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걷기도 힘든 시각장애인이 마라톤을 한다. 남들이 한번 완주하기도 힘든 마라톤 풀 코스를 49회나 완주한 철각(鐵脚) 이용술씨가 그 주인공.
- 달리고 또 달리면서 마음의 상처를 잊어버리고 정신의 쾌락을 얻는다는 이씨의 ‘마라톤 미학’과 기구한 인생 스토리.
‘제 2회 남산 단풍 하프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이용술씨(왼쪽)와 도우미.
잠시 짐을 맡기러 저만치 이동했던 이씨, 방향을 잃었는지 혼자 우두커니 서있다. 이내 익숙한 목소리를 찾아냈는지 몸을 돌려 곧장 걸어온다. 청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목소리로 서로를 느끼고 알아낸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이들이 어떻게 42.195km를 뛴다는 것일까.
단상에서는 몸 풀기 체조를 유도하는 구령소리가 들려온다. “다리 운동!”하고 외치자 모두들 다리 굽히기를 하는데 이씨만 양다리를 벌리고 서 있다. 그러면서 주위에 묻는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 그의 등판에는 시각장애인이라고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함께 달리던 마라토너들은 흘끗 쳐다보더니 이내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한치 앞도 내딛기 힘든 이가 마라톤을 한다는 것은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씨는 하프코스(21km)를 280회 이상, 풀코스(42.195km)를 49회, 울트라마라톤(100km)의 하프코스격인 63.5km를 3회나 완주한 베스트 마라토너다. 다들 독하다고, 혹은 대단한 일을 했다고 말하지만 그는 기록이나 완주가 목표가 아니다. 그저 길이 난 곳으로 쉼 없이 달려나갈 뿐이다. 그는 이미 마라톤에 중독된 사람이다. 대부분의 중독이 고통과 쾌감을 동반한다면 이씨의 마라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가 마라톤으로 인해 얻는 쾌감과 고통의 정도는 누구와도 비할 수 없다.
눈과 가슴 연결하는 ‘사랑의 끈’
처음에는 앞서가는 사람의 발소리를 듣고 뛰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길을 잃기도 했고 이유 없이 쫓기는 사람이 달리기를 멈추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불쑥 생각해낸 것이 도우미 제도. 외국에서는 플레이메이커라고 해서 널리 실행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선 시도된 일조차 없었다.
그는 당장 실행에 옮겼고 지금은 널리 알려져 인터넷에 도우미 3명을 구한다는 글을 올리면 40여명이 지원할 정도. 이렇게 자신으로 인해 장애인들이 뛸 수 있는 환경이 점점 나아지는 걸 보면서 그는 사명감을 느낀다.
대회 때마다 도우미는 다르다. 많은 이가 도우미를 자청했는데, 이로 인해 그에겐 절친한 친구들이 생겼다. 둘이 함께 달리는 것은 혼자 달리는 것 보다 몇 배나 힘이 들기 마련. 그러기에 마음과 호흡이 맞는 도우미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이씨의 도우미는 동갑내기 안성배씨. 남산에서 달리며 만난 사이인데, 지금은 마라톤을 넘어 절친한 친구사이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꼭 잡고 걷는 그들이 더욱 친밀해 보인다. 말뿐 아니라 느낌까지 소통하는 듯. 그의 눈이 되어주기 위해 그들은 마음부터 연결하는 듯했다.
출발점에 서자 시각장애인들이 모두 제 짝을 찾아 손을 잡는다. 그리고 이씨가 개발한 ‘사랑의 끈’으로 서로를 연결한다. 처음에는 보통 줄을 잡고 뛰었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50cm의 탄력 있는 끈으로 바꿨고, 양쪽을 둥글게 해서 손목에 끼울 수 있게 만들었다. 뛰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 그는 항상 시각장애인들의 마라톤을 위해 더 편리한 것을 생각한다. 비장애인이라면 사소한 불편에 대해 불평을 말하면 되지만 장애인은 자신의 못남을 탓해야 하는 큰 좌절이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출발 신호탄이 울렸다. 여기저기서 “이용술 파이팅!”을 외친다. 이젠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제법 많다. 그가 사람들을 향해 손을 들고 활짝 웃어 보인다. 자신은 볼 수 없는 웃음을 우리에게 보라고 던져준다.
“장애인들은 가슴에 원망과 분노가 많아요. 사회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그 또한 처음엔 참을 수 없을 만큼의 분노를 가슴에 안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에 대해 여유가 생겼다. 마라톤을 시작하면서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대부분은 가벼운 농담처럼 유쾌하기 짝이 없다. 툭툭 내뱉는 말들이 세상을 대하는 시야가 넓은 사람임을 알게 해준다.
