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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75개 만들 세균 감췄다!

유엔의 이라크 생물무기 제조공장 사찰기

  • 정리: 김진수 jockey@donga.com

미사일 75개 만들 세균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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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 유엔 사찰팀은 몇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테면 알 하캄 공장 설비 가운데 상당부분은 살만 팍 공장 설비들을 옮겨왔다는 점이다. 살만 팍 공장은 1991년 걸프전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생물무기 제조공장이다. 아울러 살만 팍에서 일하던 생물공학 연구진이 대부분 알 하캄으로 옮겨왔다는 점도 밝혀냈다.

알 하캄 공장이 생물무기 공장인지에 대해 사찰팀 내부에선 다른 견해도 튀어나왔다. 가장 큰 쟁점은 알 하캄의 환기장치였다. 프랑스와 러시아 출신 요원들은 “만약 알 하캄이 생물무기를 만드는 시설이라면, 안전문제를 고려해 아주 정교한 환기시설과 방호시설들을 갖춰야 하는데, 알 하캄엔 그런 게 없다. 따라서 생물무기 제조공장으로 보기 어렵지 않으냐”는 견해를 내비쳤다. 조너선 터커의 증언.

“이라크 정부가 바라던 것이 바로 그런 결론이었다. 내 생각엔 이라크측이 일부러 안전시설을 그렇게 허술하게 만들어 국제사회의 눈길을 피하면서 실제론 불법행위(생물무기 제조)를 저질렀을 것으로 본다.”

유엔 사찰단은 알 하캄 공장 살충제 생산라인에서 두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첫째, 박테리아 살충제(bacterial pesticide, BT) 샘플을 전자현미경으로 살펴보니 그 박테리아에는 벌레를 죽이는 데 필요한 독성 결정체들이 제대로 없었다. 둘째, BT 입자(粒子)가 너무 작았다. 일반적으로 BT 입자는 공기 중에서 다른 곳으로 퍼지는 걸 막기 위해 적당히 커야 하는데, 알 하캄 공장의 BT 입자는 그렇지 않았다. 조너선 터커의 증언.

“그 입자들은 너무 작고 가벼워 바람에 밀려 멀리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라크가 주장하듯 살충제로는 적당치 않았다. 오히려 생물무기로 쓰려면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시 사찰팀은 BT 생산라인이 탄저균 또는 그보다 더 치명적인 생물무기를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유엔 무기사찰단장 롤프 에케우스는 유엔의 모든 회원국에 이라크로 수출한 ‘두가지 용도’의 장비 목록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서류들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사찰단은 이라크가 고성능 환풍기들을 주문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앞서 프랑스와 러시아 사찰단원들이 “알 하캄 공장이 정말로 생물무기 제조공장이라면 당연히 설치됐어야 할 텐데…”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문제의 환풍기였다.

사라진 22t 분량의 배양기

일련의 인터뷰를 통해 사찰단원들은 이라크가 추진해온 여러 프로젝트의 약호(略號, code)를 알아냈고, 이것들이 생물무기 생산작업과 연관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울러 이라크가 주문한 고성능 환기장비들은 바로 알 하캄 공장에 설치하기 위한 것이라 판단했다.

사찰단은 또한 이라크가 무려 42t에 이르는 미생물 배양기를 구입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배양기는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의료진단용으로 쓰이지만, 탄저균이나 보툴리누스 독소(botulinum toxin), 오염될 경우 피부가 썩어 들어가게 하는 회저균(gangrene)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 이라크 정부는 20t 가량의 배양기를 의료진단에 썼다고 주장했지만, 나머지 22t에 대해선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한 무기사찰단원은 “전세계 어느 나라의 병원에서 20t 가량의 배양기를 의료진단용으로 비교적 단기간에 쓸 수 있겠는가”라고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후세인 정권의 생물무기 프로그램 책임자 리하브 타하 박사는 사찰단원들 사이에서 ‘세균박사’로 통했다. 다른 많은 이라크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서양에서 학위를 딴 사람이다. 사찰단 생물무기팀장 리처드 스퍼첼 박사가 그녀의 상대역이었다. 그녀는 배양기 잔고 계산이 잘못됐다는 스퍼첼의 지적에 대해 “그럴 리가 없다”고 우기다 나중에는 마구 짜증을 부렸다. 사찰요원의 집요한 질문에 화를 벌컥 내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선 책상을 발로 차기도 했다. 후세인은 1997년 그녀에게 과학적 업적을 기리는 훈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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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김진수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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