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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혼모의 육아일기

  • 글: 민 들 레(필명)

어느 미혼모의 육아일기

2/10
아기는 처음 현기증으로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렸다. 왠지 모르게 어지럽고 눈이 침침해 일하면서 나는 몇번씩 눈을 비벼야 했다. 언제부터인가, 마흔을 앞둔 서른아홉 살 때쯤부터 나는 생리 날짜에 조바심쳤다. 조금만 늦어져도, 양이 줄어도 아주 끊겨 폐경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폐경은 곧 생식능력의 상실을 뜻하고 그것은 영영 2세를 가질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그 달에도 마찬가지였다.

내 생활은 기계적이었다. 출근시간 두 시간 전으로 맞춰놓은 자명종 소리에 깨어 간단히 밥 먹고 세수하고 화장하고 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 회사 내 자리, 정확히 말해 책상 한 칸에 앉아 정해진 일을 하고 저녁엔 아침의 역순으로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와 세수하고 밥 먹고 자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이 단조로운 시간표에 따른 생활을 십 년이 넘게 이어왔다. 일에서도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나를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공허뿐이었다. 해마다 내게 남는 것은 12장의 월급 명세서뿐이었다. 돈이 무엇이기에 여기까지 왔을까. 회사 업무를 챙기듯 내 자신을 챙기고 보듬었다면 지금 이토록 허허롭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내게도 친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들 결혼하면서, 아니 내가 결혼하지 않아서 점점 멀어져 일년에 전화 한두 번, 어느 해는 전화연락 한 번 없이 지내게 되었다. 결혼한 친구들은 만나면 자녀 이야기, 남편 이야기, 시부모 이야기가 전부여서 나는 늘 꿔다놓은 보릿자루였다. 서로 공감할 부분이 없는 만남은 부자연스럽고 불편하게 마련이어서 결국은 나가지 않게 되었다.

회사에서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사우들은 입사 2~3년차가 되면 어김없이 결혼 청첩장을 돌리고 정확히 일년 후 득남이니 득녀니 게시판에 붙이고 백일잔치 돌잔치로 이어졌다. 물에 기름 겉돌 듯 결혼하지 않은 나는 언제 어디서고 외롭고 쓸쓸했다. 내 모습은 영락없이 승자만이 사랑을 나누고 그 씨를 이어가는 동물의 세계에서 거세된 수사자였다. ‘그래, 남이 저렇게 열심히 씨를 퍼뜨리고 기르니 나까지 나서지 않아도 인류의 씨가 마르지는 않으리라’ 냉소로 일관하며 위안을 삼았지만 허전하고 외로운 건 막을 길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마흔이 넘도록 남들 다 하는 결혼을 못했을까. 결혼은 정말 짚신도 짝이 있다는 옛말처럼 자연현상일까. 이대로 살다보면 나머지 한 짝의 짚신이 내게 와서 청혼하게 될까. 마흔이 넘으면서 나는 이대로 나의 짚신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험관 아기는 싫다



결혼과 상관없이 생식기능이 살아있을 때 나의 2세를 얻자는. 물론 이 사회는 이런 결론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았았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졌다. 개인적 갈망과 사회적 규범 사이에서. 그러나 나는 내 갈망이 절도나 사기처럼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게 아니라면, 규범을 지키기보다는 다시는 기회가 없을 나의 소망이 더 중요하다고 결론내렸다. 성욕을 포함하는 사랑이, 배고플 때 밥을 먹어야 하고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셔야 하는 것처럼 인간의 본능이라면 그 본능은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채워져야 한다고. 그리고 성 행위 결과로 생겨나는 2세를 원하고 어미의 사랑으로 키워보려는 의지가 있다면 낳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나는 사전 정지작업이라도 하듯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난생 처음 산부인과에 가 임신 가능성을 알아보기도 했다. 나팔관이 막히지는 않았는지, 자궁에 이상은 없는지를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의사는 당연히 나를 결혼했으며 불임으로 고통받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의사는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는데도 아직까지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팔관도 정상이고 사진상 자궁에 특별한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이 사십이 넘으면 난자와 정자가 결합해 자궁에 착상할 가능성이 그만큼 떨어진다고 설명하며 왜 진작 병원에 오지 않았냐고 말했다. 의사의 말은 내게 희망과 실망을 동시에 안겨줬다. 자궁에 별 이상 없이 정상이라는 데서 희망을 얻고 나이가 많아 착상률이 낮다는 말에 실망했다.

