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호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 산물인가

  • 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입력2002-12-02 17: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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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자는 물론 법학, 정치학, 경영학, 심리학 연구자들에게까지 무한한 상상력과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셰익스피어의 희곡들. 그 속에 숨은 법적·정치적 코드는 무엇인가.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 산물인가
    요즘 셰익스피어 이름을 단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그녀를 자유라 불렀다’는 책은 ‘그녀’가 누구인지, 왜 그렇게 불렀는지를 명시하기는커녕, 예컨대 유부남을 사랑하면 그의 부인에게 양해를 얻으라는 식의 충고를 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셰익스피어식 불륜인지 뭔지는 알 길이 없다. 여하튼 지금 셰익스피어는 사랑의 도사다. ‘셰익스피어 섹스 어필’ ‘셰익스피어 인 러브’ ‘셰익스피어를 미워한 여인’ 등의 책이 그렇게 그를 팔고 있다.

    사랑만이 아니다. ‘셰익스피어가 가르쳐주는 세상 사는 지혜’ ‘셰익스피어의 인생에 대한 조언’ ‘셰익스피어가 주는 교훈’ 등의 인생론이며, ‘셰익스피어 매니지먼트’ ‘셰익스피어를 모르면 20세기 경영은 없다’ ‘주식회사 햄릿’ 등의 경영서도 여럿이다. ‘화두, 혜능과 셰익스피어’라는 선(禪)에 관한 책도 있다. 셰익스피어를 모르면 인생살이도, 돈벌이도, 불교도 안되는 세상인가?

    ‘셰익스피어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책도 있다. 우리가 왜 그를 만나야 하고, 어떻게 만났는지 알고 싶어 샀으나, 셰익스피어 고향집 관광을 안내한 것일 뿐이었다. 이제 외국 문학 연구란 관광안내원에게나 맡길 일인가? 그나마 이 책은 요사이 유행하는 예술순례 안내 정도의 실용성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랄까.

    한편 셰익스피어를 동정하는 책도 있다. ‘누가 셰익스피어를 울렸나’라는 책은 수많은 이야기 중 단 몇 쪽에서 셰익스피어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셰익스피어를 이용해 돈벌이를 한 한 사기꾼의 활약에 대한 것이다. 내가 여기 쓰는 글도 그런 사기 행각의 하나가 아니길 빌 뿐이다.

    ‘장사가 되는’ 소재,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에 대한 가장 최근 책으로 지난 7월 출간된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여자들에 대한 글쓰기’라는 것이 있다. 제목만 보고 페미니즘 시각에서 셰익스피어를 논한 책이리라 짐작해 얼른 인터넷으로 주문을 냈다. 그러나 그 책 속에 셰익스피어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다. 10쪽에 이르는 방대한 인명색인에서조차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역자 해설에도 제목을 그렇게 붙인 바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우롱 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책임을 따지자면, 책을 보지도 않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내 잘못이 더 크겠지만.

    뿐만 아니다. 내게는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잊은 잘못도 있다. 물론 그것을 항상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런 책제목을 보고 바로 의문을 가져 셰익스피어 족보를 뒤질 정도로 나는 불신감에 젖어 있지 않다. 게다가 셰익스피어의 누이는 저 유명한 니체의 누이처럼 뇌리에 박힐 정도로 유명하지도 않다. 여하튼 이제는 책제목부터 의심해야 하나 보다.

