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기만 있고 제동장치는 없는 자동차를 생각하기 힘들 듯, 사람의 삶도 가속과 제동, 주행과 멈춤의 갈마듦이 적절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지난 한해 동안 우리 각자는 과연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려왔고, 얼마나 자주 멈추었을까? 혹시 가속 페달만 줄기차게 밟은 것은 아닐까?
‘자발적 단순함’의 미덕
최근 유럽사회에선 ‘자발적 단순함(voluntary simplicity)’이 중요한 사회문화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자발적 단순함이란 ‘일을 줄이고, 서두르는 것도 줄이고, 빚도 줄이자. 대신 가족과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여가를 늘리자’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발적이라는 점. 속도에 제동을 걸 듯, 복잡함을 일부러 줄여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줄여나가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 책으로 ‘단순하게 살아라’(유혜자 옮김, 김영사)가 있다. 공동저자 로타르 자이베르트는 시간관리 전문 컨설턴트이며 베르너 퀴스텐마허는 월간지 ‘단순하게 살아라’의 편집주간으로 일하고 있다. 시간관리 전문 컨설턴트란 직종이 낯설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엔 개인이나 기업의 시간관리 문제를 컨설팅해주는 직종이 전문화돼 있다.
독일 저자가 독일에서 펴낸 책이지만 원서 제목은 영어로 돼 있다. ‘Simplify your life’, 즉 ‘당신의 삶을 단순화하라’ 이 책은 독일은 물론 유럽 여러 나라에서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를 기세를 보이고 있다. 그만큼 유럽 사람들이 복잡함에 지쳐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단순화하라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물건을 단순화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우선 1:3 폐기 원칙. 정보가 꾸준히 불어나는 바인더나 책장 등에서 필요한 것을 찾을 때마다 낡은 정보를 3개씩 없앤다. 서류철은 얇아지고 정신적 부담은 줄어들며 시간은 절약된다. 그리고 4분의 3원칙. 수납장이든 책장이든 서류철이든 전체 공간의 75%, 즉 4분의 3이 찰 때 덜어내기 시작해야 한다. 예컨대 수납 선반의 길이가 1m라면 75cm까지만 물건이 놓여 있어야 한다.
30초 원칙도 눈길을 끈다. 윗옷을 옷장에 걸어두는 데는 20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방 하나 청소하는 데는 4분이면 충분하다. 옷 한 벌 다리는 일도 3분이면 된다. 요컨대 눈에 보이는 대로 해야 할 일을 당장 해치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매우 짧다. 그러나 자꾸 미루다보면 처치곤란 지경에 이르기 쉽다. 항상 정리정돈된 상태를 유지하는 습관을 기르란 의미다.
물건 외에 인간관계도 단순화하는 게 좋다. 이를 위해 거절할 줄 아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 일에 신경 쓰기보다는 자신의 일에 집중하라는, 조금은 이기적인 충고가 인상적이다. 저자는 그밖에 토막잠을 활용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라는 충고도 곁들인다. 나폴레옹이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엄청나게 많은 업무량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낮 시간에 토막잠을 적절하게 잘 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단순하게 살기 위한 방법이 뭐 이렇게 복잡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독일 사람 특유의 꼼꼼함 탓일까. 무척이나 자세한 지침들이 번잡하게 느껴진다. 이런 종류의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거나 정독할 필요가 없다. 책장을 빠르게 넘기다 자신의 현 상황과 관련해 유용한 부분을 발견하면 그 부분만 정독하는 것, 요컨대 선택적 독서 또는 검색 독서가 적절한 방법이다. 인터넷에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해 활용하는 것과 비슷한 독서법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시간관리다. 그런데 무작정 열심히 노력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게 능사일까? 물론 노력과 시간의 투자는 중요하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늘 바쁘기만 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능력 있어 보이지만 이 역시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사람은 어쩌면 시간관리에 실패한 사람일 수도 있다.
