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한국 대중음악 스타 열전

“‘아침이슬’은 김민기나 내게 애증의 대상”

30년 한결같은 포크계의 ‘상록수’

  • 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아침이슬’은 김민기나 내게 애증의 대상”

4/5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양희은은 1981년 돌연 유럽 배낭여행의 길을 떠나면서 잠시 음악계에서 사라진다. 이듬해 여름 한국에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두 번에 걸쳐 암 수술을 받는 중대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를 일그러진 시대의 대항마로 기억하고 싶어하는 팬들에 의해 ‘하얀 목련’은 1984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1985년 단 한번의 녹음으로 취입했다는 하덕규 작곡의 ‘한계령’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 5년이 흐른 1990년 전국민의 가요로 사랑을 받기에 이른다. 그의 노래 생명선은 그렇게 질기고도 길었다.

-1981년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한창 가수와 방송활동을 병행하던 시기에 외국으로 떠나기는 힘들었을 텐데요. 시기적으로는 신군부의 권력장악이나 5공화국 출범과 맞물리는데 그런 상황과 연관이 있었던가요?

“직접적으로는 아닙니다. 물론 당시 상황에 심정이 답답해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1970년대 중반 포크의 흐름이 막혀버린 상황이었고, 라디오 DJ를 하는 순간에도 방송국에는 정보부 요원이 2인1조로 배치되어 절 감시하곤 했으니까요. 가끔 ‘김민기 언제 봤어?’ ‘그 친구 어디 있는지 모르나?’ 하고 묻기도 했죠.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꼭 그런 게 아니어도 전 저대로 끊임없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때였습니다. ‘썩은 나이’ 서른이 되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찾고 싶었어요. 타성에 젖는 게 싫어서 가수를 그만두고 전업을 고려했습니다. 마침 그 무렵 아는 분의 도움으로 보세의류회사 의류기획실장으로 적을 두고 있었고, 덕분에 여권을 얻을 수 있었어요.”

-14개월 뒤 유럽에서 돌아온 것은 병 때문이었습니까?



“아니에요. 병은 한국에 돌아와서 알았어요. 잘 알던 여고선배 의사를 우연히 만났는데 진단하기도 전에 제 얼굴만 보고는 ‘말기 암 환자’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는 거예요. 몸에 세 군데나 종양이 있었죠.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스트레스와 가난’이 누적됐기 때문일 겁니다. (빙그레 웃으며) 남자를 모르고 산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두 번에 걸쳐 수술을 받은 것은 첫 수술 후 제가 몸 상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탓이에요. 그때 제 병을 알지 못했다면 오늘 저는 없었을 겁니다.”

-가난이라면 전성기에도 전혀 돈을 벌지 못했다는 말인가요? 양희은씨 음반은 상당히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까?

“전성기라…. 저한테 과연 전성기가 있었던가요? 전 한번도 인기가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음반 판매고는 상당했다지만, 그 시절은 레코드사가 돈을 벌었지 가수는 돈을 구경도 못하던 때였어요. 방송 DJ로 그나마 수입을 채웠을 뿐입니다. 자매 셋이 대학을 다니니 등록금 대기가 쉽지 않았죠. 제가 대학을 7년 만에 졸업했으니 말 다했죠. 전 ‘돈 없는 가수’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1987년 서른다섯의 나이에 사업가 조중문씨와 결혼한 양희은은 남편이 사업을 하고 있는 미국으로 떠나 새 삶을 꾸리게 된다. 하지만 7년이 지난 1993년 남편의 사업장이 한국으로 옮겨오고, 또한 ‘늙어서는 서울 가서 살고 싶다’는 남편의 희망에 따라 양희은은 귀국길에 오른다.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노래를 위해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돌아왔으니 그냥 다시 노래하게 됐을 따름이었다.

-30년 기념 라이브 앨범 속지를 보니 ‘나의 원래 꿈은 가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30년 넘게 노래를 하고 있다’고 쓰셨더군요. 다른 가수들은 노래를 목숨으로 여기는 데 비해,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좀 이상해 보입니다. 현재도 노래보다 라디오 진행에 더 에너지를 쏟는 듯하고요.

“그래서 음악을 계속하려고 하는 겁니다. 속지의 다음 문장을 보세요. 꾸준히 노래를 했지만 목숨 걸고 노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깨끗이 노래를 그만둘 수 없는 겁니다. 뭔가 목숨을 걸고 보란 듯이 해놓고 나서야 그만둘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어쩌면 노래를 그만두기 위해 노래를 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생각보다 미련하고 우직한 성격입니다. (껄껄 웃으며) 그래서 별명도 ‘양미련 여사’ 아닙니까? 라디오 진행은 제가 욕심이 많기 때문에, 노래하면서도 같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그게 전부는 절대로 아닙니다.”

4/5
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연재

한국대중음악 스타열전

더보기
목록 닫기

“‘아침이슬’은 김민기나 내게 애증의 대상”

댓글 창 닫기

2020/04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