    어쨌든 셰익스피어는 고전주의 작가 중 거의 유일하게 ‘페미니즘 시험’에 합격한 인물이다. 이에 대해 이미 많은 글이 쓰여졌고 일부는 우리말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여성의 심리를 너무나 잘 표현해 ‘여성이 아니었을까’하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페미니즘 관점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에 대해 쓰여지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그다지 차별성이 없는 책이나 글들이 수없이 쓰여지고 소개됐다. 그 대부분은 ‘진부’하여, 몇 년 전에는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정신분석학·기호학·해체주의를 뒤섞은 테리 이글턴의 ‘참신’한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마저 번역된 형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책에서 참신함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어려웠을 뿐이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민중을 증오한 보수주의자라 하면서도, 다시 읽을 것이 있다면서 어떠니 저떠니 한다. 이 글을 쓰며 참고하기 위해 다시 읽었으나, 역시 책값만 아까웠다. 최근 영미에서 유행하는 셰익스피어를 유물론의 입장에서 읽은 저작들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의 역자 해설만큼은 재미있었다. 역자는 자신이 재직한 대학에서 셰익스피어 과목을 없애자고 주장한 교수의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그런 경향은 영미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전한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란 이름은 누구나 알지만 대부분 관객이나 독자가 되어 본 적이 없음을 지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에 대한 학위논문 편수는 날로 증가해 ‘기이’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관객이나 독자가 되어 본 적이 있으나, 솔직히 말해 재미가 없었다. 여러 시대, 나라에서 셰익스피어를 다양하게 각색하고 현대화하는 경향에 반해 한국에서는 언제나 고전극을 고집하는 바람에 재미가 더더욱 반감되었다. 이미 신채호는 오래 전에 우리 문화의 그런 원형질 보존 태도를 비판한 바 있으나, 지금도 문화적 재창조를 무시하는 체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 연재의 한 꼭지로 셰익스피어를 주제 삼는 것을 무척 망설였다. 그러나 학위논문뿐 아니라 일반 저술도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며 뭔가 써야겠다고 작심했다. 팔리니까 책이 쓰이리라. 여전히 셰익스피어 전공자를 뽑으니까 논문도 쓰이리라. 따라서 기이할 게 없다. 여전히 장사가 잘 되고 있는 것이다.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의 역자는 셰익스피어 관련 국내외 출판 현황을 ‘소문난 잔칫집’이라 했지만, 어디 셰익스피어만 그런가? 그가 번역한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 글의 독자 치고 셰익스피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상세한 소개는 생략하자. 다만 우리나라 셰익스피어 연구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권중휘는 ‘셰익스피어 전집’ 서문에서 “후세 작가들은 그를 시공을 초월한 작가, 대자연과 같은 작가, 또는 그의 보고(寶庫)를 인도와도 바꾸지 못할 작가, 또는 그의 낱낱 작품이나 그의 전체 작품이 우주체계와도 비교할 만한 작가라 하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위의 언급 중 다른 부분은 그 내용을 이해할 수조차 없으니(시공을 초월한다거나, 대자연 또는 우주와 비교하는 등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마술쟁이나 점쟁이가 아니므로) 무시한다 치자. 그러나 ‘그의 보고를 인도와도 바꾸지 못할 작가’라 함에는 할 말이 있다.

    이는 인도를 식민지 삼으려고 침략했던 시절, 영국인의 입에서 나온 말로 짐작되는데, 그 당시는 물론 지금 인도인이 들으면 참으로 경악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제국주의적 교만이 숨어있는 말이다. 일본인이 일제 때 자기들 작가 하나를 두고 조선과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면 우리 기분이 어떨까? 그랬다면 나는 죽어도 그 작가의 책을 읽지 않았으리라.

    셰익스피어는 1564년에 태어나 1616년에 죽었으니 영국의 인도 식민지화와 직결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본격적으로 시작된 영국에 의한 아메리카 식민지화를 알고 있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가 한창 활동한 무렵보다 100여 년 전인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한 ‘신세계 발견’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젖었던 당시 유럽인에게 소위 기독교식 ‘천지창조’ 이래 최대 충격이었다.

    신세계는 ‘발견’되자마자 ‘정복’되었다. 유럽은 아메리카를 발견하면서 정복했고 또한 정복하기 위해 발견한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인식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이므로 정복이라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사실과는 달리 식인종 설화가 꾸며졌음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여기에 당시를 지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선천적 노예인설’을 원용, 그들의 열등성을 논증하는 것으로 학문적 완결성을 기하였다.

    이렇게 유럽은 정복을 위해 물리적 수단(항해술과 군사력 및 폭력)뿐 아니라, 여러 차원의 개념 장치 개발에도 적극 나섰다.