시험관 아기, 정자은행에 보관돼있다는 냉동 정자, 내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단어가 오갔다.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나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2세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영화에서처럼 낯선 도시로 원정 가 전혀 모르는 남자를 유혹해 정사를 벌이고 감쪽같이 사라지는 방법도 문제다. 적어도 세파에 시달려 고달프고 외로운 마음에 위안을 주고 때로 크게 상심했을 때 상처를 닦아주며 위로해줄 줄 아는 지극히 인간적인 심성의 소유자와 따뜻한 체온을 나누며 사랑으로 2세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그런 상대를 만났기에 다들 결혼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생식기능이 사그라들 위기에 닥치도록 그런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나이 사십대에 접어들면서 부쩍 홀로 늙어간다는 게 외로움을 넘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짝을 못 만나 영영 스러져갈 처지에 놓여있던 내 유전자가 벼랑 끝에서 한 유전자와 결합해 내 안에 새생명체를 안겨주었다. 이 생명체는 결국 나일까, 또 다른 나일까. 사람이 성을 갈구하는 것은 쾌락 때문이 아니라 종족 본능을 향한 강한 희구가 아닐까. 성적 욕구와 종족 본능이 반드시 결혼한 사람에게만 용납돼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산부인과에서 임신이라는 말을 들은 기쁨은 잠시, 나는 결혼하지 않은 나의 임신을 정당화하는 논리부터 생각해야 했다. 그것은 앞으로 맞닥뜨릴 수많은 난관에서 나와 아기를 지켜줄 힘이 될 것이다. 태교는 꿈도 못 꾸었다. 내 머릿속은 돈 계산으로 바빴다. 사직서는 언제 내야 적당할까, 퇴직금은 얼마가 될까, 퇴직금을 어떻게 활용해야 오래도록 생활에 도움이 될까, 그것도 태교가 되었다면 아이는 장차 수리에 소질을 보일 수도 있으리라.

한편으로 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해보았다. 만약 결혼하지 않은 내가 만삭이 되도록 회사에 출퇴근하고 출산휴가를 신청한다면 어떻게 될까. 산전 휴가 조항엔 결혼 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단지 임신 중의 여자조합원에게 시간외 수당을 제외한 월급여 전액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에 결혼 여부를 밝히지 않은 것을 미혼의 임신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아전인수식 해석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회사의 품위를 손상시킨 중대 과실로 해고 사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력 사항 기재에 중대한 사항이 허위로 판명된 경우에 해당할 수도 있다. 이 또한 해고 사유다. 더욱 악의적으로 해석하면 정신질환 등으로 정상적인 업무수행이 곤란하다는 객관적 증거라고 몰아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모자보건법은 꼭 결혼한 경우에만 적용 대상이 될까. 모성은 결혼한 경우에만 인정되는 것일까. 미혼에 출산휴가를 쓴 선례는 없을까.

그러나 내겐 그럴 만한 용기가 없었다. 특별히 모아놓은 재산도 없고 남다른 기술도 갖지 못한 내가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밥줄’을 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출산 후엔 혼자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는 남이 알아채기 전에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서러움을 주체할 수 없어 집으로 오는 좌석버스에서 나는 소리없이 울었다.

그로부터 출산 때까지 꼬박 다섯 달 동안 나는 석양 이전에는 한 번도 외출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지내다 어스름 저녁 무렵 헐렁한 점퍼를 걸치고 동네 인근 두서너 블록을 산책하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했다. 느릿느릿 걸으며 나는 뱃속 아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선 모두들 이미 나를 노처녀, 독신녀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출산 후 아기 예방주사를 맞히러 가는 첫 외출 때 경비 아저씨와 옆집 할머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서 나는 죄인이 유배지로 떠나듯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타 도시로 이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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