“처음에는 내 자신만을 위해 뛰었어요. 지금은 장애인 세상을 위해 뛰죠.”
마라톤을 하면서 자신을 달래고 어르며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이씨는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마라톤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풀코스를 뛰면 뛸수록 정신이 맑아지는 걸 느낍니다. 장애를 갖게 되면서 그만큼 마음에 상처를 입고 정신적 장애까지 가지게 되었나 보지요.”
그래서 그는 또 다시 뛴다. 방 한구석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시각장애우들을 집밖의 세상으로 불러내고 싶단다. 이런 달리기가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장애인을 따뜻한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게 좋다.
“사람들이 장애를 극복한다고 표현하는데, 장애는 절대 극복할 수 없어요. 어딘가에 가 닿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거죠. 내가 뛰는 것도 몸부림이에요.”
그래서 그는 뛸 수밖에 없다. 지금도 어딘가엔 한 걸음 내딛는 것도 두려워서 음지에 갇혀 사는 시각장애인들이 있다. 그들이 자신을 알게 되어 밖으로 한 걸음씩이라도 나와 주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관심도 많아지고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도 점차 좋아지기를 바란다.
장애를 모르는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만나면 도움을 주고 싶은데도 방법을 몰라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자리를 뜨곤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위해 먼저 나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슴 한켠을 비우고 비장애인을 대해야만 한다. 그러면 쭈뼛대던 이들도 쉽게 다가온다. 도우미들 역시 마찬가지다. 마라톤을 공통 분모로 두고 최선을 다해 달리다 보면 어느샌가 공감대가 형성된다.
제대로 걷지도 못 하는 이들이 어떻게 뛰냐고 사람들은 걱정한다. 그러나 잘 뛰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잘 뛰는 사람은 없다. 모두 노력하고 배우면 되는 일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좋은 기록조차 그저 종이쪼가리일 뿐이다.
햇살이 비치는 길 위에서 자신을 터뜨리든 말든 그것도 그들의 자유지만, 한번이라도 그 어둠 속에서 그들이 나와봤으면 하는 소망이다. 반드시 뛰어야 마라톤은 아닐 것이다. 인생 역시 매번 뛰어야 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한 마음으로 한 길을 가면 결국 골인 지점에 도착하기 마련이다. 그는 다른 시각 장애인들이 마라톤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게 그는 가슴 한켠을 비우고 세상 모든 이들에게 다가가 본다.
“풀 코스를 뛸 때, 초반에 힘들어질 때가 있는데 그렇게 계속 가다가 15km쯤 가면 쾌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30∼35km쯤 가면 다시 큰 고통이 찾아오지요. 그게 바로 한 인생입니다.”
그때쯤 자신의 굴곡 많은 인생을 떠올렸을 것이다.
오늘 대회에서 그는 순위 안에 들지 못했다. 그러나 함께 뛴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이 완주에 성공했다. 그것만으로도 기쁘다. 한 시각장애인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이용술씨라고 부르더라며, 빨리 자신의 등판에 이름을 새겨야겠다고 말한다. 요즘은 시각장애 마라토너를 보면 무작정 이용술씨냐고 묻는 이가 많다. 그러나 이씨는 그런 반응이 석연치 않은 모양이다.
대회가 마무리 되어가자 시각장애마라톤클럽 회원들과 도우미 마라토너들은 남산의 녹색체육관으로 간다. 거기서 막걸리 파티가 계획되어 있다. 그는 친구가 좋고 술이 좋다.
마라톤 출발 전 결의를 다지는 이씨(가운데)와 도우미 친구들
더 이상의 삶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름난 병원을 찾아다녀도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죽으려고 약도 먹고 목을 매달기도 했다. 그러나 죽음도 그리 쉽지 않았다. 한겨울에도 홧김인지 몸에서 열이 치솟았다. 냉방에서 옷을 홀랑 벗고 밤새 뒹굴었다. 그래도 몸의 열은 식지 않았다. 장애를 인정하는 건 쉽지 않았다. 눈물로도 울음으로도, 대성통곡을 해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어요. 정상인이 아니라고 되뇌었어요.”