    특히 당시 지식인들은 신세계 발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연히 셰익스피어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식민지 관념 형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할 만한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다. 이에 지면 제약 상 몇 작품만 분석해 보도록 한다.

    제국주의 소설의 원조 ‘폭풍우’

    나는 셰익스피어가 1611년, 마지막으로 쓴 ‘폭풍우’가 식민지 상황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 상징적 작품이라 생각한다.

    ‘폭풍우’의 주인공은 밀라노의 공작 프로스페로다. 쿠데타로 쫓겨난 그는 무인도에 표류해, 악마가 마녀로 환생했다는 추악한 야만인 캘리반과 정령 에어리얼을 만난다. 프로스페로는 에어리얼을 해방시켜 자기 지배하에 두나 캘리반은 그의 교육에 불응한다. 프로스페로는 마법으로 그를 강제 사역시킨다. 그렇게 하여 섬의 지배권을 확보한 그가 그곳에서 12년 세월을 보낼 즈음, 과거 쿠데타를 일으켰던 사람들이 섬에 표류해 온다. 프로스페로는 복수를 하고자 하나 캘리반 등의 쿠데타에 부딪힌다. 그러나 에어리얼을 이용해 그 음모를 붕괴시킨다.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 희곡이 오랫동안 영국인의 사랑을 받아왔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대영제국이 극성을 부리던 1876년, ‘폭풍우’의 편자는 식민시대에 그 주인공들은 특별한 의의를 갖는다며, 프로스페로가 캘리반의 토지를 빼앗듯 영국도 식민지 원주민으로부터 그 토지를 빼앗는 것이 정당하다는 식의 설명을 하고 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당시 가장 유명했던 셰익스피어 학자 윌슨 나이트는 ‘폭풍우’를 분석하면서 역시 대영제국을 극찬했다. 그는 제국 건설의 정신적 지주로 종교적 규율과 관용, 자연 이용의 기술, 그리고 야만인 문명화에 대한 강고한 의지를 들어 그 세 주제의 각각에 프로스페로, 에어리얼, 캘리반을 대응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제국 찬양의 분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50년 프랑스의 정신분석의이자 사회과학자였던 마노니는 프랑스 식민지 마다가스카르의 지배자와 원주민을 분석하면서 프로스페로와 캘리반을 대응시켰다. 그 후 그 두 이름은 식민지배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널리 사용되었다. 예컨대 케냐 작가 응구기와 씨옹고는 1967년에 쓴 초기 장편 ‘한 톨의 밀알’에서 민족독립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식민관료를 묘사하고 있는데, 그 관료가 소설 속에서 쓰는 회상록 제목이 ‘아프리카의 프로스페로’이다. 역시 셰익스피어는 소위 저항문학, 민중문학에서도 장사가 된다.

    ‘폭풍우’는 셰익스피어 극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곧 밀라노와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며 등장 인물도 모두 그곳 사람이다. 그리고 섬은 나폴리와 튀니지를 연결하는 선상에 있는 절해의 무인도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머리 속에 있던 이미지는 분명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그곳을 표현하는 고유명사·박물지·인용·상황·인물관계 중 20여 군데가 아메리카와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엽에 걸쳐 분명하게 밝혀졌다. 그중 특히 중요한 부분은 식민자인 프로스페로의 생김새와 ‘캘리반’이라는 이름, 그리고 몽테뉴 ‘수상록’ 제1권 31장 ‘식인종에 관하여’의 긴 인용이다.

    프로스페로는 이탈리아 귀족으로 나오나 원주민 캘리반에게 생활 수단 전부를 의존한다. 또한 그에게 유럽어를 가르치고 원주민 신을 압도하는 기술로 원주민을 지배하는 등 아메리카 식민 지배자와 흡사하게 그려져 있다.

