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패전 후 일본에서는 또 한번 근대화 혁명이 전개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 즉 서양문명에 패배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1945년 패전은 ‘제2의 개국’이라고 할 수 있다. 개국은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다. 1945년 이후 미국 지배하에 들어간 일본 사회는 군국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거부정·자기부정을 강요받았다.
나는 1941년에 태어났지만, 1945년 패전 이후의 교육을 받았으므로 ‘전후세대’이다. 나와 같은 ‘전후세대’들은 아버지를 통해서 ‘제1의 개국’의 영향을 받았고 동시에 ‘제2의 개국’으로부터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모순과 갈등이 발생하였다.
내가 처음 한국을 방문한 것은 1970년대 초반이었다. 그 사이 한국 사회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경제발전으로 사람들이 부유해지고 생활환경은 편리해지고 깨끗해졌다. 사람들이 접하는 일상적인 정보량이 늘어나고 다양해졌다. 물질적으로는 이미 선진국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질서의식이나 준법정신은 여전히 부족한 듯하다. 한국인 자신도 이러한 점을 자주 지적하고 있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나는 ‘질서의식과 준법정신’을 놓고 일본과 한국을 비교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나에게 ‘질서와 준법’은 아버지 그 자체였다.
50년 전 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치신 핵심은 ‘질서와 준법’이었다. 물론 “열심히 공부해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훨씬 더 강조한 것은 ‘질서와 준법’ 쪽이었다. ‘질서와 준법’은 사회적·법률적인 질서와 준법 같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일상생활에 관련된 아주 작은 것들이었다.
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말씀은 ‘정리·정돈’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입었던 옷을 잘 개서 베개 옆에 두고 잘 것, 책상 위는 항상 깨끗하게 정리해 둘 것, 벗은 신발을 가지런히 하고 방으로 들어올 것, 식사 때는 먹기 전에 꼭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할 것, 먹고 난 다음에는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할 것, 나온 음식은 절대 남겨서는 안되며, 공부는 항상 목표를 정해두고 계획적으로 할 것, 방학은 계획적이고 규칙적으로 보낼 것, 약속시간은 꼭 지키고 일은 가능한 한 빨리 끝낼 것….
그리고 행동은 씩씩하게 하고, 부모가 하는 말에는 반대하거나 말대꾸를 해서는 안된다. 되도록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남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울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항상 ‘절약’과 ‘인내’ ‘자기책임’을 강조하셨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우리 형제에게 가르친 것은 ‘군대식’ 규율이었다. ‘정리’ ‘정돈’ ‘규칙’ ‘계획성’ ‘신속’ ‘복종’ ‘절약’ ‘인내’ ‘자기책임’등등. 이것들은 모두 군대생활의 기본자세 아닌가. 아버지는 아마도 군대에서 경험한 것을 그대로 자식들에게 가르쳤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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