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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달린다

시각장애 마라토너 이용술씨의 도전 인생

  • 글: 정 영 시인·자유기고가 jeffbeck0@hanmail.net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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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출발 신호탄이 울렸다. 여기저기서 “이용술 파이팅!”을 외친다. 이젠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제법 많다. 그가 사람들을 향해 손을 들고 활짝 웃어 보인다. 자신은 볼 수 없는 웃음을 우리에게 보라고 던져준다.

“장애인들은 가슴에 원망과 분노가 많아요. 사회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그 또한 처음엔 참을 수 없을 만큼의 분노를 가슴에 안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에 대해 여유가 생겼다. 마라톤을 시작하면서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대부분은 가벼운 농담처럼 유쾌하기 짝이 없다. 툭툭 내뱉는 말들이 세상을 대하는 시야가 넓은 사람임을 알게 해준다.

“처음에는 내 자신만을 위해 뛰었어요. 지금은 장애인 세상을 위해 뛰죠.”

마라톤을 하면서 자신을 달래고 어르며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이씨는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마라톤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풀코스를 뛰면 뛸수록 정신이 맑아지는 걸 느낍니다. 장애를 갖게 되면서 그만큼 마음에 상처를 입고 정신적 장애까지 가지게 되었나 보지요.”

그래서 그는 또 다시 뛴다. 방 한구석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시각장애우들을 집밖의 세상으로 불러내고 싶단다. 이런 달리기가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장애인을 따뜻한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게 좋다.

“사람들이 장애를 극복한다고 표현하는데, 장애는 절대 극복할 수 없어요. 어딘가에 가 닿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거죠. 내가 뛰는 것도 몸부림이에요.”

그래서 그는 뛸 수밖에 없다. 지금도 어딘가엔 한 걸음 내딛는 것도 두려워서 음지에 갇혀 사는 시각장애인들이 있다. 그들이 자신을 알게 되어 밖으로 한 걸음씩이라도 나와 주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관심도 많아지고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도 점차 좋아지기를 바란다.

장애를 모르는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만나면 도움을 주고 싶은데도 방법을 몰라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자리를 뜨곤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위해 먼저 나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슴 한켠을 비우고 비장애인을 대해야만 한다. 그러면 쭈뼛대던 이들도 쉽게 다가온다. 도우미들 역시 마찬가지다. 마라톤을 공통 분모로 두고 최선을 다해 달리다 보면 어느샌가 공감대가 형성된다.

제대로 걷지도 못 하는 이들이 어떻게 뛰냐고 사람들은 걱정한다. 그러나 잘 뛰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잘 뛰는 사람은 없다. 모두 노력하고 배우면 되는 일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좋은 기록조차 그저 종이쪼가리일 뿐이다.

햇살이 비치는 길 위에서 자신을 터뜨리든 말든 그것도 그들의 자유지만, 한번이라도 그 어둠 속에서 그들이 나와봤으면 하는 소망이다. 반드시 뛰어야 마라톤은 아닐 것이다. 인생 역시 매번 뛰어야 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한 마음으로 한 길을 가면 결국 골인 지점에 도착하기 마련이다. 그는 다른 시각 장애인들이 마라톤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게 그는 가슴 한켠을 비우고 세상 모든 이들에게 다가가 본다.

“풀 코스를 뛸 때, 초반에 힘들어질 때가 있는데 그렇게 계속 가다가 15km쯤 가면 쾌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30∼35km쯤 가면 다시 큰 고통이 찾아오지요. 그게 바로 한 인생입니다.”

그때쯤 자신의 굴곡 많은 인생을 떠올렸을 것이다.

오늘 대회에서 그는 순위 안에 들지 못했다. 그러나 함께 뛴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이 완주에 성공했다. 그것만으로도 기쁘다. 한 시각장애인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이용술씨라고 부르더라며, 빨리 자신의 등판에 이름을 새겨야겠다고 말한다. 요즘은 시각장애 마라토너를 보면 무작정 이용술씨냐고 묻는 이가 많다. 그러나 이씨는 그런 반응이 석연치 않은 모양이다.

대회가 마무리 되어가자 시각장애마라톤클럽 회원들과 도우미 마라토너들은 남산의 녹색체육관으로 간다. 거기서 막걸리 파티가 계획되어 있다. 그는 친구가 좋고 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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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 영 시인·자유기고가 jeffbeck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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