    ‘캘리반(Caliban)’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식인종을 뜻하는 ‘캐니벌(cannibal)’의 철자를 바꾼 것이라는 견해가 18세기 후반이래 통설이 되었다. 1888년에 간행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그렇게 설명되어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신세계 원주민이 식인종이라는 견해는 ‘폭풍우’가 상연된 1611년부터 이미 널리 퍼져 있었음이다. ‘폭풍우’에서 캘리반을 식인종으로 묘사하고 있진 않으나, 이 견해는 지금껏 나온 여러 학설 중 가장 유력한 것이다. 제2막 제2장에서 캘리반은 인디언 또는 야만인으로 불린다. 그는 인디언 특유의 고기잡이법 등을 보여주기도 한다.

    몽테뉴 인용은 ‘폭풍우’ 제2막 제1장에 나오는 곤잘로의 식민정책에 관한 대사다. 몽테뉴가 이 구절을 쓴 것은, 브라질 원주민에 대한 성찰을 통해 유토피아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함이었으나, 셰익스피어는 이를 앞으로 건설할 유토피아의 청사진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셰익스피어의 그것을 살펴보자.

    “그 국가에서 저는 만사를 보통과는 정반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즉 어떠한 상거래도 인정하지 않고, 관공리는 없을 것이며, 학문도 금지하고, 빈부도 없을 것이며, 고용도 전혀 없을 것입니다. 계약, 상속, 경계, 소유지, 경작지, 포도원 같은 것도 전혀 없을 것입니다. 금속·곡물·주류·유류 등의 사용도 없을 것이며, 직업도 없고, 남자는 무위 도식할 것이며, 여자 또한 천진난만할 것이며, 군주권도 없고. (중략) 만인이 필요한 물건들은 죄다 땀도 노력도 없이 자연이 생산해 줄 것이며, 칼·창·단도·총, 또는 이밖의 전쟁 무기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며, 자연은 풍요한 오곡을 생산하여 순박한 백성들을 양육해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유토피아의 꿈은 악역들에 의해 곧 야유당하고 우스개로 평가절하된다. 악역들이 “무위도식자뿐이니 결혼도 없이 갈보와 악당뿐이겠다”고 하자 곤잘로는 금세, 웃음거리를 제공한 것에 불과하다며 꽁지를 내린다. 이는 셰익스피어가 몽테뉴를 인용해 오히려 그를 비웃고자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불러 일으킨다.

    ‘폭풍우’ 제4막 제1장에서 유토피아는 시이리즈의 다음과 같은 노래를 통해 재현된다.

    대지의 생산은 풍부하고,광과 곳간은 가득 차고,포도는 주렁주렁,과목의 가지는 늘어지고,봄철은 늦어도추수여 어서 오라!부족이나 결핍은 오지 말고시이리즈의 축복 받으라.

    이 유토피아 또한 곤잘로의 그것처럼 아메리카 초기 식민자들이 보고한 내용과 동일하다. 그러나 노동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의 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이는 ‘폭풍우’ 집필을 전후한 시기에 특히 강조된 노동 가치론과 일치한다. 그러나 여기서 묘사된 유토피아도 극중에선 곧 소멸하고 만다. 캘리반의 쿠데타 때문이다. 이를 통해 셰익스피어는, 원주민을 완전히 정복하지 않고는 유토피아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관점에서 ‘폭풍우’에 나타나는 식민지화 구조를 살펴보면, 콜럼버스의 그것과 같이, 첫째 초기 우호관계(캘리반은 프로스페로에게 섬의 풍부한 자원을 알려준다), 둘째 제국 측의 문명화 노력과 실패(캘리반에게 언어를 가르치나 이는 나쁜 짓에 악용된다), 셋째 적대관계와 토지수탈 및 원주민의 노예화임을 알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 산물인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시대와 국가에 따라 여러 형태로 변주되어 왔다. ‘오셀로’와 한국춤의 만남을 시도한 무용극.

