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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진단

‘불도저 시장’의 위험한 ‘도박’

설왕설래 이명박式 ‘서울 개조론’

  • 글: 김진수 jockey@donga.com

‘불도저 시장’의 위험한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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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이 최근 내놓은 ‘강북 뉴타운 개발’ 등 일련의 야심찬 서울시정 계획들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언론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이시장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붓고, 일단의 전문가들도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가세했다.
  • 그러나 서울시의 반응은 “근거없는 비판론일 뿐”이란 강변. ‘장밋빛 기대’로 충만한 이들 계획의 허(虛)와 실(實)은 무엇인가.
‘불도저 시장’의 위험한 ‘도박’
이명박 서울시장(61)이 취임(2002년 7월1일) 4개월 만인 지난 10월 하순 잇따라 내놓은 서울시정 관련계획들의 파장이 결코 만만치 않다.

10월21일 ‘마곡지구 개발’을 시작으로 10월23일 ‘강북 뉴타운 개발’, 10월28일 ‘서울시정(市政) 4개년 계획’ 등 한꺼번에 쏟아낸 굵직굵직한 각종 계획들로 인해 시민들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뉴타운 개발 시범지구로 선정된 지역들의 땅값이 치솟으면서 투기조짐마저 이는가 하면, 연말 대통령선거를 한 달여 앞선 미묘한 시정계획 발표시기는 여야간 정치쟁점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시정계획은 전임 서울시장들도 취임 이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큰 논란으로 번진 예는 없다. 그렇다면 언론과 전문가들은 왜 하필 이시장의 시정계획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까.

이는 뉴타운 개발계획은 물론 서울시정 4개년 계획(2002∼06년)에 포함된 내용들이 가위 서울을 ‘개조(改造)’하는 수준의 야심찬 계획이란 점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비전 서울 2006’이라 명명(命名)된 서울시정 4개년 계획은 ‘20대 중점과제’를 바탕으로 청계천 복원, 도심광장 조성, 서민용 임대주택 10만가구 건설, 뚝섬공원 조성 등 파격적 사업계획들을 망라해 기대감과 우려를 동시에 낳고 있다.

서울을 ‘세계 일류도시’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이시장의 이런 계획들은 과연 비판받아 마땅한 것일까. 말 많고 탈 많은 이 계획들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문제점들을 내포한 것일까.



이번 논란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서울시정 4개년 계획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인지부터 알 필요가 있다. 이번 계획의 모태(母胎)는 이시장 취임 후 발족한 ‘21세기 서울기획위원회.’ 학자, 전문가, 시민단체 관계자 등 60여명이 위원으로 참여한 이 위원회가 10월 중순 활동을 종료하며 내놓은 결과물이 바로 서울시정 4개년 계획이다.

‘이유 있는’ 전문가 비판

이 계획에 대해 서울시는 “이시장이 4∼5년 이상 준비기간을 거쳤고, 21세기 서울기획위원회가 완벽하게 검토한 후 발표한 것이므로 임기 개시 4개월 만에 나온 즉흥 계획이란 비판은 어불성설”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견해는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쏠린다.

당시 21세기 서울기획위원회 위원이었던 한 인사의 말. “서울시는 ‘위원들과 서울시청 실·국장들이 함께 60여 차례 토의를 거쳤다’고 하지만, 실제로 전체 위원들이 모여 토의한 적은 거의 없다. 각 소(분과)위원회별로 따로 모인 횟수가 연(延) 60여회쯤 된다. 위원들이 한 일은 이시장의 선거공약을 포장해 시정계획 수립을 위한 의제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21세기 서울기획위원회가 시정혁신·도시발전·환경·교통·안전·복지·주거·경제·문화관광 등 각 분야에 따라 1∼9위원회로 나뉘어 있었음을 감안하면, ‘완벽한 검토’라는 서울시의 주장과는 달리 ‘느슨한’ 부분이 분명 있는 셈이다. 더욱이 위원회의 검토는 어디까지나 광범위한 여론수렴이 생략된 내부회의일 뿐이다.

서울시는 또 “시정계획은 모두 6·13 지방선거 당시 이시장의 공약사항들을 수정·보완한 것”이라 말한다. 그러면 잠시 공약집을 보자. ‘서울 신화 창조를 위한 서울 경영 보고서-1000만 서울시민과의 약속’이란 제목의 이시장 공약집엔 뉴타운 개발계획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다만 공약집 13쪽에 ‘강남·북 주거격차를 해소해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요지의 추상적 표현만 들어있을 뿐이다.

물론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다루기 힘든 선거공약의 특성상 대강의 줄기만 잡은 것으로 볼 여지는 있다. 하지만 공약에 일언반구도 없던 뉴타운 개발계획이 취임 후 불과 4개월 만에 구체화돼 튀어나온 것을 두고 4∼5년 전부터 준비해왔다는 말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게다가 각기 날짜를 달리해 발표된 뉴타운 개발계획과 서울시정 4개년 계획은 사실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한몸’이다. 서울시가 제작한 ‘비전 서울 2006’ 책자를 보자. 뉴타운 개발계획은 시정계획을 두루 소개한 이 책자 5∼7쪽에 걸쳐 언급된 내용이다. 즉 시정계획 중 일부다. 그런데도 서울시가 각기 별개의 계획처럼 따로따로 발표한 까닭은 무엇일까.

서울시 강승규 공보관(40)은 “뉴타운 개발계획은 관련기사가 남발될 경우 부동산 가격 폭등 등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핵심사안이어서 서울시청 출입기자들과 일정시기에 발표하기로 협의한 뒤 다른 계획들과 분리해 앞서 보도한 것”이라 해명한다.

뉴타운 개발계획이 발표되자 민주당측은 10월31일 뉴타운 계획을 겨냥해 “100만㎡ 이상 개발하려면 건설교통부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사전절차가 없었다”고 몰아붙였다. 개발면적이 359만3000㎡인 은평뉴타운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건교부 도시정책과 관계자는 “서울시가 뉴타운 개발 실행단계가 아닌 계획 수립에서부터 건교부와 사전협의할 의무는 없으며, 협의하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도시개발의 성격상 서울시의 이번 계획들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고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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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진수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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