 얼굴을 맞대고 나니 박씨는 허일병이 타살당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와 함께 검시 당시의 상황, 지금의 소회 등을 가감 없이 들려주었다. 이 가운데 일부 내용은 십여 일 뒤 열린 위원회의 최종조사결과 브리핑에서 핵심내용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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