    ‘폭풍우’보다 먼저, 1603~04년에 쓰여진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는 흑인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흑인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당시, 흑인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까닭에 인종의 제약을 넘어 보편적 인간성 표현에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되어 왔다. 흔히 오셀로를 무어인이라 하나 이는 곧 흑인을 뜻한다. 이글턴은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에서 오셀로의 질투심을 관념주의 철학자들의 편집광적 성격의 표출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으나, 솔직히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피부가 검은 인간을 설명하고자 하는 유럽적 언설은 고대 그리스 이래 방대하게 축적되어 왔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태양의 화차를 잘못 운전한 탓으로, 구약성서와 유대교에서는 노아가 한 자식에게 내린 저주로, 또는 자연 감염에 의한 유전 등으로 설명되었다. 어느 것이나 흑인은 백인과 다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15,6세기 아직 후진국이던 영국에서조차 백인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기묘하게도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흑인의 국외이송 명령이 빈번히 내려질 정도로, 당시 이미 흑인은 서양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었으나, 그들은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남’이었다. 또한 영국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기 시작한 16세기 이전부터 유럽에서 ‘흑’이란 언제나 불결·불순·음험·위험·악의·죽음·불길 등을 뜻하는 것이었다.

    ‘오셀로’에서 주인공 오셀로는 이름보다 무어인으로 불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가 흑인임을 강조하는 부정적 이미지의 대사 또한 18군데나 등장한다. 두터운 입술, 검은 피부, 악마성, 호색, 변덕, 격정, 요술 사용 등을 강조한 것들이다. 물론 이는 셰익스피어가 창작한 것이 아닌, 당시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흑인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오셀로’의 제국주의적 요소는 이야기 자체에 있다. 주체적 판단을 못하고 타인의 감언이설에 속아 백인 아내를 죽이는 흑인 오셀로의 인간상은 바로 흑인 멸시의 형상화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를 오직 ‘제국주의의 원조’로만 부각시키려는 것은 내 의도가 아니다. 같은 시대 사람인 콜럼버스조차 오직 제국주의자였던 것만은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보면 그가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 박식한 르네상스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그 점을 굳이 강조하지 않은 것은 그런 평가는 이미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사실 신비의 인물이다. 그만큼 생에 대해 알려진 사실이 적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1564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우리의 초·중·고에 해당하는 그래머스쿨을 다녔으나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18세에 8세 연상인 여성과 결혼해 쌍둥이를 낳았다. 이후 1584년부터 12년간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20대 시절의 셰익스피어를 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여하튼 30대로 들어서면서 그는 유명 시인이자 극작가로 런던에서 큰 활약을 하게 된다.

    이후의 삶도 안개 속이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셰익스피어를 필명 삼아 작품을 썼다는 학설이 제기될 정도다. 그 ‘다른 사람’으로 거론되는 이 중에는 당시 석학인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도 있다.

    셰익스피어와 관련해 특히 내 관심을 끈 건 그가 법률가라는 주장이다. 18세기말에 그런 이야기가 처음 나와 1858년에는 ‘셰익스피어는 법률가다’라는 책까지 출판됐다. 이 논의는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역사적 공백기인 20대에 법률을 공부했거나 법률직에 취업했을 가능성이 주로 제기된다. 그러나 이는 오직 그래야만 법에 관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식의 전제에서 나온 것이라 문제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아버지는 일생 동안 몇 차례나 소송을 했고, 특히 20년에 걸쳐 처의 형제들과 토지를 둘러싼 소송을 벌였다. 셰익스피어 자신도 1596년에는 극장 경영권을 둘러싸고, 1604년에는 이웃과의 채권채무 관계, 1609년에는 투자와 관련하여 소송을 했다. 그가 벌인 소송은 이외에도 많았다. 어쩌면 그는 소송을 꽤나 좋아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또 소송을 통해 법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게 됐을 수도 있다. 사실 당시 극단에는 법률가가 많았다. 셰익스피어의 경우 자신의 연극을 법률학교에서 상연한 경우도 있음을 감안할 때, 그곳 사람들로부터 학습을 받거나, 법률가 청중을 상대로 작품을 써야 했던 사정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셰익스피어 당시 영국이 법을 매우 강조하는 사회였다는 점이다. 그 때 나온 희곡의 3분의 1이 법정 장면을 포함하고 있으며, 셰익스피어의 경우 그 비율은 3분의 2를 넘어선다. 셰익스피어가 근현대에서도 널리 읽히는이유 중에는 근현대 또한 법의 지배를 강조하는 시대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영국은 차치하고, 미국의 판결문에서 셰익스피어를 인용한 것만 800여 개에 이른다.