맹아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맹인이 많은 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도 자신이 맹인이라는 걸 인정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안 보이는 이들과 섞여 산다는 것도 인정하지 못했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규칙이 엄한 학교에 조금씩 적응해야 했다. 손끝에서 점자가 안 느껴져서 자면서도 이불 속에서 점자를 더듬었다. 살려면 노력해야 했다. 시각장애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 끝에 3년을 다 채우고 졸업하면서 안마자격증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그는 지금 일산에서 안마시술소를 경영한다. (등록된 시각장애 안마사만도 10만명인데 그중 겨우 몇만명 정도만 안마사를 하고 있다. 취업까지는 보장되지 않는 교육제도 탓이다. 그래서 그는 안마사들이 한의원이나 정형외과 물리치료실에 흡수되면 좋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는 왜 마라톤을 하게 되었을까. 달리는 데는 관심이 없었던 그다. 원래 복싱과 격투기를 즐겼으나 그 운동들은 상대의 눈을 읽어야 한다. 미련 없이 포기했다. 시력을 잃고 좋아하던 운동을 그만두자 가슴은 더 격해졌다. 때려부순 텔레비전이 한두 대가 아니었다. 그러자 동생이 헬스클럽에 데리고 갔다. 헬스클럽에서 7년간 운동하며 몸을 만들었다. 그렇게 러닝머신 위에서 뛰노라니 갑자기 밖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서 동생을 앞에 세우고 뛰기 시작했다. 서너 달을 그렇게 뛰었다. 한강 둔치에 나가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그러던 1993년 어느 날, 동생이 권유한 마라톤 대회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난 능력도 재능도 없어요. 노력할 뿐이에요.”
그는 어둠이 들어찬 빈 몸뚱이 하나로 한 트랙 한 트랙을 달렸고 그렇게 용기를 얻어 일과 사랑과 우정을 일구어냈다. 그렇게 그는 또 하나의 삶을 환하게 만들어 낸 것이다.
“그때 죽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지금 내 삶에는 또 다른 재미가 있거든요.”
검고도 붉은 사랑
그의 아내 역시 시각장애인이다. 두 사람이 같은 장애를 가졌다니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난 정말 행복해요. 아내가 너무 좋아요. 물론 고맙기도 하고…”
맹아학교에서 가톨릭학생회 회장을 하고 있을 때 만난 사람. 두 사람은 스물 여섯에 결혼했다. 그러나 당시 그들 사이에 사랑은 없었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가 오기 전에 알던 여자. 그래서인지 같은 처지의 여자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부모님은 줄곧 그가 맘에 두는 여자와의 결혼을 반대했다. 살다가 분명 도망갈 거라는 걱정이었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날짜를 잡은 아버지의 권유를 그는 말없이 따랐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이지만 지금은 아내를 만난 것에 너무도 감사한다. 두 사람의 사랑으로 서로의 장애를 감싸 안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1996년에 이씨는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돈을 잃었다는 것보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눈먼 바보로 여기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스스로도 그런 자신을 인정하기 싫었다. 절망감에 휩싸였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바로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아내가 다가와 감싸 안아 주었다. 그런 아내와 서로를 믿고 살아가는 삶이 행복하다.
곁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용술씨 부인이 정말 미인이라고 말하자, 그가 수줍게 웃는다. 결혼 13년 차에 아직도 아내를 떠올리며 수줍게 웃는 남편, 그는 진정 사랑을 아는가 보다.
“앞이 안 보이는데 음식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래서 난 내 아내가 해주는 음식이 가장 맛있어요.”
아이는 없다. 부모가 시각장애인이라는 멍에를 아이에게 씌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살면서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입양을 하려고 했는데, 장애인에게는 입양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마음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아이를 키우는 세상인데…’라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가 뛰는 마라톤 대회에 아내는 단 한번 찾아왔다. 부모님 역시 한번. 어머니는 그가 뛰는 모습만 봐도 우신다. 아직도 아들의 장애를 완전히 인정하지 못하는 듯하다고 그는 말끝을 흐린다.
뛰다가 넘어져서 얼굴이 피범벅인 채로 뛴 적도 많다. 그런 상태로 2등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철길에 엄지발가락이 끼어서 인대가 완전히 뭉개진 발로 완주를 해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놀랐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을 이겨내고 싶었다.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마라톤은 정직한 스포츠다. 그리고 성실해야 하는 스포츠다. 그래서 그는 힘든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생기면 달린다. 그러면서 잊을 것은 깨끗하게 잊는다. 얼마 전 그는 정신적 공황상태를 겪었다. 한강에서 열린 울트라마라톤 대회에서 완주를 하지 못한 것이다. 40km 즈음에서 돌부리에 걸려 나동그라지는 바람에 발목을 접질려 그만 포기해야 했다. 몸 상태도 좋았고 체력도 남아 있었기에 너무나 억울했다. 더욱 그를 다그쳤던 것은 아버지가 중병으로 병원에 누워 계신 것. 그는 뛰면서 부모에 대한 안타까움을 잊고 싶었다. 그런데 그걸 포기해야 했다. 그런 자신이 너무도 싫었다. 마라톤을 아예 포기하려 했다. 그렇게 포기하고 돌아서는 순간 미국의 시각장애 마라토너 말라 러년(33·여)이 뉴욕마라톤대회에서 5위로 들어왔다. 만감이 교차했다.