미국의 시간관리 컨설턴트 제니퍼 화이트는 ‘적게 일하고 많이 거둬라’(김광수 옮김, 아라크네)에서 시간관리 원칙을 제시한다. 적게 일하라는 것은 결코 게으름이나 요령을 피우라는 뜻이 아니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라는 뜻이다. 예컨대 저자는 약점을 고치기보다는 장점을 키워 나가고, 거절의 노하우를 기르며,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충고한다. 약점 고치기에 집착하거나 잘하지 못하는 것을 익히기 위해 애쓰거나, 남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다 보면 시간은 쏜 화살처럼 지나가기 마련이다.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수입원을 다양화하라는 충고다. 다양한 수입원을 개발한다는 것이 적게 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한 가지 일에 모든 것을 거는 것에 비해 오히려 시간관리가 효율적일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른바 투잡족(族)이 늘고 있는 추세임을 감안하면 시의적절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은 일 중독. 그의 말을 들어 보자. ‘일 중독자가 된다는 것은 희생자가 된다는 의미다. 또한 일 중독에 빠져들면 삶의 통제능력을 상실한다. 간혹 어떤 이는 책임감에 얽매여 많은 시간을 좀더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늦게까지 일한다. 게다가 더 많은 일을 떠맡으므로 마감 시간을 연기해야 한다. 고객을 위해 휴가도 연기해야 한다. 이처럼 ‘…해야 한다’가 끝없이 이어진다.’
일상적인 강박관념을 버려라
한편 앞서 소개한 책과 제목을 혼동하기 쉬운 책으로 ‘적게 일하고 크게 얻어라’(박윤정 옮김, 더난출판사)가 있다. 잘 나가던 부동산 중개인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변신한 저자 엘리인 제임스는 삶의 단순화를 통해 더 실속 있게 살아가라고 권한다. 이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는 잡동사니들을 제거하고, 충동 구매를 피하며, 명분뿐인 일은 그만두고, 우편물은 한 번 이상 보지 말며, 내키지 않는 일은 단호하게 거절하라고 한다.
가장 인상적인 충고는 집은 커야 한다거나 세탁한 옷은 눈처럼 희게 해야 한다는 등의 강박관념을 버리라는 것이다. 일상적인 강박관념을 버리면 삶이 한층 더 단순해지는 것은 물론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단순화해서 아낀 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저자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 삶의 목표를 재검토하는 시간,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고 저녁에 노을이 지는 것을 바라보며 명상하는 시간, 평소 해보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일을 하는 시간 등에 써서 삶을 더 풍요롭게 가꾸라고 권한다.
마지막으로 ‘현명한 사람은 적게 일하고 많이 거둔다’는 부제를 단 ‘80/20법칙’(공병호 옮김, 21세기북스)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만나는 친구 중 20%가 내게 80%의 만족감을 주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을 때는 20%의 노력만으로 80%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한 기업이 생산하는 물품의 20%가 매출액의 80%를 달성하고, 주요 고객 20%가 회사 수익의 80%를 가져다준다. 저자는 이렇게 80%의 성과가 나오는 곳에 단 20%가 아닌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80%의 시간과 노력을 잡아먹고 겨우 20%의 성과만 내는 쓸데없는 일을 과감히 줄이고 포기해야 한다.
결국 저자는 선택·특화·집중을 강조하는 셈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10계명 가운데 인상적인 것 몇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아주 좁은 분야로 전문화해 핵심 능력을 개발하라. 스스로 좋아하면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1인자가 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라. 지식이 곧 힘이란 사실을 명심하라. 핵심 역량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아웃소싱하라. 전문분야에서 자기 사업을 하라.
‘앎’과 ‘거둠’이 망각하는 ‘잃음’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늘 정신없이 분주하게 사는 게 성공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라이프 스타일로 여겨진다. 위에 소개한 책들 가운데 ‘단순하게 살아라’와 ‘적게 일하고 크게 얻어라’는 그런 인식과 현실에 이의를 제기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많이 알고 많이 일하고 많이 거두려 하는 사이에 우리는 삶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이에 비해 ‘적게 일하고 많이 거둬라’와 ‘80/20법칙’은 일종의 성공전략으로 단순함을 주제로 한다. 무작정 많은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보다는 선택적 집중화와 효율적 시간관리에 치중하는 전략이다.
지금 당장 각자의 주변을 둘러보자. 어지럽게 널린 서류더미, 복잡한 스케줄, 기억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약속, 언젠가는 정리하리라 미루기만 하는 책장과 수납장…. 이런 것들에 포위당해 있지는 않은가?
성공 전략으로 택한 단순함이든, 삶의 근본적인 태도로 택한 단순함이든, 각자에게 필요한 단순화의 방법을 찾아볼 때는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