    그 중 법학자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작품은 ‘베니스의 상인’이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은 베니스 귀족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만일 기한 내에 갚지 않으면 1파운드의 살을 베어내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이로 인해 법정 공방이 벌어지자 안토니오의 친구 바사니오의 연인인 포샤는 판사로 가장해, 정확히 살 1파운드를 떼어내되 한 방울의 피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린다.

    포샤의 재판에 대해 오랫동안 독자들은 명판결이라며 박수를 보냈지만, 샤일록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인 예링, 슈탐러 같은 법학자들은 비판적이었다. 왜냐하면 그 계약은 우리 민법으로 치면 반사회질서(제103조) 조항에 해당해 그 자체가 무효라는 주장이다.

    특히 예링은 셰익스피어 정도는 아니지만, 법률가들에게는 ‘베니스의 상인’에 버금가는 명저로 일컬어지는 ‘권리를 위한 투쟁’(1872년)에서 이 문제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 후로도 포샤의 재판을 둘러싼 논쟁은 그 전말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몇 권의 책이 나올 만큼 치열하게 전개됐다.

    예링은, 포샤가 말한 대로 만약 그 계약이 유효한 것이라면 살을 떼어낼 때 피를 흘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우리 민법 제100조에서 말하는 ‘종물에 대한 권리’에 의거해서다. 그리고 1파운드의 살을 떼내는 것이 계약 내용이라면 그 이하를 떼어내는 것도 유효하고, 따라서 샤일록이 원금 배상까지 거절당한 것은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는 한국 법체계에서도 당연한 결론이다. 법 차원에서는 오히려 포샤의 판결이 위법이다.

    그러므로 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이런 희곡을 쓸 리가 없고, 만약 썼다면 무식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포샤의 피에 관한 논술이나 샤일록의 계약에 관한 궤변은 모두 무시되어야 하며, 올바른 재판관이라면 단순하게 ‘돈을 갚으라’는 채무 이행의 명령을 내리면 그뿐인 것이다. 또한 절차에 있어서도 포샤가 판사를 가장해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밖에도 따지기 좋아하는 법률가들은 갖가지 분석을 하고 있다. 예컨대 돈이 아닌 목숨을 노린 샤일록의 권리 남용에 대한 법원의 배상요구는 당연하다는 주장도 있고, 나아가 당시 베니스법은 약속 이행의 절대성에 입각, 인육(人肉)계약을 허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한편으로 포샤의 재판은 19세기 말엽 유행한 자유법 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한편 ‘베니스의 상인’은 샤일록이라는 유대인을 극악한 인물로 그린 점에서 반유대인적 요소가 강해 교육용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보기 나름으로 샤일록은 가족과 유대인 사회에 성실하며 솔직하고 정의감이 풍부한 인물로 비치기도 한다. 또 조금 삐딱하게 보면 포샤는 위선적이며 안토니오나 바사니오는 샤일록 못지않게 복수심에 불타는 인물이다. 여하튼 ‘베니스의 상인’은 유대인 차별, ‘오셀로’는 흑인 차별, ‘리처드 3세’는 장애인 차별이라 하여 출판이나 상연을 금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부당하다.

    문제는 포샤의 판결인데, 두말할 필요도 없이 샤일록과 안토니오 사이의 인육계약은 반사회질서 조항을 들어 무효라 판결했어야 한다. 또 민사재판임에도 불구하고 샤일록에게 재산몰수와 기독교로 개종을 명하는 판결을 내림은 재판관 권한을 초월한 것이다. 재산몰수의 근거가 된 법이 당시의 외국인법이라 하나, 그 법은 미국의 흑인차별법, 남아연방의 아파르트헤이트법, 나치의 법 이상으로 악법이었다. 그리고 포샤 자신이 피고 친구와 약혼한 사이라는 이유에서 제척(除斥)사유에 해당되므로 그 재판을 맡은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동반자살은 범죄인가

