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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있는 문화이야기 ⑩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 산물인가

  • 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 산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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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독자 치고 셰익스피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상세한 소개는 생략하자. 다만 우리나라 셰익스피어 연구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권중휘는 ‘셰익스피어 전집’ 서문에서 “후세 작가들은 그를 시공을 초월한 작가, 대자연과 같은 작가, 또는 그의 보고(寶庫)를 인도와도 바꾸지 못할 작가, 또는 그의 낱낱 작품이나 그의 전체 작품이 우주체계와도 비교할 만한 작가라 하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위의 언급 중 다른 부분은 그 내용을 이해할 수조차 없으니(시공을 초월한다거나, 대자연 또는 우주와 비교하는 등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마술쟁이나 점쟁이가 아니므로) 무시한다 치자. 그러나 ‘그의 보고를 인도와도 바꾸지 못할 작가’라 함에는 할 말이 있다.

이는 인도를 식민지 삼으려고 침략했던 시절, 영국인의 입에서 나온 말로 짐작되는데, 그 당시는 물론 지금 인도인이 들으면 참으로 경악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제국주의적 교만이 숨어있는 말이다. 일본인이 일제 때 자기들 작가 하나를 두고 조선과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면 우리 기분이 어떨까? 그랬다면 나는 죽어도 그 작가의 책을 읽지 않았으리라.

셰익스피어는 1564년에 태어나 1616년에 죽었으니 영국의 인도 식민지화와 직결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본격적으로 시작된 영국에 의한 아메리카 식민지화를 알고 있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가 한창 활동한 무렵보다 100여 년 전인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한 ‘신세계 발견’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젖었던 당시 유럽인에게 소위 기독교식 ‘천지창조’ 이래 최대 충격이었다.

신세계는 ‘발견’되자마자 ‘정복’되었다. 유럽은 아메리카를 발견하면서 정복했고 또한 정복하기 위해 발견한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인식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이므로 정복이라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사실과는 달리 식인종 설화가 꾸며졌음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여기에 당시를 지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선천적 노예인설’을 원용, 그들의 열등성을 논증하는 것으로 학문적 완결성을 기하였다.



이렇게 유럽은 정복을 위해 물리적 수단(항해술과 군사력 및 폭력)뿐 아니라, 여러 차원의 개념 장치 개발에도 적극 나섰다.

특히 당시 지식인들은 신세계 발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연히 셰익스피어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식민지 관념 형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할 만한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다. 이에 지면 제약 상 몇 작품만 분석해 보도록 한다.

제국주의 소설의 원조 ‘폭풍우’

나는 셰익스피어가 1611년, 마지막으로 쓴 ‘폭풍우’가 식민지 상황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 상징적 작품이라 생각한다.

‘폭풍우’의 주인공은 밀라노의 공작 프로스페로다. 쿠데타로 쫓겨난 그는 무인도에 표류해, 악마가 마녀로 환생했다는 추악한 야만인 캘리반과 정령 에어리얼을 만난다. 프로스페로는 에어리얼을 해방시켜 자기 지배하에 두나 캘리반은 그의 교육에 불응한다. 프로스페로는 마법으로 그를 강제 사역시킨다. 그렇게 하여 섬의 지배권을 확보한 그가 그곳에서 12년 세월을 보낼 즈음, 과거 쿠데타를 일으켰던 사람들이 섬에 표류해 온다. 프로스페로는 복수를 하고자 하나 캘리반 등의 쿠데타에 부딪힌다. 그러나 에어리얼을 이용해 그 음모를 붕괴시킨다.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 희곡이 오랫동안 영국인의 사랑을 받아왔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대영제국이 극성을 부리던 1876년, ‘폭풍우’의 편자는 식민시대에 그 주인공들은 특별한 의의를 갖는다며, 프로스페로가 캘리반의 토지를 빼앗듯 영국도 식민지 원주민으로부터 그 토지를 빼앗는 것이 정당하다는 식의 설명을 하고 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당시 가장 유명했던 셰익스피어 학자 윌슨 나이트는 ‘폭풍우’를 분석하면서 역시 대영제국을 극찬했다. 그는 제국 건설의 정신적 지주로 종교적 규율과 관용, 자연 이용의 기술, 그리고 야만인 문명화에 대한 강고한 의지를 들어 그 세 주제의 각각에 프로스페로, 에어리얼, 캘리반을 대응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제국 찬양의 분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50년 프랑스의 정신분석의이자 사회과학자였던 마노니는 프랑스 식민지 마다가스카르의 지배자와 원주민을 분석하면서 프로스페로와 캘리반을 대응시켰다. 그 후 그 두 이름은 식민지배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널리 사용되었다. 예컨대 케냐 작가 응구기와 씨옹고는 1967년에 쓴 초기 장편 ‘한 톨의 밀알’에서 민족독립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식민관료를 묘사하고 있는데, 그 관료가 소설 속에서 쓰는 회상록 제목이 ‘아프리카의 프로스페로’이다. 역시 셰익스피어는 소위 저항문학, 민중문학에서도 장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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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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