시각장애인이 마음껏 달릴 수 있는 미국의 사회적 환경이 너무도 부러웠다. 우리나라에는 시각장애인들이 뛰기에 적합한 도로가 한군데도 없다. 시각장애인들이 안전하게 뛸 수 있는 도로가 있다면 정상인들도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는 안타까워한다. 장애인이 편한 것이 정상인도 편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왜 모르는지.
그는 이제 일산 호수공원과 남산순환도로를 혼자서 달릴 만큼 익숙해졌다. 그러나 위험한 일이다. 발끝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중앙선을 따라가며 뛰지만 어디서 돌발 상황에 부딪힐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얼굴이 또 다시 피범벅이 될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는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지난 해 한 마라톤 대회에서 그는 한의사 주승균씨를 만났다. 풀코스를 16회 완주한 주씨도 마라톤 마니아. 주씨는 ‘희망의 마라톤(www.hopemarathon.com)’이라는 동호회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곳 회원들은 1m를 달릴 때마다 1원씩 모금한다. 중증 장애인들의 수술비용으로 쓰기 위해서다. 벌써 3700만원이 답지했다. 그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내년 4월20일 장애인의 날에는 여의도에서 ‘장애인 돕기 하프마라톤 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장애유무와 관계없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대회. 참가비 전액을 장애인을 돕는 데 쓴다. 이런 행사를 통해 정상인도 장애인과 함께하고 장애인도 한 걸음 세상에 나오기를 이씨는 소망한다. 그래서 올해를 마감하는 12월30∼31일에 주승균씨와 제주도에서 200km를 뛸 것이다. ‘희망의 마라톤’ 성공기원 마라톤을 둘이서 해내겠다는 다짐이다. 그들은 희망도 다짐도 마라톤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는 본격적으로 시각장애인을 돕기 위해 뛴다. 그가 뜻맞는 이들과 ‘시각장애인 마라톤 클럽’을 만든 것은 1999년 일본의 ‘시각장애인 마라톤클럽’을 본 후다. 20년이 넘는 그들의 역사가 너무나 부러웠다. 작은 규모라도 시작이 중요하다면서 만든 모임이 회원 30여명에 이르렀다. 그는 회원들이 더 좋은 신발을 신고 더 좋은 연습시설에서 뛰게 하고 싶다. 그렇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의 형편은 여의찮다. 대회 참가비 2만원이 없어서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눈 밝은 시인, 영원한 마라토너
“단풍이 붉고 노랗고 정말 예쁘다. 용술이 이놈, 넌 모르지?”
마라톤을 끝내고 남산 길을 걸을 때 그의 도우미이자 친구인 안씨가 짓궂게 농을 건넨다. 그러나 그는 한술 더 뜬다.
“아 정말 아름답네, 햇살에 비치는 단풍 빛이 더 곱다”
늦은 밤, 그가 술자리에서 붉어진 얼굴로 고백한다.
“아까처럼 친구가 그렇게 단풍을 얘기하면 난 시각을 잃기 전에 보았던,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웠던 가을 설악산을 떠올려요. 나는 그렇게 이 단풍을 봐요.”
어릴 적부터 그의 꿈은 시인이다.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가 친구를 앞에 두고 문득 시 한 구절을 읊조린다. “소년은 풀을 뜯어 호수에 던지고/ 호수는 어루만져 풀을 삼키네/ 소년은 고개 들어 눈물 말리고/ 바람은 호수 따라 노래 부르네…”
시인의 눈을 가진 그를 누가 시각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눈이 안 보이니 모든 사물들이 다르게 느껴졌다고 한다.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들도 있고,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들도 있다. 먼길을 달릴 때 빛을 느끼는 이들은 주변 풍광을 보면서 위안을 삼지만 시각장애인들은 그렇지 못해 더 힘들다. 그렇지만 마음을 진정시키고 한참을 달리다보면 그의 눈앞엔 바람과 빛의 기운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눈 달린 이들이 죽었다 깨나도 못 보는 것들을 그는 온몸으로 보는 것이다. 몸으로 느끼는 시인, 그는 온몸으로 시를 쓴다.
“술 마시면 친구들이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잊고 혼자 놔두고 가기도 해요”
그의 주변 사람들은 곧잘 그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렇게 온종일 곁에 있다 보니 정말 그럴 만하다. 마라톤을 하면서 가장 기쁜 일은 친구가 생긴다는 것. 모든 이를 스스럼없이 친구로 대하는 이씨. 그 사람들이 너무도 소중하다. 자신이 가보지 못한 곳,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그는 좋다. 이게 다 세상을 달린 덕이다.
“나이가 들수록 빨리 뛰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뛰는 모습은 계속 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