    ‘햄릿’은 ‘베니스의 상인’처럼 재판극이 아니라 법적 차원에서 보면 살인 및 복수극이다. ‘햄릿’만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모두 살인 등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법률가들은 온갖 소리를 해댄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유명한 ‘햄릿’은 연극무대에서 수없이 상연되었고 몇 번이나 영화화됐다. 그런데 이 독백의 번역에는 의문이 있다. 누군가는 “이대로 좋으냐, 좋지 않으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무거운 임무에 고민하는 햄릿의 말로는 후자가 더 정확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햄릿’에는 각종 죽음이 등장한다. 왕에 의한 선왕의 살인, 왕비의 독살, 햄릿의 죽음, 왕의 죽음, 오필리아 오빠 레어티즈의 죽음 등이다. 여러 죽음의 기저에는 복수가 있다. 왕에 대한 햄릿의 복수, 레어티즈의 햄릿에 대한 복수. 물론 중요한 것은 전자다. 콜러는 ‘햄릿’의 주제를 복수가 용인되는 고대법사상과 그것을 금지하는 근대법사상 사이의 갈등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햄릿이 극 전반(全般)에서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자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당시 법사상이 복수를 당연시한 점을 볼 때 콜러의 견해는 옳지 않다. 당시는 복수가 용인되는 시대였음은 왕이 레어티즈에게 복수를 권유하는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곧 “복수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수 사상은 함무라비 법전이나 모세 10계에도 나오는 대표적 고대 법사상이다.

    ‘햄릿’에 등장하는 최악의 살인범은 왕이다. 왕은 햄릿의 아버지를 죽였고, 다시 그 복수를 꾀하는 햄릿을 죽이려 하나(살인음모), 일이 잘못돼 왕비가 죽고 만다. 후자는 형법 제15조의 사실의 착오에 해당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많은 학설이 존재한다.

    ‘햄릿’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죽음은 자살이다. 오필리아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사고사였다는 견해도 있으나, 염세 자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명예로운 동기에 의한 자살을 인정했다.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죄악으로 보아 나라에 따라서는 19세기까지 국왕에 대한 범죄로 인정되었다. 영국에서만도 1961년 자살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살인 처벌 대상이 되어 시신에 대한 손상 및 재산몰수가 가해졌다. 동반자살(현재도 처벌)과 자살미수도 처벌되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1789년 혁명 직후 자살금지법을 폐지했다. 한국에서도 자살은 처벌되지 않으나, 단 형법 제252조 2항으로 자살관여죄는 처벌한다. 동반자살이 처벌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 산물인가

    베일에 가려진 셰익스피어의 20대를 스크린에 되살려낸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

    ‘햄릿’에서 가장 중요한 결투는 햄릿과 레어티즈의 대결이다. 결투에는 본래 룰이 있으나, 레어티즈의 그것은 룰을 무시한 살인계획이었다. 봉건사회에서는 재판상 결투, 근대에는 명예 결투가 용인되어 뒤마, 바이런, 푸슈킨 등의 문인들도 결투를 했다. 1817년까지 영국에서는 그것을 재판의 일종으로 허용했으나 1819년 법으로 금지했다.

    ‘맥베스’ 역시 ‘햄릿’처럼 범죄 이야기다. 범죄심리학에서 보면 맥베스는 유혹에 빠져 범죄를 저지르는 허약한 성격의 전형이며, 그를 유혹해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부인 역시 여성 범죄자의 전형이다. 부인의 범죄는 우리 형법 제31조에서 말하는 교사에 해당된다. ‘리어왕’도 ‘오셀로’도 죽음으로 뒤범벅된 비극이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법학적 연구는 역사가 오래고 최근에도 관련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은 흔히 희극과 비극, 그리고 사극으로 나뉜다. 그러나 여기서는 과감하게 법적 주제별로 분류해보자.

    첫째, 남녀관계 내지 정조에 관련한 것들이다. ‘햄릿’을 비롯해 셰익스피어 극에는 이런 문제가 자주 등장한다. 가령 ‘눈에는 눈으로’는 수십 년 간 적용되지 않던 법률을 돌연 끄집어내 약혼자를 임신시킨 남자를 혼외간음이라는 죄로 사형시키고자 한 권력자의 이야기다. 이런 식으로 법을 악용하는 사례는 지금도 흔하다.

    예컨대 미국에서 수십 년 간 묻혀 있던 법을 적용해 합의된 동성애에 징역형을 부과한 사건이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1986년, 국민에 대한 공정한 예고가 없었다는 등의 이유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눈에는 눈으로’의 경우에도 그런 판결이 필요했다. 곧 당시에도 적용되던 로마법의, 영속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규범의 효력을 부인하는 법리에 따라 무죄를 선고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그것을 몰랐는지 나름의 합리적 해결을 도모한다. 즉 “법이란 강력하고도 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권력자에 대해, 피고 자매는 “거인의 힘을 갖는 것은 좋으나,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폭력이다”는 반론을 펴 문제를 해결한다. 이 연극은 당시 영국을 지배한 왕에게 ‘보통법’을 넘어서는 ‘형평법’을 알려주려는 것이었다고도 한다.

    역시 희극인 ‘헛소동’은 여성의 정조를 비방한 사건을 다룬 것이다. 결혼식에서 주인공인 신부는, 그녀의 정조에 대한 헛소문을 믿은 신랑으로부터 창부(娼婦)라는 모욕을 당하고 결혼은 파기된다. 과거 영국법에서 구두비방 소송은 원고가 손해를 입증할 책임을 졌으나, 정조에 대한 것 등 비방에 의해 큰 고통을 받은 경우에는 그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이 점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히 낮다.

    유사한 희곡이 역시 희극인 ‘겨울밤 이야기’다. 처의 부정을 의심한 남자가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 처를 사형시키려 하자, 처는 아폴로 신에게 부탁해 결백을 증명한다.

    법학자의 눈으로 본 셰익스피어

    ‘한 여름밤의 꿈’은 결혼에 반대하는 아버지를 피해 숲 속으로 도망친 젊은 연인의 이야기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아버지의 뜻에 따르지 않고 결혼을 강행한 딸을 처벌했다. 셰익스피어는 자연의 사랑과 인위적 법을 대비시킨 뒤 전자를 긍정한다. 이글턴은 “결혼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하며 빈정대지만, 지금도 우리 TV 드라마는 언제나 그렇게 끝이 난다.

    둘째 주제로 상속 문제가 있다. 그 전형은 ‘리어왕’이다. 유산 상속은 부당이득이므로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으나, 부모의 재산처분권도 무시할 수 없어 그 타협책으로 나온 것이 상속세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차별이다. 특히 사생아인 에드먼드는 그 차별에 항변한다. 1968년 비적출자에 대한 평등을 논하면서 미국 연방대법원의 진보파 더글러스 판사는 에드먼드의 사례를 인용한 바 있다.

    셋째 주제로 독재자와 그에 대한 반역이라는 정치적 이야기가 있다. 우선 비극인 ‘줄리어스 시저’에서 시저의 독재에 저항한 브루투스는 역사상 모든 모반에 영웅이 된다. 전형적인 독재자를 다룬 것으로는 ‘리처드 3세’가 있다. 그러나 정치적 저항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태도는 명확지 않다.

    ‘리처드 2세’는 반역죄 재판으로 시작된다. 재판관인 왕은 사실상 이해관계자의 한 사람으로서 불공정한 판결을 내린다. 그런 정치재판의 배후에는 “권력자는 법 위에 있다”는 반법치주의 사상이 있다. 이를 비판한 셰익스피어의 정치사상을 입헌 민주주의라 볼 수 있는 여지도 있으나, 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이처럼 셰익스피어는 법학자들에,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각종 법적용 사례를 분석케 한다. 뿐만 아니라 사랑이나 경영을 포함한 인생살이 전반에 대해서도 지혜를 준다는 떠받듦마저 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셰익스피어의 일면에 대한 분석일 뿐이다. 서양 르네상스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제국주의화에 의한 부의 축적과 합리적 제도라는 기반 위에 이룩된 것임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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